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1201 - 챕터 1210

1602 챕터

제1201화

그날, 최수빈은 육민성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수빈아, 중요한 회의가 하나 있어서 미리 말해주려고.”육민성이 말했다.“천공 연구원이 최근 제노 테크와 손잡고 07 전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어. 그래서 정부 쪽에서 직접 회의를 소집해 프로젝트를 분석한다고 하더라. 같은 업계 핵심 인력들도 전부 참석할 거고.”최수빈의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 07 전투기 프로젝트는 지금 그녀와 주민혁이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일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회의라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닐 터였다.“알겠어요. 시간하고 장소는요?”“모레 오전 9시, 은산시 과학기술센터.”육민성은 덧붙였다.“이번에는 참석자도 꽤 많아. 심종연 대표님이랑 임하은 씨도 오고, 조윤미 씨까지 초청 명단에 들어가 있어. 이건 사실 업계에 공개된 자리나 다름없어서 여러 기업이 다 올 거야.”최수빈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은 뒤, 최수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주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금세 전화를 받았다. 예전에는 늘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었는데 말이다.이내 남자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방금 민성 선배가 정부에서 07 전투기 프로젝트에 대한 회의를 소집한다고 들었어요.”최수빈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이 회의, 정확히 뭘 위한 거예요? 정말 단순한 프로젝트 분석 자리예요?”“국가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있어. 기술 상용화 가능성과 업계에 미칠 영향까지 함께 보려는 거지.”주민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각오 단단히 해.”“각오요?”최수빈은 순간 멈칫했다가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설마 심 대표님이랑 임하은 씨가 이 기회를 틈타 뭔가 일을 벌일 거라는 뜻이에요?”“요즘 그 둘이 꽤 밀접하게 움직이고 있어. 게다가 임하은은 이른바 증거라는 것까지 손에 쥐고 있잖아. 이런 공개적인 자리를 그냥 넘길 이유가 없지.”주민혁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게다가 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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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2화

최수빈이 딤섬을 먹으며 말하자 주민혁은 옅게 웃었다.“하긴, 애들도 참 힘들지.”그러다 그가 차문을 열었다.“타. 늦겠다.”그렇게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수석에 올라탔고 차는 조용히 단지를 빠져나갔다.주민혁의 표정은 평소처럼 담담했다. 그리고 그가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었지만 최수빈은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예전의 그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함께 있어도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일은 드물었다.하지만 지금은 짧은 인사 한마디와 따뜻한 아침 식사 한 끼만으로도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은산시 과학기술센터에 도착했다.멀리서 보기만 해도 회의장 건물은 엄숙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입구 앞에는 이미 온갖 고급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드나드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었는데 표정도 하나같이 진지했다.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라는 게 한눈에 보였다.주민혁이 차를 세우자 두 사람은 함께 내렸다.입구 쪽으로 막 걸어가려던 순간, 최수빈의 눈에 익숙한 두 사람이 들어왔다.송미연과 육민성이 로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그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손을 흔들었다.“이제야 왔네. 조금만 늦었어도 바로 입장할 뻔했어.”송미연은 웃으며 다가와 최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오늘 진짜 너무 예쁘다.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너도 괜찮은데?”이내 최수빈이 싱긋 웃으며 송미연의 옆에 있는 육민성에게 시선을 돌렸다.“선배.”“응.”육민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최수빈과 주민혁을 한 번 번갈아 바라봤지만, 굳이 무슨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네 사람이 함께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여기저기서 시선이 쏠렸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업계 거물들이거나 정부 관계자들이었다. 다들 정보가 빠른 만큼, 사소한 소문 하나도 쉽게 지나치지 않았다.최수빈과 주민혁의 결혼 소식은 워낙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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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3화

