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apítulo 1161 - Capítulo 1170

1602 Capítulos

제1161화

“어때? 내려가서 얘기 좀 할래? 아래에서 벌써 한참 서 있었어.”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시선을 거뒀다.“먼저 나랑 얘기할 생각도 없이, 그냥 아래에서 말없이 보고만 있으려는 거라면... 난 내려가지 않을래.”주민혁에게는 주민혁만의 페이스가 있고 주민혁만의 생각이 있다. 어쩌면 죄책감 때문일 수도, 망설임 때문일 수도 있다.최수빈은 그걸 굳이 들춰내고 싶지도, 억지로 몰아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일은 결국 본인이 스스로 납득해야만 하는 법이니 말이다.송미연은 복도로 걸어가며 최수빈의 말을 듣더니 피식 웃었다.“두 사람 진짜 웃긴다. 서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서 꼭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 그렇게 서로 괴롭히는 게 뭐가 좋다고?”“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최수빈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상황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그건 그 사람이 자기 마음의 문턱을 못 넘는 거야. 나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하잖아. 그리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고. 우리가 서로 얘기를 터놓고 한 뒤로, 그 사람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어. 그 잘못은 되돌릴 수도 없고 내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그쪽으로 다가가도 민혁 씨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안 되는 거야. 그 한 발을 내딛으려면 결국 본인이 스스로 풀어야 해. 옆에서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소용없어.”송미연은 집 문을 열며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렇게 다 꿰뚫어 보고 있으면서, 왜 네가 그 한 발을 같이 못 내딛게 해줘? 네가 한마디만 해도 그 사람이 가진 걱정 다 내려놓을 수도 있잖아.”최수빈은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미연아, 인생에는 사랑만 있는 게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이랑 결혼한 것부터...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이었어. 타이밍이 틀렸거든. 하늘이 꼭 우리랑 장난치는 것 같아. 그래서 서로 엇갈리고 서로를 괴롭게 만들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거야. 가끔은... 감정이 다 닳아버리면 남는 건 같이 일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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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2화

“솔직히... 그 사람, 많이 힘들어 보여.”송미연이 침묵을 깼다.“오늘 그 숯불구이 집 근처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어. 아마 너랑 육 대표님이 같이 있는 걸 본 것 같더라. 그러고는 차로 내 뒤를 따라와서 너희 집 아래까지 왔어. 계속 거기 서 있었고...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우울증 심하다는 거. 지금 너희 집 앞에 서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겠어?”최수빈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가끔은 정말 불쌍한 사람에게는 미운 구석이 있고 미운 사람에게도 또 불쌍한 사정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세상의 일은 대개 서로 얽혀 돌아가는 법이었다.‘그래, 민혁 씨는 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심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과연 그 생각들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나도 알아.”최수빈이 낮게 말했다.“그런데... 나도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송미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그녀는 최수빈이 이렇게 계속 괴로워하고, 계속 이 관계에 매달려 흔들리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예전에야 ‘다 내려놨어’라고 말했지만 밖에서 보면 다 보였다.얽히고설킨 감정이 그렇게 쉽게 정리될 리가 있겠는가.게다가 그 안에는 오해도 섞여 있고 서로의 본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얽혀버린 일들이 많았다.송미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네가 힘든 것도 알아. 걱정이 많은 것도 알고. 그런데 기억해. 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야. 둘이 같이 애써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시간을 조금만 더 줘봐. 너 역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너희의 감정을 쉽게 부정하지도 말고.”최수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미연아, 사람은 감정으로 사는 존재야. 마음이 그렇게 말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어.”사람 마음은 원래 복잡하다.송미연이 한숨처럼 말을 이어갔다.“사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예전처럼 순수해지기가 어렵잖아. 젊을 때는 앞뒤 안 재고 좋아하면 그냥 사랑해버리는데... 너도 그랬지. 네 일도, 학업도 다 내려놓고 그 사람이랑 결혼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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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3화

