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1791 - 챕터 1800

1855 챕터

제1791화

최수빈은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주민혁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렇게 네 사람은 간단히 정리를 마친 뒤 임시 주둔지를 나와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목적지는 비교적 조용하고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되는 한 양식 레스토랑으로 안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어 언제 포성이 터질지 모르는 바깥의 불안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직원의 안내를 받아 네 사람은 창가 자리로 향했다.송미연은 육민성의 옆에 앉았고 최수빈과 주민혁은 두 사람의 맞은편에 나란히 자리했다. 테이블 위에는 소박한 꽃장식이, 가지런히 놓인 식기는 조명을 받아 반짝였으며 주변은 조용하고 아늑했다.며칠째 이어졌던 이동과 긴장, 대치와 걱정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이윽고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맞은편의 주민혁을 바라보는 최수빈의 눈빛은 저도 모르게 한결 부드러워졌다.“돌아가면 밥 제때 챙겨 먹고 밤새우지 말아요. 율이가 나 언제 오냐고 물으면 금방 돌아올 거라고 해주고요.”“알았어.”주민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마찬가지야. 일이 바빠도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고. 진 박사님도 있으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네.”잠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한편 육민성은 송미연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너무 걱정하지 마. 국내 일도 하나씩 정리하면 돼. 여기 임무가 끝나면 같이 돌아가서 나머지 일도 해결하자. 우리 가문에서 뭐라고 하든, 난 절대 미연 씨 손 안 놓아.”그러자 송미연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더니 ‘네’ 하고 작게 대답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갑작스럽게 닥친 송씨 가문의 위기가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을 매몰차게 내쳤던 육씨 가문의 태도 역시 쉽게 떨쳐낼 수 없었으나 모처럼 찾아온 이 평온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더 보기

제1792화

최수빈도 순간 당황한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주민혁을 바라봤다.편안했던 주민혁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졌다. 눈빛도 차츰 가라앉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모자를 훑어보았고 손끝으로는 테이블을 가볍게 한 번 두드렸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둘러싼 분위기는 어느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 금발의 여자는 테이블 위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송미연의 굳은 얼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코끝을 훌쩍였다.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옆에 있던 아이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아가, 어서. 아빠라고 불러 봐.”아이는 잔뜩 주눅 든 얼굴로 육민성을 올려다봤다. 작은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아빠라고 불러야지.”여자가 조급한 목소리로 다시 재촉했다.“이분이 네 아빠야. 우리가 얼마나 오래 찾아다녔는데.”그 ‘아빠’라는 한마디가 날카롭게 가슴을 찔러 송미연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졌다. 안 그래도 송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일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 와중에 이런 광경까지 마주하자 가슴이 꽉 막히는 듯 답답해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움켜쥔 채, 송미연의 시선은 육민성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그의 눈빛에서 어떤 해명의 기색이라도 찾아내고 싶었으나 그러면서도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답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가짜 결혼부터 서로 다른 집안 배경, 송씨 가문의 위기,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육씨 가문의 압박까지...이것만으로도 송미연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그런데 만약 육민성에게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에서의 과거가 있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면...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육민성은 얼굴이 완전히 싸늘하게 굳어 낯선 사람을 대하듯 담담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전 그쪽 모르는데요.”짧고 단호한 한마디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애매하게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없었다.그러자
더 보기

제1793화

반가워하고 서러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련의 반응이 너무 매끄러운 탓에 여자의 감정 표현도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재회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미리 준비한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특히 지금은 엘리아스와 심종연이 인근에 숨어 있고 내부 첩자도 아직 잡히지 않은 데다 송씨 가문과 육씨 가문을 둘러싼 문제 역시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하필 이런 민감한 시기에 아이까지 데리고 육민성을 찾아온 금발의 여인이라니...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서 오히려 누군가 치밀하게 꾸며낸 소동에 가까울 것 같았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갈등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훤히 보인 것이다.육민성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자 여자는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어깨와 눈물범벅이 된 얼굴만 보면 세상 누구보다 억울한 사람처럼 보였다.“어떻게 이렇게 모질 수 있어요... 나 혼자 아이 키우면서 민성 씨를 얼마나 오래 찾아다녔는데. 어떻게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할 수 있어요...”여자는 울먹이며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몇 걸음 물러났다.원망과 서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육민성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는 끝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상처받은 표정에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까지 어려 있었다.그러다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손을 잡혀 끌려가던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두 사람의 모습이 입구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테이블에는 묘한 침묵이 이어져 숨이 막힐 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송미연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옆으로 늘어뜨린 손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였고 눈에는 감추지 못한 서운함과 착잡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육민성을 바라보지도,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다.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아이까지 데리고 와 자신의 연인을 향해 아빠라고 부르라고 했으니 어떤 여자라도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을 터였다.그 모습을 본 육민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곧
더 보기

