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591 - Chapter 600

604 Chapters

제591화

그 순간, 박하린은 마치 누가 목을 움켜쥔 듯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사로잡혔다.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목이 바짝 조여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아니 애초에 뭘 물어야 할지도 몰랐다.손에 쥐고 있던 컵을 조용히 움켜쥔 채 옆에 앉은 남자를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민혁 오빠... 방금 뭐라고 했어...?”주민혁의 눈빛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고 차가울 만큼 무표정했다.“충분히 분명하게 말했을 텐데?”바로 그 순간이었다. 박하린은 모든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그의 본모습은 다정도, 애정도 아닌 철저한 냉정함과 무관심이 점철된 것이었다.최수빈도, 자신도 그 남자의 연민 따위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이렇게까지 박하린이 망가진 지금 이 순간에도 주민혁은 여전히 그러했다.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기회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이미 세 사람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누구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최수빈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박하린의 마음을 더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감옥에 끌려가는 것보단 이 자리에서 수치심 한 번 겪는 편이 훨씬 나았다.박하린은 이를 악물었다.표정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도 마지못한 듯 억눌려 있었다.“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예전에 했던 일들...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래요.”최수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박하린은 늘 오만했고 그런 그녀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누가 뭐라 해도 중심을 잡고 절대 무너지지 않던 여자가 지금은 정말 벼랑 끝에 서 있었다.최수빈의 눈빛은 여전히 잔잔했는데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그게 전부예요?’박하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평생 꼿꼿하던 등과 허리는 그 순간 완전히 꺾였다.그렇게 박하린은 무릎을 꿇었고 최수빈은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
Read more

제592화

“민혁 오빠...”박하린이 입을 열었다.“나 좀 도와줘. 시후는 엄마 없이 살 수 없어.”주시후를 언급하며 그녀는 결국 주민혁까지 끌어들여 함께 수모를 감내하려 했다.속으로는 자신이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다는 걸 감지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돌아갈 길도 없었고 믿을 사람도 없었다.그래서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가능할지도 모르니까...주민혁은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과?”최수빈이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보아하니 주 대표님은 그다지 도와줄 생각도 하린 씨를 아끼는 마음도 없는 것 같네요.”주민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받아쳤다.“그 정도는 그래도 보이나 보네. 얼마나 더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그의 말에 최수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저 말이 무슨 뜻인지, 무엇을 암시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박하린이 급하게 끼어들었다.“수빈 씨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했잖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 날 도와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이 해줄 수 있어요.”이 고비만 넘긴다면 그다음은 그녀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최수빈 같은 존재는 그때 가서 다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배신이란 기회만 되면 누구나 하는 거 아닌가?여기까지 와버린 이상, 그녀는 더 비굴한 말도, 태도도 취할 수 있었다.최수빈은 다시 한번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정말 순진하네요. 해외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화국 법을 잊은 거예요? 이건 국가 기밀과 관련된 일이에요. 내가 하린 씨를 용서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 없다고요.”참 안쓰럽고도 우스운 여자였다.그 말을 듣는 순간, 박하린은 온몸에 전기가 흐른 듯 멍해졌다.그러고는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그 일 아직 결론도 안 났는데 언제부터 국가 기밀 운운할 정도로 커졌다는 거지? 그냥 최수빈이 나도 연구에 함께한 사람이다, 우리 팀 내부의 문제다
Read more

제593화

그 대상이 자신이라고 박하린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은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난... 오빠한테 어떤 잘못도 한 적 없다고 생각해....”목이 타들어 가듯 마르고 저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정말... 날 이렇게까지 짓밟아야겠어?”‘안 도와주는 건 그렇다 쳐도 최수빈 앞에서 수모를 당하도록 일부러 데려오기까지 하다니...’최수빈은 그 모든 장면을 무표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마치 이 두 사람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는 듯 냉담하고 멀찍이 떨어진 눈빛이었다.하지만 그 상황이 최수빈의 감정을 움직일 리는 없었다.순간, 주민혁이 문 쪽을 힐끔 쳐다보았고 곧장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묘한 리듬의 노크 소리였다.박하린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가슴이 묘하게 쿵 하고 내려앉았고 등에 소름이 돋는 듯한 불길함이 스쳤다.“계속 얘기해봤자 의미 없겠지. 난 이제 내 방식대로 해볼게.”그녀의 직감은 외쳤다. 더는 이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말을 이어간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억울함을 토로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그렇게 박하린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던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몇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안으로 들어왔다.선두에 선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안녕하세요, 국가안보국에서 나왔습니다.”박하린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아 눈을 크게 뜨며 그들을 바라봤고 속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박하린 씨 맞으시죠?”남자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관련 법률에 따라 귀하가 국가안전 위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어 국가 기밀 누설 혐의로 현재 법에 의거해 출석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지금 즉시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조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박하린의 얼굴은 금세 핏기가 사라졌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에 앉아 있는 주민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게... 대체 뭐야?”“잠깐
Read more