그 한마디에 최수빈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휴대폰을 쥔 손에도 무의식적으로 힘이 더 들어갔다.송미연은 늘 문제의 핵심을 너무도 정확히 꿰뚫었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도 억지가 아니었다.주민혁은 언제나 최수빈의 앞에서는 담담했다. 감정 기복이 거의 없고 늘 차분했다. 마치 어떤 일에도 파문이 일지 않는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최수빈은 그가 중증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곤 했다. 강지안이 했던 말들도 마찬가지였다.“수빈아, 이런 말 하는 거 너한테 부담 주려는 게 아니야. 현실을 똑바로 보자는 거지. 너희 사이는 둘 중 한 사람이 마음먹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둘이 같이 결정해야 해. 겉으로는 다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더 괴롭히고 있는 거잖아. 너도 잘 생각해봐. 내 말이 틀려? 너희 둘이 함께하면 미래도 있고 둘 다 행복해질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 하는 건데? 왜 꼭 상대방을 위해서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서로를 닳게 만들어?”송미연이 이어 말했다.“그 사람은 네가 육 대표님이랑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넌 또 그 사람 뜻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 사람 페이스가 있으니까 억지로 몰아붙이기도 싫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국 너희는 또 서로를 놓치게 되는 거 아니야?”최수빈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말없이 창밖을 봤다. 아래에는 곧은 자세로 서 있는 키 큰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차갑고 고요해서 세상과 떨어져 혼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누가 봐도 그는 금지옥엽 대접을 받는 ‘주 대표’ 그 자체였다.송미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예전에 그 사람이 한 짓? 진짜 엉망이었지. 분명 잘못했고.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이야. 이미 생겨버린 오해, 그걸 우리가 되돌릴 수는 없잖아. 너도 그걸 붙잡고 놓지 않을 필요 없어. 사람은 앞을 보고 살아야지. 지난 일만 캐면 행복해질 수가 없어. 핵심은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된다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 처음부터 널 안 사랑한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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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4화

송미연은 잘 생각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최수빈은 눈을 내리깔았다. 휴대폰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송미연은 늘 한마디로 핵심을 찔렀고 이번에도 정확히 그녀의 속을 꿰뚫었다.그리고 최수빈은 자신이 주민혁의 생사를 정말로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살아만 있다면, 서로를 어떻게든 버티며 끌고 가든, 마음대로 시간을 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송미연의 말이 최수빈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했다.‘그래. 그 사람은 어느 날, 한순간에 마음이 꺾여버려서 세상을 떠나버릴 수도 있어.’그렇다면 지금 주민혁을 붙잡아 살아 있게 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최수빈은 알고 있었다. 주민혁은 바로 자신과 딸의 안전에 관한 문제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었다. 떠날 수 없어서, 그래서 고통을 견디는 것이었다.그때 문득 최수빈의 머릿속에 예전 자신이 주민혁에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난 민혁 씨가 죽었으면 좋겠어요.”분노에 휩싸인 그녀가 그에게 내뱉었던 말이다.그 순간 남자는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으나 이렇게 답했다.“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그때는 이 말이 너무 뜬금없어 보였고 최수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 최수빈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탓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니 그는 아직도 아래에 서 있는 것이었다.입술을 꾹 다문 채 최수빈은 거실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쓰레기봉투를 든 뒤, 아래로 내려갔다. 집에서 입는 편한 차림 그대로였다. 내려가는 동안 일부러 주민혁의 시선을 피했고 그의 옆모습 뒤쪽으로 돌아 조용히 곁까지 다가갔다.“이 시간에 아래에서 나 기다린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최수빈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민혁은 잠시 몸을 멈칫했다.“지나가다가.”최수빈은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이 늦은 시간에 왜 내려와?”그는 그녀의 얇은 옷차림을 보며 덧붙였다.“춥지 않아?”최수빈은 고개를 저었다.“거기 오래 서 있은 민혁 씨도 안 춥다는데 내가 춥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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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5화

