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401 - Chapter 410

604 Chapters

제401화

주민혁은 그 말을 듣자 걸음을 멈췄다.“그 사람은 병원 의사예요. 수빈이네 외삼촌이 아프셔서 치료 방안을 상의하고 있었어요.”그의 시선이 차분히 진서령에게 향했다.“엄마는... 수빈이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세요?”뜻밖의 질문에 진서령은 잠시 말을 잃었다.“내가 그때 뭐랬니? 그 여자랑 결혼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원하지 않았으면 난 온갖 방법을 써서라도 그 여자가 주씨 가문 문턱도 못 밟게 했을 거야. 난 아직도 하린이가 더 낫다고 봐. 너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인연도 깊잖아. 게다가 그 애는 집안도 좋고 교양도 있고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며느릿감이야. 지금이라도 수빈이랑 이혼하고 하린이 데려오면 돼. 그 애도 너한테 마음 있는 것 같던데? 둘이 늘 붙어 다니잖아.”그녀는 이미 여러 번 그들의 스캔들을 봤지만 모른 척 눈감아왔다.누가 봐도 아들이 박하린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그게 아니면 어떻게 모든 공식 석상마다 박하린을 데리고 다니겠는가?그토록 훌륭한 여자를 놔두고 최수빈 같은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진서령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참에 며느리를 바꿔야지.’“너희 할머니도 이 일로 몹시 화가 나셨어. 그래서 너희 둘에게 거리를 두라고 한 거잖니. 솔직히 말해 봐라, 네 마음속에 아직 하린이가 있는 거지?”주민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제 인생을 다 엄마가 정해 주신다면 전 도대체 왜 살아야 하죠?”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진서령은 그 한마디에 얼어붙었다.“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 다 너 잘되라고...”“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이 말에 진서령의 눈빛이 순간 환해졌다.곧 박하린을 맞이할 생각이 있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됐어. 이제 하린이랑 계속 좋은 관계만 유지하면 돼.’“이제 보니 넌 진작에 다 생각을 해놨던 거구나?”...주민혁 일행이 떠난 뒤, 권우진은 잠시 묵묵히 최수빈을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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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그렇게 최수빈은 심종연과 함께 숙소를 예약했다.같은 층의 방으로 잡았는데 업무 관련 미팅이나 협의가 많을 테니 서로 오가며 이야기하기 편하도록 한 것이었다.이 소식을 들은 송미연은 직접 차를 몰아 그녀를 공항까지 데려다줬고 주예린은 이틀 동안 이혜정에게 맡기기로 했다.“심 대표님이랑 단둘이 출장이라니. 이런 기회 흔치 않다?”송미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 출장은 철저히 업무일 뿐이야. 기술팀도 같이 가.”“그런데 말투가 왜 이렇게 아쉬운 것 같지? 혹시 다른 팀원들 때문에 심 대표님이랑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을까 봐 그러는 건 아니지?”송미연이 장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자 최수빈은 옆을 돌아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연아, 나 지금 연애할 생각 없어. 이번 출장은 정말 일이야. 순전히 업무 때문에 가는 거라고.”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송미연은 시시하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알았어, 알았어. 그냥 잠깐 상상해 본 거야.”그러더니 팔짱을 끼며 투덜거렸다.“그런데 인생 짧잖아. 혼자 버티는 것도 좋지만 마음 기댈 사람 하나쯤 있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지 않겠어? 게다가 난 네 저번 결혼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 아파. 그때 너무 힘들었잖아. 그래서 혹시 사랑에 완전히 실망해서 평생 혼자 살 생각하는 건 아닌가 걱정돼.”송미연의 말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그만큼 최수빈이 그 결혼에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심종연처럼 능력 있고 다정한 남자에게조차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앞으로 정말 괜찮을까 싶었던 것이다.최수빈은 잠시 멈춰서서 손에 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잡았다.깊게 숨을 들이쉰 뒤, 진지하게 송미연을 바라봤다.“미연아, 네가 나 걱정하는 거 알아. 지난 결혼에서 힘들었던 것도 맞고. 하지만 인생에는 사랑이나 결혼 말고도 중요한 게 많아. 그게 없다고 해서 인생이 덜 행복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마.”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감정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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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또 보네요.”