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191 - Chapter 1200

1205 Chapters

제1191화

임하은에게서 문자가 온 걸 본 순간부터, 주민혁은 최수빈을 이 일에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임하은의 수법은 잔인했다. 한 번 얼굴을 붉히고 나면 무슨 극단적인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그래서 주민혁은 사람을 붙여 증거 조작의 출처를 추적하게 했고 임하은이 어떻게 증인을 매수했는지에 대한 단서도 찾아냈다. 사흘만 지나면, 이번에 덧씌워진 누명은 스스로 벗겨질 터였다.최수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렇게 한가한 거라면... 난 신경 안 쓸게요.”주민혁은 최수빈을 바라봤다. 묵직한 시선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다.“정말 그렇게 한가해요?”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민혁 씨가 임명규 그 사람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그 사람은 이 업계에서 뿌리가 너무 깊어요. 수년 동안 쌓아온 세력이 있는데 쉽게 흔들릴 리가 없잖아요.”최수빈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주민혁은 말없이 있었다.임명규가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틴 건 뒤에 얽힌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서였다. 한두 번 타격 준다고 뿌리째 흔들릴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임하은 씨는 달라요.”최수빈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전체 판을 읽고 있는 사람 특유의 확신이 묻어나는 기색이었다.“그 사람은 임명규 씨가 제일 아끼는 딸이에요. 그리고... 가장 큰 약점이죠. 임명규 씨가 아무리 조심해도 저렇게 나대는 딸 하나면 다 무너져요. 아버지 대신 나서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으니 행동도 과하고 허점도 많죠.”최수빈이 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봤다.“이번 건, 그냥 놔둬요. 일 다 벌어지고 나서... 내가 폭로하면 되니까. 판이 커질수록 임하은 씨는 수습이 더 어려워질 거예요. 그때 가서 내 누명도 벗기고 임하은 씨를 통해서 임명규 씨 쪽도 더 캐낼 수 있어요. 더러운 일거리들 잔뜩 끌어올려서 그 사람 숨 돌릴 틈도 없게 만들면 돼요.”주민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여 최수빈을 봤다.“이런 건 누구한테 배웠어?”최수빈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민혁 씨한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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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2화

주민혁은 정리를 다 끝낸 뒤 거실로 나와 최수빈을 바라봤다.“나 회사에 잠깐 다녀올게. 프로젝트 마무리할 게 좀 있어서.”최수빈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 묻지 않았다.07 전투기 프로젝트가 막바지 단계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임하은 쪽에서 터진 골칫거리까지 수습해야 하니, 그가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것도 알았으니 말이다.다만, 어젯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밤을 새우고 오늘은 율이랑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게 떠올라 마음이 쓰였다.두 사람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가까운 듯 멀고, 멀어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가까운 거리라 주변 공기마저 묘해졌다.“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주민혁이 말했다.“언제든 다 받을 테니까.”고개를 들었다가 주민혁의 깊은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친 최수빈은 입꼬리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다음에 병원 갈 때...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주민혁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녀가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몇 초간 멍하니 있던 그는 끝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야. 누가 굳이 같이 갈 정도는...”그는 최수빈이 자기 상태를 두고 마음 졸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우울증이 끌고 오는 고통, 깊은 밤마다 무너지고 바닥 끝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은 그냥 혼자 견디고 싶었다.“내가 같이 가고 싶으면요?”최수빈의 진지한 눈빛에 주민혁은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그녀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사람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쪽으로 가까이 간다. 물론 주민혁도 마찬가지였다.예전의 그는 매우 단단했으나 지금은 그 마음이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그래.”주민혁이 최수빈을 보며 말했다.“다음에는 같이 가자.”‘수빈이도 알아야 할지 몰라. 그리고 모든 걸 알게 되면... 더는 나와 엮이고 싶지 않아질지도 모르고.’최수빈은 작게 웃었다.“그럼 잘 가요. 운전 조심히 하고.”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일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밥 꼭 제때 챙겨 먹어요.”“응.”...주민혁은 밖으로 나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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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3화

