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811 - Chapter 820

1010 Chapters

제811화

죽을 다 먹고 나자 이성민은 기운이 빠진 듯 눈을 감고 잠시 쉬었다.이혜정은 보온통을 정리한 뒤 최수빈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수빈아, 네 삼촌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러신 거야.”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엄마. 삼촌이 저 생각해서 그러신 거라는 거. 민혁 씨와의 관계도 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 삼촌 치료에 영향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래.”이혜정은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미소 지었다. 그 눈빛에는 안도하는 기색과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까 엄마도 마음이 놓인다.”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아, 변호사 쪽은 연락 왔니?”“네. 업계에서 꽤 유명한 이혼 전문 변호사래요. 내일 자료 들고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기로 했어요.”이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모녀는 복도에 서서 오가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자리 잡았다.그 시각, 복도 끝 비상계단 안쪽에서 주민혁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변호사와 주고받은 대화 기록이 떠 있었다.멀어져 가는 최수빈과 이혜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에 아주 잠시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잠시 후, 주민혁은 휴대폰을 거두고 낮게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를 떠났다.다음 날, 최수빈은 약속대로 변호사를 만났다.변호사는 그녀가 가져온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수빈 씨,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최진식 씨가 이씨 가문의 재산 분할을 주장하는 건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다만 문제는... 아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소송이 꽤 길어질 가능성이 큽니다.”이미 각오하고 있던 최수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 사람 뜻대로는 못 하게 할 거예요. 얼마나 걸리던 끝까지 버틸 생각입니다.”“그 정도 각오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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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최수빈은 그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그날, 분명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해 두었기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주민혁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잠깐 들렀어. 수술이 잘 되길 바라서.”“고마워요.”말투는 차가웠지만 그렇다고 그를 쫓아내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복도에 나란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간호사가 이성민의 병상을 밀고 나와 수술실로 향하자 이혜정이 급히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무서워하지 마.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이성민은 이혜정과 최수빈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난 괜찮아. 두 사람도 걱정하지 마.”주민혁에게도 잠시 시선이 머물렀지만 이성민은 복잡한 눈빛만 남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수술실 문이 천천히 닫히고 최수빈과 이혜정은 복도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주민혁도 한쪽에 서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최수빈은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일 분, 일 초가 모두 고역처럼 느껴졌다. 이혜정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최수빈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낮게 말했다.“엄마, 괜찮을 거예요. 삼촌, 꼭 잘 버텨내실 거예요.”그때 수술실의 불이 꺼졌고 의사가 문을 열고 나오자 최수빈과 이혜정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바라봤다.마스크를 벗은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현재 생체 징후도 안정적이고요. 수술 후 관찰 기간만 잘 넘기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눈가가 붉어지며 기쁨에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민혁 역시 길게 숨을 내쉬었다.곧 이성민은 중환자실로 옮겨져 경과 관찰에 들어갔고 최수빈과 이혜정은 줄곧 침대 곁을 지켰다.해 질 무렵, 눈을 뜬 이성민은 두 사람을 보곤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괜찮아.”“삼촌, 정말 다행이에요!”최수빈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혜정도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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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최수빈은 병원에서 이성민을 보고 나온 뒤, 이혜정에게 간병을 맡겼다.그리고 더는 주민혁의 집에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짐을 정리한 뒤, 주예린의 손을 잡고 별장을 나섰다.행선지는 자신이 직접 마련한 집이었다.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숫자가 하나씩 바뀌었고 그사이 주예린은 최수빈의 손가락을 꼭 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우리 이제 계속 여기서 사는 거예요?”최수빈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춰 바람에 흐트러진 딸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해 주었다. 눈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응.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리만의 집.”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공기가 그대로 안겨 왔다.소파 위에는 주예린이 지난번에 다 읽지 못한 그림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베란다에 걸어 둔 작은 원피스는 밤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최수빈이 현관에 캐리어를 밀어 두고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 순간, 주예린은 다다다 소리를 내며 거실로 달려가더니 쿠션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었다.“엄마, 역시 집이 제일 좋아요!”