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551 - Chapter 1560

1586 Chapters

제1551화

강지안은 이제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걸 알았다.키가 훤칠한 남자 몇 명이 사방에서 다가와 순식간에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움직임은 빠르고 질서정연했다.그들은 더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손한 말투였지만 거절할 틈은 없었다.“강지안 아가씨, 실례하겠습니다만 저희와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 승객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렸다.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쏟아지고 낮은 수군거림이 번지기 시작했다.공항 보안요원들도 이쪽의 낌새를 눈치채고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남자들에게서 은근히 풍기는 위압감과 그들이 내민 신분증을 확인하자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강지안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공항에서 이렇게 막힘없이 움직일 수 있고 이런 인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그녀가 탑승하려는 바로 이 순간을 정확히 노려 막아설 수 있는 사람, 장성훈 말고는 없었다.강지안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그러자 앞에 선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아가씨,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함께 가주시죠.”“안 가요.”강지안은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 그대로 서 있었다.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익숙하고도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그런데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녀의 심장 위를 밟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강지안은 몸이 순간 굳더니 숨마저 잠시 멎는 것 같았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 바로 그녀가 10년을 사랑했고 10년을 바라봤으며 동시에 10년 내내 자신을 밀어내기만 했던 사람이 온 것이었다.장성훈이 그녀의 뒤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강지안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랜만에 본 그는 달라진 게 없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여전히 검은색 캐주얼 차림에 곧게 선 자세는 소나무처럼 반듯했으며 또렷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매도 그대로였다.하지만 한때 늘 온화하고 공손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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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2화

“네가 뭔데!”강지안은 결국 완전히 폭발하고 말았다.10년 동안 쌓아왔던 서운함, 억울함, 실망이 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뼛속까지 사랑했지만 매번 자신을 밀어냈던 남자, 그런 그가 이제 와 이렇게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분노와 서러움이 뒤엉켜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강지안은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온 힘을 다해 장성훈의 뺨을 후려쳤다.짝!날카로운 소리가 소란스럽던 공항 로비 안에 유난히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뚝 끊기며 시간마저 멈춘 것 같았다.장성훈을 따라온 부하들은 전부 고개를 숙인 채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하나같이 얼어붙어 감히 이쪽을 곁눈질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그들은 오랫동안 장성훈의 곁에 있어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했지만, 결단을 내릴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처리 방식은 냉혹하고 날카로웠으며 업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몸을 사릴 만큼 두려운 존재였다.누군가에게 뺨을 맞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굴었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강지안이 사람들 앞에서 그의 뺨을 때린 것이다.그런데도 장성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피하지도, 화내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그의 옆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떠올랐다. 붉게 달아오른 뺨이 눈에 띄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강지안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분노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오직 애틋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이었다.뺨을 때린 뒤, 강지안의 손끝은 가늘게 떨렸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은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그녀는 장성훈의 얼굴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장성훈, 많이 컸네. 전에 넌 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잖아. 단 한 번도 거역한 적 없었지. 내가 동쪽으로 가라면 동쪽으로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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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3화

강지안은 차갑게 시선을 들어 민채영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에 온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했다.그녀는 애초에 민채영과 길게 말 섞을 생각조차 없었기에 그저 입술을 살짝 열고 무심한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비웃음과 카리스마가 서려 있었다.“내 경호원과 내가 이야기하는데, 경호원의 약혼녀가 뭔데 끼어들어 소리를 치죠?”가볍게 던진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민채영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민채영의 얼굴이 새파래졌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다. 분을 이기지 못해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그녀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 장성훈과 자신의 관계를 들먹이는 일이었다.그리고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강지안이 언제나 저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었다.마치 민채영은 영원히 장성훈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일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이봐요!”민채영은 화가 치밀어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며 강지안의 코에 대고 손가락질을 해댔다.“강지안 씨, 너무 잘난 척하지 마요! 성훈 씨는 이제 내 약혼자예요. 곧 나랑 결혼할 사람이라고요! 지안 씨는 이미 과거의 사람의 됐어요. 그런데 지안 씨가 뭔데 아직도 그렇게 당당해요? 오늘 내가 성훈 씨 대신 지안 씨 버릇 좀 고쳐줄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채영은 분노에 휩쓸려 손을 번쩍 들었다.조금 전 강지안이 날린 뺨을 그대로 되돌려주려는 듯, 곧장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동작은 빠르고 거칠었다. 잔뜩 치민 분노가 그대로 실려 있어 주변 사람들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그러나 강지안은 원자리에 그대로 선 채,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그저 차가운 눈으로 민채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어려 있었다.그렇게 민채영의 손이 강지안의 뺨에 닿기 직전, 갑자기 힘 있는 큰 손 하나가 옆에서 뻗어 나와 그녀의 손목을 사정없이 붙잡았다.그 힘이 얼마나 센지 뼈가 으스러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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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4화

