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561 - Chapter 1570

1586 Chapters

제1561화

강지안에게는 아직 최수빈이 있었다.최수빈은 그녀의 얼마 되지 않는 인생에서, 목숨을 걸고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똑똑하고 침착하며 수단도 있었고 무엇보다 최수빈 뒤에 있는 세력은 장성훈조차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최수빈과만 연락이 닿으면 아직 방법은 있었다.그래서 강지안은 남은 힘을 억지로 끌어모아 주변을 살폈다.도우미들은 매일 방을 청소하고 물과 식기를 가져다주고 치웠다. 그녀들과 대화를 오래 나누지는 못했지만 대신 깨끗한 수건, 물컵, 종이와 펜 같은 것들은 남겨 두고 가곤 했다.‘종이와 펜?’강지안의 눈빛이 아주 짧게 빛났다.그녀는 도우미들이 방심한 틈을 타 종이 한 장과 펜을 몰래 챙겼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채,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짜 글을 써 내려갔다.몸이 너무 쇠약해 손이 계속 떨렸지만 글씨는 또렷했다.[장성훈이 나를 감금하고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단식으로 저항하자 영양주사를 맞히려 하네요. 도와줘요. -강지안]그런 다음 종이를 아주 작게 접어 몸에 숨겼다.이제 남은 건 기회였다.그리고 그 기회는 닷새째 날 오후에 찾아왔다.평소 말이 많지 않고 비교적 성실해 보이던 젊은 여자 도우미가 따뜻한 물을 바꾸러 들어왔다.강지안은 그녀가 등을 돌린 순간,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이거... 최수빈 씨에게 전달해줘요. 돈은 줄게요, 아주 많이. 안 도와주면 여기서 죽을 겁니다. 그러면 그쪽도 절대 무사하지 못해요.”눈빛이 너무 날카롭고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며칠째 굶은 사람 같지 않았다.깜짝 놀란 도우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본능적으로 뿌리치려 했지만 강지안이 놓아주지 않았다.“아... 아가씨... 저는 못 해요... 들키면 대표님이 혼내실 거예요...”“안 들켜요.”강지안이 낮게 말했다.“그냥 전달만 해주면 돼요. 그럼 아무 일도 안 생겨요.”그녀는 이 도우미가 겁이 많고 눈치도 보지만, 완전히 악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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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2화

최수빈은 2층 손님방 쪽을 힐끗 바라봤다.‘방법을 생각해야겠어.’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 차가 떠나자 마당은 다시 고요해졌다....2층.강지안은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차갑고 팔다리에 힘이 풀려 있었다.조금 전 아래에서 들린 모든 대화를 그녀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최수빈이 왔다.자신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하지만 그 최수빈조차 문 앞에서 막혀 돌아섰다.장성훈은 강지안에게 남아 있던 유일한 희망까지 잘라냈다.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외부와 연락도 끊고 도망칠 가능성조차 남겨 두지 않았다.강지안은 천천히 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동안 단식하고 저항하고 발버둥을 친 것은 어딘가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가 잠시 미쳤을 뿐일지 모른다고, 언젠가는 놓아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장성훈은 순간적인 집착으로 인해서가 아닌, 진짜로 그녀를 평생 가두려는 것이었다.죽을 때까지, 항복할 때까지, 다시는 저항할 힘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장성훈의 집에서 떠난 뒤, 차 뒷좌석에 앉은 최수빈의 손끝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기사가 백미러로 힐끗 그녀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디로 갈까요?”“주씨 가문으로 가주세요.”최수빈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민혁 씨 쪽으로 바로 가요.”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이 든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하고자 하는 일은 대부분 해냈으나 오늘은 달랐다.장성훈의 집 앞에서, 최수빈은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그대로 막혀 돌아섰다.그 남자는 너무나 단호했고, 너무나 냉정했으며,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누가 와도 소용없다는 듯한 태도였다.최수빈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창백한 얼굴을 한 강지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강지안은 원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절대 꺾이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가 감금된 채로, 세상과 완전히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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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3화