검은 셔츠 차림의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더니 자연스럽게 최수빈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최수빈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심종연은 원래 매너가 좋은 사람이니 그런 행동쯤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그는 캐리어를 끌며 호텔 쪽으로 걸어가면서 일정에 대해 말했다.“내일 아침 7시에 출발하는 차량 예약해 뒀어요. 해성시 리조트 근처에서 현장 조사를 진행할 거고 아마 그쪽에서 하룻밤 묵게 될지도 몰라요. 세면도구랑 여벌 옷은 챙겨오세요.”출장 일정은 총 3일이었다.“네, 알겠습니다.”최수빈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짧은 한마디로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호텔 객실 층에 도착하자 그녀는 심종연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들었다.“심 대표님, 늦은 시간에 일부러 마중까지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많이 늦었으니까 푹 쉬세요. 내일 아침에 뵙죠.”심종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일 아침, 같이 조식 드실래요?”‘어차피 같이 일할 텐데 조식도 같이 먹고 출발하는 게 낫지.’최수빈은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해성시는 조식 메뉴가 다양하던데 제가 대접할게요.”그러자 심종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럼 기대하겠습니다.”...다음 날 아침, 최수빈은 심종연을 데리고 새벽 조식거리를 찾았다.해성시는 관광 도시답게 아침 식문화로도 유명했는데 현지 사람과 관광객이 뒤섞인 활기찬 시장 거리에서 따뜻한 국물과 갓 구운 빵 냄새가 흘러나왔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바로 차량에 올라 리조트 쪽으로 향했다.“이쪽 지역에 대해서 꽤 잘 아시네요.”운전석 옆에 앉은 심종연이 웃으며 말했다.“오늘 아침,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태블릿으로 자료를 확인하던 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네요. 지난번 제원에서 저희 팀 많이 챙겨주셨잖아요. 그냥 조식 한 끼인데 너무 감사해하실 필요 없어요.”그녀의 말투는 공손했고 표정은 늘 그렇듯 온화했다.하지만 그 따뜻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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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고개를 들자, 두 남녀가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자연스러운 스킨십과 함께 서로를 향한 표정까지 다정했다.최수빈은 그저 흘깃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뒀다.그러고는 마치 못 본 사람처럼 묵묵히 서류를 정리했다.주민혁은 얼마 전 박하린이 주상 그룹 창립기념 행사 기획을 맡겠다고 나선 걸 거절했었다.그녀의 성격상 분명 기분이 상했을 테니 이렇게 리조트로 휴가를 데려와 풀어주려는 모양이었다.이 정도로 챙겨주는 걸 보면 결혼도 머지않아 보였다.심종연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주 대표님, 박하린 씨랑 리조트로 휴가 오셨나 보네요?”그 말에 발걸음이 잠시 멈추더니 주민혁의 시선이 천천히 두 사람 쪽으로 옮겨졌다.박하린은 최수빈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긴 자의 미소였다.‘민혁 오빠는 언제나 내 편이지. 나랑 최수빈의 싸움에서 난 늘 승자라고.’결국 최수빈은 그렇게 오랜 세월 주민혁을 위해 헌신했지만 얻은 게 없었다.이혼 후에도 아무런 보상도 남지 않았다.반면 자신은 귀국한 지 겨우 두 달 만에 원하는 건 뭐든 손에 넣었고 주민혁은 박하린이 부탁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들어줬다.“네.”주민혁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심 대표님은 요즘도 바쁘시죠? 하시는 일이 참 다양하다고 들었습니다.”“에이, 주 대표님처럼 대단하지는 못하죠.”심종연은 미소를 띤 채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아버지께서 든든한 정치인이시고 물려받은 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편하시겠어요. 저희야 하루하루 뛰어다니며 벌어먹는 인생이라 쉴 틈도 없죠.”듣기에는 부드러운 말이었지만 속에는 묘한 날이 서 있었다.“주 대표님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이렇게 저도 여유롭게 여성분과 여행 다닐 시간이 좀 생겼을까요?”아무리 들어도 비아냥처럼 들리는 말에 박하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하지만 정작 뭐라 꼬집을 만한 대목은 없었다.“저랑 민혁 오빠는 오랜 친구 사이예요. 심 대표님처럼 남녀 간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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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주시후는 주씨 가문의 사실상 차기 후계자였다.그런 딸의 친모인 박하린이 주씨 집안으로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반면 최수빈은 이제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그래서였을까?