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211 - Chapter 1220

1221 Chapters

제1211화

이렇게 엄숙한 공식 회의 자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임명규와 임하은의 인성이 이렇게까지 바닥일 줄은 더더욱 말이다.임하은은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차마 귀에 담기 힘든 수군거림을 듣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이제 정말 끝이라는 걸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최수빈과 주민혁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신과 임씨 가문의 추문을 세상에 드러내 버렸으니, 앞으로 이 업계에서 얼굴 들고 살아갈 수는 없을 터였다.그런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심종연을 노려봤다.‘심종연이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그런 어리석은 수를 내놓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 지경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그 시선을 느낀 심종연은 싸늘한 얼굴로 끝내 임하은을 바라보지 않았다.최수빈은 주민혁의 곁에 서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이미 결론을 내린 듯했다.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주민혁 역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미안함을 담은 눈빛에 다정한 기색도 함께 담겨 있었다.“미안해. 괜히 널 힘들게 했네.”주민혁의 목소리는 매우 낮아 겨우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최수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한결 가벼워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진실이 밝혀졌으니까요.”임하은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다.울음소리는 회의장 안에서 유난히 크게 울리며 그녀의 처지만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곧 보안 요원들이 다가와 바닥에 주저앉은 임하은을 붙들어 끌어냈다.임하은이 몸부림치며 울부짖었으나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심종연은 그녀가 끌려가는 뒷모습을 냉정한 얼굴로 바라봤다.임하은이 무너졌다면 다음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주민혁이 그녀의 추문을 파헤쳤다면 자신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약점을 쥐고 있을 게 분명했다.그때, 주민혁이 심종연을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심종연 역시 웃음으
Read more

제1212화

로비 입구에 남은 사람은 송미연과 육민성뿐이었다. 비가 쏟아진 뒤의 공기에는 흙냄새 섞인 상쾌한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송미연은 바깥에 퍼붓는 폭우를 바라보다가 둘 다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래서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뒤, 육민성을 돌아보며 외쳤다.“오빠, 뛰어요! 돌격!”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민성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는 곧장 빗속으로 뛰어들었다.순식간에 빗물이 머리카락과 옷을 흠뻑 적셨다. 차가운 감촉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지만 그녀의 웃음은 되레 더 환해졌다.막 우산을 꺼내 들던 육민성은 빗속으로 냅다 뛰어든 송미연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빗속을 달려가는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결국 우산을 다시 접어 넣고 성큼성큼 그녀를 따라갔다.빗물이 머리끝을 타고 흘러내려 셔츠를 적시고 몸에 들러붙으며 서늘한 기운을 남겼지만, 그의 조금도 걸음을 늦춰지지 않았다. 앞에서 폴짝거리며 뛰어가는 그 모습이 혹시라도 빗길에 미끄러질까 싶어 시선은 줄곧 송미연에게 고정돼 있었다.육민성의 차 앞까지 달려간 송미연이 문을 열려 했으나 차 문은 잠겨 있었다.그래서 급히 걸어오는 육민성을 돌아봤다.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여전히 눈웃음을 띤 채 송미연은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오빠, 왜 이렇게 늦어요? 얼른 문 좀 열어줘요. 나 거의 물에 빠진 생쥐 꼴 됐잖아요!”빗소리에 목소리가 반쯤 묻혔지만 마치 재밌는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들뜬 기운이 가득했다.육민성은 걸음을 더 재촉해 차 앞으로 다가오며 차 키를 눌렀다.곧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송미연은 곧바로 차문을 열고 올라탔다.“진짜 너무 느렸어요. 오빠도 봐요, 완전 흠뻑 젖었잖아요.”육민성도 운전석에 올라타서는 옆자리에 앉은 송미연을 바라봤다. 젖은 머리카락과 몸에 달라붙은 옷차림을 보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누가 안
Read more

