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01 - Chapitre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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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1화

이틀 연속으로 긴장을 놓지 못한 탓에 최수빈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눈 밑에 번진 다크서클은 컨실러로도 간신히 가려질 정도였다.그녀는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른 뒤에야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자 안에 낯선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검은 후드 티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최수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며 몇 초간 망설였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안으로 들어섰다.엘리베이터 안 공기는 유난히 답답했다. 들리는 건 기계가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뿐이었다. 남자는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고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옷자락 끝을 뜯고 있었다. 그럴수록 불안함이 더 짙어진 최수빈은 패널에 찍히는 숫자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속으로 층수를 셌다.‘제발, 빨리 도착하길...’마침내 ‘딩’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려 최수빈은 거의 반사적으로 밖으로 나섰다. 한숨 돌리려던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 아침을 든 채 서 있는 육민성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미소까지 그대로였다.“드디어 왔네. 기다리느라 혼났어.”육민성이 다가와 아침 식사를 내밀었다.“아침에 율이 데려다주느라 밥 못 먹었을 것 같아서. 네가 좋아하는 그 만둣집 들러서 일부러 사 왔어. 아직 따뜻해.”봉투를 받아 들자 최수빈의 손끝에 닿은 온기가 팔을 타고 가슴속까지 번지며 몸을 파고들던 서늘한 기운과 불안을 단숨에 밀어냈다.그녀는 걱정하는 육민성의 눈빛을 마주 본 뒤, 티 나지 않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선배.”“나한테 무슨 고맙다는 인사를 해.”육민성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어제 잠 제대로 못 잤어?”최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걱정시킬까 봐 어젯밤 일은 꺼내지 않았다.“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일단 사무실부터 가자. 확인할 협업 디테일이 몇 개 더 있어.”육민성은 더 캐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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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2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저 빨리 주차장을 벗어나서 사람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최수빈은 정신없이 엘리베이터 쪽 모퉁이로 달려갔다. 그런데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코너를 도는 순간, 단단한 품에 그대로 부딪혔다.상대가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아 균형을 잡아주자 익숙한 기운이 확 끼쳐 왔다.주민혁이었다.최수빈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듯 뛰었다. 아직 놀란 기색이 가시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으며 눈빛에는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본능적으로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오던 그림자는 이미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고 없이, 남은 건 텅 빈 주차장 통로뿐이었다. 창백한 조명이 바닥만 희뿌옇게 비출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주민혁은 최수빈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무슨 일 있어?”가방끈을 쥔 최수빈의 손끝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혔다.“여긴 왜 왔어요?”최수빈은 주민혁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왜 여기 있는지부터 물었다.지금 주민혁이 여기 있다는 건, 적어도 당장은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그녀를 쫓던 그 그림자는 정말 사라진 것 같았다.“율이한테 줄 게 있어서. 지난주에 갖고 싶다던 우주항공 모형이 도착했거든.”주민혁의 시선이 최수빈의 뒤쪽, 텅 빈 통로를 훑었다. 아무래도 최수빈의 상태를 단번에 알아차린 듯했다.“뭐가 그렇게 무서웠어?”최수빈은 입술을 달싹였다.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뒤늦은 공포가 다시 밀려왔고 율이가 매일 혼자 등하교하는 길이 떠오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만약 그 사람의 표적이 율이이면 어떡하지?’더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지라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눈앞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인 주민혁을 바라보자 최수빈의 마음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예전 같았으면 위험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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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3화

최수빈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우리, 더 할 말 없잖아요.”목소리는 아주 낮았다.주민혁은 무거운 눈빛으로 말없이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담담한 표정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입을 열려다 말고 그는 결국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본 채, 끝내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시간이 그 순간 멈춘 듯했다.최수빈은 아직도 주민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묻어 있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는 돌아보지도,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몇 초 뒤, 최수빈은 몸을 돌려 침착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주민혁은 제자리에 선 채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가고 문이 천천히 열리고 다시 천천히 닫히며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그제야 그는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미간을 꾹 눌렀다. 가슴 한쪽이 촘촘하게 아려오는 듯한 기분이었다.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갔다. 최수빈은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감정을 억지로 진정시키려 했다.조금 전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주민혁의 오해까지 겹치니 더 지키는 듯했다.지금 최수빈이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빨리 집에 가서 율이를 보고 그제야 마음을 놓는 것 말이다.현관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온기가 확 밀려왔다.율이는 거실 카펫 위에 앉아 크레파스를 쥔 채 종이에 색칠을 하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바로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엄마, 왔어요?”최수빈의 팽팽하던 신경이 그 순간 풀렸다. 그녀는 서둘러 딸 곁으로 가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 아줌마가 데리러 왔을 때 떼쓰진 않았고?”“완전 착하게 있었어요!”율이는 자랑하듯 자신이 그린 그림을 최수빈의 앞으로 내밀었다.“엄마, 이거 봐요! 내가 우리를 그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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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4화

