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621 - Chapter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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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1화

“민채영, 대체 무슨 속셈이야?”장성훈은 지금껏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이 없었다.민채영은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난 억지로 내보낸 적 없어요. 스스로 나간 거라고요...”“닥쳐.”장성훈은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볼 생각조차 없었다.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강지안에 대한 걱정과 불안뿐이었다.기억을 잃은 그녀는 의지할 곳도 없었다.돈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에서 다친 고양이까지 품에 안고 나갔다.대체 어디로 간 걸까?혹시 위험한 일을 당한 건 아닐까?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아무도 없는 곳에서 속으로 울고 있는 건 아닐까?“당장 찾아.”장성훈은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차갑게 명령했다.“아가씨의 위치를 확인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상관없으니까, 지금 당장 찾아내.”경호원은 감히 지체할 수 없었는지라 곧바로 움직였다.그렇게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강지안이 머물고 있는 호텔 주소가 장성훈의 휴대폰으로 전송됐다.장성훈은 주소를 확인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민채영에게는 더 이상 단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민채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장성훈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봤다.새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서운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원망과 독기가 대신 채워갔다.또 강지안이었다. 언제나 강지안이었다.고작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고작 몇 마디 들었다고 불쌍한 척하며 집을 나가다니.그런데도 장성훈은 그녀에게 완전히 홀려버렸다.억울한 마음에 민채영은 이를 악물었다.‘대체 왜지?’장성훈은 차를 몰아 미친 듯이 호텔로 향했다. 차가 멈춰서는 거의 뛰다시피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주소를 확인한 뒤 그는 곧장 강지안이 있는 층으로 향하더니 방 앞에 도착해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 했다.하지만 손가락은 허공에서 멈췄다.강지안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진 것이었다.그리고 더 두려운 건, 기억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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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화

장성훈은 미동 없이 목울대만 살짝 움직였을 뿐, 십여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강지안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은 채 손목에 살짝 힘을 주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억지로 거칠게 밀어붙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에는 단호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깜짝 놀란 강지안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뭐 하는 거예요?”장성훈은 뒤돌아 문을 닫았다. 곧 ‘찰칵’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작게 방 안에 울렸다.방은 크지 않았다.싱글 베드 하나와 작은 소파 하나, 침대 옆 협탁에는 그녀가 방금 산 고양이 사료와 따뜻한 물, 그리고 고양이의 상처를 치료하고 남은 거즈가 놓여 있었다.한눈에 다 보일 정도로 작고 좁은 공간이었으나 깨끗했다.장성훈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은 저 여기서 잘 거예요.”순간 멍해진 강지안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깜빡였다.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자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정말 자신이 걱정돼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그 독단적인 성격이 다시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성훈 씨, 정말 말이 안 통하네요.”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여긴 내가 잡은 방이에요. 난 성훈 씨가 여기 있는 거 싫으니까 나가요.”“안 나갑니다.”그의 대답은 너무나 단호했다.“진짜...”강지안은 화가 나 한 걸음 다가갔다.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그의 팔에 손을 댔으나, 순간 장성훈이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따뜻하고 힘 있는 손바닥, 하지만 힘을 준 건 아니었고 그저 그녀가 뿌리치지 못하도록 살며시 감싸 쥔 것뿐이었다.“아가씨를 건드리려는 게 아닙니다.”그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그냥... 아가씨 혼자 밖에 있게 둘 수 없어서 그래요.”“내가 알아서 해요!”강지안은 힘껏 손을 빼냈다.“여기 안전해요. 머물 곳도 있고 먹을 것도 있어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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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3화