박하린은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았고 한마디 한마디, 노골적으로 최수빈의 체면을 짓밟았다.한때 그녀가 ‘주민혁의 아내’라 불리던 시절은 이미 끝났고 이제 그 이름에는 아무런 가치도 남지 않았다.사람들은 그녀를 동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았다.박하린의 말이 길어질수록 최수빈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그녀가 말하는 모든 ‘속뜻’을 모를 리 없었고 이번이 처음으로 도발하는 것 역시 아니었다.결혼 기간 내내 박하린은 끊임없이 선을 넘어왔기에 지금의 도발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최수빈의 눈에는 그저 시끄럽게 날뛰는 광대 하나가 보일 뿐이었다.곧 최수빈은 시선을 돌려 담담히 말했다.“심 대표님, 저희는 장비부터 정리하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리조트 입구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는데 심종연은 그녀의 캐리어를 대신 들고 최수빈은 여러 개의 가방과 측정 장비를 직접 들고 있었다.이번 일정은 지질 탐사와 신소재 실험이 목적이었기에 그녀는 다양한 측정 도구와 샘플을 챙겨왔고 전부 무겁기 짝이 없었다.“너무 무거우면 내려놔요. 기술팀 올라오면 같이 옮기면 되니까.”심종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남에게 짐을 맡기거나 부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최수빈이 고개를 저었다.그때, 주민혁은 그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봤다.손에 힘을 주며 들고 있는 그녀의 팔에는 푸른 힘줄이 선명히 드러났다.확실히 장비는 여자의 체구에 비해 버거운 무게였다.곧 그는 말없이 다가와 최수빈의 손에서 장비 가방을 빼앗듯 들어 올렸다.“몇 층이야?”언제나 그렇든 주민혁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굳이 허락을 구하지도,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았다.“18층이에요.”최수빈은 잠시 그를 보다가 덤덤히 말했다.“공짜 노동이라면 환영하지만 사후 조건 협상은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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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주민혁은 짐을 18층에 올려놓고는 박하린과 함께 내려갔다.둘 사이에는 불필요한 말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마치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이 잠시 도와준 것처럼, 그저 스쳐 가는 인연 같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종연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주 대표님이랑 꽤 친해 보이네요. 전 그분이 남 짐 들어주는 건 처음 봅니다.”최수빈은 시선을 내리며 물건을 방 안으로 옮겼다.심종연의 말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냥... 주 대표님이 워낙 친절하신 거죠.”심종연은 그 말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도와 짐을 안으로 옮기며 말했다.“오늘 밤에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리조트라 해도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도 거의 없거든요. 인적 드문 곳이라 혼자 방 쓰실 때는 조심하셔야 합니다.”리조트는 늘 외진 곳에 위치한다.성수기가 아니면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고 그만큼 적막하고 그래서 위험할 수도 있었다.“호텔 안에 있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요.”최수빈은 미소를 지으며 심종연을 안심시켰다.그의 걱정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심종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주세요. 같이 출장 온 이상, 제 역할은 수빈 씨의 안전을 지키는 거니까요.”“고마워요.”최수빈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이제 늦었으니 대표님도 얼른 들어가 쉬어요.”오늘 하루, 그는 여러모로 그녀를 도와주었다.하지만 그 지나친 배려가 조금은 부담스러웠고 최수빈은 남자의 그런 따뜻한 태도에 익숙하지 않았다.평소의 삶에서 최수빈이 만나는 남성은 극히 드물었다.그녀의 시선과 마음은 늘 주민혁 한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었고 다른 남자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심종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그렇게 그가 떠난 뒤, 방 안에는 오직 최수빈 혼자만 남았다.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피곤했던 그녀는 문을 잠그고 옷을 정리한 뒤 욕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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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얇은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며 휘날리고 방 안에는 희미한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 조명 아래의 공간은 유난히 싸늘했고 묘하게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최수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고 두꺼운 암막 커튼을 당기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손이 멈췄고 몸이 굳은 채로 시선이 창밖 한곳에 고정됐다.