“난 그냥 저 꼴이 보기 싫은 거예요.”임하은은 목소리를 낮춘 채 이를 갈듯 말했다.“이혼까지 해놓고 여기 와서 또 다정한 척하는 거, 진짜 역겨워 죽겠어요.”심종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최수빈에게 머물러 있었고 눈빛 깊은 곳에는 복잡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늘 이해할 수 없었다.최수빈이 왜 주민혁 같은 남자를 놓아버렸는지, 그리고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두 사람이 이혼하고도 어째서 저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였다.옆에 있던 조윤미도 이쪽의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챘다.그녀는 서류철을 안은 채 심종연의 옆에 서서 최수빈과 주민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회의장 안의 공기는 점점 묘해졌다.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협력도 있었고 경쟁도 있었으며 오래된 앙금도 있었고 새로 쌓인 원한도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프로젝트 분석 회의였지만 이 자리가 순탄하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분명했다.최수빈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이제부터 시작될 몇 시간은 총성 없는 전쟁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녀와 주민혁은 다가올 거센 파도를 버텨내기 위해 반드시 함께 서 있어야 했다.주민혁은 그녀가 긴장했다는 걸 눈치챈 듯,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건드렸다.“괜찮아.”최수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회의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사람들은 모두 대화를 멈추고 차례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찬 회의장에는 무겁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앞쪽 발언대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정부 관계자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곧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지는 또렷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회의장 전체를 채웠다.“07 전투기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항공우주 과학기술 분야의 중대한 돌파구가 될 핵심 과제입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제노 테크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상용화를 더욱 서둘러 추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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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4화

이번 회의의 목적은 결국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위기감과 사명감을 분명히 심어주려는 데 더 가까웠다.그 순간 최수빈은 문득 예전에 주민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연구자야. 인재라고.”맞는 말이었다.아무리 좋은 프로젝트가 있어도,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결국 그걸 실현하는 건 사람이었다.국가의 힘 역시, 결국은 몇 세대를 이어 묵묵히 버텨 온 연구자들의 노력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었다.최수빈은 옆에 앉은 주민혁을 돌아봤다.그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은 채 집중한 표정으로 발표자의 발언을 듣고 있었다. 온몸에 무겁고도 담담한 기운이 가득했다.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발언대에 고정돼 있으며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주민혁은 원래 태산이 눈앞에 무너져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최수빈의 마음도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다.이런 사람과 나란히 서 있다면 무엇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반면 회의장 한쪽에 앉아 있던 임하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혁을 향해 있었다.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침체된 분위기의 회의장 안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지만, 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짙게 얽혀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07 전투기 프로젝트에서 확실한 성과만 내고 국가의 인정을 받게 되면, 임씨 가문은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심종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임하은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걸 눈치채고 가볍게 그녀의 팔을 건드렸다.그제야 임하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심종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지금 임씨 가문의 상황은 벼랑 끝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아버지 임명규는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고 가문이 운영하는 기업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07 전투기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내고 국가의 지원을 끌어내야만 임씨 가문에도 다시 뒤집을 기회가 생길 수 있었다.그런데도 주민혁만 떠올리면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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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5화