제1794화

주민혁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레스토랑 입구 쪽을 힐끗 바라봤다.“저 여자가 나타난 타이밍도, 장소도, 하는 말도 전부 너무 의도적이에요. 우연히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재회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어요. 누가 일부러 우리 앞에서 저런 상황을 만들도록 꾸민 것에 더 가까워요. 목적은 육 대표님과 미연 씨 사이를 흔들어서 갈등을 만들고 우리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거겠죠. 엘리아스와 심종연은 계속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내부 첩자도 아직 잡히지 않았잖아요. 정면으로 손을 쓰기 어려우니 이런 식으로 내부부터 흔들려는 거예요.”최수빈은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그러니까... 저게 전부 상대가 꾸민 일이란 말이에요?”“십중팔구 그럴 거야.”주민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답했다.“갑자기 웬 금발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나 애 아빠를 찾겠다며 소동을 벌인 건, 누가 봐도 미연 씨를 노린 거야. 둘 사이에 의심을 심어놓고 서로 다투게 만들려는 거지.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상대에게는 그만한 틈이 없으니까.”주민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육민성은 깊게 미간을 찌푸리며 차분히 상황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조금 전에는 송미연이 오해할까 봐 마음이 급해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으나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처음부터 끝까지 수상한 점투성이였다.“어쩐지 하는 말마다 앞뒤가 안 맞더라니. 감정 표현도 너무 작위적이었고.”육민성이 차갑게 말했다.“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개인적으로 얽힌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저런 여자가 나타날 리가 없잖아요.”송미연도 순간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서운함과 불안이 빠르게 걷히면서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갑작스러운 소동에 너무 흔들린 나머지 그녀는 지금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여기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 지역, 여러 세력이 서로의 빈틈을 노리는 곳에서 이렇게 절묘한 순간에 벌어
더 보기

제1795화

차는 낯선 이국의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송미연은 육민성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아직도 아찔했던 여운이 남아 있었다.조금만 더 갔으면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그대로 빠질 뻔했다. 누군가 일부러 꾸며낸 소동 하나 때문에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오해할 뻔한 것이다.육민성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번 일로 완전히 경계 태세에 들어갔는지라 눈빛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최수빈은 뒷좌석의 두 사람을 돌아본 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자 주민혁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손끝에 살짝 힘을 주며 안심시켰다.그의 시선은 전방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금발 여자의 모습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표정과 말투, 그녀가 늘어놓았던 이야기, 그리고 자리를 떠날 때 스쳐 지나간 그 눈빛까지...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단순한 치정 소동으로 치부할 일이 아닌, 명백히 상대가 의도적으로 벌인 심리전이었다.그동안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적은 이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해 이들의 내부를 뒤흔들고 있었다.겉보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친자 확인 소동이었지만 그 뒤에는 숨통을 조이듯 조금씩 다가오는 위험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차는 천천히 임시 주둔지 경계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식당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소동을 뒤로 한 채, 일행은 서둘러 임시 주둔지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분위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주민혁의 분석은 송미연과 육민성 사이에 생긴 오해를 단숨에 걷어냈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했다. 위험은 이미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그것도 어느 틈으로 파고들지 모를 만큼 집요하게 와 있다는 것을 말이다.임시 주둔지에 도착한 뒤, 송미연과 육민성은 각자 방으로
더 보기

