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651 - Chapter 1660

1766 Chapters

제1651화

경찰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절차에 따라 사실대로 답했다.“신고자는 강지안 씨입니다. 민채영 씨를 상대로 고의적인 금지 약물 투여, 타인의 신체에 해를 입히려 한 혐의, 공공 안전 위협 혐의로 신고했습니다. 현재 목격자 진술, 행사장 CCTV, 송금 내역, 직원들의 진술까지 확보된 상태라 증거가 상당히 명확합니다.”“고의적인 금지 약물 투여라...”장성훈은 그 말을 되뇌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 위로 무겁게 떨어지는 돌덩이처럼 느껴졌다.그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아직도 공기 속에는 어젯밤 강지안에게서 느껴졌던 뜨거운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힘들어 신음하던 그녀의 목소리, 정신이 흐릿한 채 자신에게 기대어 오던 모습, 살려달라는 듯 그의 소매를 붙잡던 손길...그리고 지금 눈앞의 민채영이 저지른 악랄한 계략과 독기 어린 모습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겹쳐졌다.그는 생각했다. 민채영을 향한 자신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그녀를 내쫓고 모든 연락을 끊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그러나 장성훈은 민채영은 이 정도로 미쳐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감히 공개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지안에게 그런 약을 먹일 줄은 더더욱 말이다.강지안을 망가뜨리려 한 것이었다.강지안의 인생을 끝장내려 한 것이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장성훈의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차갑게 굳은 결단뿐이었다.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민채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경찰을 향해 낮게 말했다.“데려가서 법대로 처리하세요. 저지른 죄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시면 됩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마세요.”그 말에 경찰들조차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처음에는 장성훈이 압력을 넣거나, 어떻게든 중재해서 민채영을 빼내려 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너무도 단호하게 손을 놓아버렸다.그러자 민채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성훈 씨! 당신 천벌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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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2화

결국 모든 일의 책임에서 장성훈 본인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의 방관과 묵인이 그 ‘작은 고양이’를 다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그가 조금만 더 단호했더라면, 강지안이 그렇게 비참하고 모욕적인 밤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었다.장성훈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목울대를 움직였다....민채영이 경찰차에 끌려간 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장씨 별장 대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장 먼저 들이닥친 것은 민씨 가문 사람들이었다.민채영의 부모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경호원과 비서들을 이끌고 들어왔다.문을 열자마자 큰소리로 따져 묻는 그들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장성훈! 당장 나와! 네가 무슨 권리로 우리 채영이를 경찰서에 넘겨?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다고 우리 애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거야? 우리 민씨 가문이 그동안 너한테 잘못한 게 있어? 그때 했던 약속은 네 마음대로 잊어버리고, 이제 와서 우리 가문을 끝장내겠다는 거냐?”민채영의 엄마 나서월은 눈시울까지 붉힌 채 장성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장성훈, 잘 들어! 오늘 안으로 채영이 빼내 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민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끝이야! 거긴 경찰서야, 전과라도 남으면 채영이 인생은 끝이라고! 네가 그 책임 질 수 있어?”민씨 가문 사람들은 거실 안에서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소란을 피웠다.그러자 순식간에 넓은 거실이 난장판이 됐다.하지만 장성훈은 상석 소파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곧게 뻗은 자세, 흔들림 없는 눈빛,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눈앞의 사람들을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해명도, 달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그 고요한 시선은 오히려 섬뜩할 정도였다.눈에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에 민씨 가문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저도 모르게 점점 말을 줄였다.그러던 그때, 밖에서 또다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장성훈의 부모도 서둘러 도착한 것이다.아버지 장병모는 굳은 표정이었고 어머니 김천희는 걱정과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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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3화

장성훈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차갑게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민채영은 공개 의료 프로젝트 행사장에서 직원에게 돈을 주고 지안 아가씨에게 약을 먹였습니다. 그것도 사람을 이성을 잃게 만들고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그런 약을요.”순간, 민씨 가문 부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시선을 피했다.분명 무언가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일부러 모른 척하며 숨겨온 것이었다.장성훈의 부모 역시 크게 놀랐다. 조금 전까지 얼굴에 드러나 있던 책망과 의문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설마 일이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약물을 탄 것, 사람을 망가뜨리려 한 것, 한 사람의 인생을 더럽히려 한 것...이건 단순한 질투 싸움이 아니라 고의적인 범죄였다.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한 악랄한 범죄였다.김천희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이러한 진실 앞에서는 어떠한 책망도 초라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장성훈은 그런 부모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만약 오늘 약을 먹은 사람이 저고 두 분이었다면... 아니, 장씨 가문의 그 누구라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그래도 저한테 조용히 해결하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래도 이게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셨겠습니까?”“분명히 말해두는데 민채영이 오늘 이런 결과를 맞은 건, 본인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겁니다. 누가 나서서 감싸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누구든 그 애를 보호하려 드는 순간, 그건 저와 맞서는 것이고 지안 아가씨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거예요. 민씨 가문과의 약속, 장씨 가문의 체면, 그 모든 것보다 저한테는 지안 아가씨가 중요해요.”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그리고 지안 아가씨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그 말이 끝난 순간, 거실 안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민씨 가문 부부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하더니 조금 전까지 보이던 기세와 당당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장성훈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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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4화