“얼굴도 못 봤어요. 그런데도 상상이 돼요... 그렇게 자존심 강한 사람이 남의 집에 강제로 갇혀서 굶으면서까지 버티는데도, 장성훈 씨는 영양주사까지 맞히겠다고 했대요. 어떻게든 살려서, 어떻게든 거기 묶어두겠다고...”말끝이 흐려졌다. 목이 꽉 막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이에 주민혁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강지안이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 함께 어울리던 시절에도 그녀는 언제나 가장 눈에 띄고 가장 구속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다.하고 싶은 건 반드시 했고 가고 싶은 곳은 반드시 갔다.국경 없는 의사회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이었다.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온 진짜 목표였다.그런 그녀의 날개를, 장성훈은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로 꺾고 있었다.사람을 가두고, 선택권을 빼앗고, 꿈까지 잘라내면서 말이다.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냥 파괴였다.“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요?”최수빈이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바라봤다. 눈빛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지안 씨는 그냥 해외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뿐이잖아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자기 인생을 살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성훈 씨는 약혼녀 민채영 씨도 있고 자기 삶도 있잖아요. 왜 굳이 지안 씨를 놓아주질 않는 건데요?”주민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아는 장성훈 씨는... 그렇게 무작정 감정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어. 이렇게까지 강하게 붙잡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최수빈이 즉시 반박했다.“이유가 뭐가 됐든 감금해도 될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아요. 지안 씨는 성인이에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할 권리가 있어요. 위험이 있든 없든, 그건 지안 씨 본인이 선택할 일이지, 성훈 씨가 뭔데 그걸 대신 결정해요?”주민혁은 변명하려는 듯한 의도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그 사람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야. 지안이를 구하려면 무조건 힘으로 부딪히면 안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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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화

“무슨 이유가 있든, 감금이라는 방식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어.”최수빈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목소리는 옷감에 파묻혀 둔탁하게 울렸다.“더 늦으면... 지안 씨가 못 버틸까 봐 무서워요. 지안 씨는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세서... 진짜로 자기 몸까지 망가뜨릴 사람이라고요. 굶어 죽을지도 몰라요.”“알아.”주민혁이 그녀의 머리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그래서 내일, 그 사람한테 전부 다 분명하게 말할 거야.”그날 밤은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주민혁은 간단히 정리만 하고 바로 장성훈의 별장으로 향했다.미리 연락은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찾아가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차가 별장 앞에 멈추자 경호원이 곧장 앞으로 나섰다.“지금 대표님께서는 바쁘셔서 손님을 뵐 수 없습니다.”정중한 말투였지만 태도는 단호했다. 그러자 주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장성훈 씨에게 전해요. 주민혁이 왔다고. 지안이와 관련된 일로 왔습니다. 나를 만나게 될 거예요.”경호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왔다.“들어오십시오.”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진 채였다. 주민혁은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넓고 고급스러운 거실이었지만 이상할 만큼 온기가 없었다. 규칙만 있고 숨이 막히는 공기만 가득했다.소파에 앉아 있던 민채영이 그를 보자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주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곧장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주민혁은 힐끗 스치듯 보고는 무표정하게 말했다.“장성훈 씨 찾으러 왔습니다.”“성... 성훈 씨는 서재에 있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필요 없습니다.”그는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고 곧장 서재 쪽으로 걸어갔다.민채영은 그 자리에 선 채 얼굴빛이 살짝 창백해진 채로 손끝을 가만히 움켜쥐었다.주민혁이 장성훈을 찾아왔다. 그것도 강지안의 일로.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분명 강지안 때문에 온 것이었다.‘또 강지안이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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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5화

“그건 성훈 씨의 일이기도 하고 지안이의 일이기도 합니다.”주민혁이 서두르지 않고 말했다.“성훈 씨는 지안이를 보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게 지안이가 원하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있습니까? 지안이는 해외로 나가서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 했어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꿈이죠. 그런데 성훈 씨는 한마디로 그 모든 노력을 다 부숴버렸어요. 지안이를 이 화려한 새장에 가둬 두고 평생 성훈 씨의 통제 안에서 살게 만들었죠. 성훈 씨,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주민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롭게 박혔다.“성훈 씨가 지안이를 곁에 묶어둘수록, 지안이는 감사해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을 겁니다. 점점 더 성훈 씨를 미워하게 될 뿐이죠, 뼛속까지. 결국 이대로라면, 지안이는 성훈 씨의 이름만 떠올려도 두려움과 숨 막힘만 느끼게 될 겁니다.”서재 안은 완전히 정적에 잠겼다.장성훈은 고개를 숙인 채 긴 속눈썹 아래로 눈빛을 감췄다.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알고 있습니다.”목소리가 낮고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처음으로 장성훈은 타인의 앞에서 모든 가면을 내려놓고 있었다.“아가씨가 저를 미워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모든 행동이 절 더 싫어하게 만들고, 더 멀어지게 만들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러는 게 이기적이고, 과하고, 비합리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말을 할수록 장성훈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주민혁은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볼 뿐, 말을 끊지 않았다.알 수 있었다, 장성훈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그런데 왜 그러는 거예요?”주민혁이 낮게 물었다.“놓아주는 게 지안이를 위한 길이고, 성훈 씨에게도 더 좋은 선택 아닙니까? 지안이는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성훈 씨는 민채영 씨와 성훈 씨의 삶을 살면 돼요. 서로 아무 빚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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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6화