밤하늘 어딘가에서 붉은빛이 깜박거리고 있었다.핏빛처럼 짙고 묘하게 불길한 불빛이었다.그녀가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봤지만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피곤해서 착각했나?’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스스로를 다독였다.며칠째 이어진 출장 일정에 피로가 누적된 탓일 거라 여기며 최수빈은 깊게 숨을 내쉬고 커튼을 완전히 닫은 뒤, 침대로 몸을 던졌다.하지만 밤새 잠이 오지 않았고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그 붉은 불빛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마치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낯선 호텔의 적막함이 괜히 더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이런 곳에서 혼자 밤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깊이 잠들지 못했다.희미한 새벽빛이 커튼 사이로 비쳐 들자 최수빈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커튼을 열었다.그리고 어젯밤 그 붉은 불빛이 깜빡이던 방향을 바라봤다.전봇대 위에는 작은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호텔 보안을 위한 CCTV였는데 모든 방향을 감시하도록 설치된 장치였다.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냥 CCTV 카메라였구나. 괜히 예민했네.’그녀는 스스로를 달래며 고개를 저었다.‘누구한테 원한 살 만한 일도 없는데... 누가 날 지켜보겠어?’그때, 갑작스러운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울렸다.깜짝 놀란 최수빈은 몸을 돌리며 문 쪽을 바라봤다.“누구세요?”“저예요.”문밖에서 심종연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미안해요. 어젯밤에 도둑이 들었다고 해서요. 수빈 씨 방 근처였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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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최수빈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괜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그녀의 완곡한 거절에 심종연은 살짝 입술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래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전화 주세요.”그의 태도는 늘 그렇듯 신사적이었다. 억지로 나서지도, 불필요하게 다가서지도 않았다.최수빈은 그 일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출장을 다니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쯤은 생기기 마련이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그걸로 충분했다.그날, 그녀와 심종연은 기술팀과 함께 인근 산속으로 탐사에 나섰다.산속의 공기는 축축하고 싸늘해 얇게 입은 옷 사이로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춥죠? 차에 여분의 외투가 있는데 가져다드릴까요?”심종연이 물었다.그러자 최수빈은 팔을 안고 손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부탁드릴게요.”그는 바로 사람을 시켜 외투를 가져오게 했다.그녀는 코끝이 시큰할 만큼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묵묵히 메모를 남기며 하나하나 직접 측정하고 확인했다.일할 때의 최수빈은 집중력이 대단했다.탐사가 끝났을 때는 이미 오후 다섯 시가 훌쩍 넘었었고 해가 저물며 하늘은 붉고 주황빛으로 물들었다.산등성이에 깔린 석양은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웠다.그 광경이 마음에 들어 최수빈은 무심코 휴대폰을 꺼내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그 모습을 본 심종연이 미소를 지었다.“풍경 좋아하나 봐요? 사실 이 리조트 쪽에는 꽤 경치 좋은 곳들이 많거든요. 출장 끝나고 이틀쯤 머물다 가도 좋을 텐데...”“아니요.”최수빈은 휴대폰을 넣으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돌아가면 처리할 일이 많아서요.”오늘이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고 내일은 새벽 첫 비행기로 은산시에 돌아가야 했다.집에 혼자 남아 있는 딸이 마음에 걸리는 탓에 일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그들은 함께 차에 올라 호텔로 향했다....한편, 호텔.진승우는 그들이 이 근처로 출장 왔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그 시각, 주민혁은 일에 매달려 있었고 박하린은 호텔 1층 카페에서 커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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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인생에는 분명 지름길이 있다. 