“하지만 성훈이 쪽은...”김천희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분명 걱정하는 듯한 기색이었다.“오늘 성훈이 태도 봤잖아요. 강지안을 감싸고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요.”“뭐가 걱정입니까?”그러자 민강현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아무리 독하게 나와도 결국 장씨 가문 아들 아닙니까. 많은 일은 성훈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가 돼서 설마 아들이 고작 외부인 하나 때문에 두 집안이 쌓아온 수년간의 관계를 망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실 겁니까?”그러자 나서월은 곧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안타까운 척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강지안을 향한 악의적인 비난이 담겨 있었다.“사돈어른,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우리 채영이... 어릴 때부터 저희가 너무 예뻐하며 키워서 성격이 조금 제멋대로인 면은 있어도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절대로 남에게 약을 먹이고 해를 입힐 그런 애가 아니라고요. 분명 그 강지안이라는 사람이 무슨 수를 쓴 거예요. 먼저 우리 딸을 괴롭혔고 채영이도 계속 몰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맞선 거겠죠.”“맞습니다.”민강현이 곧바로 거들었다.“분명 그 여자가 뒤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 겁니다. 일부러 채영이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목적이 뻔하지 않습니까? 성훈이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그 틈을 타 성훈이에게 붙으려는 거죠. 그게 아니면 멀쩡한 행사장에서 왜 하필 그런 일이 터졌겠습니까?”두 사람은 서로 말을 맞춰가며 민채영을 억울한 피해자로 포장하면서 모든 잘못을 강지안에게 뒤집어씌웠다.장성훈의 부모는 원래부터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표정은 더욱 굳어지며 이미 어느 정도 믿기 시작한 눈치였다.“일단 이 일은 잘 알아보겠습니다.”장병모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두 분은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희가 성훈이와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방법도 찾아볼 거고요. 아무리 그래도 수년간 인연을 이어왔는데,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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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5화

“그리고 하나 더.”장성훈이 덧붙였다.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경찰 쪽도 계속 주시해. 누구든 민채영을 빼내려고 손을 쓰면 전부 막아. 감히 끼어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함께 처리해.”“알겠습니다.”그렇게 통화가 끊기자 장성훈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러고는 여전히 어둠 속에 선 채 무거운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하늘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짙은 밤이 도시 전체를 천천히 집어삼켰다.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 그리고 경찰에게 약점으로 잡혀서도 안 되는 일 말이다.밤 11시, 도시 외곽의 한 부두.짙은 어둠은 쉽게 걷히지 않았고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멀리 있는 등대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간헐적으로 번쩍이며 차가운 바다 위를 비추고 있었다.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한 부두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경호원 몇 명만이 어둠 속에 서서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잠시 후,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소리 없이 부두 안으로 들어오더니 대형 화물선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곧 차 문이 열리고 장성훈이 혼자 내렸다.그는 검은색 방풍 재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곧게 뻗은 체격, 달빛 아래 더욱 창백해 보이는 차가운 얼굴...따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지만 그가 풍기는 카리스마만으로도 부두 전체의 적막을 짓누르기에는 충분했다.이 화물은 세상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경찰에게 발각되는 순간, 그 자신뿐만 아니라 장씨 가문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되니 말이다.이것은 그가 과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였던 어두운 영역이었다.그리고 강지안에게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자 완전히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였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조용히 옮겨 아무도 모르게 흔적 없이 처리할 예정이었다.하지만 해가 질 무렵, 갑작스럽게 한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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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6화

