“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너희가 무사하기만 하면 돼. 그 외의 건... 욕심내지 않을게.”자신의 목숨이든, 병세든, 그런 건 그다음 문제였다.최수빈도 지금 주민혁이 하는 말은 아마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오해받고, 외면당하고, 차갑게 밀려났던 시간은 지켜주겠다는 한마디로 말끔히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최수빈은 더 말을 잇는 대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주민혁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위험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서류들을 바라보며 최수빈은 확신했다. 이 순간부터, 주민혁과의 관계는 다시 복잡해지고 말 거라고....제노 테크를 나선 뒤, 최수빈은 차 안에서 조금 전의 대화를 계속 되새겼다. 오해와 보호, 그리고 과거 일들에 대한 고백들...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지금 당장에는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천공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들어섰지만 문서에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한참을 맴돌아도 글자 하나 찍히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살며시 열리며 육민성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오더니 컵을 그녀의 손 가까이에 내려놓았다.“돌아오자마자 멍하니 있던데, 무슨 일 있었어? 답답하면 나한테 얘기해도 돼.”최수빈은 고개를 들었다. 걱정이 담긴 그의 눈빛을 보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피로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 별일 아니에요. 그냥... 아직 정리가 안 된 게 좀 있어서요. 생각 정리되면 그때 말할게요.”육민성은 캐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다 받아주겠다는 듯 말했다.“그래. 급할 거 없어. 하지만 기억해. 무슨 일이든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마.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꼭 받을 테니까.”최수빈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고는 인생에서 가장 버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렸다.이혼 후 율이를 혼자 키우며 버텼던 시간, 회사가 위기에 몰려 파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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