딸을 씻기고 재워 둔 뒤, 최수빈은 서재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계속 미뤄 두었던 수치를 다시 점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미간을 문지르며 키보드에 손을 얹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오늘 육민성이 전화를 걸어 플라잉 테크 협업 프로젝트에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며칠 뒤 계약식을 열 예정이니 준비를 철저히 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창밖의 밤은 점점 깊어졌고 서재에는 키보드 소리와 종이에 펜이 스치는 소리만 잔잔히 흘렀다.이런 자리일수록 데이터는 더 완벽해야 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계를 보니 어느새 열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주예린이 이불을 걷어차지는 않았는지 보러 가려던 순간, 거실 쪽 작은 무드등이 켜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보니 주예린이 인형을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고개는 꾸벅꾸벅 떨어지고 있었지만 눈은 또렷했다.“예린아, 왜 아직도 안 자?”최수빈은 딸을 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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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몸을 돌려 다시 서재로 들어가려던 순간,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화면에 뜬 ‘한재준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최수빈은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했다.“수빈아, 아직 은산시를 떠날 준비가 안 됐니?”전화기 너머의 한재준의 목소리는 조금 진지했다.“일정이 앞당겨졌어. 일주일 뒤면 출발해야 해.”최수빈은 창가로 걸어가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내려다보며 잠시 침묵했다.외삼촌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상태도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간병인도 붙어 있으니 이제 은산시에 더 머물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선생님. 시간 맞춰 출발할게요.”전화를 끊고 서재로 돌아왔지만 더는 도면을 붙잡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어둠이 깔린 창밖을 바라보자 마음속이 복잡해졌다.은산시를 떠나는 건, 어쩌면 그녀와 주예린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일지도 몰랐다.그 뒤 며칠 동안, 최수빈은 테스트 도면을 마무리하는 한편 주예린의 전학 절차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육민성 쪽에서도 계약식 관련 세부 사항이 수시로 전달됐고 그녀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노트에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주예린은 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매일같이 온갖 궁금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그러다 문득 조심스럽게 묻기도 했다.“엄마, 아빠도 이런 얘기 듣는 거 좋아할까요?”최수빈은 늘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그건 네가 직접 물어보면 되지?”하지만 주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그런데 아빠가 요즘 안 보이시잖아요.”최수빈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그날, 그녀는 주민혁에게 더는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다.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기회가 되면, 그때 물어봐.”그러자 주예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업계 컨퍼런스 날이 찾아왔다.행사는 은산시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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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최수빈은 무언가를 느낀 듯 반사적으로 입구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그 순간, 주민혁의 시선과 정확히 마주쳤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이 살짝 흔들리며 술이 넘칠 뻔했다.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심종연은 주민혁을 발견하자 잠시 놀란 듯한 눈빛을 했다. 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온화한 미소를 띠고 최수빈을 향해 말했다.“전남편이 왔네요. 인사 안 하셔도 괜찮겠어요?”정확히 급소를 찌르는 한 마디였다.최수빈이 대답할 틈도 없이 주민혁은 이미 발걸음을 옮겨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표정은 담담했지만 최수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일렁이고 있었다.“주 대표님.”심종연이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오랜만입니다.”주민혁은 심종연과 악수한 손에 묘하게 힘을 주더니 목소리에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심 대표님.”그리고 그의 시선이 심종연을 스쳐지나 최수빈에게 닿았다.“최수빈 씨.”최수빈은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서류철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주 대표님 오늘 행사에 오셨네요.”“네.”짧은 대답이었다.주민혁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한 번 훑고 지나갔지만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단숨에 굳어 버린 듯했다.주변 사람들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챘기에 수군거리던 것을 멈추고 태연하게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곁눈질로 세 사람을 훔쳐보고 있었다.‘전남편과 현 남자친구?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심종연은 최수빈과 주민혁을 번갈아 보며 대강 상황을 읽은 듯 미소를 띤 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두 분 관계가 예전 같지는 않은 모양이네요.”그리고 최수빈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플라잉 테크와의 협업 건, 세부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게 좋겠죠?”최수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죠.”그녀는 주민혁의 시선을 피한 채, 심종연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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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그 말들은 작은 바늘처럼 촘촘히 귀를 찔러왔다. 듣고 있자니 묘하게 비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주민혁과 함께했던 몇 년 동안, 비록 주상 그룹의 일에 깊이 관여한 적은 없었지만 그가 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쏟아부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수없이 많은 밤, 그의 사무실 불은 늘 새벽까지 꺼질 줄 몰랐고 회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는 앞장서서 상황을 수습하며 주상 그룹을 벼랑 끝에서 끌어 올렸다.