“율아, 우리 큰 집으로 이사 가볼까? 너만 쓰는 그림방도 있고 작은 정원도 있어서 네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도 심을 수 있어.”율이의 눈빛이 단숨에 반짝였다. 아이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림방 있는 집이 좋아요!”딸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최수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사가 번거로울 수도 있고, 지금의 생활 리듬이 조금 흐트러질 수도 있다. 그래도 율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다음 날.최수빈은 육민성에게 혹시 집을 알아볼 만한 인맥이나 정보가 없는지 물어봤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부동산 앱 매물 정보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중이었는데, 화면에 뜬 이름은 송미연이었다.“방금 육 대표님한테 들었는데, 너 집 옮긴다며?”최수빈은 솔직히 말했다.“응. 알아보는 중인데... 마음에 드는 데가 잘 안 나와.”“알아보긴 뭘 알아봐.”송미연이 딱 잘라 말했다.“우리 집 옆에 있는 별장 한 채 비어 있잖아. 인테리어 한 지 얼마 안 됐고 가구랑 가전도 다 갖춰져 있어. 그냥 거기로 들어와. 나랑 가까이 살면 내가 율이도 봐줄 수 있고 밥도 자주 먹고 쇼핑도 같이하고 얼마나 좋아.”최수빈의 마음이 흔들렸다.송미연이 사는 별장 단지는 보안이 엄하고 분위기도 조용했다. 지금 사는 곳보다 훨씬 안전한 건 분명했다.그래도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물었다.“널 너무 번거롭게 하는 거 아닐까? 괜히 신경 쓰이게 할까 봐...”“뭐가 번거로워.”송미연이 바로 받아쳤다.“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거절하기 어려운 호의였고 무엇보다 안전을 확보하는 게 시급했다. 결국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자마자 최수빈은 집에 있는 도우미에게 연락해 율이를 잘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차를 몰아 송미연이 사는 별장 단지로 향했다.곧 차는 별장 단지로 들어섰다. 길가의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었고 경비원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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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5화

“안 돼,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내가 사람 보내서 꼭 캐볼 거야. 누가 뒤에서 장난치는 건지.”“미연아, 섣불리 움직이지 마.”최수빈이 급히 송미연을 붙잡았다.“나, 증거가 없어. 신고해도 소용없고... 괜히 건드렸다가 상대가 눈치채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냥 집만 옮기고, 좀 멀리 피해 있으면 돼.”송미연은 최수빈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가슴이 미어져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더더욱 여기로 와서 살아야지. 여긴 보안이 철저해. 우리 집 경호원들한테도 더 신경 쓰라고 할게. 너랑 율이, 내가 꼭 지킬 거야.”송미연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최수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가장 막막한 순간에, 이렇게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여기로 이사 올게.”송미연은 최수빈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웃었다.“그래. 걱정 마, 내가 있는데 누가 너랑 율이를 건드려. 우리 지금 바로 율이 좋아할 인형도 고르고 방도 예쁘게 꾸며주자.”...두 사람은 차를 타고 쇼핑몰로 향했다.마침 다음 주에 연회가 있기에 송미연은 최수빈의 손을 잡아끌고 고급 드레스 매장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다음 주 자선 연회 초대장도 들려 있었다.“여기, 막 새 고급 라인이 들어왔다는데 한번 골라 봐. 우리 수빈이, 그날은 무조건 분위기 압살해야지.”최수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송미연이 이끄는 대로 함께 고르기 시작했다.송미연네 집 옆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불안이 한결 가셨고 오랜만에 쇼핑할 여유도 생겼다.직원은 한껏 열을 올리며 이런저런 스타일을 추천했다. 그중 송미연은 단번에 샴페인 컬러의 오프숄더 롱드레스를 골랐다. 원단 위에 작은 스톤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조명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었다.“이거야. 너한테 너무 잘 어울려. 얼른 입어 봐.”최수빈은 드레스를 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가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서 차분히 살폈다.오프숄더 라인이 어깨와 목선을 더 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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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6화