기사는 감히 더 묻지도 못하고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검은 세단은 소리 없이 부두를 빠져나가 짙은 밤의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부두로 들이닥쳤지만 마주한 것은 불길이 휩쓸고 간 잔해와 텅 빈 바다뿐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깊은 밤, 텅 빈 거리를 질주하는 검은 세단 뒷좌석에 기대어 장성훈은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폭발로 증거는 인멸했지만 동시에 어둠 속에서 그를 예리하게 주시하던 이들을 자극해버려 그에게 돈줄이 끊겨 뼛속 깊이 증오하면서도 줄곧 약점을 잡지 못했던 조직들에게 마침내 기회를 내어준 것이다.“도련님, 뒤에 미행이 붙었습니다.”기사의 목소리에는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경찰은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놈들입니다.”장성훈이 천천히 두 눈을 뜨자, 눈동자 깊은 곳에서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룸미러 너머로 시선을 던지니, 번호판을 뗀 검은색 승용차 두 대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짝 뒤쫓고 있었다. 작정하고 덤벼든 것이 확실했다.“따돌려.”그의 음성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했다.“알겠습니다.”기사가 거칠게 액셀을 밟자 차가 순식간에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칠흑 같은 심야의 도로를 내달리며 쉴 새 없이 차선을 바꾸고 굽잇길을 돌며 뒤에 붙은 꼬리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으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베테랑이었다. 운전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맹추격해 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를 높여 바짝 따라붙은 놈들이 그대로 차를 들이받았다.쾅.굉음과 함께 차체가 심하게 요동치자 기사가 간신히 핸들을 부여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도련님, 아예 목숨을 노리고 작정한 놈들입니다!”“좁은 길로 들어가서 차를 세워.”장성훈이 냉정하게 명령했다.“너희들은 준비해.”그의 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각 전투태세를 갖췄다.차는 급격히 방향을 틀어 좁고 낡은 골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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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7화

강지안이었다.장성훈의 전신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온몸을 돌던 피마저 이 순간 그대로 멎어 버린 듯했다.이렇게 처절하고 피비린내 나고 끔찍하게 어두운 순간에, 폭발과 추격전을 겪고 온몸에 상처와 살기를 두른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강지안과 마주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강지안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저 밤잠이 안 와서 뭐라도 좀 살 겸 지름길인 이 골목을 지나려던 것뿐인데, 여기서 장성훈과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남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에는 혈색이 하나도 없었다. 한 손으로 옆구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지만, 손가락 틈새로 쿨럭이는 뜨거운 피는 손바닥을 붉게 물들이며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그 선혈은 유난히도 시렸다.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화약과 피가 엉긴 냄새가 짙게 풍겼다. 꼴은 엉망이고 위태로웠지만, 그럼에도 뼛속까지 박힌 차갑고 묵직한 기운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비록 낮에 보았던 그 냉혹하고 범접할 수 없던 장성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지만 말이다.제자리에 선 강지안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넋이 나간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선 그를 향한 원망도, 낮에 있었던 따귀의 기억도, 그 모든 굴욕감과 절망의 기억마저 아스라이 흩어졌다.오롯이 남은 것은 눈앞의 존재,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우면서도 집요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한 남자뿐이었다.짙은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고요한 골목 안, 검붉은 피가 한 방울씩 차가운 지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툭, 툭...그 소리는 두 사람의 심장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듯했다.그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서는 쉴 새 없이 핏물이 번져 나왔고 축축하게 옷감을 적신 뜨거운 액체는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다.눈앞에 선 사람이 강지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장성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그녀를 이 일에 끌어들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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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8화

짙은 어둠이 오래된 골목을 숨 막히게 에워싼 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콧속 깊숙이 파고들었다.강지안을 등지고 선 장성훈의 옆구리에선 끊임없이 선혈이 솟구치고 있었으며 짙은 색 옷감은 이미 뜨거운 액체에 흠뻑 젖어 무겁고 축축하게 피부에 들러붙어 있었다.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생살이 뜯겨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억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한 발 한 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자신이 안고 있는 이 시궁창 같은 어둠을 그녀에게 묻힐 수는 없었다.원체 맷집이 좋았으니 이깟 칼에 찔린 상처로는 당장 죽지 않을 테고, 제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서 지혈과 봉합을 거쳐 흔적을 지우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녀의 알량한 동정심 따위는 필요 없었고, 의사랍시고 이렇게 비참하게 망가진 자신을 구하려 드는 꼴은 더더욱 사양이었다.강지안은 제자리에 선 채, 발걸음은 걷잡을 수 없이 휘청이고 얼굴은 투명할 만큼 새하얗게 질려 있으면서도 기어이 밤 속으로 홀로 사라지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심장을 사정없이 움켜쥐기라도 한 듯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 숱한 원망도, 뼈저린 미움도, 굴욕스러웠던 기억의 파편들마저 선혈이 낭자한 바닥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의 실루엣 앞에서는 일순간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렸다.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그의 팔을 다시금 단단히 틀어쥐었다.팽팽하게 날이 서고 불덩이처럼 뜨거운 그의 팔에서는 피비린내와 옅은 화약 냄새, 그리고 상처로부터 전해지는 아찔하고도 뜨거운 습기가 배어 나왔다.“난 안 가요.”강지안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어떤 흔들림도 없이 비정상적일 만큼 차분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홱 돌아보는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난 의사고, 사람을 살리는 건 내 천직이에요. 내 도움을 거절하는 건 당신 자유지만, 그런 치명적인 자상을 입은 채 한밤중의 거리를 헤매게 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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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9화