주민혁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 목소리였다.“아침 안 먹었어?”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최수빈은 입가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입맛이 없어서요.”일부러 한 말이었다.어젯밤 같이 먹자고 했을 때 거절했으니 오늘은 안 먹었다는 것, 사실 이 남자가 정말 조금이라도 자신을 신경 쓰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주민혁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좀 앉아 있다가 가. 려 비서가 곧 아침 식사 가져올 거야.”최수빈은 눈썹을 살짝 올리고는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한 번 도박을 걸어보고 싶었다. 늘 자신의 감정을 얼음 아래에 숨기는 이 남자가, 자기에게 아직 조금이라도 마음이 남아 있는지.몇 분 지나지 않아 사무실 문이 노크 소리와 함께 열렸다. 려운이 정갈한 도시락 상자를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그는 소파 앞 테이블에 음식을 차려놓고는 눈치 있게 바로 물러났다. 한순간도 더 머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아침 메뉴는 전부 최수빈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주민혁이 일부러 그렇게 준비하라고 시킨 게 분명했다.최수빈은 일부러 숟가락으로 죽을 몇 번 저어놓기만 하고 젓가락은 들지 않았다.그러자 주민혁이 맞은 편에 앉았다.“왜 안 먹어?”“저 괜찮아요.”최수빈은 고개를 들고 그에게 웃어 보였다.“사실 그냥... 혼자 먹으려니 재미가 없어서요.”그러고는 일부러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대표님, 저랑 같이 드실래요?”주민혁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깊은 눈동자는 고요한 호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그렇게 잠깐, 몇 초간 조용히 최수빈을 바라보더니 주민혁은 마침내 천천히 두 글자를 내뱉었다.“그래.”대답을 듣자 최수빈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는 그저 식기끼리 부딪치는 작은 소리만 가볍게 울릴 뿐이었다.결혼 생활을 꽤 오래 했지만 이렇게 둘이 나란히 밥을 먹은 적은 오히려 손에 꼽았다. 게다가 이혼한 뒤에야 이렇게 무난하고 평온하게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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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6화

알고 보니 이 무심한 남자를 바꾸는 일도 꼭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주민혁도 식기를 내려놓고 휴지를 한 장 내밀었다.“입 닦아.”최수빈은 휴지를 받아 고개를 숙이고 입가를 가볍게 훔쳤다.“서류는 여기 두고 갈게요. 잊지 말고 사인해요.”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응.”주민혁은 끝까지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려 비서가 데려다줄 거야.”“괜찮아요. 저 혼자 갈게요.”최수빈은 손을 내저으며 등을 돌려 곧장 나갔다.그녀가 떠나자 주민혁은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소파에 앉아 미간과 눈썹뼈를 꾹꾹 눌렀다.그때 려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그의 상태를 보고 거의 티가 나지 않을 만큼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러세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주민혁이 대답하지 않다 려운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혹시... 수빈 씨가...”주민혁은 고개를 저었다.“수빈이가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것 같아.”주민혁의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최수빈이 작정하면 그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스스로를 다치게 하겠다는 식으로 자신을 옥죄면 주민혁은 더더욱 그녀의 뜻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려운이 낮게 말했다.“그래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어요.”그는 옆에서 감정과 원한이 얽히고설켜 있는 두 사람의 사이를 지켜봐 왔다.‘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왜 꼭 이렇게까지 복잡한 길을 돌아야 하는 걸까. 그냥 함께 잘 지내면 될 텐데. 게다가 이번 한 걸음은 수빈 씨가 먼저 내디뎠잖아.’“사실 수빈 씨는 크게 뭘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에요. 그러니 대표님도 굳이 끝까지 물고 늘어질 필요 없어요. 당사자가 이미 괜찮다는데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건 그 사람한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주민혁은 손을 살짝 들어 나가라는 듯 표시했다.그러자 려운은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 나갔다....오후.제노 테크 프로젝트 추진 회의가 절반쯤 진행된 상황이었다.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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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7화