최수빈의 마음이 별로 흔들리지 않았기에 예의상 고개만 끄덕였다.“축하해요.”주민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최수빈만 바라보았다.그녀가 입은 오프숄더 드레스는 기억 속의 모습보다 더 차갑고도 우아해 보였다. 어깨와 목선을 따라 드러난 피부가 조명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임하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민혁 씨, 수빈 씨 저 드레스 입으니까 좀 헐렁해 보이지 않아요?”임하은은 주민혁의 팔을 잡아끌며 일부러 화제를 그쪽으로 돌렸다.“직원한테 한 사이즈 작은 거로 바꿔 달라고 하는 게 어때요? 그런데... 사이즈가 작으면 허리랑 배 부분이 너무 조이지 않을까요?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말속에 숨은 의도는 뻔했다. 몸매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비꼬면서 굳이 수술 이야기를 꺼내 최수빈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거였다.송미연은 더는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최수빈의 앞을 막아섰다.“임하은 씨, 남의 옷 사이즈까지 신경 쓸 정도로 그렇게 한가해요? 우리가 뭘 입든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약혼 한 번 하는 건데, 그렇게까지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닐 일인가요?”그러자 임하은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더니 주민혁을 바라보았다.“민혁 씨, 나 그런 뜻 아니었어요... 난 그냥 수빈 씨를 챙겨주려고 한 말인데...”주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수빈을 바라보는 눈빛에 잠깐 복잡한 기색이 스쳤지만, 결국 임하은에게만 말했다.“그만해. 웨딩드레스부터 보자고.”임하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최수빈을 독하게 한 번 노려보고는 주민혁을 따라 웨딩드레스 진열 쪽으로 걸어갔다.송미연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분을 참지 못했다.“진짜 뭐야? 일부러 시비 거는 거잖아!”최수빈은 송미연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차분하게 말했다.“신경 쓰지 마. 우리는 우리 거 고르면 돼.”직원이 웨딩드레스를 들고 다가오다가 최수빈 곁을 지나치며 작은 목소리로 감탄을 흘렸다.“저 손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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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7화

그때 송미연이 비웃듯 한 번 웃더니 임하은을 똑바로 바라봤다.“어떤 사람들은 참... 일부러 기분 상할 일만 찾아다니네요. 자기 약혼인데 왜 남까지 꼭 끌어들여요? 우리 수빈이 얼굴에 기대야 이 약혼식이 좀 격 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거울 한번 보고 말해요. 본인이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송미연은 말을 끝내자마자 임하은이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곧장 최수빈의 팔짱을 꼈다.“수빈아,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보자. 괜히 여기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속 안 좋아질 필요 없어.”최수빈은 송미연이 이끄는 대로 몸을 돌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임하은을 다시 보지도 않은 채, 발걸음도 가볍게 송미연을 따라 매장 밖으로 향했다.주민혁 옆을 지나칠 때,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어른거렸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선 채 묵묵히 침묵할 뿐이었다.두 사람이 매장문을 나서는 순간, 임하은의 얼굴빛이 확 달라졌다. 애써 유지하던 다정한 미소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그 자리를 분노가 채웠다.임하은은 주민혁의 팔을 꽉 붙잡고는 발을 세게 한 번 굴렀다.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불만이 잔뜩 섞여 있었다.“민혁 씨, 방금 봤죠? 미연 씨는 말이 진짜 너무 심했고 수빈 씨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했어요. 저 사람들, 일부러 내 체면 깎으려고 그런 거잖아요!”그러자 주민혁은 감정이 거의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굳이 그런 자리에 스스로 뛰어들 필요가 있었어?”이 말은 찬물처럼 임하은의 분노를 임하은의 열을 한순간에 식혀버렸지만, 동시에 그녀를 더 서럽게 만들었다.임하은은 그의 팔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주민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눈빛에는 따져 묻는 기색이 가득했다.“민혁 씨, 민혁 씨의 미래 아내는 나예요. 우리 곧 약혼하잖아요! 아까 그런 상황에서 날 도와주진 못할망정, 왜 저 사람들 편을 들어요? 도대체 누구 편이에요?”주변 직원들은 눈치껏 고개를 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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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8화

주민혁은 드레스매장에서 나와 미간을 문질렀다. 그리고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떼려는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주 대표님, 이렇게 그냥 가시게요?”강지안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느긋하게 다가왔다. 옆에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장성훈도 함께였다.강지안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주민혁을 훑어보더니 탐색하듯 물었다.“진짜 수빈 씨 완전히 포기할 생각이야?”주민혁은 걸음을 멈추고 둘을 돌아보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수빈이 옆에는 육민성이 있고, 두 사람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내가 굳이 끼어들어서 망칠 이유가 있나.”“잘 지내?”강지안은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저었다.“지난주에 너, 수빈 씨 집 아래에서 새벽까지 지키다가 안전하게 올라가는 거 보고서야 돌아갔잖아. 그때도 잘 지내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주민혁, 언제 그렇게 스스로 속이는 법을 배운 거야?”주민혁은 반박하지 않았다. 곧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를 빼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빙글빙글 굴리기만 했다.강지안에게는 숨길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라 서로의 속내쯤은 대충 읽히는 사이였다.강지안은 침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말투를 조금 누그러뜨렸으나 캐묻는 기색은 지우지 못했다.“그럼 임하은 씨랑은... 진짜 결혼할 생각이야? 지난번에 약혼식 취소된 거, 우연이라고는 안 믿어. 내가 모를 줄 알아? 뒤에서 네가 손 쓴 거.”“우연은 아니었어.”주민혁이 마침내 입을 열자 강지안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예상 못 한 대답은 아닌 듯했고 옆에 있던 장성훈도 그제야 시선을 조금 들어 올렸다.강지안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한 걸음 더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스승님 일 때문이지? 그때 스승님 연구 성과를 임씨 가문이 뒤로 빼돌리고 스승님은 누명까지 뒤집어쓴 채 결국 목숨까지 잃었잖아. 지금 임하은 시랑 줄다리기하는 건, 스승님의 복수를 하려는 거야?”담배를 굴리고 있던 손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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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9화