그러나 그 짤을 보내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송미연은 화면이 꺼지는 순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녀는 이 관계에서 가장 냉정하게 상황을 보는 사람이었다.최수빈이 율이와 함께 버텨가며 힘겹게 살아온 시간도, 육민성이 말없이 곁을 지켜준 시간도, 그리고 주민혁이 돌아온 뒤 세 사람의 관계가 결국 정리되어 버린 것까지... 그녀는 전부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최수빈이 육민성에게 품은 감정은 언제나 고마움과 의지하는 것이었다. 진심 어린 정이긴 했지만 사랑과는 달랐다.그래서 송미연은 더 난감했다.최수빈이 대신 전해달라던 그 한마디가 겉보기엔 가벼워도 실은 너무 무거웠으니 말이다.‘육 대표님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수빈이의 마음속에는 주민혁밖에 없다고? 육 대표님의 기다림은 애초부터 결말이 없는 일이었다고? 아니야.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말할 수 없어.’육민성은 원래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침착하고 속이 깊고 일에서는 칼같이 밀어붙이면서도, 사적으로는 온화하고 믿음직한 남자였다.하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닿을 수 없는 감정을 붙잡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에는 상처가 남기 마련이다.송미연은 그 상처를 자기 손으로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더욱이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그래... 어떤 건 시간이 알아서 흐리게 만들게 두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라.’그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자 송미연은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굳이 받지 않아도 무슨 얘기를 할지 뻔했다.‘또 뭐 맞선 얘기, 정략결혼 얘기... 그런 얘기들뿐이겠지.’통화 버튼을 누르자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미연아, 다음 주에 이씨 가문 도련님이 귀국한대. 내가 약속 잡아뒀으니까 꼭 나가?”“엄마, 나 그 사람 싫다고 했잖아요.”송미연의 목소리에는 짜증 난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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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4화

여기서 육민성을 마주칠 줄은 몰랐기에 송미연은 잠시 멈칫했다.그러고는 조용히 다가가 사무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고개를 든 육민성은 송미연을 보곤 잠깐 놀란 눈빛을 보이더니 이내 옅게 웃었다.“재벌가 아가씨가 한밤중에 웬일이에요? 설마 야근 점검하러 오셨나?”송미연은 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의자를 하나 끌어 앉았다. 시선은 모니터에 흐르는 데이터에 잠시 머물렀다.“대표님은 왜 회사에 있어요? 기분 안 좋아요?”돌려 묻는 법이 없이 송미연은 늘 직설적이었다.육민성은 손을 잠시 멈칫했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테스트를 돌리던 프로그램을 끄더니 송미연을 보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그 정도로 약해 보였어요?”희망 없는 사랑 하나 놓쳤다고, 혼이 빠져 회사에 숨어 치료할 정도는 아니었다.송미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맞장구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누가 알아요?”“계속 그걸로 놀릴 작정이에요?”육민성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정작 그렇지 못했다.“그냥 밤이 조용하잖아요. 복잡한 일 처리하기도 좋고. 데이터 테스트는 집중이 생명인데 낮에는 너무 시끄러워요.”“그래요?”송미연이 그를 똑바로 봤다.“그냥 티 안 나게 숨긴 거 아니고요?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면... 어떻게 안 아파요.”송미연은 육민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는 감정을 깊이 숨기는 사람이고 늘 일을 붙잡고 스스로를 마비시키듯 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쓸쓸해 보이는 눈가는 차마 숨길 수 없었다. 억지로 평온해 보이는 척하는 것도 결국 허전한 마음속을 가리지는 못했다.정곡을 찔렸는지 육민성의 입가에 있던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몇 초간 침묵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고 대신 화제를 돌렸다.“나는 그렇다 치고, 미연 씨는 이렇게 늦은 시각에 왜 왔어요?”그 말에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온 송미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집에서 결혼하라고 닦달해서요. 너무 피곤해서 그냥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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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5화

