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331 - Chapter 1340

1406 Chapters

제1331화

“당연하지.”최수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시후의 얼굴에 남은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할머니도 마음속으로는 널 아끼고 있어. 다만 아직 마음이 정리가 안 된 것뿐이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샤워를 마친 뒤, 최수빈은 주시후의 머리를 말려주고는 아이를 데리고 율이의 방으로 향했다.율이는 카펫에 엎드려 오목알을 만지작거리다가 주시후가 들어오는 걸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뛰며 달려왔다. 손에는 검은 돌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시후야, 우리 오목 두자!”율이의 목소리는 맑고 또랑또랑했다.주시후는 환하게 웃는 율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마음을 짓누르던 먹구름이 조금은 걷히는 걸 느꼈다.그래도 아직은 어딘가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고개를 끄덕인 뒤, 주시후는 천천히 카펫에 앉았다. 손에 쥔 돌을 만지작거리면서도 좀처럼 둘 생각을 못 했다.그러나 율이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판을 놓으며 중얼거렸다.“너 예전에 오목 진짜 잘 뒀잖아. 맨날 나 이겼었는데.”그러다 고개를 들어 주시후를 바라봤는데 작은 얼굴에는 진지한 기색이 가득했다.“사실 넌 원래부터 우수한 사람이었어. 그냥 잠깐 길을 잘못 든 것뿐이지. 아빠가 그랬거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데 고치면 된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랑 엄마가 너 버리는 일은 절대 없어.”율이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한 순간, 주시후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하지만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쥐고 있던 돌을 조심스럽게 판 위에 내려놓았다....한편, 서재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최수빈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들고 들어갔다. 책상 앞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주민혁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아직도 일해요?”최수빈은 컵을 그의 옆에 내려놓으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오늘 시후가 너무 긴장했더라고요. 밥도 거의 못 먹고... 보는 내가 다 안쓰러웠어요.”주민혁은 서류를 내려놓은 뒤,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눈에 담겨 있던 피로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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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2화

“그냥 평범하게 살게 해주면 돼. 학교도 보내고 옳고 그른 건 가르쳐주고... 예전처럼.”주민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출생의 비밀에 대한 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좀 더 크면 자세히 말해주면 돼. 중요한 건 주씨 가문이 자기 집이라는 걸, 우리가 자기 가족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최수빈의 마음이 스르르 내려앉았다.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건, 주민혁이 심종연 때문에 주시후를 껄끄럽게 여길까 하는 부분이었다.그런데 이렇게 말해주니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자 촛불로 가득한 공간이 한층 더 환해진 것만 같았다.식사를 마친 뒤, 주민혁은 최수빈의 손을 잡고 테라스로 나갔다.밤바람이 스치며 살짝 서늘한 기운을 남겼다.최수빈이 막 말을 꺼내려던 순간, 밤하늘에서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금빛과 붉은빛이 어우러져 하늘을 환하게 밝히고 이어서 수많은 불꽃들이 연달아 피어났다.최수빈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넋을 잃은 듯 바라봤다.그때, 주민혁이 뒤에서 최수빈을 끌어안더니 그녀의 목덜미에 턱을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일은 내가 잘못했어. 혼자 다 짊어지려고만 했지. 널 뒤에 두고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정작 네가 힘든지, 괜찮은지...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고. 내가 널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어.”그는 팔에 힘을 주어 최수빈을 더 꼭 끌어안았다.“오해도, 엇갈림도... 결국 네가 다 감당하게 만들었지. 최수빈, 앞으로는 절대 너 혼자 두지 않을게. 시후를 키우는 일도, 주씨 가문에서 벌어질 일들도... 전부 같이 감당하자.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봐.”그는 속죄하고 싶었다.최수빈은 가슴이 미어졌으나 천천히 말했다.“이제라도 그렇게 생각해 줘서 다행이에요.”...다음 날, 천공 연구소로 향한 최수빈은 도착하자마자 육민성과 송미연에게 불려 갔다.두 사람은 이미 자리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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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3화

