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581 - Chapter 590

604 Chapters

제581화

병실 안은 어느새 둘만 남겨졌고 주선웅과 주민혁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형 다친 거 참 이상해. 타이밍이 절묘하잖아.”주선웅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여기서 이상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누가 한 짓인지 차라리 조사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주민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투는 느긋했지만 의지는 분명했다.“지금 바로 알아볼게.”주선웅은 주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막 병실을 나가려는 그를 향해 말했다.“사실 넌 나 보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보러 온 거잖아.”그 말을 들은 주민혁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그러자 주선웅은 죽을 한 입 떠먹으며 가볍게 웃었다.“네가 수빈이한테 상처 줬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러니 내가 자연스럽게 수빈이 곁을 지키는 거고.”주민혁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형의 일이지 나랑은 상관없어.”이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돌아서 병실을 나가버렸다.그리고 주선웅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깊게 바라보았다.“그때 일이야 어차피 서로 원해서 된 것도 아니었고 몇 년 동안 수빈이랑 결혼 생활을 이어온 너도 꽤나 고생이었겠지.”그때 주민혁이 최수빈과 결혼하게 된 건 분명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주씨 가문에서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주민혁은 그 말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병실을 나가 사라졌다....병실을 나온 후, 최수빈은 병원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511연구원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이후, 처리해야 할 업무가 줄줄이 밀려 있었고 천공과 해외 기업 간의 협력 또한 교섭하고 조율할 일이 많았다.그뿐만 아니라 그녀 개인적인 문제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차량 문을 열려던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이에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든 최수빈은 익숙한 그 남자의 깊고 검은 눈동자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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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아마 마지막에는 결국 몇 년쯤 감옥살이를 하게 될지도 몰랐다.박하린의 머릿속은 지금 한없이 복잡하고 어지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온통 어젯밤 그 남자의 차가운 표정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태도만이 맴돌고 있었다.그 생각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은 끝없이 불안해졌다.오늘 아침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고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불안한 마음을 누르지 못한 박하린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계속해서 들여다보며 전화가 왔는지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도 원하는 결과가 없었고 어느덧 시간은 아홉 시에 가까워졌다.심지어 박하린은 경찰 쪽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먼저일까 봐 더 두려웠다.그렇게 되면 조사 협조 요청이 들어올 테고 그 시점에서 체포가 된다면 이후에 사람을 써서 빼내오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었다.그때 조윤미가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다.“아직도 방법 못 찾은 거면... 내가 이미 비행기 표 다 끊어놨어. 당장 공항으로 와. 해외로 나가면 아직 기회가 있을 거야. 만약 네가 진짜 경찰 쪽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땐 모든 게 끝장이야.”“지금 출국하면 너는 아직 깨끗한 몸이야. 아무 문제도 없어. 국내에서 벌어진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방법도 찾을게. 너는 잠깐 피신만 하면 돼.”이 상황에서 해결이 안 된다면 해외로 나가는 게 가장 간단하고 빠른 해법이었다.조윤미는 힘들게 키운 이 우수한 딸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겨우 한 대회에서, 고작 표절이라는 혐의 하나로 박하린을 완전히 무너뜨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지금은 넘어졌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박하린만 무사히 바깥에 나가 있기만 하면 된다.푸른 산만 남아 있다면 땔감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딸이 하나 뿐인 데다 조윤미는 이제 나이가 들어 능력도 한계에 다다랐다.하지만 박하린은 달랐다.그녀에게는 앞으로의 미래가 있었고 설령 해외로 나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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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박하린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 사람이 정말 나를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면 어떻게 나를 여기까지 도와줬겠어요? 내가 귀국한 뒤에 모든 길은 그 사람이 하나하나 깔아준 건데.”그러자 조윤미가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네가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지. 상업적으로도 쓸모가 있었고. 하지만 이제 그 가치를 잃었잖아? 어디 한번 보자고. 걔가 널 계속 챙겨줄지, 아니면 버릴지.”사업가란 이익이 우선인 사람들이다.이익이 없어진 순간, 버림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난 오늘 하루만 기다릴 거야. 걔랑 어떤 결론도 못 냈다면 당장 나한테 연락해. 출국시켜줄 테니까. 그게 너한테 남은 마지막 출구야.”박하린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에게 퇴로를 남겨두는 건 분명 나쁜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주민혁이라면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오늘 자신을 어떤 ‘해결 가능한 사람’에게 데려가기로 했다는 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주민혁은 그런 확신 없이 무턱대고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이 일은 저도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그렇게까지 걱정 안 해도 돼요.”