강지안은 순간 멍하니 굳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그럼 채영 씨는...”그녀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이미 떠났어요.”장성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아가씨가 민채영 때문에 쫓겨났다는 걸 알고, 바로 별장에서 나가게 했어요. 당분간은 아가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강지안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으나 진지해 보이는 그의 눈빛은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나랑 돌아가요.”장성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려다가 허공에서 멈췄다.그리고 대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힘은 아주 살짝 들어가 있었다.“이제 그만 고집부려요. 네? 아무리 그래도 별장이 이 작은 호텔보다 안전해요.”강지안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마음속에는 아직 분노가 남아 있었고 민채영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이 집의 안주인은 나예요.’그리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억지로 집에서 쫓겨났던 그 순간의 굴욕도 잊지 못했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휴대폰이 아직 장성훈에게 있다는 것이었다.휴대폰이 없으면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고 아무런 정보도 확인할 수 없다.자신이 누구인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그 휴대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과거와 연결된, 강지안이 유일하게 붙잡고 있는 끈이었다.강지안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그러다 여전히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조금도 마음이 풀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내 휴대폰 돌려줘요.”장성훈은 한눈에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챘으나 굳이 들춰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돌아가면 줄게요. 원래 아가씨 거였으니까.”“...”강지안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결국 천천히 마음을 정했다.“성훈 씨랑 돌아갈게요.”이내 그녀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돌렸다. 하지만 더 이상 장성훈을 바라보지는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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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4화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에요.”장성훈은 난처한 듯 두 손을 펼쳐 보였다.“퇴원하던 날, 아가씨가 아무한테나 연락하거나 갑자기 밖으로 나갈까 봐 제가 일단 맡아둔 거예요. 안에 있는 건 건드리지 않았어요. 아가씨의 사생활도 보지 않았고요.”“어디 있어요?”강지안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곧 장성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을 가리켰다. 가장 아래쪽, 자물쇠가 달린 서랍이었다.“저기 있어요. 열쇠는...”잠시 말을 멈춘 그는 침대 옆 협탁 구석을 바라보았다.“저기 위에 있고요.”강지안은 곧바로 몸을 돌려 열쇠를 집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은 뒤,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꽂았다.찰칵, 잠금이 풀렸다.서랍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휴대폰이었다.휴대폰은 서랍 한가운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얌전히 놓여 있었다.그 순간, 강지안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마치 마지막 남은 생명줄을 붙잡은 것처럼, 그녀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꼭 움켜쥐었다.차가운 화면이 손바닥에 닿았다. 그 감촉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고 현실적으로 느껴졌다.마침내 자신의 것을 되찾은 것이었다.장성훈은 그녀의 뒤에 선 채 안도한 듯한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휴대폰 돌려줄게요. 앞으로는 직접 가지고 있어요. 다시는 제가 보관하지 않을게요.”강지안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뒤돌아보지도,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다.손끝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며 그녀는 까만 화면을 내려다봤다.이 작은 기계 안에는 그녀의 과거가, 잊어버린 기억이 들어 있었다.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누구를 미워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가 모두 담겨 있었다.강지안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전원 버튼을 눌렀다. 꺼져 있던 화면이 서서히 밝아졌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성훈의 눈빛은 깊고 복잡했다.휴대폰이 켜지는 순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것들이 생길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어쩌면 그녀는 모든 기억을 되찾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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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5화

강지안은 눈을 내리깔더니 손끝을 살짝 말아쥐었다.“난 그냥...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한 번도 폐 끼친 적 없어요.”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무엇보다 분명했다.“지안 씨, 이건 꼭 기억해요. 지안 씨가 기억을 되찾았든 아니든, 지안 씨는 누구에게도 짐이 아니라는 거.”그 말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강지안 마음속 가장 여린 부분을 건드렸다.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거실 안에는 벽에 걸린 시계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째깍, 째깍...느리지만 또렷하게, 시계 소리는 고요한 공간을 채웠다.마침내 강지안은 고개를 들었다.기억을 잃은 뒤 줄곧 품고 있던 막막함과 불안이 그녀의 눈빛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수빈 씨... 혹시 말해줄 수 있어요? 나 예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어요?”최수빈은 순간 미세하게 굳었다.“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요.”강지안의 목소리는 더 작아져 마치 혼잣말처럼 흘러나왔다.“내가 뭘 좋아했는지도 모르겠고 뭘 싫어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성격이 어땠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없어도 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잠시 말을 멈춘 그녀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결국 가장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질문을 꺼냈다.“전에 나랑 성훈 씨 사이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왜 그는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그렇게 깊고, 아프고, 복잡한 눈빛을 보내는 걸까.왜 자신을 위해 민채영을 내쫓고 알레르기 문제마저 뒤로 미뤘을까.왜 그렇게 강압적이고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정작 자신의 앞에서는 늘 조심스러울까.마치 조금만 건드려도 강지안이 부서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말이다.강지안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최수빈은 그런 그녀의 막막한 표정을 바라보다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어떤 진실은 너무 아프고 너무 날카롭다. 지금의 강지안에게 그대로 건넬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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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6화