그때, 최수빈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공손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최수빈 씨, 긴급회의 소집입니다. 07 전투기 후속 프로젝트 관련 사안이라 즉시 연구개발센터로 와주셔야 합니다.”전화를 끊은 최수빈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성과 송미연을 바라봤다.“연구개발센터 쪽에 급한 일이 생겼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송미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침 천공 그룹 국제 협력 미팅도 그쪽에서 잡혀 있어. 우리랑 같이 가자.”육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걸쳐둔 외투를 집어 들었다.그렇게 세 사람은 서둘러 천공을 빠져나왔다....차 안.최수빈은 창가에 기대앉은 채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차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조금 전 통화를 나눈 직원의 목소리가 계속 귀에 맴돈 것이었다. 불안한 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07 전투기 프로젝트, 문제 생긴 거 아니야?”옆에서 송미연이 묻자 최수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가능성이 커. 심종연은 잡혔지만 그 뒤에 붙어 있던 해외 세력은 아직 다 정리된 게 아니니까. 남은 잔당이 뭔가 일을 벌였을 수도 있어.”그 말이 끝나자마자 동행하던 비서가 암호화된 문서를 건넸다.곧 빠르게 넘겨보며 내용을 훑던 최수빈은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공식 통보야. 07 전투기 후속 개발... 당분간 전면 중단이래. 핵심 데이터 유출 가능성이 있어서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는 진행 못 한다네.”송미연의 미간도 깊게 찌푸려졌다.그건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프로젝트였다.그런데 이렇게 멈춰 서게 되면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었다.그때, 육민성이 입을 열었다. 차 안의 정적을 깨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천공 쪽 일은 멈출 수 없어. 국제 협력 속도도 더 끌어올려야 해. 우리가 주도권을 쥐어야 이 판에서 밀리지 않아.”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맞지. 이럴 때일수록 흔들리면 끝이야.’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렸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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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4화

“끝까지 파헤쳐.”육민성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화물차를 훑어보았다.“차량 소속부터 확인하고 운전사 신상도 전부 조사해. 이게 단순 사고인지, 아니면 누가 일부러 벌인 일인지... 확실하게 밝혀.”“알겠습니다.”비서는 지체할 틈도 없이 휴대폰을 꺼내 사람들을 투입했다.그때, 멀리서 급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길가에 서서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자 최수빈의 마음속 불안은 점점 더 짙어졌다.한편, 막 일을 마친 주민혁은 비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최수빈이 탄 차량이 추돌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은 확 굳어졌다.그렇게 곧장 주민혁은 의자에 걸쳐둔 외투를 낚아채듯 집어 들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병원.최수빈은 주민혁의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방금 사고를 겪은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잠겨 있었다.하지만 익숙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수화기 너머로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렸다. 병원으로 달려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최수빈은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며 가볍게 웃었다.“괜찮아요. 그냥 좀 놀랐을 뿐이에요. 긁힌 데도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운전 조심해요.”“안 돼. 무조건 정밀 검사 받아.”주민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이미 진 박사님한테 연락해서 최고의 의료진을 붙여놨어. 병원에서 기다려. 금방 도착할 거야.”전화를 끊은 뒤, 최수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병실 문 앞에 서 있던 육민성과 송미연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최수빈과 눈이 마주치자 송미연이 먼저 다가왔다.“아까 부딪힐 때... 그 충격 진짜 심했잖아. 난 네가 다친 줄 알았어.”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컵을 들어 최수빈에게 건넸다.“그냥 관성 때문에 쏠린 거야. 반응이 빨라서 다행이었지.”최수빈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육민성을 바라봤다.“뒤에서 들이받은 화물차 조사해 본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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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5화

예전에는 육민성과 송미연, 두 사람 모두 주민혁을 좋게 보지 않았었다.차갑고 고집 세고 최수빈을 곁에 붙잡아 두고는 겉으로는 호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면서도, 그 뒤에 수없이 많은 상처와 눈물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그런데 지금 저토록 초조해하며 최수빈을 챙기는 모습,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에게 기대고 있는 최수빈의 눈빛을 보니...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감정이라는 건 결국 당사자들만 아는 법이었다.최수빈이 다시 주민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친구인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뿐이었다.검사는 금방 끝났다.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고 가벼운 뇌진탕 증세만 있어 이틀 정도 입원해 경과를 지켜보면 된다는 결과였다.그제야 한숨을 돌린 주민혁은 직접 최수빈을 병실에 데려다주고 이불까지 꼼꼼하게 덮어준 뒤에야 돌아섰다.그러고는 문가에 서 있던 육민성과 송미연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두분... 오늘 고마웠습니다.”육민성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별거 아니에요.”“수빈이 옆에 있어요. 저희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송미연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푹 쉬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최수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이 병실을 나서는 걸 다 지켜본 뒤에야 시선을 돌렸다.주민혁은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한편.육민성과 송미연은 나란히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복도에는 사람들이 오가며 여러 소리가 뒤섞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진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먼저 입을 연 건 육민성이었다. 말끝에 묘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그때 그렇게까지 상처를 줬는데... 난 수빈이가 평생 안 받아줄 줄 알았거든.”송미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뭐, 그럴 수도 있죠. 애초에 감정이라는 건... 딱 맞아떨어지는 이유 같은 게 없잖아요. 오해도 풀렸고 주민혁 씨도 먼저 고개 숙였고, 무엇보다 수빈이의 마음에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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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6화