그 길을 택할 수도 있고 각자 노력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진승우는 여전히 최수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그의 눈에는 남자에게 기대 출세하려는 여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경멸스러운 부류였다.그런 여자는 아무리 겉으로 치장해도 속은 텅 비어 있다고 믿었다.그가 속한 상류 사회에서는 이런 여자들이 가장 천대받는 존재였으니 말이다.진승우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 여자 얘기는 됐어요. 이름만 들어도 기분 나빠요. 어차피 하린 씨한테 아무 위협도 안 되잖아요. 우리 프로젝트가 곧 완성되니 며칠 뒤 열릴 투자 설명회 준비나 잘하자고요.”그와 박하린은 합이 제법 잘 맞았다.박하린처럼 능력 있고 판단 빠른 여자와 일하니 일도 훨씬 수월해지는 것 같았다.그녀 덕분에 번거로운 절차도 많이 줄었고 결정 하나하나가 명쾌했다.박하린은 커피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건 물론 좋은 일이죠. 하지만... 엄마 회사도 걱정이에요.”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이번 일 끝나면 엄마 쪽 일도 챙겨야겠어요. 결국 그건 우리 박씨 가문의 산업이니까요.”이혜정과 지규원이 손을 잡은 이상, 두 사람은 철옹성처럼 견고한 벽을 세운 것과 다름없었다.어떤 기업도 쉽게 파고들 수 없기에 박하린은 그 틈을 뚫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프로젝트가 화려하게 성공하면 지규원 같은 사업가도 내 체면을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거야.’“사업 문제라면 민혁이 형 의견을 들어봐요.”진승우가 말했다.“형이 이런 분야에서는 경험이 많잖아요.”“그래야겠네요.”박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빙긋 웃었다.“이제 슬슬 가요. 민혁 오빠 일 끝났을 테니까, 같이 저녁 먹자고 하죠.”최수빈 따위는 박하린에게 있어 그 어떠한 위협도,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저 남자 힘으로 잠시 빛을 본 여자에 불과했으니 말이다.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 미모도 사라질 테니 지금 심종연 곁에 있다 한들 크게 문제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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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남자는 거의 반사적으로 최수빈을 품에 끌어안은 채 분수대 밖으로 나왔다.두 사람의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고 물이 스며든 천이 무겁게 몸에 달라붙어 불쾌할 정도로 축축했다.최수빈은 몇 차례 물을 들이켜며 숨을 고르다가 거칠게 기침을 했다.하여 창백한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심종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그녀의 등을 다독였고 그 모습을 본 진승우는 비웃듯 말했다.“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그냥 살짝 빠진 거잖아요. 또 누구 보여주려고 그러는 건데요?”“심 대표님, 꽤 자상하시네요. 여태껏 그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저희도 충고 하나 할게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좋은 사람이요?”심종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승우를 쳐다봤다.“저도 눈 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가 알아서 판단하죠.”말투는 냉정하고 단호했다.“주 대표님 산하의 지사에서는 이런 사람을 관리자로 두나요? 사고방식이 이렇게 저급해서야... 주 대표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이네요.”순간 주민혁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전보다 훨씬 차가워진 것 같았다.진승우의 표정 또한 이내 굳어버렸다.“전 그냥 좋은 마음으로 충고 좀 한 건데 그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네요.”그가 버럭하자 박하린이 중간에서 부드럽게 말을 이어받았다.“괜찮아요. 심 대표님도 결국은 알게 되겠죠. 시간이 지나면 저분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드러날 거예요.”결국 미인계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여자 아닌가? 심종연은 똑똑한 사람이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를 알아보게 될 것이라 여겼다.진짜 실력 있는 사람과 겉만 번지르르한 빈껍데기의 차이를 말이다.그러나 그때, 물에 젖은 최수빈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박하린을 바라보았다.“왜 발 걸었어요?”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박하린의 손이 잠시 굳었다.진짜로 그럴 줄 몰랐다는 듯,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사실 이건 박하린이 일부러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해 벌어진 소동이었다.최수빈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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