“상의 벗어요.”강지안은 고개를 숙인 채 구급상자를 열며 차분하게 지시했다.장성훈의 움직임이 멈칫했다.“상처가 옆구리에 있어서 옷을 벗지 않으면 소독도, 상태 확인도, 봉합도 불가능해요.”강지안은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마치 수많은 일반 환자 중 한 명을 대하듯 지극히 직업적이고 무미건조한 투로 말을 이었다.“시간 끌지 마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까.”그 차가운 태도에 장성훈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한 손으로 소파를 짚고 몸을 살짝 일으킨 뒤, 다른 한 손으로 상처가 땅기지 않게 조심하며 검은색 외투를 천천히 벗어냈다.곧이어 안쪽에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낼 때 진작에 엉겨 붙은 피로 인해 살갗에 들러붙은 천 조각이 뜯겨 나가자 그는 저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을 삼켰다.불빛 아래로 7~8센티는 족히 넘어 보이는 옆구리의 칼자국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살점이 흉측하게 벌어진 채로 여전히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고 주변부의 멍 자국을 보아하니 날 선 흉기가 푹 찔러 들어와 거칠게 그어버린 것이 확실했다.치명상은 피했으나 워낙 깊게 파여, 당장 손쓰지 않으면 감염과 염증은 물론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강지안의 손끝이 찰나의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솟구치는 쓸데없는 감정들을 억누르고, 다시금 의사라는 냉철한 가면을 뒤집어썼다.“지금부터 상처 부위를 닦아낼 거예요. 꽤 아플 테니 참아요.”그녀는 먼저 일회용 멸균 장갑을 끼고 생리식염수를 꺼내 상처 표면에 묻은 핏자국과 이물질을 천천히 씻어냈다.차가운 액체가 환부를 스치자 장성훈의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고 날 선 턱관절에 힘이 들어갔다. 관자놀이 부근에 촘촘한 진땀이 맺혔음에도 그는 끝내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강지안의 손길은 가볍고 안정적이었으며 집중한 눈빛 아래 이어지는 모든 처치 과정은 교과서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세척을 마친 그녀는 요오드 용액으로 상처 안쪽을 세밀하게 소독해 들어갔다. 면봉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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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0화

이따금씩 강지안의 손끝이 상처 없는 온전한 옆구리 피부를 무심코 스치고 지나갈 때면 미세한 전율이 일었고 그녀의 얕고 따스한 숨결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 서늘하고 끔찍했던 통증마저 다정한 위로로 덮이는 듯했다.한 세기처럼 길고 무거운 몇 분이 지났다.마지막 매듭을 묶고 실을 잘라낸 순간, 강지안은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잠깐 사이 그녀의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그녀는 무균 거즈를 집어 들어 상처 위를 조심스레 덮은 뒤 의료용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했다.“다 됐어요.”손을 거두며 핏자국이 묻은 장갑을 벗어내는 그녀의 목소리가 옅게 잠겨 있었다.“일단 지혈은 됐어요. 제때 드레싱하고 무리한 움직임은 피하세요.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만 조심하면 일주일쯤 뒤엔 어느 정도 아물 거예요.”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구들을 정리하려던 찰나, 갑자기 뜨겁고 단단한 손 하나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틀어쥐었다.이어 장성훈이 고개를 들어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으로 그녀를 옭아매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고마워요.”강지안의 가슴께가 요란하게 뛰었으나, 그녀는 일말의 내색도 없이 고요히 손목을 빼내었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그의 끈질긴 시선을 피하며 무미건조하게 답했다.“의사로서 본분을 다했을 뿐이에요.”공기가 일순간 가라앉고 두 사람의 얕고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잠시 후, 장성훈이 천천히 입을 뗐다.“씻고 싶어요.”도구를 정리하던 강지안의 손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그럴 필요 없어요. 꿰맨 지 얼마 안 돼서 물이 닿으면 감염되기 쉬우니까.”“온몸이 피와 땀 범벅이라 도저히 잘 수가 없네요.”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은근한 고집이 서려 있었다.“그냥 닦기라도 해야겠어요.”강지안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상의를 벗은 그의 옆구리에는 새하얀 거즈가 감겨 있었고 선명한 복근 위로 자리 잡은 오래된 흉터들과 방금 얻은 처참한 상흔들이 뒤엉켜 야성적이면서도 위태로운 매력을 풍기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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