장성훈이 눈을 떴다.“아가씨가 날 미워할 거라는 거 알아요. 평생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도 알고요. 아가씨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미친놈이고, 변태고, 사람을 가둬 두는 집착광이겠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미워해도 좋고, 욕해도 좋고, 평생 나를 상대 안 해도 좋아요.”장성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적어도 살아는 있잖아요. 적어도 안전하잖아요. 아가씨가 내 곁에서 무사히 살아만 있어 준다면, 평생 미움받아도 감수할 수 있어요.”서재 안은 완전히 고요해졌다.주민혁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처음엔 장성훈의 행동이 그저 비뚤어진 집착이고, 소유욕이고, 포기하지 못한 미련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절박한 것일 줄은 몰랐다.자신의 평생의 명예를 걸고, 강지안의 평생의 자유를 빼앗아서라도 그녀의 목숨 하나만은 지키겠다는 것...그건 누구도 온전히 구원받을 수 없는, 서로를 망가뜨리는 방식의 보호였다.“그런 생각 해 본 적 있어요?”주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안이는 이렇게 평생 갇혀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심장을 깊숙이 찌리는 이 칼날같은 말에 장성훈의 몸이 세게 굳었다.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수없이 많은 밤, 그는 강지안의 방문 앞에 서서 안쪽에서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같은 생각을 했다.강지안은 자존심 강하고 눈부신 사람이었다. 태생부터 하늘을 날아야 하는 독수리 같은 여자였다.그런데 그는 그 독수리를 새장에 가뒀다.가장 좋은 먹이를 주고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지만 결국 그녀의 날개를 꺾어 버렸다.강지안에게는 그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지도 몰랐다.“알고 있습니다.”장성훈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그래도 놓아줄 수 없어요. 살아 있어야 가능성이 생깁니다. 죽으면 전부 끝이에요. 저는 아가씨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 없습니다.”주민혁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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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7화

장성훈은 강지안을 내보내 주지 않았다.사람도 만나지 못하게 했고 외부와 연락하는 것도 막았으며 하나뿐인 친구인 최수빈마저 문밖에서 돌려보냈다.그는 정말로 그녀를 평생 가둬 둘 생각이었다.강지안은 눈을 감은 채 의식이 맑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끝까지 버텨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죽을 때까지 버티고, 장성훈이 결국 손을 놓을 때까지 버티고, 모든 고통이 끝나는 순간까지 버텨 보자고...강지안의 자존심은 그녀가 고개 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애원하는 것도, 장성훈과 민채영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너진 모습을 보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그러나 몸이 무너지는 속도는 의지력보다 훨씬 빨랐다.그녀는 자주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한번 잠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고 꿈속에는 늘 과거의 장면들이 떠올랐다.열몇 살의 장성훈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던, 믿음직하고 한결같던 소년이었다.강지안이 무심코 춥다고 한마디만 하면 그는 곧장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한밤중에 단것이 먹고 싶다고 하면 차를 몰고 도시 절반을 뒤져 따뜻한 디저트 한 그릇을 사다 주었다.누군가 강지안을 괴롭히면 그는 두말없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제가 있잖아요.”그때의 장성훈은 강지안에게 있어서 수호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녀를 가둔 감옥이었다.눈물이 소리 없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베갯잇이 젖어 들자 그 차가운 감각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강지안은 손가락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눈물을 닦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이제 더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민채영이 손을 쓰지 않아도, 장성훈이 더 몰아붙이지 않아도, 그녀 스스로를 말려 죽이게 될 것이었다.하지만 아직 해외로 나가지도 못하고 국경없는의사회 의사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해 몹시 억울했다.이 지긋지긋한 새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그런데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아래층 거실.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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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화