최수빈은 강지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녀의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나한테는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무슨 일이 있든 언제든 전화해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때든, 여기서 나가고 싶을 때든... 내가 도와줄게요.”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던 최수빈은 강지안이 조금 지쳐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다.최수빈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별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넓기만 한 공간은 텅 빈 듯, 차가운 적만만이 내려앉아 있었다.강지안은 거실 한가운데 한참 동안 서 있었다.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최수빈이 했던 말들이 맴돌았다.장성훈이 정말 좋은 사람이며 전에 그녀의 경호원이었다는 말 말이다.심지어는 십 년 동안 한순간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를 지켰으며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다고 했다.하지만 강지안은 그런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장성훈을 도저히 겹쳐 볼 수 없었다.가슴 한구석이 무언가에 눌린 듯 답답했다. 답답한데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강지안은 더 이상 복잡한 사람들과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는 몸을 돌려 빠르게 뒷마당으로 향했다.마음 한편에는 계속 그 작은 고양이가 걸려 있었다.호텔에서 데려온 뒤, 그녀는 뒷마당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작은 공간에 고양이를 데려다 놓았다.부드러운 담요를 깔아주고 깨끗한 물과 사료도 준비했다. 혹시 몰라 도우미들에게도 잘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그 고양이는 낯선 별장에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존재이자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순간, 품에 안고 유일하게 마음 놓을 수 있는 존재였다.“야옹아.”강지안은 조심스럽게 작은 문을 열었다.“나 왔어. 밥은 잘 먹었...”말끝이 뚝 끊겼다.기대했던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대신 불안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강지안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천천히 굳어졌다.그녀는 다급히 안으로 들어가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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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7화

강지안의 표정은 담담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갑게 민채영을 바라보기만 했다.그 시선에 민채영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그동안 쌓아왔던 원망과 독기가 떠나기 전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민채영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강지안 씨, 그쪽이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요. 지안 씨는 그저 남의 자리를 빼앗은 것뿐입니다. 성훈 씨가 지안 씨한테 품고 있는 그 미련 하나 믿고 이 집에 눌러앉은 거잖아요. 지금 지안 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런 지안 씨가 꼭두각시랑 뭐가 달라요? 지안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정말 지안 씨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그냥 과거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 죄를 갚으려고 하는 것뿐이라고요.”그 말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강지안의 가장 여린 곳을 찔러 들어왔다.강지안의 얼굴은 서서히 창백해졌다.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티며 반박하지도 않고 그저 차갑게 민채영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침묵과 창백한 얼굴을 본 민채영은 순간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감도 밀려왔다.그토록 오랫동안 다투고, 그토록 많은 것을 계산해 왔는데 결국 자신이 초라하게 떠나는 결말을 맞이했으니 말이다.“나 이만 갈게요.”민채영은 피식 비웃었다.“하지만 기억해 둬요. 내가 얻지 못한 건, 지안 씨도 절대 마음 편하게 가질 수 없을 거라는 거.”이 말을 끝으로 민채영은 이미 싸 둔 짐가방을 들었다.그리고 이 별장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떠났다.현관문이 쾅 하고 닫혔다.그 문은 민채영이 품고 있던 모든 원망과 악의를 함께 바깥으로 밀어냈다.강지안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오며 아팠지만 그녀는 민채영을 따라가지 않았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그저 조용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고양이를 보러 가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민채영이 짐을 정리하는 틈을 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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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8화