송미연은 혐오감을 감추지 못한 채 한 걸음 물러나 태영숙의 손길을 피했다.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돈 없어요.”“돈이 없어? 누굴 속이려고!”태영숙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목소리까지 높아지자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쏠렸다.“육민성 대표랑 같이 지내면서 돈이 없다고? 송미연, 똑똑히 들어. 오늘 돈 안 주면 나 여기서 한 발짝도 안 움직여! 여기서 난리 칠 거라고. 네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년이라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때까지!”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모습에 송미연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리고 막 받아치려던 순간, 곁에 있던 육민성이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송미연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그의 얼굴은 무서울 만큼 차가웠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곧장 송미연의 외할머니, 태영숙을 향했다.“자중하시죠. 미연 씨에게 돈이 있든 없든 어르신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여기서 계속 소란 피우면, 시큐리티 불러서 내보낼 거예요.”태영숙은 육민성의 기세에 흠칫 놀라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악을 썼다.“네가 뭔데? 내가 내 외손녀랑 얘기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제가 이 사람 남편입니다.”육민성은 송미연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제 아내의 일은 곧 제 일이죠. 계속 억지 부리시면 다음에는 제 변호사를 상대하게 될 겁니다.”그 말에 태영숙의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육민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그리고 ‘변호사’라는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태영숙은 육민성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더니 결국 더는 행패를 부리지 못했다. 그저 송미연을 매섭게 노려본 뒤, 욕을 중얼거리며 돌아서서 가버릴 뿐이었다.태영숙의 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잔뜩 굳어 있던 송미연의 몸이 천천히 풀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육민성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고마워하는 기색이 옅게 담겨 있었다.“오늘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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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7화

고급 사립 초등학교.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은 신이 난 새떼처럼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하지만 주시후만은 묵직한 책가방을 멘 채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푹 숙인 고개는 거의 옷깃 속에 파묻힐 듯했다.주씨 가문으로 돌아오고 최수빈에 의해 다시 이 학교에 다니게 된 뒤로 주시후는 친구들 사이에서 ‘범죄자의 아들’이 되어 있었다.예전처럼 곁을 맴돌며 비위를 맞추던 아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수군거림과 노골적인 따돌림뿐이었다.주시후는 책가방 끈을 꽉 움켜쥐었다. 그저 이 지긋지긋한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그런데 본관 뒤쪽 모퉁이를 막 돌아선 순간, 키 큰 남학생 몇 명이 주시후의 앞을 가로막았다.앞장선 아이는 반에서 유명한, 일명 짱이라 불리는 조백현이였다. 아버지가 학교 이사라는 걸 믿고 평소에도 제멋대로 굴던 아이였다.사실 조백현은 오래전부터 주시후가 눈에 거슬렸었다. 다만 그동안은 심종연이 뒤에 있었기에 감히 건드리지 못했을 뿐이었다.‘이제야 기회가 왔네.’조백현은 양손을 허리에 얹고 위에서 내려다보듯 주시후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어이, 이게 누구야? 심씨 가문의 꼬마 매국노 아니야? 뭐야? 너희 아빠 감옥 갔는데도 학교는 나오네?”옆에 있던 남자아이들이 덩달아 키득거렸다.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바늘처럼 주시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주시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지며 책가방 끈을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뒷걸음질치면서도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그 사람... 내 아빠 아니야.”“아니긴 뭐가 아니야?”조백현이 갑자기 주시후를 세게 밀쳤다.그러자 주시후는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다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책가방이 옆으로 떨어지고 교과서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하지만 조백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 다가와 흩어진 교과서들을 밟으려 발을 드는 것이었다.“네 아빠가 매국노면 너도 똑같아. 너도 아무도 거둬 주지 않는 버려진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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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8화