제1213화

차 안에는 따뜻한 바람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송미연은 조수석에 기대앉아 있었고 이마에 달라붙어 있던 젖은 머리카락도 어느새 절반쯤 말라 있었다.육민성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다녀와요. 저도 감기 걸리면 다음 날 아무것도 못 해서 힘들어요.”오랜 시간 쌓인 우정 덕분에, 그녀는 이미 육민성의 배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그의 다정함은 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편안하게 다가왔고 굳이 사양하거나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육민성은 짧게 대답하고는 문을 열고 다시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다.빗줄기는 은빛 실처럼 얽혀 그의 몸을 순식간에 덮쳤고 셔츠는 금세 흠뻑 젖어 등에 달라붙었다.송미연은 그가 길모퉁이의 약국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러나 곧 졸음이 밀려왔다.어젯밤에는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뒤척이며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오늘 아침에는 회의장에서의 소동까지 겪은 탓이었다. 긴장이 풀리자 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그래서 그녀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숨결은 점점 고르게 가라앉았지만 미간은 옅게 찌푸려져 있었다. 잠든 와중에도 무언가를 거부하듯 말이다.얼마 후, 감기약과 따뜻한 물을 들고 온 육민성의 눈앞에는 바로 이런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어두운 차 안 조명 아래, 잠든 송미연의 얼굴은 유난히 부드럽고 고요해 보였다. 평소의 당당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보기 드문 얌전한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혹여라도 그녀를 깨울까 봐, 육민성은 조심스럽게 운전석에 올라탔다. 약과 물은 조수석 수납함에 넣어두고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육민성은 가끔씩 곁눈질로 옆자리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길이 울퉁불퉁해 그녀가 깨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겉으로는 자유롭고 거리낌 없어 보이는 송미연이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는
Read more

제1214화

육민성은 그녀의 뒷모습이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제야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떠났다....다음 날 아침.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송미연은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발신지는 본가였다.“미연아, 당장 집으로 와. 중요한 얘기가 있다.”수화기 너머, 설희애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묵직한 긴장감까지 실려 있었다.송미연은 잠에 덜 깬 눈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속으로 의아해했다.어젯밤 늦게 잠들어 아직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고 원래라면 더 자고 싶었지만 설희애의 말투가 심상치 않아 대충 넘길 수가 없었다.“알겠어요. 금방 갈게요.”전화를 끊은 뒤, 송미연은 간단히 세수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마침 집에 두고 온 물건도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같이 챙겨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차를 몰고 송씨 가문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전 열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송씨 가문의 본가는 고풍스러운 서양 양식의 별장이었다.송미연이 안으로 들어서 보니 가족들은 모두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분위기는 어딘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낯선 여자 한 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그녀는 스무 살 남짓으로 보였고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딘가 조심스러워보이는 표정에 피부는 희고 분위기도 차분해 보였다.그저 먼 친척이거나 부모님의 지인쯤으로 생각했기에 송미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곧 하품을 한 번 하며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왔어요. 엄마, 중요한 얘기라면서요. 무슨 일인데요?”그녀는 여전히 졸음이 가시지 않아 얼른 올라가 낮잠이나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저 먼저 올라가서 좀 잘게요. 어제 너무 늦게 자서 잘 못 잤어요.”말을 마치고 계단 쪽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설희애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미연아, 잠깐.”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할 얘기가 있어.”그리고 설희애가 옆에 앉아 있던 낯선 여자를 가리켰다.“이 아이, 네 동생이야. 이름은 송희나.”
Read more

제1215화

송미연의 발걸음이 완전히 멈췄다.그녀는 홱 몸을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설희애를 바라봤다.“뭐라고요? 제 방을요?”그건 그녀가 어릴 때부터 줄곧 써 온 방이었다.안에는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좋아하던 책들, 모아 둔 기념품들, 그리고 자라면서 늘 곁에 두었던 인형들까지 전부 그 방 안에 있었다.그런데 설희애가 그녀의 허락도 없이 이제 막 되찾았다는 동생에게 그 방을 내주었다는 것이다.송희나는 충격과 분노가 뒤섞인 송미연의 시선을 받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말했다.“미안해, 언니. 거기가 언니 방인 줄 몰랐어. 다만 난 이렇게 큰 집도, 그렇게 좋은 방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살아본 적도 없어서...”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서러움과 위축된 기색이 묻어나 보고 있으면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언니가 불편하다면, 지금 당장 짐 뺄게. 난 손님방 써도 괜찮아.”그러자 설희애가 곧바로 말했다.“미연아, 네 동생은 이제 막 돌아와서 모든 게 낯설단 말이야. 네 방은 볕도 잘 들고 넓기도 하잖아. 희나가 쓰면 뭐가 어때서? 너도 이제 다 큰 애인데, 어느 방을 쓰든 다 똑같지 않니?”송미연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설희애를 바라봤다가 다시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송희나를 봤다. 순간 마음속에서 설명하기 힘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방을 내주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설희애의 방식이었다.그건 송미연의 방이자 이 집에서 유일하게 자기 자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지 않은가.그런데 설희애는 그녀에게 한마디 상의조차 하지 않은 채, 그 공간을 멋대로 다른 사람에게 내주었다.무엇보다 더 불편한 건 송희나의 태도였다.겉으로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그 방에 자신이 머무는 게 당연하다는 기색이 배어 있었고 송미연이 괜히 속 좁게 구는 사람처럼 비치게 만들고 있었다.“엄마, 그건 제
Read more