주민혁의 차는 강지안의 개인 진료소 앞에 멈춰 섰다.차문을 여는 순간 몸이 살짝 휘청이자 그는 부어오른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진료실로 들어서 보니 강지안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두툼한 진단 차트가 펼쳐져 있었는데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결국 나한테 올 줄도 알았고.”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치 않은 한숨과 함께 새 치료 계획서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여기, 이번에는 제대로 지킬 수 있게 치료 계획 다시 짰어. 하지만 이번에도 안 따르면... 더는 줄 약이 없어. 약을 계속 늘리면 뇌신경에 무리가 와.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요. 머리가 제일 중요하다고.”주민혁은 눈을 내리깐 채 차가운 종이 위에 손끝만 얹어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 원래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려고, 약 때문에 머리 상하는 게 싫다고... 감정을 억지로라도 눌러서 버티던 사람이었잖아. 무너질 때까지 참아놓고도 약은 안 먹고.”강지안의 목소리에는 답답해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감정 조절하려고 약을 너무 자주 먹어. 순서도, 기준도 없이 말이지. 그럼 몸이 못 따라가.”그녀가 한 걸음 다가서며 더 단호하게 말했다.“이렇게 계속 처방 무시하면 나중에는 진짜 신선이 와도 못 살려.”주민혁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는 채 가시지 않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올해까지만... 버티면 돼.”그 말을 듣고 강지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주민혁은 원래부터 살고 싶어서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붙잡아 두는 건 생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다하지 못한 책임과 끊어내지 못한 미련뿐이었다.“지금 이 상태면 내일도 장담 못 하는데 무슨 올해를 버틴다는 거야?”주민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러다 한참 만에 그가 낮게 말했다.“그럼 네 방식대로 해.”강지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 진단 차트를 집어 들고 치료 절차를 다시 정리한 뒤, 그를 치료실로 안내했다.기계가 켜지는 미세한 소리가 고요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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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8화

집 안의 모든 가구와 소품은 최수빈이 떠났을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마치 이곳만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최수빈은 몸을 돌려 주민혁을 바라봤다. 눈빛이 복잡했다.“계속 여기서 살았어요?”주민혁은 문을 닫고 코트를 옷걸이에 걸며 담담하게 말했다.“응.”사실 그는 이곳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로 일이 바빠 회사나 임시 거처에 머물렀고 감정이 극도로 뒤엉켜 통제하기 어려울 때만 여기로 돌아왔다.이 공간, 최수빈의 흔적이 가득한 이곳에 있으면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아서였다.최수빈의 시선이 웨딩 사진에 멈췄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부드럽게 웃고 있었고 눈빛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그런데 현실은 빙빙 돌고 돌아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최수빈은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을 내밀었다.“데이터는 여기요. 몇몇 파라미터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확인하고 싶어요.”주민혁은 휴대폰을 받아 소파 옆에 앉더니 화면을 꼼꼼히 넘겨 보기 시작했다.고요한 거실, 휴대폰 화면 빛만이 두 사람의 얼굴 위에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맞은편에 앉은 최수빈은 저도 모르게 주민혁의 얼굴을 살폈다.여전히 안색이 창백했고 눈 밑 다크서클은 낮보다 더 짙어 보였으며 미간에는 피로가 짙게 배어있었다.그러다 문득 송미연의 말과 함께 강지안이 흘리듯 말했던 주민혁의 병세가 떠올랐다.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조금 전 문자에서도 이미 말투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이 모습을 보니 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주민혁은 곧 데이터를 다 훑고 몇 군데를 짚어냈다.“여기는 오차가 너무 커. 그리고 이 파라미터는 이전 설정이랑 안 맞아. 다시 계산해야 해.”조금 전까지 지쳐 보이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전문적이고 차분한 목소리였다.최수빈은 노트를 꺼내 꼼꼼히 받아 적었다. 두 사람은 다시 일부러 거리를 두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분위기의 업무상 파트너로 돌아간 듯했다.하지만 그 거리감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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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9화