제594화

주민혁은 처음부터 이 일에 어떤 여지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불러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고는 단숨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아무 이유 없이 모욕을 당하게 했고 가느다란 가능성의 불씨조차 손으로 눌러 꺼버렸다.그 순간, 박하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심리적 방어선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을 듯했다.이런 결말도, 그리고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게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여기까지 왔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빛나는 미래가 있었고 함께 갈 길도 명확했다.그런데 지금은 왜...박하린은 억울함이 섞인 웃음을 지었다.‘주민혁의 아버지는 주기훈, 주씨 가문은 정치적 배경도 탄탄하고 인맥도 넓어.그런 그 사람이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지 몰랐을 리가 없지.’주민혁은 조용히 일어섰다.“하지 말아야 할 줄 알면서도 했잖아. 그에 따른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지.”눈빛은 차가웠고 너무도 낯설었다.이에 박하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민혁 오빠, 우리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거지? 우리 예전에는 정말 좋았잖아.”곧 주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사람인 그녀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몰락할 수 있단 말인가.“지금 네가 하는 이 행동... 나중에 시후가 크면 원망하게 될 거야.”설령 구속된다 해도, 그녀의 아들은 여전히 주씨 가문에 있다. 그리고 언젠가 박하린은 다시 세상 밖에 나올 수 있었다.그때, 룸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자신을 힐끔 바라보자 주민혁은 말없이 등을 돌린 채 손을 휘저었다.그 신호와 동시에 박하린은 강제로 끌려가기 시작했다.그녀는 절규하며 저항했고 주민혁을 향해 소리쳤다.“민혁 오빠! 제발! 날 도와줘!”그때, 함께 온 공무원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정말 무고하시다면 저희는 억울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단지 조사에 협조해달라는 것이고 판결이 난 게 아
Read more

제595화

최수빈은 이제 그 지난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그들이 서로를 아끼는 척하며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 누가 봐도 천생연분이라며 칭찬받던 두 사람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봐야 했던 시간들이 수두룩했다.그 당시 최수빈은 주민혁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 사랑이 깊을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매 순간에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몇 배로 불어났다.하여 지금 주민혁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 상처들은 결코 아물지 않았고 그 어떤 시간도 최수빈의 용서를 끌어낼 수는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면 제발 앞으로도 나한테 이런 역겨운 일은 하지 마요.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으니까. 그럼 끝까지 깨끗하게 끝내요.”주민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깊게 바라봤다.“깨끗하게 끝내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 최수빈, 우리 이제 다 성인이잖아. 어린애처럼 감정 섞인 말 좀 그만하지 그래? 모든 걸 그렇게 똑 부러지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네가 우리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고 싶다 해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 그 흔적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남아 있어. 그건 네가 지우고 싶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야.”사람이 한 번 인연을 맺었다면 설령 끝났다고 선언한다 해도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돌아가기는 어렵다.‘완전한 끝맺음’이란 건 결국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최수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감정 섞인 말이라고?’그녀는 차갑게 웃었다.“내가 하는 말이 전부 감정 섞인 말로만 들려요? 대체 민혁 씨는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내가 민혁 씨한테 마음이 있어서 감정 섞인 말이나 던지는 거로 보여요?”“감정이라는 건 민혁 씨가 나한테 여전히 중요한 존재일 때만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내가 민혁 씨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내가 민혁 씨랑 이혼한 게 감정싸움 때문이라고 믿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민혁 씨도 마찬가지로 어른이잖아요. 이혼이 뭘 의미하는지 그 정도는
Read more