작은 고양이의 몸은 이미 완전히 식어 있었다.담요 위에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작은 몸은 이제 다시는 가느다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강지안은 그 자리에 계속 웅크리고 있었다.눈물은 이미 다 말라버렸고 눈에는 차갑고 텅 빈 적막만 남아 있었다.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더 이상 떨지도 않았다.그저 조용히 작은 생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주변에는 서늘한 기운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했다.그건 뼛속 깊이 새겨진 본능 같은 것이었다.기억을 잃어도, 혼란스러워도, 의지할 곳 하나 없어도, 한때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누구에게도 쉽게 굽히지 않았던 아가씨의 기질은 결국 한계를 건드리는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장성훈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심장은 차가운 손에 꽉 움켜쥐어진 것처럼 아팠고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였다.그는 지금까지 그녀가 두려워하는 모습도 봤고 억울해하는 모습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봤으며 조용히 순종하는 모습도 봤었다.하지만 이런 강지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차분하면서도 차갑고,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거리감이 느껴지는 눈빛...한마디 한마디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이 담긴 모습이었다.“성훈 씨.”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더니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매 한마디는 또렷하게 바닥에 떨어지는 듯했다.“찾아요. 누가 한 짓인지... 끝까지 밝혀내요. 그리고 나한테 설명해요.”장성훈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찾아 보겠습니다.”강지안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조명이 그녀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속눈썹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에 온기라곤 전혀 없었다.“난 원래...”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성훈 씨랑 채영 씨 사이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어요.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잖아요. 두 사람 사이의 원한도, 약속도, 사정도 두 사람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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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9화

“나 더 이상 그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요. 언제든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걸 해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정말 채영 씨가 한 짓이라면...”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누가 내 것을 건드렸든, 누가 내 고양이를 죽였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장성훈은 온몸에 가시를 세운 듯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이성적인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알았다.강지안은 이미 결심을 내린 상태였기에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한참 동안 침묵하던 장성훈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어디로 갈 건데요? 지금 혼자 나가면 위험해요.”“내 일이에요.”강지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갈 곳은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요.”“심종연이 아직 밖에 있어요. 제가...”“그것도 내 일이에요.”그녀가 다시 그의 말을 끊었다.“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성훈 씨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갇혀 살 수는 없어요. 나도 생각할 수 있고 내 두 발로 살아갈 수 있어요. 나는 성훈 씨의 죄수가 아닙니다.”“아가씨를 가두려는 게 아닙니다.”장성훈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떨렸다.“그냥... 아가씨를 지키고 싶은 거예요.”“보호와 구속은 달라요.”강지안은 그를 바라봤다.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이었다.“성훈 씨가 말하는 보호 때문에 나는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것마저 잃었어요. 더 이상 네 보호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걸 잃고 싶지 않아요.”장성훈은 완전히 말을 잃었다.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그는 그녀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싶었다.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곳에 숨겨두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눈앞의 강지안을 보니 그 어떤 강압적인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두려웠다.억지로 붙잡으면 그녀가 자신을 더 미워할까 봐.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정말로 자신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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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0화

“무슨 일이 생기든, 시간이 아무리 늦든... 나한테 전화 한 통만 해요. 그럼 바로 갈게요.”그의 목소리는 낮았다.억눌러 온 감정 때문인지 쉰 듯한 목소리에는 깊은 괴로움이 묻어 있었다.강지안은 걸음을 멈췄으나 뒤돌아보지도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칠뿐이었다.그것이 그녀가 보인 유일한 반응이었다.이내 문을 열자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흩날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마지막 남아 있던 미련까지 날려 보내는 듯했다.작별 인사도 없었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그녀는 꼿꼿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장성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강지안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봤다.현관문 너머로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나서야 그는 시선을 내렸다.그리고 주먹으로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리쳤다. 뼈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끝까지 억누르던 고통이 마침내 아주 조금 새어 나왔다.“도련님.”어둠 속에서 수행원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지안 아가씨를 따라붙게 했고 절대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조사해.”장성훈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당장 확인해. 고양이 일... 정말 민채영이 한 짓인지. 증거를 가져와. 완전한 증거.”“네.”수행원은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바로 돌아서서 움직였다.장성훈은 홀로 어둠 속에 앉아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를 쫓아가지도 억지로 붙잡아 데려오지도 않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으며 그녀의 자유를 존중했다.별장 단지를 빠져나온 뒤, 강지안은 택시 한 대를 잡았다.그리고 전에 우연히 휴대폰으로 봐두었던 단기 임대 가능한 원룸 주소를 말했다.비싸지 않았다. 깨끗했고 눈에 띄지 않았다.무엇보다 그곳은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지 않은가.택시는 별장 단지를 벗어나 점점 멀어졌다.거대한 그 차갑고 답답한 공간에서 멀어지자 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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