박하린은 입술을 꾹 다물고 말했다.“그래도 엄마가 내 퇴로를 마련해뒀고 혹시 모를 대비도 해뒀다는 건 알아요. 분명 비행기로는 출국 못 할 테니까... 밀항은 어떻게 진행하는 건데요? 주소 보내줘. 혹시라도 오늘 그 사람이랑 얘기가 잘 안 되면 나도 일단 피신부터 해야 하니까.”박하린의 이 말을 들은 조윤미는 그녀의 속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입으로는 자신감 있게 말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주민혁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하여 조윤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네가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면서 왜 위험을 감수하려 해? 그냥 내가 준 주소로 가. 이 타이밍에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고. 어린애 장난 같은 게 아니야. 일이 너무 커졌어.”그러자 박하린은 이를 악물었다.“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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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네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정리된 거라면 다행이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네가 감정에 휘둘려서 사리 분별 못하는 거였어.”조윤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주소 보내. 내가 시후 데리러 갈게.”박하린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신혼집 주소를 전송했다.그러고는 다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시간만 확인했다.시간은 어느새 오전 열 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하지만 주민혁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도, 자신을 데리러 오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마음이 들끓고, 속이 타들어 가는 듯해 박하린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결국 여러 번 망설인 끝에, 그녀는 직접 통화 기록을 열고 먼저 전화를 걸었다.이제 더는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 없었고 상황의 주도권을 잡아야만 했다.그러나 연결음이 한참을 울려도 받는 사람이 없어 박하린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혹시 무슨 변수가 생긴 건 아닐까 머릿속에 불길한 상상이 스치기 시작했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한 번, 또 한 번...그렇게 네 번째 전화가 걸렸을 때 드디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고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주소 하나 보냈으니까 그쪽으로 와.”곧이어 박하린의 휴대폰으로 한 통의 주소가 담긴 문자가 도착했다.그 주소는 다름 아닌 예전부터 그들과 관련된 모든 중요한 일이 오갔던 고급 회원제 클럽이었다.중요한 비즈니스나 기밀 회의는 늘 그곳에서 이루어졌고 박하린에게는 익숙한 장소였다.그 주소를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에 안도감 어린 미소가 떠올랐고 잔뜩 조여 있던 심장도 조금은 진정되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꼭 쥔 채 물었다.“오빠, 오늘 만나게 될 분이 누군지 미리 말해줄 수 있어? 준비라도 하고 가야지. 괜히 실례될까 봐...”주민혁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부드러웠다.“긴장하지 마. 내가 있잖아.”그 한마디에 박하린은 다시금 든든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누군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 등 뒤에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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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박하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언제 그녀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이제는 직원 하나하나까지도 감히 그녀를 깔보며 머리 위에 올라타려 했다.“내가 오늘 누구 만나러 온 지 알아요?”박하린이 싸늘하게 말했으나 그 직원은 눈치 보기에 능한 인물이었다.이미 수많은 손님을 겪어온 그는 지금도 사무적인 미소를 지은 채 대응했다.“죄송하지만, 비회원이신 경우 누구를 만나러 오셨든 동반자가 없이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박하린은 조용히 깊은숨을 들이쉬었다.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도 억지로 눌러야만 했다.오늘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기에 괜히 입구에서 소란을 피워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하여 그녀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수고스럽겠지만 안에 계신 주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박하린이 도착했다고요.”직원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죄송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객님들께 직접 연락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이곳은 철저한 회원제 클럽이라 규칙이 엄격했다.누구든 무턱대고 찾아와 연락 좀 해달라고 하면 업무는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직원의 말에 박하린은 말문이 막혀 입술을 꾹 다문 채 눈을 가늘게 좁혔다.“나 알면서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요, 나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서.”그러자 직원은 여전히 예의를 갖춘 태도로 말했다.“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는 단지 직원일 뿐입니다.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부디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필요하시면 고객님께서 직접 주 대표님께 연락하셔야 합니다.”직원의 말은 빈틈이 없었고 그 깍듯한 대응은 오히려 박하린의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주민혁에게 전화를 수차례 했음에도 받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또 걸어봐야 마찬가지였다.결국 박하린은 입구에서 발이 묶여 어정쩡하게 서 있는 꼴이 되었다. 이 클럽에서 이런 식으로 입장을 거부당한 건 처음이었다.“한 번만 봐줘요. 주 대표님이랑 오늘 만나기로 했고 통화 기록도 있어요. 보여드릴게요.”