아프리카는 너무 위험했기에 장성훈은 감히 그런 도박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잃을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줄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장성훈은 천천히 눈을 감더니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고는 강지안이 거부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닿으려 했다.하지만 강지안이 거칠게 몸을 피했다.“손대지 마.”강지안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눈빛에는 거부하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러자 장성훈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손을 거두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를 모셔 가.”이번에는 아무도 망설이지 못했다.부하 두 명이 앞으로 나와 공손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태도로 강지안의 양옆에 섰다.강지안은 눈앞에 있는, 무서울 만큼 고집스러운 남자를 바라보았다.또 그 눈 안에 담긴, 자신이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집착과 애정을 바라보았다.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통증이 번져 나갔다.그 아픔이 모든 이성을 집어삼키자 그녀는 깨달았다.오늘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별장 안.현관의 불이 켜지는 순간, 공기부터 얼어붙었다.온몸에 차가운 기운을 두른 채 문가에 선 장성훈은 강지안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억지로 데려온 것이었다.그녀에게선 아직 바깥의 찬 밤공기가 느껴졌다.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타고난 고고함만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강씨 가문의 아가씨답게, 억지로 끌려온 처지에서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습이었다.얼마 후, 거실에서 걸어 나온 민채영은 저도 모르게 손끝이 바짝 굳었다.그녀는 장성훈을 밤새 기다렸다.그런데 기다림 끝에 돌아온 것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장성훈이었다.“성훈 씨.”민채영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팽팽하게 날이 서 있었다.“누굴 데리고 온 거야?”장성훈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강지안 아가씨야. 당분간 여기서 지낼 거고.”“여기서 지낸다고?”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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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5화

상대는 남자를 빼앗으러 온 게 아니라 억지로 끌려온 것이었다.민채영이 날을 세워봤자, 그 모든 말은 솜방망이를 때리는 것처럼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강지안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었다. 조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비위를 맞추는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서 있었다.고고하고, 멀고, 벼랑 끝까지 몰려도 절대 고개 숙이지 않을 사람처럼 말이다.“이봐요...”말문이 막힌 민채영은 결국 장성훈을 바라보았다. 눈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성훈 씨, 들었지? 저 여자도 여기 있기 싫다잖아. 그런데 왜 굳이 우리 집까지 데려온 거야?”장성훈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보낼 수 없어.”“왜?”민채영의 목소리가 떨렸다.“저 여자가 죽든 살든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성훈 씨, 여긴 우리 집이야.”강지안은 옆에 선 채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차갑게 지켜보았다.끼어들 생각도 없었고, 설명할 마음도 없이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자신은 억지로 끌려왔는데 정작 이 집의 주인이라는 여자는 자신에게만 기세등등하게 굴고, 진짜로 자신을 데려온 사람에게는 제대로 화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강지안이 다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평온했다.“다시 말할게요. 난 여기 있고 싶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나를 내보내요. 그럴 능력도 없으면 나한테 와서 귀찮게 굴지 말고요.”그녀는 자존심이 높았기에 남의 사이를 망치는 사람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모욕당할 생각도 없었다.이렇게 강지안은 소리치지도, 싸우지도, 약한 척하는 것 하나 없이 단 한마디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이에 민채영은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화내고 싶었다. 자신이 안주인임을 확인시키고 싶었고 강지안을 당장 내쫓고 싶었다.그러나 정말로 제 마음대로 사람을 내보낼 용기는 없었다. 장성훈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창백하게 굳은 민채영의 얼굴을 바라보던 강지안의 눈가에 희미하게 경멸하는 듯한 기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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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6화