주민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최수빈을 바라봤다. 신혼집의 공기마저 그대로 얼어붙은 듯했다.진용휘의 행동 방식이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는 건 분명했다. 상식 밖의 행동들 뒤에는 더 깊은 의도가 숨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두 사람이 모두 입을 다물며 방 안은 묘하게 기이한 침묵 속에 잠겼다.최수빈이 먼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그 침묵을 깼다.“우리... 얘기 좀 할 수 있어요?”이제는 둘 사이도 제대로 한 번은 마주 앉아 정리할 때가 됐다고 그녀는 생각했다.고개를 든 주민혁은 최수빈에게 시선을 둔 채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앉아서 해.”“네, 좋아요.”최수빈은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심 대표님은... 민혁 씨의 원수예요?”핵심을 찌르는 질문, 그녀는 사건의 처음과 끝을 확실히 알고 싶었다.그러자 주민혁이 되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다들 그렇게 보잖아요.”최수빈은 숨기지 않았다.“재계에서는 늘 맞붙고 07전투기 프로젝트에서도 가장 큰 경쟁자고... 사람들은 둘이 물러설 수 없는 철천지원수라고 해요.”주민혁은 테이블 위 물컵을 들어 한 모금만 가볍게 마셨다.“아니야.”그러고는 컵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난 그 사람을 원수라고 생각한 적 없어. 사실... 제대로 된 상대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최수빈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싸워요? 주상 그룹 지배권 때문에요? 아니면 07전투기 프로젝트 때문에요?”그러자 주민혁은 컵을 내려놓고 깊은 눈빛으로 최수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정말 모르겠어?”“모르니까 묻는 거예요.”주민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입가에 아주 옅게나마 비웃음 같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그래, 어떤 일들은 이제 솔직히 털어놓을 때가 됐지. 게다가 지금 수빈이의 옆에는 육민성처럼 믿을 만한 사람이 있잖아. 이미 자기 삶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데 예전 원한에 대해 말해줘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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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0화

“하지만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았어. 겉으로는 다른 척하면서도 한 수 한 수 밟아가며 주상 그룹 전체를 심종연의 손에 넘기려 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길 닦는 돌로 쓰려 했고.”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 안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거칠게 몰아쳤다.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주민혁이 지금껏 상대해 온 건 심종연의 노골적인 공격만이 아니었다. 가문 안에서 벌어지는 계략과 압박까지 사방이 적이었다.겉으로는 권력을 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앞뒤로 몰리며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그런데 심 대표님은 왜 07전투기 핵심 기술까지 노려요? 왜 해외 세력이랑까지 손을 잡고요?”최수빈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그건 주상 그룹 지배권이랑은... 크게 상관없어 보이는데요.”주민혁이 코웃음을 쳤다.“그 사람 야망이 주상 그룹 하나로 끝날 리가 없지.”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심종연 뒤에 해외 세력이 있다는 건... 네가 짐작한 게 맞아. 그리고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그 사람의 시선은 이미 너한테 가 있었어. 너만이 아니야. 뛰어난 젊은 인재들, 특히 항공우주나 군수산업 같은 핵심 분야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전부 눈여겨봐. 어떻게든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지.”최수빈의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렇게 해서 뭐 하려고요?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냥 자기 세력 키우려고요?”“세력 확장은 시작일 뿐이야.”주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원하는 건 더 큰 권력,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야. 너, 그 사람이 그냥 재계 거물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줄 알았어?”그가 최수빈을 바라보더니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대통령이 되고 싶은 걸 거야.”“대통령이요?”최수빈은 순간 주민혁이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닌지조차 판단이 안 됐다.심종연이 노리는 게 ‘한 나라를 좌우하는 권력’이라니...주민혁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해외 세력 지원을 등에 업고 인재를 긁어모으고 핵심 기술을 빼내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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