제1796화

“율이가 아직 국내에 있잖아요.”최수빈이 나지막이 말했다.“아직 어린애인데, 민혁 씨가 여기 남으면 율이가 아빠 어디 갔냐고 물을 거예요. 그럼 내가 뭐라고 대답해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손끝으로 그의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그리고 국경 쪽 일도 이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민혁 씨는 국경 방어의 중심이에요. 민혁 씨가 자리를 비우면 분명 빈틈이 생길 거고 그 틈을 엘리아스나 심종연이 노릴 수도 있어요. 나 때문에 이미 많은 걸 내려놨는데 이제 더 이상 나 때문에 중요한 일을 미루게 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그러나 주민혁은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그 금발 여자 분명 수상해. 상대가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고 송씨 가문 쪽 상황도 계속 지켜봐야 하잖아. 내부 첩자 색출도 멈출 수 없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내가 남으면 적어도 네 짐을 많이 덜어줄 수 있어.”“날 걱정하는 건 알아요. 날 도와주고 싶은 것도 알고.”최수빈이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래도 나를 믿어 줘요. 나 이제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민혁 씨 뒤에 숨어 있기만 하던 최수빈이 아니거든요. 여기에는 지원팀도 있고 진 박사님이 붙여 준 사람들도 있어요. 미연이랑 민성 선배도 있고요.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이어 그녀는 손을 들어 주민혁의 찌푸려진 미간을 살며시 펴 주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뜻은 단호했다.“그러니까 여기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요. 네? 약속할게요. 내 몸도 잘 챙기고 여기 일도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엘리아스랑 심종연이 아무리 교활하다 해도 우리 방어선을 쉽게 뚫지는 못할 거예요. 그 금발 여자의 속셈이 무엇인지도 우리 모두 끝까지 파헤칠 거고요. 이간질에 휘둘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주민혁은 자신감과 확신이 어린 최수빈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슴을 짓누르던 걱정이 조금씩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쉽게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결국 그는 최수빈을
더 보기

제1797화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끌어안은 채, 따스한 조명 아래에서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한참이 지나서야 주민혁은 조심스럽게 품에서 놓아주더니 손을 들어 최수빈의 뺨에 남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길은 한없이 다정했고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가득했다.“울지 마. 금방 다시 올게.”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차분히 당부했다.“너도 네 몸 잘 챙겨야 해.”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묻어났다.“밤늦게까지 무리하지 말고 밥도 제때 챙겨 먹어.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전화하고. 혼자서 다 버티려고 하지 마. 그리고 진 박사님 쪽 사람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움직여도 돼. 내가 가장 믿는 사람들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줄 거야. 그 금발 여자가 또 나타나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 줘. 혼자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알았어요.”최수빈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써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맨날 밤새우지 말고 민혁 씨도 돌아가면 몸 잘 챙겨요. 율이 아직 어리니까 민혁 씨가 곁에 있어 줘야 해요. 국경 쪽도 잘 살피고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나도 매일 연락해서 여기 상황 알려 줄 테니까 민혁 씨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요. 지난번처럼 나한테 숨기지 말고.”“알았어.”주민혁은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살며시 쓸었다. 마치 지금 이 모습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려는 사람처럼, 시선은 최수빈의 얼굴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나도 매일 연락할게. 국내 상황도 알려 주고 율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다 말해 줄게. 율이가 엄마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밖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해. 금방 돌아가서 같이 있어 줄 거라는 말도 덧붙이고.”“네.”최수빈이 다시 한번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금세 또 차올랐지만 애써 웃어 보였다.“그렇게 할게요.”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봤다.하고 싶은 말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더 보기

제1798화

희미한 담배 향이 섞인 서늘하고도 깨끗한 냄새, 최수빈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이었다.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이 길에 끝이 없었으면 좋겠고 두 사람이 이렇게 나란히 서 있는 시간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했다.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주민혁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이제 가야 해. 더 늦으면 돌아가는 비행기 놓쳐.”최수빈은 눈을 떴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웃어 보였다.“네.”곧이어 그녀는 손을 뻗고 까치발을 들더니 그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짧은 입맞춤이었지만, 차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걱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순간 몸이 굳었으나 주민혁은 이내 최수빈을 끌어당기며 더 깊게 입맞춤을 이어갔다.차가운 듯했던 그의 입술은 닿을수록 뜨거웠다. 그동안 눌러 두었던 그리움과 아쉬움을 모두 이 한 번의 입맞춤에 담으려는 듯했다.한참 뒤에야 주민혁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의 이마가 맞닿았을 때, 그의 숨은 살짝 거칠어져 있었다.“나 올 때까지 기다려 줘.”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하는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네.”최수빈이 힘껏 고개를 끄덕이자 눈물은 다시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기다릴게요.”주민혁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지금의 모습을 눈에 깊이 담아 두려는 듯,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이윽고 그는 몸을 돌려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차가 천천히 출발해 임시 주둔지 출입구를 향해 멀어졌다.최수빈은 그 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봤다.차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새 검은 점 하나가 되었고 마침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그제야 참아 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뺨을 타고 바닥을 적셨다.최수빈은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깨가 떨리는 것은 차마 숨길 수 없었다.헤어지기 싫은 마음과 걱정, 그
더 보기