“그리고 우리 서로 잘 아니까, 모르는 사람이랑 억지로 맞춰 지낼 필요도 없잖아요. 얼마나 좋아요.”이에 송미연을 바라보는 육민성의 눈빛에 깃든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송미연이 십중팔구 농담하는 거란 걸 알면서도, 솔직히 그 제안이 마음을 건드린 건 부정할 수 없었다.적어도 집안의 결혼 압박을 잠재울 수 있고, 최수빈에 대한 기억에서도 잠시 멀어질 수 있다면...어쩌면 꽤 괜찮은 선택일지도 몰랐다.“그거, 진심이에요?”그가 송미연을 보며 조심스레 떠봤다.그러자 심장이 더욱 빨리 뛰는 탓에 송미연은 고개를 돌려 육민성의 시선을 피하며,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당연히 농담이죠. 내가 진짜로 대표님이랑 정략결혼을 하겠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에 스친 낯선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육민성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는 책상 위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 하기 싫으면 집안 사람들이랑 제대로 얘기해 보는 방법도 있고요.”“얘기요?”송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알잖아요. 그게 통할 집안이 아니라는 거.”육민성은 말이 없었다.맞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집안 분위기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송미연은 육민성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다행이네. 깊은 밤에 이렇게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게다가 꾸미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보며 맞춰 줄 필요도 없잖아.’그때 육민성이 조용히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그런데... 정말 결혼 얘기를 피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요.”송미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봤다.“미연 씨가 말한 것처럼, 우리 가짜로 정략결혼 하는 거예요.”육민성의 말투는 놀라울 만큼 진지했다.“밖에는 우리가 사귀는 거로 발표해요. 그러면 집안도 조용해질 거고 미연 씨도 숨 돌릴 시간과 공간이 생기겠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그러다 마음이 정리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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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6화

송미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이 날 좋아한다고 착각할까 봐, 미리 못 박아 두는 거예요?”육민성이 젠틀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송미연은 괜히 한 번 놀려 보고 싶었다.그러자 육민성이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일부러 그렇게 오해해 주는 거예요?”잠시 뜸을 들인 그가 또 덧붙였다.“미연 씨의 명성만 가져가 놓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아요. 그에 맞는 존중과 대우를 해 주는 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육민성도 알고 있었다. 이 약혼은 어디까지나 임시로 맺는 약속이지만 송미연의 평판은 현실이라는 걸.가짜로 연기할 거면 그녀가 억울한 일을 겪게 해선 안 되었다. 그게 육민성의 기준이었고 친구로서의 책임이었다.송미연도 장난기 어린 표정을 거두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나도 동의해요.”육민성이 선을 잘 지킨다는 것을 송미연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제대로 하겠다 했으면 그는 분명히 꼼꼼하고 매너 있게 모든 것을 준비할 테고 그녀를 난처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었다.잠깐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웃으며 물었다.“그럼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다 대표님 부르면 되는 거죠? 약혼자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줄 수 있어요?”예를 들면 집안 식사 자리에 같이 나가 주기, 불필요한 맞선 막아주기, 가끔은 감정을 털어놓는 얘기 들어주기 같은 것들 말이다.육민성은 송미연은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명분이라는 게 공짜로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이 역할에 최선을 다할게요. 혹시 부족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또...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부터 친근하게 반말할게요.”“그래요. 그럼 나도 이제 편히 오빠라고 부를게요.”그는 원래도 말하는 건 지키고 자기 행동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이 말에 송미연은 결국 웃음이 터졌다.사실 두 사람은 학교에서부터 사회에서까지 꽤 오래 알고 지냈기에 서로의 성격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때문에 낯선 사람처럼 어색하게 굴 필요도, 쓸데없이 떠볼 필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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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7화