제596화

서로 완전히 소통이 안 되는 상태였다.최수빈은 주민혁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어쩌면 그런 의미였을지도, 혹은 전혀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녀는 이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언제까지고 애매하고 불분명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고 그녀는 주민혁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오늘 그가 한 모든 행동도 어떤 해명을 하려는 의도라고조차 믿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굳이 따지자면 최수빈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해석은 무언가를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그 어떤 해명도 듣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한마디 한마다 모두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앞으로는 서로 남남이 될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그녀를 바라보는 주민혁의 눈빛 속에는 어떤 감정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천천히 오래도록 바라볼 뿐이었다.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지만 어딘가 그 속은 요동치는 것 같기도 했다.최수빈은 그의 속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침묵할 때조차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이미지 관리라도 하려는 거예요?”그러자 주민혁이 천천히 웃으며 물었다.“네 눈에는 내가 대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데?”아마 그의 입장에서는 오늘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최수빈이 고마워하고 감동이라도 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하지만 돌아온 건 그녀의 냉담한 반응뿐이었다.최수빈은 자신이 원하는 정의는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 방식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다.설령 주민혁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그게 중요한가요?”최수빈이 차갑게 되물었다.“내 눈에 민혁 씨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그는 한 번도 이런 걸 중요하게 여긴 적 없이 늘 냉담했고 언제나 무심했다.그에게는 모든 관계가 그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차갑고 잔인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어
Read more

제597화

“...”늘 침착했던 그녀의 마음에 그 순간 잠시 금이 갔다.조금 전까지 그렇게 진심을 담아 얘기한 모든 말이, 그의 눈에는 결국 ‘질투’라는 한마디로 귀결된 건가?차갑게 굳은 얼굴로 일어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담담한 눈빛으로 주민혁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내뱉었다.“질투하긴 개뿔.”이 말을 끝으로 최수빈은 그대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이런 남자와 더 얘기할 이유도, 시간을 낭비할 가치도 없었다.주민혁은 그녀가 돌아서는 뒷모습을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나?’클럽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박하린이 국가안보국 요원들에게 끌려가던 장면이 최수빈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오늘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는 결국 이 장면을 직접 보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하지만 정작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눠보면 늘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아니, 풀리지 않는 게 아니라 최수빈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애초에 이 문제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얼버무리거나 슬쩍 피하거나 항상 그랬다.말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고 행동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그와 부딪힐수록 최수빈은 깊은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꼈기에 모든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추측하고 싶지 않았다.과거에는 주민혁의 감정을 짐작하느라 진이 다 빠졌고 그게 반복될수록 그녀 자신도 지쳐갈 뿐이었다.그 일 이후, 박하린이 끌려간 사건에 대해 최수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건 이미 국가기밀에 속한 일이었으니 말이다.천공 연구원에 도착해보니 먼저 도착한 육민성이 연구실 문을 열며 말을 걸었다.“요즘 일 많을 텐데 의외로 이렇게 매일 아침 일찍 나오네?”최수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바쁜 게 뭐가 있겠어요.”“박하린 말인데, 이번에는 정말 끝장났지 않나? 그래도 좀 협조해서 진술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육민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최수빈은 시선을 내린 채 손에 들린 작업을 이어갔다.“필요하다면 위에서 연락 오겠죠.”“그
Read more

제598화

‘너무 지친다...’주민혁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지치는 일이었다.“솔직히 이제는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앞으로 내 인생에서 주민혁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육민성은 두어 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 사람만 너와 엮이고 싶어 한다면 너희 둘 사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야.”최수빈은 순간 말을 멈추며 몇 초간 침묵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그 사람이 나랑 엮이고 싶어 한다고요?”마치 어처구니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한 반응이었다.주민혁은 그녀를 미워해도 모자란 사람이었다.삶의 사소한 구석구석을 떠올려봐도 그가 자신과 얽히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육민성이 말했다.“됐어, 이 얘기는 더 해봤자 끝도 없고 답도 안 나와. 그만하자.”최수빈은 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선배, 선배는 가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그래, 나도 그러길 바라.”...그날 저녁, 최수빈은 퇴근 후 딸을 데리고 보석 가게에 들렀다.원금영 생신에 드릴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주예린이 고운 눈망울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도 증조할머니한테 선물 드리고 싶은데 엄마, 나도 같이 봐도 돼요?”원금영은 주예린을 늘 각별하게 아꼈고 주예린도 나이는 어리지만 감사할 줄 아는 아이였다.증조할머니 생신인데 당연히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최수빈은 고개를 숙여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같이 보자.”그러자 주예린은 입꼬리를 환하게 올리며 해맑게 웃었다.“아직 어리니까 비싼 건 못 사지만... 할머니가 드실 수 있는 맛있는 걸 사 드리고 싶어요.”최수빈은 그런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이토록 착하고 속 깊은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좋아.”그녀는 주예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방학 때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할머니 생신 지나고 나서 엄마가 데려가 줄게.”이에 주예린의 눈빛
Read more

