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더 떠볼 필요도 없었다.최수빈이 집에 같이 가서 연기해달라는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 순간, 설령 가짜라 해도 그녀가 ‘육민성과 엮이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게 분명해졌으니 말이다.그와 최수빈 사이는 애초부터 친구였고 협력 관계였다. 어쩌면 그런 관계가 가장 오래가고 가장 안전한 형태일지도 모른다.반대로 최수빈과 주민혁 사이에는 오래도록 마음속 깊이 묻어둔 감정이 있었다. 놓쳐버린 시간, 쌓여온 오해 등등...그는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은 사실 한 번도 완전히 꺼진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다만 그들이 얼마나 더 지나야 자신들의 마음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은 장애물을 넘어서서 결국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육민성은 시동을 걸고 천천히 입찰장을 빠져나갔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집안에서 요구하는 맞선 자리도 진지하게 한 번쯤 받아들여야 할 때인지 모른다고.이렇게 계속 미루느니 차라리 적당한 사람을 만나 조용히, 무탈하게 살아가는 편이 나을 수 있었다....한편, 최수빈은 주민혁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차 안은 묘하게 고요했다.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남과 동시에 그녀의 마음도 더 어지러워졌다.육민성의 부탁, 갑자기 나타난 주민혁, 그리고 ‘예전’이라는 단어가 건드린 기억들까지...모든 것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주민혁이 그 기색을 눈치챈 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 해?”최수빈은 정신을 다잡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잠깐 망설이다가 최수빈은 결국 입을 열었다.“아까... 다 들었어요?”주민혁은 부정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최수빈은 잠시 멈칫헀다.“헤어졌어?”주민혁의 물음에 최수빈은 순간 움찔했다.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오그라들어 옷감에 잔주름이 잡혔다. 그가 이런 식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네... 그런 셈이죠.”나직한 목소리, 하지만 무언가가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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