최수빈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둘 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면... 난 그 결정 응원해.”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육민성은 온화하고 믿음직한 사람이고 송미연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속이 깊다. 두 사람이 정말 함께하게 된다면 충분히 좋은 인연이 될 터였다.송미연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우린 그냥 집에서 결혼하라고 몰아붙이는 거 피하려고 하는 거야. 딱 임시로 손잡은 거지.”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좀 잠잠해지면 우리도 좋게 헤어지면 돼.”“민성 선배, 진짜 괜찮은 사람이잖아.”최수빈이 입을 열었다.“우리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선배의 사람 됨됨이야 너도 나도 다 잘 알지. 듬직하고 책임감 있고 친구한테도 정말 잘하고. 그러니까... 너도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이 말에 송미연은 커피를 뿜을 뻔하며 컵을 내려놓고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야, 무슨 소리야. 장난치지 마. 우리는 어릴 때부터 치고받고 자란 사이야. 이제는 거의 남사친 수준인데 무슨 남녀 사이의 감정이야.”송미연에게 육민성은 함께 투덜대고 같이 사고도 치는 ‘친구’였다. 거기서 다른 마음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최수빈은 단호한 송미연의 태도를 보자 더는 말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그래, 알겠어. 진짜든 임시든 상관없이, 두 사람이 즐거우면 됐지.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걱정 마. 네 손 빌릴 일, 분명 생길 거야.”통화를 끊고 나서, 송미연은 최수빈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 같았다....육민성과 송미연은 부모님께 인사드릴 날짜를 잡았다.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육민성은 송씨 가문 별장 단지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세단을 타고 왔고 트렁크에는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가득했다.송미연의 아버지 송강수에게는 고급 찻잔 세트, 어머니 설희애에게는 한정판 실크 스카프와 스킨케어 제품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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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8화

육민성은 설희애가 이제부터 꺼낼 말이 진짜 핵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차분히 기다렸다.“하지만 난 너희 둘이 안 맞는 것 같아.”설희애가 담담히 말했다.“너희는 오랫동안 친구였잖니. 성격도, 버릇도, 서로 너무 잘 알아. 친구로는 괜찮아도... 부부로는 꼭 맞는다고 할 수 없지.”송미연이 반박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설희애가 눈빛으로 제지했다.“난 오늘 좀 피곤해서 방에 들어가 쉬어야겠다.”설희애는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에는 선을 긋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너희끼리 얘기해. 난 더 안 나올게.”말이야 정중했지만 뜻은 뻔했다. 사실상 육민성에게 나가라는 얘기였다.송미연은 얼굴이 순식간에 굳더니 설희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에 분노가 가득 찼다.하지만 육민성은 끝까지 침착했다. 그는 송미연의 손등을 살짝 두드리며 흥분하지 말라는 듯 턱짓으로 신호를 주었다.“괜찮습니다, 아주머니. 피곤하시면 푹 쉬세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송강수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아저씨,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송강수는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민성아... 정말 미안해. 우리 집사람이...”육씨 가문도 권세 있는 집안이니 겉으로라도 체면은 세워 줘야 했다.“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저도 이해해요.”육민성은 여전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감정이라는 게 원래 한 번에 맞춰지는 게 아니잖아요. 아주머니께도 시간을 드려야죠.”이렇게 말한 뒤, 육민성은 송미연과 함께 송씨 가문 별장을 나섰다.별장 문을 나서는 순간, 송미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차가운 얼굴로 내뱉었다.“우리 엄마, 도대체 왜 저런대요? 육씨 가문이 어디가 부족해서요? 우리가 좋다고 약혼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까요?”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설희애의 저런 속물 같은 태도였다. 마치 세상 누구도 송씨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말이다.“화내지 마.”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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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9화