장성훈은 해명도, 위로도 없이 그저 급하게 한마디만 남긴 뒤 곧장 서재로 향했다. 민채영의 붉어진 눈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서재 문이 조용히 닫히며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갈라졌다.그렇게 거실에는 민채영 혼자만 남았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아 손끝부터 싸늘하게 식어 갔다.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더니 끝내 참았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하지만 쫓아가 따질 용기는 없었다.장성훈의 결정을 거스를 수도 없었고 그의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며 소란을 피울 수도 없었다.그녀는 늘 이렇게 조심하고, 참아 내고, 모든 서러움을 혼자 삼키며 살아왔던 것이다.장성훈을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 사랑해서 어느새 자기 목소리조차 잃어버린 것이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강지안은 이곳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 했고 장성훈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했다.민채영이 들은 것 중, 그보다 더 분명하고 마음을 흔드는 말은 없었다.‘강지안만 떠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난 다시 성훈 씨의 당당한 약혼녀가 되는 거고 이 집도 다시 오롯이 내 것이 될 거야.’그 순간, 대담한 생각 하나가 민채영의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강지안을 도와 내보내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떠나보내는 거야.’장성훈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일 테고 그가 화를 낸다 해도 돌이킬 방법은 없을 터였다.민채영은 손등으로 얼굴에 있던 눈물을 닦아 냈다. 눈동자에 어려 있던 나약함이 조금씩 사라졌다.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속 불안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천천히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고요한 2층 복도, 서쪽 손님방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창밖에서 스며든 달빛만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강지안의 차갑게 굳은 실루엣을 비추고 있었다.민채영은 문 앞에 서서 몇 초간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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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7화

민채영은 강지안이 이렇게 선뜻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지라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기쁨이 치밀어 올랐고, 그 감정이 모든 두려움을 덮어 버렸다.그녀는 얼른 다가가 강지안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날 따라와요.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면 현관 쪽 사람들을 피할 수 있어요. 절대 소리 내면 안 돼요. 들키면 우리 둘 다 못 나가니까.”강지안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앞뒤로 조심스럽게 손님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발소리를 죽인 채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복도의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다. 사방이 어두운 덕분에 두 사람의 모습도 자연스레 어둠 속에 묻혔다.민채영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강지안만 내보내면 돼. 강지안만 떠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성훈 씨가 화를 낸다 해도, 정말 나한테까지 어떻게 하지는 못하겠지. 난 성훈 씨의 약혼녀니까 결국엔 용서해줄 거야.’비상계단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다행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계단을 따라 한 층씩 내려갔다. 공기마저 숨을 죽인 듯 팽팽했다.강지안은 민채영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었다.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지만 눈빛 깊은 곳에서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스쳐 지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1층 뒷문 앞에 도착했다.민채영이 조심스레 뒷문을 밀었다.깊은 밤, 사방은 고요했고 멀지 않은 곳에 차고 입구가 희미하게 보였다.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강지안을 돌아보고 낮게 속삭였다.“빨리요. 차고로 가요. 차는 안에 있어요. 바로 공항까지 데려다줄게요.”이윽고 강지안이 발을 내디디려던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 몇 명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그들은 일제히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채영 아가씨, 지안 아가씨. 대표님의 지시입니다. 지안 아가씨는 이곳을 나갈 수 없으니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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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8화

장성훈이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의 대화는 아마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을 것이었다.민채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공포가 밀물처럼 몰려와 겨우 붙잡고 있던 용기마저 순식간에 집어삼켰다.분노로 굳어진 장성훈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는 입술이 떨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성훈 씨...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장성훈이 한 걸음씩 다가왔다.“민채영, 참 간도 크네. 이제 내 말은 한마디도 귀에 안 들어온다는 거야?”그는 분명 말했었다. 강지안은 당분간 떠날 수 없고 상황이 복잡하다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방에 가서 쉬라고도 했었다.그런데 민채영은 보란 듯이 그의 말을 어긴 것이다. 몰래 강지안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고 심지어 해외로 보내려 했다.그의 말도, 그의 계획도, 그의 사정도 전부 무시한 채 말이다.“난 그냥... 그냥 저 사람을 보내 주고 싶었을 뿐이야...”민채영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억울함과 두려움이 뒤섞여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성훈 씨, 저 사람도 여기 있고 싶어 하지 않잖아. 외국으로 가고 싶다잖아. 난 그냥 도와준 것뿐이야. 난 잘못한 거 없어...”“잘못한 게 없다고?”장성훈이 차갑게 웃었다.“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이 일 하나로 모든 게 틀어질 수도 있다는 거 알아? 아가씨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는 건 알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감정 하나만 믿고 멋대로 굴었잖아.”그는 한 번도 민채영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평소의 장성훈은 그녀에게 늘 부드럽고 관대했다. 가끔 그녀가 작은 투정을 부려도 인내심 있게 달래 주곤 했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민채영은 선을 넘었고 장성훈이 세워 둔 모든 계획을 흔들어 놓았다.그의 호통에 민채영은 온몸을 떨며 더 거세게 눈물을 흘렸다. 억울함이 가슴을 꽉 막는 것만 같았다.“나는 그냥 저 사람이 우리 집에 있는 게 싫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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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9화