박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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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지금 어디로 향하는 건지 최수빈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주민혁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선이었다. 작은 얼굴에 떠 있는 표정을 잠시 들여다보던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긴장됐어?”딸아이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그녀가 줄곧 혼자 조사해왔던 일이기도 했다.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곤 시선을 돌려 전방을 응시했다.“예린이도 민혁 씨 딸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못해 차가웠다.“딸한테 정이 없더라도 그 아이는 민혁 씨 핏줄이라고요.”주민혁의 손이 조용히 핸들을 움켜쥐었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최수빈은 주민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 애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른 척하지는 않잖아요. 예전에 예린이가 물에 빠졌을 때도 뛰어들었고요.”흔들림 없는 눈빛이었다.“혹시 나를 미워해서 예린이까지 함께 미워한 거예요? 아니면... 내가 민혁 씨한테 잘못한 게 있다고 생각해서 예린이가 민혁 씨 딸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예요?”이렇게 둘 사이의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주민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널 왜 미워하지?”이 말에 몸이 조금 굳어지더니 눈빛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채 최수빈이 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바라봤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 결혼은 서로 원해서 한 게 아니었잖아요.”주민혁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입꼬리를 아주 살짝 비틀었다. 그리고 룸미러 너머로 조수석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는 약을 먹였고 나는 아니었어. 지난번 네가 약을 먹었을 때처럼.”이 말이 마치 쇠망치처럼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을 내려쳤다.잠시 멍해지는 와중에 최수빈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주민혁의 말 속 의미는 분명했다. 그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 그건 전적으로 그의 의지였단 뜻이었다.“그럼...”무언가를 물으려던 최수빈은 결국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그때, 주민혁이 냉정하고도 무심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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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최수빈은 내리자마자 입구 앞에 서 있는 박하린을 단번에 알아봤다.박하린 역시 주민혁의 차량이 도착하는 걸 보자마자 두 눈이 반짝이며 벌떡 일어섰다.하지만 조수석 문이 열리고 거기서 최수빈이 주민혁과 함께 내리는 모습을 본 순간,그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혼까지 했으면서... 두 사람 다시는 엮일 일 없다며? 그런데 왜 자꾸 민혁 오빠 곁을 맴도는 거야?’계속해서 붙어 있으니 마치 재결합이라도 바라는 사람처럼 보였다.박하린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가 참 꼴사납고 역겨웠다.이미 끝난 관계를 저렇게까지 물고 늘어지다니,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하지만 그녀는 애써 표정을 다잡고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남자를 다정히 불렀다.“민혁 오빠...”주민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왜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어?”그 말을 듣는 순간, 최수빈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주민혁이 말한 만나야 할 사람이 바로 박하린이라는 것을.그러나 내색 없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하린 역시 자존심이 있고 체면도 있었기에 조금 전 직원에게 출입을 저지당했던 일을 절대 입 밖에 낼 리 없었다.“괜찮아. 그냥 오빠 기다리고 싶었어. 아까 말했잖아, 중요한 사람이 온다고... 그런데 설마 수빈 씨랑 같이 올 줄은 몰랐네.”박하린은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설마... 오빠가 말한 중요한 사람이 정말 최수빈인 건가?’주민혁은 그녀의 질문에 대해선 대꾸도 하지 않고 단지 짧게 말할 뿐이었다.“들어가자.”최수빈은 별말 없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지금 상황을 알아야 했기에 당연히 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박하린은 눈살을 바짝 찌푸렸다.주민혁의 태도는 어딘가 평소와 달랐고 그런 그와 함께 차에서 내린 여자가 하필이면 최수빈이라니. 마음속에 불길한 상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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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최수빈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건 곧 표절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박하린은 이를 악물고 최수빈을 바라봤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주민혁은 조용히 찻잔을 들고 태연하게 차를 마셨으며 그사이 박하린은 내내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그녀는 줄곧 최수빈과 싸워왔다.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라니?예전에 가장 얕잡아봤던 그 여자에게?그건 박하린에게 있어서 치욕이었고 그 어떤 모욕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굴욕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최수빈뿐이라는 것 또한 명백한 현실이었다.박하린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분석했다.‘오빠가 굳이 최수빈을 이 자리에 데려왔다는 건 최수빈이 아직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적어도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필요한 건 적절한 조건일 뿐이야.’박하린은 이를 악물고 주민혁을 힐끗 바라봤다.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여전히 냉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였다.결국 박하린은 깊이 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예전에 내가 수빈 씨한테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방법을 찾아낸다면 앞으로 회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서로 협력해서 윈윈하는 거죠.”