제599화

주예린은 눈썹을 찌푸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입을 열지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엄마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걸,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엄마는 이 남자를 무척 싫어했다.그래서 주예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응도 하지 않았다.그것이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저항이자 단호한 거절이었다.최수빈은 그런 딸을 자신의 등 뒤로 조심스럽게 끌어당기더니 말투도 표정도 차갑게 했다.“더 이상 볼일 없으면 돌아가세요. 저랑 제 딸 방해하지 마시고요.”최진식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눈앞의 이 여자는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애초에 자기 딸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그래도 내가 네 아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비록 우리 사이에 정이 깊지 않다 해도 네가 지금 이만큼 성공한 건 내 유전자의 덕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잖아?”그는 또박또박,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세상 그 어떤 것도 혈연은 못 끊어. 아무리 네가 씻어내려 해도 네 몸에는 내 피가 흐르고 있어. 내가 어떤 인간이든 넌 결국 내 딸이야.”최수빈은 눈빛을 가라앉혔다.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혐오감이 복받쳤다.그는 평소에는 찾아오지도 않았고 오직 무슨 목적이 있을 때만 이렇게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것도 아마 이유는 뻔했다.“나는 지금도 하린이를 내 딸처럼 생각해. 어떻게 보면 너희 둘은 자매나 다름없는 사이잖아?”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수빈은 뒷목에 싸한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불쾌감이었다.“너는 네 동생이 감옥에 들어가는 걸 그냥 두고 보겠단 말이야? 하린이는 너처럼 미래가 창창한 애야. 밝은 앞날이 기다리고 있었다고!”최진식은 눈썹을 찌푸렸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애한테 네가 가진 자원과 인맥이 있었다면 넌 상대도 안 됐을 거다. 너는 눈 뜨고 과학계의 천재가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최수빈은
Read more

제600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이 바짝 굳더니 최수빈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좋게 얘기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건 너야. 처음부터 정식으로 대화를 나눴다면 내가 이런 방식으로 협박하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내가 네 약점 쥐고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네 엄마는 이혼을 원하지만 나는 싫어. 그래서 이렇게 몇 년을 질질 끌어온 거고.”“하지만 지금 네가 조금만 손을 써준다면, 기꺼이 이혼에 응할게. 그 재산들도 다 포기할 수 있어.”최수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최진식을 노려보았다.“조윤미 씨랑 박하린이 아빠한테 뭘 줬어요? 도대체 뭘 받았기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죠?”최진식은 이제는 이혼 이야기까지 꺼내며 거래를 하려 들었다.평생 욕심내던 재산도 포기할 수 있다며 박하린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단 말투였다.최진식은 분명히 최수빈의 약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엄마가 수년째 이혼을 원했지만 그는 절대 응하지 않았고 그들의 오랜 결혼 생활은 수많은 재산과 문제들로 얽혀 있었다.만약 이혼이 진행된다면 분명 집안 재산의 절반은 최진식의 손에 들어갈 터였다.그런데도 그는 이혼을 거부해왔었는데 결국 지금은 이혼을 협박의 카드로 쥐고 나온 것이었다.겁날 게 없으니 저토록 당당하고 무례한 태도도 가능한 것이었다.최수빈은 이를 악문 채 차가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계속 말 없으면 난 네가 동의한 거로 간주할 거야. 공식적인 문서로 계약서도 쓸 수 있어. 조건은 단 하나, 하린이만 무사히 나온다면, 나도 이혼할게.”최수빈은 조용히 말했다.“박하린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네요.”그 말에 최진식의 눈썹이 꿈틀했다.최수빈의 표정이 지나치게 평온하고 담담했는데 그 침착함이 오히려 최진식을 흔들었다.“하린이는 너보다 훨씬 효도하고 훨씬 내 딸로서 잘 어울려. 게다가 넌 이미 성공했잖아. 굳이 하린이까지 밟고 올라가야 하겠니?”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자신의 친아버지가, 박하린을 위해선 뭐든지 하겠
Read more
PREV
1
...
56575859606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