정부 관계자의 연설이 엄숙한 박수 속에 끝나자 회의장 안의 분위기는 조금 누그러졌다.하지만 공기 속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만은 여전했다.이어서 각 기업 대표들의 입장 발표가 진행됐다.차례로 단상에 오른 몇몇 기업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진정성 어린 태도를 내세우며 발언했고, 07 전투기 프로젝트 추진과 정부의 과학기술 발전 계획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자세도 한껏 낮춘 채였다.최수빈은 아래에 앉아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이 자리에 있는 기업들 대부분은 제노 테크와 어느 정도든 사업적으로 얽혀 있었다.지금 저들의 발언은 겉보기에는 성의 있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다들 각자의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게 뻔했다.그러다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심종연과 임하은도 눈여겨봤다.두 사람은 가끔씩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표정도 좀처럼 읽히지 않았다.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역시나, 몇몇 기업 대표들의 발언이 끝난 뒤 회색 정장을 입고 약삭빠른 인상을 한 중년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최수빈은 그가 남양 테크의 장형운 대표라는 걸 알아봤다.원래부터 강한 쪽에 붙고 분란 만들기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분명 심종연이나 임하은의 사주를 받은 게 틀림없었다.“귀한 말씀 주신 여러 지도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남양 테크 역시 반드시 전력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장형운은 먼저 형식적인 인사말을 늘어놓더니 곧바로 화제를 돌려 주민혁을 정면으로 바라봤다.“다만 프로젝트 추진 이야기에 앞서, 주 대표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순간 회의장 안의 시선이 일제히 주민혁에게 쏠렸다. 장내는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주민혁은 여전히 꼿꼿하게 앉은 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말씀하시죠.”“듣자 하니 오늘 은산시 청하구에서 막 투자 유치 정책을 발표했다고 하더군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학기술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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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6화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가운데, 주민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청하구 투자 유치 건에 대해서는 며칠 전부터 제 비서인 려운을 현지에 보내 직접 조사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 안을 메우던 수군거림은 순식간에 멎었다.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려운은 제노 테크의 최고운영책임자로, 수완이 뛰어나고 일 처리도 빈틈없는 주민혁의 최측근이었다.그런 려운을 직접 현장 조사에 보냈다는 건, 제노 테크가 이 사안을 전혀 모르고 있던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청하구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이미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몰랐다.장형운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주민혁이 이런 식으로 받아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미리 준비해 둔 후속 공세도 한순간에 힘을 잃고 말았다.그가 입을 열어 다시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주민혁이 곧바로 이어서 말하며 흐름을 끊었다.“청하구는 현재 경제적으로는 다소 낙후돼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특수한 위치에 있습니다. 국경과 가깝고 희토류 자원도 풍부해 향후 저희 연구개발 사업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죠.”주민혁은 담담한 눈빛으로 회의장 안을 한 번 훑어본 뒤, 계속해서 차분히 말했다.“국가 정책에 협조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힘을 보태는 것은 기업이 마땅히 다해야 할 사회적 책임입니다. 제노 테크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입주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에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청하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겠습니다.”그 말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기업의 장기적인 안목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의 체면도 세워 주면서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지도 않아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응이었다.곧장 회의장 안에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적지 않은 정부 관계자들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최수빈은 그제야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연단 위에서 흔들림 없이 대응하는 주민혁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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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7화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민혁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관계자들과 업계 핵심 인사들 앞에서 제노 테크에 대한 호감만 한껏 끌어올렸다.그 광경을 보는 임하은은 속이 뒤집히는 듯했다.심종연이 그렇게 공들여 짜 놓은 수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주민혁만 더 크게 주목받게 됐으니 속이 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손에 쥔 USB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세게 쥔 탓에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더는 못 기다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도 몰라.’임하은은 몰래 휴대폰을 꺼내 심종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더는 기다리면 안 돼요. 다음 순서에서 바로 시작해요.]그 문자를 확인하자 심종연은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기업 대표들의 발언이 모두 끝나면 곧 자유 토론 순서가 이어진다. 그때 임하은이 조작된 증거들을 꺼내 들면 최수빈과 주민혁은 그대로 끝장이 날 터였다.최수빈은 심종연과 임하은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진짜 폭풍은 이제부터 시작이야.’그녀는 조용히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휴대폰에 저장해 둔 증거들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주민혁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듯, 고개를 살짝 돌려 최수빈에게 낮게 물었다.“준비됐어?”“네.”단단한 결의가 어린 눈빛으로,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언제든 가능해요.”두 사람은 짧게 시선을 마주치고는 옅게 웃었다. 길게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자연스럽게 호흡이 척척 맞으니 말이다.이제부터 시작될 자유 토론은 진짜 승부가 될 거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심종연과 임하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패를 꺼내 들고, 끝까지 그들을 무너뜨리려 들 것이다.하지만 그들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이번만큼은 누명을 벗는 데서 끝나지 않아. 심 대표님과 임하은 씨가 꾸민 일을 전부 세상에 드러내고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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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8화

최수빈은 이미 임하은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이고, 이렇게 성급하게 밀어붙일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주민혁이 임하은을 한 번 바라보며 짧게 물었다.“증거는요?”“증거요? 당연히 있죠.”임하은은 손에 쥔 USB를 들어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여기에는 최수빈 씨가 당시 심사위원에게 돈을 건넨 은행 이체 기록, 박하린 씨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공모한 대화 내역, 그리고 대회 관계자의 증언까지 전부 들어 있습니다.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입증하기엔 충분한 자료들이에요.”임하은은 곧바로 USB를 직원에게 넘겨 대형 스크린에 띄우려 했다.그런데 그때, 최수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는 차분한 눈으로 임하은을 바라보며 살짝 비꼬는 듯한 기색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임하은 씨, 그 증거가... 진짜라고 확신하세요?”“당연히 진짜죠.”임하은이 냉소를 지으며 받아쳤다.“이건 다 확실한 증거예요. 변명할 여지는 없을 겁니다.”직원이 USB를 받아 내용을 회의장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조작된 이체 내역, 앞뒤가 잘려나간 대화 캡처, 허점이 가득한 증언들이 하나씩 화면에 떠오르자 회의장은 다시 한번 크게 술렁였다.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렸고 업계 인사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모두가 일제히 최수빈에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하지만 최수빈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화면의 자료가 모두 재생될 때까지 기다린 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차분했지만 단호하고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임하은 씨가 말한 확실한 증거들은 전부 허점투성이입니다.”그녀는 스크린에 띄워진 이체 내역을 가리켰다.“이 돈이 뇌물이라면, 이체 시점은 왜 심사 종료 사흘 뒤죠? 이미 결과가 나온 뒤인데 어떻게 미리 심사위원을 매수했다는 건가요? 그리고 이 돈을 받았다는 심사위원은 당시 해외 세미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출입국 기록과 세미나 참석 기록도 다 남아 있고요. 그 사람이 동시에 여기서 돈을 받았다는 건, 무슨 분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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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9화