그녀는 마침내 최수빈에게 손을 내밀었다.“주상 그룹과 함께한다면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최수빈은 아주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마치 어처구니없다는 듯, 조용히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박하린을 바라본 것이었다.“하나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내가 그쪽이랑 협력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예요. 하린 씨랑 주상 그룹이 계속 우리 천공에 매달리고 있었던 거라고요.”지금 이 상황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곧 판이 벌어질 것이었다.최수빈은 여전히 주민혁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여기 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분명 내가 박하린과 타협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왜?’박하린의 얼굴이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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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그쪽 같이 표절만 할 줄 아는 조력자를 얻는 게 무슨 이득이겠어요?”최수빈은 말투에도, 눈빛에도 비웃는 듯한 기색이 가득했다.박하린의 조금 전 말은 듣는 이마저 민망할 정도였고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주민혁이 피식 작게 웃음을 흘렸다.박하린은 당황한 눈빛으로 급히 그를 바라봤다.“민혁 오빠, 왜 웃어?”주민혁은 찻잔을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하린아, 부탁을 할 때는 그에 맞는 태도가 필요한 법이야.”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최수빈의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줬다.“지금의 수빈이는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지.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물어보는 건 어때?”최수빈은 잔 위로 퍼지는 찻물의 잔물결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이 자리까지 와놓고도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제가 이 자리를 계속 이어갈 이유는 없겠네요.”그녀가 일어서자 박하린은 그저 차갑게 바라볼 뿐 잡으려는 기색조차 없었다.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그녀의 눈치를 봐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지금은 잠시 불리할 뿐, 언제든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무엇보다 주민혁은 자신 편이었다.주시후 역시 자신과 연관이 있는 아이였다.그리고 주민혁의 아까 그 한마디, ‘박하린이 주상 그룹을 대표하는 게 맞다’고 인정한 순간부터 그녀는 확신을 가졌다.자신이 여기에 온 건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고.주민혁은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돌려 박하린을 조용히 바라봤다.“수빈이 말고는 널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없어.”아주 담담한 말투였지만 이 말은 박하린을 단번에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간단한 문장 한 줄에서도 그녀는 안에 숨겨진 의미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오늘 이 자리는 그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수빈에게 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주민혁은 이미 다리를 놔줬고 두 사람을 이 자리에 함께 앉힌 순간부터 상황은 정해져 있었다.게다가 최수빈과 함께 차를 타고 이 자리에 도착했다는 사실, 그걸 떠올리는 순간 박하린은 반사적으로 옷자락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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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민혁 씨가 하린 씨를 도와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겨우 감형 정도일 뿐이겠죠.”박하린의 입술빛이 새하얘졌다.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고 마치 누가 입을 틀어막은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목이 바짝 조여오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하여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네.”가볍게 뱉은 한 마디, 이는 박하린이 간신히 인정한 셈이었다.“그 대회를 꼭 이기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한테는... 그게 정말 중요했으니까.”이 순간, 박하린은 최수빈의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고 그 사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러다 박하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민혁을 바라보았다.지금쯤이면 뭔가 후속 조치를 해줘야 할 때였으나 그는 아무런 말도, 움직임도 없었다.불안감이 밀려오는 동시에 등줄기에 차가운 식은땀이 맺혔다.박하린은 이를 꽉 깨물며 다시 최수빈을 바라봤다.“여기까지 온 마당에... 우리 사이 문제를 어떻게 평화롭게 끝내려고요? 합의할 수도 있잖아요.”자신이 이쯤 말했으니 최수빈도 어느 정도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했다.‘어차피 내가 고개 숙이는 거 보고 싶은 거 아니었나? 이제 다 보여줬잖아.’하지만 세상은 돌고 도는 법, 누구도 영원히 밑바닥에만 머물진 않는다.‘지금 이 굴욕을 견디기만 하면 머지않아 나도 다시 떠오를 거야.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사소한 치욕쯤은 감내할 수 있어야지. 나라고 못 할 것 없잖아? 오늘 이 일만 넘기면 앞으로 난 민혁 오빠의 아내가 될 거야. 그때부터 내 앞에 펼쳐질 세상은 전혀 다른 그림이 되겠지. 일거리든 인맥이든 기회는 넘쳐날 테니까.’최수빈은 박하린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진심으로 하는 사과가 아니네.’박하린은 그저 한 줄기의 출구를 구걸하고 있을 뿐이었다.이내 박하린이 또 입을 열었다.“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앞으로는 최대한 보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요.”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마치 최수빈이 뭔가를 부탁하러 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전히 고압적이었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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