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빈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짐을 정리했다.캐리어 앞에 쪼그려 앉아 가지런히 접어 둔 옷들을 하나씩 넣으며 손끝이 천을 스칠 때도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엄마, 이거 봐요!”맑은 목소리와 함께 주예린이 자기의 작은 캐리어를 끌고 달려오더니 얼굴 가득 들뜬 표정을 지었다.“제 옷 다 넣었어요! 토끼 인형도 챙겼고요!”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딸을 향해 웃어 보였다.“우리 예린이 대단하네. 이제 혼자서 짐도 다 싸고.”그러고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서울을 떠나면 우리 다 행복해지는 거야, 그렇지?”주예린은 눈빛을 반짝이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새로운 곳에서 새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엄마도 좋아하는 일 할 수 있잖아요. 이제 속상한 일은 안 생각해도 돼요!”최수빈의 마음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서울을 떠난다는 건, 단순히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의 완전한 작별이었다.서럽던 날들과의 이별, 주민혁과 얽혀 있던 관계의 끝,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까지 모두 내려놓는 일이었다.주민혁이 과거에 무엇을 겪었는지, 왜 그렇게 냉담했는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송미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전화를 받자 송미연의 활기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수빈아, 천공 연구원 동료들이 모임 하나 잡았어. 너 떠난다니까 송별회 겸해서. 예린이랑 같이 와. 다들 보고 싶어 해.”최수빈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금방 갈게.”같이 오래 일했던 사람들이니 좋게 만나 좋게 헤어지는 게 맞았다.그렇게 전화를 끊고 주예린에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준 뒤, 둘은 함께 집을 나섰다.약속한 식당의 룸에 들어서 보니 자리는 이미 꽉 차 있었다. 최수빈과 주예린을 보자 모두들 반갑게 인사했고 주예린이 좋아하는 탕수육과 딸기 푸딩까지 따로 주문해 둔 뒤였다.식탁 위에서는 함께 보냈던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며 때로는 웃기도, 때로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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