서재의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이 비추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복잡한 마음뿐이었다.손님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안에 갇힌 것은 한 사람이 자유를 향해 품은 갈망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차가운 밤공기 속에 홀로 서 있었다.텅 빈 집을 지키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관계를 붙잡은 채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말이다....강지안이 이 손님방으로 다시 끌려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수갑도 없고 쇠사슬도 없었으나 방문 안팎에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고 창문은 특수 방탄유리였다. 휴대폰은 이미 빼앗긴 지 오래였으며 살갗을 그을 만한 날카로운 물건 하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장성훈은 가장 점잖고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곳에 갇힌 새처럼 그녀를 새장 속에 가둬 두었다.이 방에 들어온 날부터 강지안은 단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배를 채웠다고 할 만한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았다.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도우미들이 가져온 음식은 몇 번이고 바뀌었다.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은 보기에도 좋았고 적당히 따뜻했다. 하지만 강지안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은 매번 탁자 위에서 차갑게 식어 갔다.도우미들이 달래고, 부탁하고, 애원하듯 설득해도 그녀의 대답은 늘 차가웠다.“치워요. 안 먹을 거니까.”그녀가 원하는 건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이곳을 떠나는 것, 해외로 나가는 것, 바로 그뿐이었다.민채영은 두 번 정도 찾아왔다.처음에는 직접 끓였다는 죽을 들고 와, 부드럽고 순진한 얼굴로 웃었다. 목소리마저 지나치게 다정했다.“지안 씨, 조금이라도 먹어요. 이렇게 굶다가 몸 상하면 어떡해요? 성훈 씨가 걱정할 거예요.”강지안은 눈꺼풀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다.“내가 죽어도 그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여기서 착한 사람인 척하지 마요.”그러자 민채영이 곧바로 눈시울을 붉혔다. 목소리는 작고 여렸고, 억울하면서도 해롭지 않은 사람처럼 들렸다.“그냥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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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0화

마치 지극히 당연한 일을 말하는 사람처럼 장성훈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세요.”‘굶어 쓰러지면 영양제 주사를 맞히면 된다고? 살아만 있으면 나머지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야?’강지안은 홱 몸을 돌리더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눈이 점점 크게 뜨였다.그 안에는 충격과 허탈함,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장성훈, 지금 뭐라고 했어?”목소리마저 떨렸다.두려워서가 아니라 믿을 수 없어서였다.한때 그녀에게 목숨까지 내줄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람, 십 년 동안 그녀의 뒤를 지키며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경호원...그런 그가 지금 이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굶어 봐야 소용없다고, 쓰러지면 주사를 맞히면 된다고, 어쨌든 당신은 여기 있어야 한다고...“그러니까...”장성훈이 눈을 내리깔고 강지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웠다.“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고요. 억지로 먹이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나갈 생각은 하지 마세요. 버티다 못해 쓰러지면 수액을 맞히고 영양제 주사를 놓을 겁니다. 죽지만 않게 하면 되니까. 아가씨가 버티겠다면, 저도 끝까지 버틸 거예요.”강지안은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가 소름 끼칠 만큼 낯설었다.십 년 동안 함께해 온 시간, 신뢰, 그리고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었다. 장성훈은 진심이었다.정말로 이런 방식으로 강지안을 이곳에 가둬 두려 하고 있었다. 끝까지, 영원처럼, 절대 놓아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미쳤구나...”그녀가 차갑게 얼어붙은 눈빛을 한 채 낮게 중얼거렸다.“장성훈, 넌 정말 미쳤어.”“미치지 않았습니다.”그는 여전히 평온했다.“그냥 아가씨를 보낼 수 없을 뿐이죠.”“왜!”결국 강지안은 끝까지 붙잡고 있던 감정이 무너져 내려 목소리를 높였다.“우린 이미 끝났잖아! 너한텐 약혼녀가 있고 나에겐 내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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