최수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심코 손끝에 힘을 주었다.임하은이 갑자기 꺼내든 이 이야기는, 사실 주민혁 역시 마음속으로는 계속 묻고 싶었지만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문제였다.다만 그녀에게는 애초에 그걸 물을 만한 명분이 없었다.주민혁의 시선이 눈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임하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빛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늪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임하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민혁 씨, 지금 민혁 씨의 마음이 온통 수빈 씨에게 가 있는 거 다 알아요. 수빈 씨를 감싸고 싶은 것도 알겠어요. 그래도... 나도 민혁 씨의 아이를 가졌던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어요? 단 한마디라도 내 편 안 들어줄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울먹임에 잠겨 있었고 처연하고 억울한 기색이 그대로 묻어났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충분히 동정할 만한 분위기였다.회의장 안에서는 다시금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번졌다. 주민혁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조금씩 의심과 비난이 섞이기 시작했다.아이의 유산이 정말 최수빈과 관련이 있는지와는 별개로, 책임을 회피한 남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의 평판에는 타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최수빈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임하은이 눈물까지 흘리며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면서도 분노보다는 어딘가 허탈할 정도로 차분한 감정만 남았다.그녀는 임하은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면으로 밀리지 않으면 감정에 기대고, 궁지에 몰리면 관계를 무기로 삼는다.다만 이렇게까지 비열한 방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주민혁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지금의 이야기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것처럼 분노도, 죄책감도 비치지 않았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송미연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아니, 저 여자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당장이라도 나서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육민성이 옆에서 그녀를 붙잡았다.송미연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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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0화

려운은 곧장 주민혁의 곁으로 다가와 들고 있던 자료를 건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대표님, 관련 증거는 전부 확보했습니다. 임하은 씨의 당시 임신 검사 기록, 임명규 씨가 협력업체 관계자와 접촉하도록 지시한 일정 기록,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요.”주민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넘겨보지는 않고 이미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는 임하은을 바라봤다.“임하은 씨, 계속해서 내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하시는데... 이 자료부터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는 려운에게 지시해 해당 자료를 정부 관계자들과 주요 기업 대표들에게 나눠 주게 했다. 그런 다음 직접 한 장의 임신 검사 보고서를 들어 올려 회의장을 향해 말했다.“이건 당시 임신 검사 기록입니다. 여기 기재된 수정 시점은... 임명규 씨가 임하은 씨를 특정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접근시키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죠.”“거짓말이에요!”임하은의 목소리가 떨렸다.“그건 그냥 우연일 뿐이에요!”“우연이라고요?”주민혁이 비웃듯 짧게 웃고는 또 다른 자료를 들어 보였다.“이건 임하은 씨의 일정표입니다. 해당 기간 동안 그 협력업체 관계자와 여러 차례 만났고 밤새 돌아오지 않은 기록도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 저는 해외 세미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출입국 기록과 세미나 참석 기록이 모두 남아 있고요. 임하은 씨와 접촉할 여지는 애초에 없었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회의장 전체를 한 번 훑어보았다.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냉소가 실려 있었다.“결론적으로, 임하은 씨가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그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임하은 씨의 아버지가 권력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딸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일 뿐이죠. 임명규 씨는 이 사실이 드러나면 가문에 치명적일 걸 알았고 동시에 임하은 씨를 떠넘길 상대도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시 외부에서 임하은 씨와 저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었기에 그 틈을 이용해 저에게 책임을 뒤집어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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