조백현은 눈알을 굴리더니 문득 바닥에 흩어진 교과서들을 발견했다. 그래서 허리를 숙여 책 한 권을 집어 들더니 그대로 찢으려 했다.“찢지 마!”주시후가 다급하게 외치며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교과서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그러나 조백현은 아이의 배를 걷어찼다.그 한 발길질에 완전히 폭발하고만 율이는 더 이상 자세고 뭐고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대로 달려들어 조백현을 할퀴고 때렸다.얼굴에 금세 붉은 자국이 생기자 조백현은 아프다며 악을 써댔다. 옆에 있던 남자아이들도 당황해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율이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바람에 오히려 뒷걸음질만 칠 뿐이었다.순식간에 모퉁이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울음소리, 욕설, 비명이 뒤섞였고 결국 지나가던 선생님까지 달려왔다.그 광경에 얼굴이 새파래진 선생님은 황급히 달려와 뒤엉켜 있던 율이와 조백현을 떼어놓았다.상처 자국 남은 얼굴에 옷차림도 엉망이 된 채, 조백현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엉엉 울었다.율이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작은 얼굴에는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그런데도 여전히 목을 빳빳이 세우고 조백현을 노려보는 것이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주시후는 옆에 서서 겁에 질린 얼굴로 율이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있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선생님은 눈앞의 난장판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릴 만큼 화가 나 날카롭게 물었다.그러자 조백현은 더 크게 울며 율이와 주시후를 가리키고는 훌쩍거리며 고자질했다.“선생님! 쟤들이 절 때렸어요! 주시후가 매국노의 아들이라서 제가 몇 마디 한 것뿐인데, 율이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저를 때렸어요!”이에 선생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그녀 역시 주시후의 사정과 조백현의 집안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앞뒤 사정은 묻지도 않은 채 곧장 율이와 주시후를 향해 꾸짖었다.“무슨 일이 있었든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야. 너희 둘, 부모님 학교로 오시라고 해!”...교무실.조백현의 어머니 하경선은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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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9화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의 가정 배경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그런데 눈앞에 주민혁이 나타나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입술을 한번 꾹 다문 뒤, 급히 앞으로 다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두 분 오셨군요. 이 일은...”하지만 주민혁은 선생님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율이와 주시후에게 시선이 꽂혀 있었다.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에 먼지가 묻은 딸의 모습을 보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이어 눈가가 붉어진 주시후와 아직 피가 배어 나오는 무릎 상처까지 보자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는 최수빈의 손을 놓고 천천히 율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몸을 낮춰 쪼그려 앉은 뒤,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빠한테 말해 봐. 무슨 일이야?”주민혁을 보자마자 율이는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아빠... 조백현이 시후를 괴롭혔어요. 매국노의 아들이라고 욕하고, 밀치고, 책도 밟았어요. 그래서 내가 막았는데, 나까지 때리려고 해서... 나도 때렸어요.”주시후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저... 먼저 밀친 건 저쪽이에요. 저를 욕하기도 했고요...”막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주시후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말을 다 듣고 나자 주민혁의 눈빛은 서서히 식어갔다.그는 몸을 일으켜 하경선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백현이 어머님, 맞으시죠?”하경선은 그의 시선에 괜히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억지로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주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애가 말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이렇게 때리는 건 아니죠! 우리 애 얼굴 좀 보세요. 이게 지금 사람 얼굴이에요?”하지만 주민혁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향했다.“학교 교칙에, 학생이 동급생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이 허용됩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반격은 정당방위로 인정되나요?”선생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입을 떼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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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0화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이 허둥지둥 달려왔다.그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민혁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주 대표님, 어쩐 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이번 일은 저희 학교의 관리 소홀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엄중히 처리하겠습니다!”교장은 곧장 조백현을 바라보더니 표정을 굳히고 매섭게 꾸짖었다.“조백현! 감히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히고 친구 가족까지 모욕해? 내일부터 등교 정지다. 집에서 네 잘못이 뭔지 똑똑히 반성해!”하경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뭐라 말하려 했지만 교장의 눈짓 하나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미 판세가 기울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여기서 더 난리를 피워 봤자 조씨 가문만 더 우스운 꼴이 될 뿐이었다.주민혁은 더 이상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율이와 주시후의 곁으로 다가가 두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최수빈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보였다.“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주민혁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누가 너희를 괴롭히면 겁먹지 마. 오늘 둘 다 아주 잘했어.”교무실 안에 있던 하경선과 조백현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선생님은 옆에 서서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했다.주민혁은 담담히 고개만 끄덕인 뒤, 최수빈의 손을 잡고 두 아이와 함께 천천히 교무실을 나섰다.학교 정문을 나서자 율이가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바라보았다.“아빠, 아까 진짜 멋있었어요.”주민혁은 고개를 숙여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눈매에는 어느새 차가운 기색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주시후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남아 있던 두려움과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밤, 신혼집.두 아이는 손을 꼭 잡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곧 서재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자잘한 소리가 들려왔다.거실에는 주민혁과 최수빈만 마주 선 채 남아 있었다.그러다 주민혁이 먼저 다정하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최수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여기로 다시 들어와, 아무것도 변한 게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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