그 약은 사람을 서서히 쇠약하게 만들고 의식을 잃게 한 뒤, 끝내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의사조차 바로 중독이라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약이었다.민채영은 알약을 꺼내 손끝에 집어 들었다.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젖어 축축했다.‘이걸 제비집에 넣기만 하면 돼. 그릇을 들고 올라가 강지안이 마시는 것만 지켜보면 모든 게 끝나는 거야.’무섭지 않았을까? 당연히 무서웠다.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 잔인한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자기 손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하지만 강지안이 장성훈의 시선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강지안이 자신의 집을, 자신의 약혼자를, 자신의 인생을 전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두려움은 순식간에 질투와 증오에 삼켜졌다.민채영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으로 알약을 으깼다. 그리고 따뜻한 제비집 안에 몰래 쏟아 넣었다.가루는 금세 녹아 사라졌고 색도, 냄새도 없는 것이 겉보기에는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민채영은 그릇을 들어 올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평소처럼 다정하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그런 뒤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 강지안이 있는 손님방으로 향했다.방문은 완전히 잠겨 있지 않은 탓에 가볍게 밀자 쉽게 열렸다.방 안으로 들어선 민채영은 침대 위에 거의 숨만 붙어 있는 강지안을 보았다.강지안은 눈을 감은 채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해 당장이라도 생명의 기운이 완전히 끊어질 것만 같았다.이에 민채영의 가슴속에 통쾌함이 스쳐 지나갔으나 곧 긴장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이윽고 그녀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더니 발소리를 낮추고 평소와 똑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안 씨, 먹기 싫어하는 거 알아요. 그래도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고 마시지도 않았잖아요. 이럼 정말 몸이 버티지 못할 거예요. 내가 제비집 끓여 왔어요. 몸에 좋은 거니까, 조금이라도 마셔요. 네?”강지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시야가 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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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9화

“콜록, 콜록콜록...!”강지안이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눈물과 기침하며 토해 낸 액체가 뒤섞여, 그녀의 모습은 처참할 만큼 흐트러져 있었다.민채영은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침대 위에서 고통스럽게 기침하는 강지안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그릇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요, 이렇게 나와야죠. 마시면 좀 나아질 거예요. 푹 쉬어요. 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말을 마친 민채영은 몸을 돌려 서둘러 방을 나갔다.그러고는 조심스레 방문을 닫은 뒤, 그대로 벽에 기대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성공했어. 진짜 성공했네. 강지안이 마셨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히 사라질 거야. 이 세상에서 더는 성훈 씨를 두고 나와 다툴 사람은 없어.’민채영은 마음속에서 치미는 불안과 공포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표정을 가다듬고 빈 그릇을 든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걸음씩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방 안.강지안은 침대 위에 웅크린 채 고통스럽게 몸을 떨고 있었다.처음에는 목과 위가 타들어 가는 듯 따끔거리는 정도였다.그녀는 자신이 너무 오래 굶어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통증은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위에서 가슴으로, 다시 팔다리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마치 수없이 많은 바늘이 오장육부를 사정없이 찌르는 것 같았다.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불규칙하게 뛰었다. 당장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가슴 위에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듯, 숨쉬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들이마실 수도, 내쉴 수도 없었다.눈앞은 몇 번이고 새까맣게 흐려졌고 귓가에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리며 의식이 빠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추웠다. 뼛속까지 시릴 만큼 추운 것이 뼈마디 사이로 한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강지안은 소리를 질러 사람을 부르고 싶었다.밖에 있는 경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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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0화

침대 위의 강지안은 미동도 없었다.두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쉬는 기척조차 없이 온몸에서 이미 생기가 빠져나간 듯했다.“, 아가씨...?”도우미가 떨리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만졌다.맥박이 없었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아악!!!”겁에 질린 도우미는 비명을 지르더니 혼이 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 방을 뛰쳐나와, 거의 구르다시피 아래층으로 달려갔다.“대표님! 대표님! 큰일 났어요! 지안 아가씨가, 아가씨가 숨을 안 쉬세요!”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순식간에 별장 안의 고요를 찢어 놓았다.장성훈은 서재에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안 아가씨가 숨을 안 쉰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려 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거의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장성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서재를 뛰쳐나와 2층 손님방을 향해 달려갔다.한 걸음 한 걸음이 칼날 위를 밟는 것 같았다. 매 순간이 한 세기처럼 길었다.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강지안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생각만큼은 차마 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곁에 두고 죽을힘을 다해 지키려 했다.아프리카로 가서 죽게 두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붙잡아 둔 것이었다.그녀가 자기 집에서, 자기 눈앞에서 죽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었다. 평생 미움받아도 좋고 모두에게 손가락질받아도 좋으니 그녀가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그런데 지금은...장성훈이 손님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 위의 강지안을 보았다.그 순간, 그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강지안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숨도 쉬지 않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으며 얼굴은 섬뜩할 만큼 창백했고 입술은 푸르게 질려 있었다.온몸은 차갑게 식어 아주 작은 생명의 기척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토록 자존심 강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강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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