제1216화

송미연은 그 광경을 보자 마음이 더 뒤숭숭해졌다.이제 와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분명 또 자신이 괜한 심술을 부린다고만 여길 터였다. 잃어버렸던 딸을 되찾았다는 기쁨에 이미 눈이 멀어 송희나에게 어떻게든 보상해 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떨지는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좋아요. 제가 양보할게요.”송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속에서 치미는 분노와 서러움을 억눌렀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방, 그 애가 쓰라고 하세요. 전 괜찮아요.”더는 부모님과 실랑이하고 싶지도 않았고 저렇게 불쌍한 척하는 송희나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방에 더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그 말을 듣고 나서야 설희애는 표정을 누그러뜨렸다.“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가족끼리는 서로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송희나도 옅게 웃으며 송미연을 향해 말했다.“고마워, 언니.”송미연은 대꾸하지도, 부모님을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곧장 계단 쪽으로 향했다.그녀가 간 곳은 손님방이 아니었다. 발길이 멈춘 곳은 서재였다.서재에는 소파베드가 하나 있었다. 본인의 방만큼 편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잠시라도 혼자 조용히 있을 수는 있었다.서재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바깥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됐다. 그제야 송미연은 문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슴 깊은 곳에 눌러 두고 있던 서러움과 허탈함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그녀는 늘 자신이 부모님의 외동딸이고 이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고 믿어 왔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그저 자기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갑자기 나타난 여동생 하나가 너무도 쉽게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아 갔고, 심지어 자신의 방과 그 안에 담긴 추억까지 앗아 가고 있었다.송미연은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넘겨 보았다. 무심결에 최수빈에게 전화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Read more

제1217화

송미연은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다 우연히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차 키를 꽉 쥔 채,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송씨 가문 본가의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뒤에서 설희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철없는 애 같으니라고! 방 하나 양보하라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무슨 이런 난리를 쳐?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줘서 그런가, 배려라는 걸 몰라!”그 말들은 가느다란 바늘처럼 가슴을 콕콕 찔러대 코끝이 시큰해졌다.송미연은 뒤돌아보지도, 변명하지도 않은 채 차 문을 열고 올라타 그대로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았다. 그러자 차는 순식간에 튀어 나가며 본가 별장의 답답한 공기와 소란스러운 소리를 멀리 뒤로 밀어냈다.백미러 속에서 20년 넘는 기억이 쌓여 있던 그 집은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흐릿한 점 하나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그 집에 있던 송미연의 자리도 함께 무너졌다.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혼자 사는 별장은 텅 비어 있었고 본가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핸들을 돌리던 차는 결국 강변 전망대 앞에 멈춰 섰다.창밖에서는 강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아직 가시지 않은 축축한 공기를 실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송미연은 핸들 위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코끝이 찡해지더니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그녀가 집착한 건 그 방 자체가 아니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쏠려 버린 부모님의 편애가, 그리고 20여 년 동안 자신이 외동딸이라 믿어 온 시간이 갑작스레 찾아온 데다 진짜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여동생’ 하나에게 순식간에 밀려났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송희나의 겁먹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꿍꿍이가 있는듯한 태도,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감싸는 어머니의 편애, 또한 아무 말 없이 그걸 용인하는 아버지까지...그 모든 것이 촘촘한 그물처럼 옥죄어와 송미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생각할수록 서럽고 생각할수록 답답해졌다.곧 송미연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떨리는 손으로 최수빈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Read more

제1218화

“알아.”최수빈이 부드럽게 말을 건네며 달래주었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물컵을 집어 송미연에게 건넸다.“일단 물 좀 마시고 진정해. 혼자 끙끙 앓다가 더 힘들어지지 말고.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부모님이 네 마음을 제대로 생각 안 한 거지. 그렇게 대충 넘길 일이 아니었어. 난 언제든지 네 편이야. 힘들면 털어놔도 되고 화나면 풀어도 돼. 언제든 나한테 와. 세상이 다 널 이해 못 해도, 나는 네 편에 설게.”송미연은 물컵을 받아 두어 모금 마셨다.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았지만 눈가에는 여전히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구석 자리에 함께 앉은 채, 송미연은 최수빈에게 집안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심지어 송희나에 대한 불편한 감정까지 하나하나 다 털어놓았다.최수빈은 묵묵히 들어주며 가끔 맞장구를 쳐 주었고 설희애의 편애에 대해서도 함께 투덜거려 주었다.바 안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는 사람의 이성을 서서히 흐리게 만드는 법이었다.테이블 위의 술병은 하나씩 비워지고 위스키와 칵테일이 뒤섞여 이어졌다.그러자 두 사람은 점점 볼이 붉어지더니 눈빛도 흐릿하게 풀리기 시작했다.물론, 송미연이 더 많이 취했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이미 의식은 흐릿해진 상태였다.최수빈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머리는 어지럽고 눈앞이 흔들렸으며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었다. 그래도 남은 이성으로 어떻게든 송미연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둘은 원래부터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로서 송미연은 화려하고 강렬한 타입, 최수빈은 단아하고 맑은 분위기였다. 거기에 술기운까지 더해져 볼은 붉게 달아오르고 눈빛도 묘하게 연약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었다.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몇몇 남자들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두 사람을 노골적으로 훑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눈빛에 음흉한 기색이 가득했다.이쯤이면 충분히 취했다고 판단한 듯 그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술잔을 든 채 다가왔다.“예쁜이들, 이렇게 따로 마시면 재미
Read more