육민성은 진지한 눈빛으로 송미연을 흘끗 바라보았다.“우리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아주머니가 의심하시는 것도 당연하지.”그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어쩌면 오늘 내가 아직 부족했을 수도 있어. 내 진심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거절하신 걸 수도 있고.”육민성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건 송미연의 평판과 자유가 걸린 일이었다.송미연의 마음에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그리고 뭐라 말하기 어려운 설렘 같은 것 말이다.운전에 집중한 채 있는 육민성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송미연은 문득 생각했다.‘임시적인 관계일 뿐이지만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몰라.’“참.”그때 육민성이 입을 열어 차 안의 침묵을 깼다.“오늘 밤, 부모님이랑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송미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요?”“미연 씨네 집 어른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약혼 절차 밟는 거 말이야. 정식으로 청혼하고 약혼하자고.”육민성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완전히 굳어버린 송미연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만 하다 겨우 말을 꺼냈다.“그거... 진심이에요? 우리 그냥 집에서 결혼하라 난리 치는 거 피하려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왜 진짜로 청혼하고 약혼까지 하자는 거예요?”육민성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잠깐 바라봤다. 눈빛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쳤다.“아주머니는 우리가 서로 귀찮은 걸 피하려고 그러는 거라 생각하셔도, 이 약혼 자체를 완전히 반대하진 않으실 거야.”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갔다.“송씨 가문이랑 육씨 가문이 정략결혼으로 엮이면, 두 집안 사업에 다 도움이 되잖아. 이해관계가 단단해지지. 아주머니는 그걸 제일 중요하게 보시잖아.”육민성은 알고 있었다. 설희애는 입으로는 안 맞는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각자의 이해관계에 대해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그녀가 오늘 거절한 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너무 가볍고 임시방편처럼 보여서, 그게 오히려 양가 협력에 흠이 될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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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0화

“오빠, 이렇게까지 하면... 부담되지 않아요?”그러자 육민성이 말했다.“난 그냥, 하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연 씨한테 억울한 일 생기면 안 되잖아.”“어쨌든... 고마워요.”송미연이 그를 바라보았다.“날 도와주겠다고 한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준 건 더 고맙고요.”“우린 친구잖아.”육민성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서로 돕는 건 당연한 거지.”송미연은 속으로 저울질했다.사실 육민성의 말에 틀린 건 없었고 이건 어쩌면 협력에 가까운 관계였다.“민성 오빠.”송미연이 말했다.“이 관계... 나도 책임질게요.”“책임?”육민성이 운전대를 잡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말하는 책임은 이 약혼에 대해서 그러는 거야. 미연 씨는 그냥 미연 씨의 삶 그대로 살면 돼. 먹고 놀고, 하고 싶은 대로. 아무 제약도 느낄 필요 없어.”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송미연이 잠시 멈칫했다.“마음에 드는 사람 생기면 남자친구도 평소처럼 만나.”육민성의 말투는 끝까지 담담했다.“이건 형식적인 약혼일 뿐이야. 미연 씨의 자유로운 삶은 전혀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그는 송미연이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결혼이라는 틀에 묶이는 걸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송미연은 등받이에 기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설렘까지 느껴져 마음이 또 복잡해졌다.“난 그게 걱정돼서 그래요.”송미연이 입을 열었다.“오빠는 원래도 일에 치여 살잖아요. 그런데 또 우리 일까지 챙기면... 감당 못 할까 봐서요.”육민성은 평소에도 정신없이 바빴고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날도 많았다.그런데 여기에 양가 어른들까지 상대하고 약혼 준비까지 하게 되니, 정말 지칠까 봐 걱정이 된 것이었다.“걱정 마. 다 할 수 있어.”육민성이 그녀를 힐끗 보며 웃었다.“일은 일이고, 이건 내가 미연 씨의 부탁에 응했으니 응당 책임져야 할 것들이야. 서로 꼬이지 않게 내가 잘 정리할게.”그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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