제1799화

임무는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어 마무리 단계만 남겨 두고 있었다.임시 주둔지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몰라 초조하게 버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안도감 속에서 각자 맡은 일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훼손되고 조작됐던 실험 데이터는 모두 복구해 백업을 마쳤고 핵심 성과물도 안전하게 봉인되어 곧 전용 경로를 통해 국내로 이송될 예정이었다.혼란스럽던 외부의 분위기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현지 협력 기관과의 인수인계까지 마무리됐고 지원을 위해 파견됐던 동료들도 순차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한때 포화의 위협에 짓눌려 있던 주둔지에 드디어 진정한 평온이 찾아온 것이다.그리고 모두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던 문제도 마침내 해결됐다.내부에 숨어 여러 차례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았던 첩자의 정체가 철저한 조사 끝에 드러난 것이다.범인은 뜻밖에도 초기 지원팀에 포함돼 있던 기술 지원 인력이었다.말수가 적고 성실한 데다 평소 존재감도 크지 않아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으나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심종연 측에 매수돼 있었다.그는 직무상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해 주둔지의 방어 배치와 실험 진행 상황, 주요 인력의 이동 경로를 몰래 넘겼고 포격 당시에는 신호 교란 장치까지 가동했다.그 때문에 통신이 끊겼고 당시 주민혁이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다.레스토랑에 아이를 데리고 갑자기 나타나 소란을 일으켰던 금발 여자 역시 그가 해외 경로를 통해 직접 연결해 끌어들인 인물이었다.목적은 송미연과 육민성 사이를 갈라놓고 나아가 팀 내부의 신뢰까지 무너뜨리는 것이었다.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이어져 완벽한 증거가 되는 순간, 주둔지의 모든 사람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증인과 물증이 모두 확보된 이상 더는 발뺌할 수도 없었다.첩자는 현장에서 곧바로 제압돼 연행됐고 이후 처리는 관련 기관에 넘겨졌다.내부 첩자가 잡히자 인근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엘리아스와 심종연 일
더 보기

제1800화

송미연은 육민성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임무가 끝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귀국하면 송씨 가문의 지분 정리도 마무리하고 이제는 육민성과 진짜 부부로서 안정된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육씨 가문의 압박도, 송씨 가문의 위기도, 낯선 타국에서 겪었던 위험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의 도발도 모두 지나갔다.그러니 이제부터는 좋은 일만 남았다고 믿은 것이다.철수 절차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장비를 포장하고 중요 서류를 봉인한 뒤 경호 인력까지 붙여 이송 준비를 마쳤다.탑승을 앞두고 최수빈은 마지막으로 주둔지를 한 바퀴 돌아보며 빠뜨린 것이나 남은 위험 요소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텅 빈 방 안으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한때 긴장과 소란으로 가득했던 곳에 이제는 고요함만 남아 있었다. 송미연은 육민성의 팔짱을 끼고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돌아가면 먼저 할머니 뵈러 가요. 그다음에 송씨 가문 일도 같이 정리하고요. 어때요?”육민성은 고개를 숙여 복잡한 감정이 얽힌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짧게 대답했을 뿐이었다.“응.”송미연은 그저 그가 며칠 동안 너무 고생해서 지쳤을 거라 생각했기에 별다른 의심 없이 귀국 후의 생활을 기대하며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십여 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고국 땅을 밟았다.비행기에서 내려 단단한 땅을 밟는 순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익숙한 공기와 언어, 익숙한 질서...그 모든 것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팀은 곧바로 복귀 보고와 인수인계를 진행했고 임무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도 빠르게 전해졌다.관련 기관에서는 이번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최수빈은 가장 먼저 본가로 향했다.문을 열자마자 율이가 작은 몸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며 앳된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
더 보기
이전
1
...
178179180181182
...
186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