제1219화

통화는 금세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로 곧 남자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야?”주민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최수빈의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언제부터였을까, 그에게 전화를 걸면 늘 바로 연결됐고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반응해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현재 있는 곳을 말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민혁 씨, 여기 좀 와줄 수 있어요?”목소리는 무척 낮았고 술기운까지 섞여 있었다.주민혁은 곧바로 말했다.“거기서 움직이지 마. 지금 바로 갈게. 다친 데는 없어? 그 사람들이 무슨 짓 했어?”“다친 데는 없어요. 그냥 계속 저희 주위를 맴돌면서 안 가고 있어요. 미연이는 너무 많이 취했고요...”“겁먹지 마. 10분 안에 도착할게. 내가 갈 때까지는 그 사람들이랑 부딪치지 말고.”주민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지만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이 있었다.“전화 끊지 말고 그대로 있어.”“네.”최수빈은 휴대폰을 꽉 쥔 채, 스피커 쪽에 귀를 바짝 댔다.옆에 있던 남자들은 그녀가 어디론가 연락하는 걸 보자 표정이 더 험악해졌다.“전화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오늘 너희 둘 다 여기서 못 나가.”그러더니 그중 한 남자가 손을 뻗어 최수빈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최수빈은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피했다.“제 친구가 곧 올 거예요.”“친구? 그래. 어느 누가 감히 내 일에 끼어드는지 보자고.”선두에 있던 남자가 피식 냉소하며 손을 뻗어 최수빈의 팔을 잡으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송미연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수빈 앞을 가로막고 남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너희... 수빈이 건드리지 마! 더 오면... 경찰 부를 거야!”술에 잔뜩 취해 발음도 뭉개지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수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은 본능처럼 남아 있었다.그 모습을 본 남자들은 오히려 비웃음을 터뜨렸다.앞에 있던
Read more

제1220화

최수빈은 그를 올려다봤다. 마음속이 복잡한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밀려오던 감정이 다시 한꺼번에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주민혁이 정말 올 줄은 몰랐었다. 더구나 이렇게 대놓고 자신들을 감싸고 나설 줄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었다.이런 일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까마득히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는 동안, 최수빈은 문득 생각했다.‘이 사람, 정말 많이 변했네.’오해를 겪고 서로 엇갈리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애써 감정을 감추고 재는 태도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주민혁은 자신의 감정도, 태도도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민혁 씨...”그러자 주민혁이 최수빈을 바라봤다.“괜찮아?”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그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주민혁은 곧장 시선을 돌려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저 사람들 데리고 나가. 경찰에 넘기고 신원도 전부 확인해요. 다시는 이 도시에서 저 얼굴들이 보이지 않게 처리해.”“알겠습니다, 대표님.”경호원들은 곧바로 앞으로 나서서 남자들을 거칠게 제압했다. 그러고는 그들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애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끌고 나갔다.비명과 구차하게 사정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바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옆에 있던 경호원이 송미연을 부축한 채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대표님, 송미연 씨는 술에 많이 취한 데다 넘어지면서 조금 긁힌 정도입니다. 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병원으로 모실까요?”주민혁은 의식 없이 늘어진 송미연을 한번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아니. 우선 두 사람 모두 수빈이네 집으로 데려다줘. 그리고 개인 주치의 불러서 상태 한번 보게 해. 그리고 육 대표님한테도 연락해서 미연 씨가 수빈이네 집에 있다고 전해. 괜히 걱정하지 않도록.”“알겠습니다.”경호원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육민성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렇게 송미연은 경호원들에게 맡겨진 채 육민성이 오기를 기다리게 됐다.최수빈은 오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