“친구란 서로 도우라고 있는 거잖아. 뭐든 혼자 짊어지려고만 하지 마. 임씨 가문 일 정리하고 나서도 수빈 씨를 다시 잡고 싶으면 나랑 성훈이도 같이 머리 좀 굴려줄게.”주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급한 일 있어서 먼저 갈게.”그는 두 사람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강지안과 장성훈은 그 뒷모습이 거리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강지안이 한숨을 내쉬었다.“쟤는 늘... 속에 다 숨기고 혼자 끌어안는다니까.”장성훈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최수빈 씨랑 율이의 안전부터 제대로 확보해야죠. 나머지는... 본인이 스스로 정리하게 둡시다.”...천공과 심종연네 회사의 협업이 중요한 국면으로 들어섰다.회의실에서, 최수빈은 스크린에 띄운 기술 제안서를 보며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말하는 속도는 차분했고 논리는 또렷했다.심종연은 그녀의 옆에 앉아 있다가 필요할 때만 두어 마디 덧붙였다. 둘의 호흡이 꽤 잘 맞아 회의는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흘러갔다.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자 심종연이 최수빈을 불러 세웠다. 말투에는 조심스러운 호의가 묻어 있었다.“수빈 씨, 오늘 저녁... 시간 되시면 같이 식사하실래요? 시후가 계속 뵙고 싶다고 해서요. 전에 애가 철도 없고 말도 좀 심하게 했잖아요. 이제는 자기도 잘못한 걸 알게 돼서 꼭 사과하고 싶대요.”최수빈은 서류를 쥔 손을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지난번 주시후가 율이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마음 한편에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는 결국 어른들 분위기에 휩쓸렸을 뿐이고 속마음이 나쁜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박하린은 지금 수감 중이고 조윤미는 사실상 아이를 방치하고 있으니 주시후가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잠깐의 침묵 끝에 최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마침 저도 율이 데리러 가야 하니까요.”그렇게 두 사람은 차를 몰아 먼저 율이의 학교로 향했다.학교 정문에서, 최수빈과 심종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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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0화

“율아, 먼저 미연 이모한테 가 있어. 아빠랑 몇 마디만 하고 바로 올라갈게.”율이는 주민혁을 한 번, 최수빈을 한 번 번갈아 보더니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현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율이의 모습이 사라지자 최수빈은 그제야 주민혁을 바라봤다.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 있었다.“또 무슨 일이에요?”주민혁은 차 문을 열고 내려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은 쉽게 안 변해. 너무 착하게 굴지 마. 남을 그렇게 쉽게 믿지도 말고.”최수빈이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주민혁 씨, 내가 누구랑 어울리든, 누구를 믿든... 그건 내 일이에요. 민혁 씨가 간섭할 필요 없다고요. 그리고 왜 여기 있어요? 나 따라다닌 거예요?”예전에 누군가에게 미행당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혹시 그동안 민혁 씨가 계속 뒤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주민혁의 목젖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싸우러 온 거 아니야.”최수빈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숨을 눌러 삼켰다.“예전에 내가 제대로 얘기해보자고 할 땐 안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예요?”그녀가 주민혁을 똑바로 바라봤다.“설령 우리가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 사이에 신뢰라는 게 있어요?”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결국 신뢰였다.친밀한 관계에서 신뢰가 무너지고 틈이 생기면 그건 끝이 정해진 관계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로 남는 것조차 어려웠다.주민혁이 말했다.“난 가능하다고 생각해. 적어도... 넌 나를 완전히 믿어도 돼. 난 널 해치지 않을 테니까.”이 말에 최수빈은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본인이 나랑 율이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데...’주민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육민성이랑... 같이 지낸다는 것도 알아. 그리고 아이도 있었지. 비록... 유산됐지만.”아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축 늘어져 있던 최수빈의 손이 저절로 주먹을 움켜쥐었다.가슴속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렸지만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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