그런데 이제 와서 ‘정통’이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로 그 모든 노력이 순식간에 ‘남의 회사를 대신 지켜준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쯧쯧, 정말 예상도 못 했네.”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송미연이 주스가 든 잔을 들고 다가오며 구경꾼처럼 흥미로운 눈빛을 던졌다.“그렇게 높이 군림하던 네 전남편님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날이 오다니... 그동안 그렇게 필사적으로 주씨 가문을 지켜왔는데 결국은 남 좋은 일 한 거 아니야?”최수빈은 고개를 살짝 돌려 송미연을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소문이 그냥 우연히 생겼을 리 없다는 걸,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주선웅이 귀국하자마자 이 자리에서 갑자기 주민혁을 겨냥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판을 짠 결과였다.목적은 뻔했다. 주민혁의 주상 그룹 내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주선웅에게 길을 터주려는 것.“이거, 주선웅 쪽에서 일부러 흘린 말 아니야?”송미연이 목소리를 낮춰 최수빈의 귀에 대고 물었다.“돌아오자마자 이런 판 벌이는 거 보면 아예 한 번에 주민혁을 밀어내려는 거 같은데.”최수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자연스럽게 행사장 반대편으로 향했다.주민혁은 그곳에 서서 몇몇 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조금 전 사람들이 결코 작은 소리로 수군거린 것이 아니었기에 그가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그런데도 얼굴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여전히 담담한 표정,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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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송미연의 말은 잔잔하던 최수빈의 마음에 작은 돌멩이처럼 떨어져 파문을 일으켰다.최수빈은 고개를 숙여 잔 속의 샴페인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잔의 표면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러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지난번 심종연, 주선웅과 함께 식사했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날, 그녀는 와인을 몇 잔 마신 뒤 온몸에 힘이 빠졌고 그다음에는 주민혁과 그런 일이 벌어졌다.그때는 단순한 사고라고 여겼다.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심종연과 주선웅은 애초에 이해관계로 엮인 사이였다.때문에 그 ‘단순한 사고’ 역시 사실은 두 사람이 함께 꾸민 일일지도 몰랐다.그리고 만약 그날 주민혁이 아니었다면 그녀와 잠자리를 가진 사람은 주선웅이었을 수도 있었다.겉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아 보이는 심종연이지만 사업 판에서의 수완은 누구보다 노련했다.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런 일에 손을 보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최수빈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서늘함을 힘껏 억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그녀의 표정을 본 송미연도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마음이 편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챈 듯 입을 다물고는 손을 뻗어 최수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맞아. 우리는 남자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어. 이제 곧 예린이 데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 할 거잖아. 이런 골치 아픈 일들에 마음 쓰기에는 아까워.”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따뜻한 눈빛으로 송미연을 바라봤다. 그리고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육민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는 서류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수빈아, 방금 한재준 선생님 쪽에서 들었어. 너 다음 주에 은산시 떠난다면서?”그 말을 들은 송미연은 곧바로 최수빈을 돌아봤다.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난 좀 더 같이 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최수빈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선생님 쪽 일정이 좀 앞당겨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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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주민혁은 고개를 돌려 주선웅을 바라봤다.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목소리도 담담했다.“안 돌아가.”그 한마디에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막 귀국한 큰형에게 주민혁이 이렇게까지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사람들은 금세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혁이 형을 의도적으로 밀어내고 선을 긋는 듯했고 형제 사이의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주선웅은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를 잠시 굳혔다가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투에는 억울함이 묻어났다.“민혁아, 아직도 형을 원망하는 거야? 사실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이번에 주상 그룹을 빼앗으려고 돌아온 게 아니거든. 괜히 그런 소문에 휘둘리지 마.”듣기에는 해명 같았지만 실상은 주민혁이 상속권을 잃을까 전전긍긍해 형을 경계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기고 있었다.주민혁은 그의 위선적인 태도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전혀 온기가 없었다.“농담도 참, 주상 그룹은 원래부터 형 거잖아. 빼앗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을 한 번 훑어봤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또렷이 들릴 정도였다.“회사 안에서는 다들 형이 돌아와서 회의도 하고 인수인계도 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형은 정작 회사에는 발도 안 들이고 플라잉 테크에 입사했잖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형이 일부러 나를 이런 여론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뒤에서 이득만 챙기려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말이 끝나자 주변의 웅성거림이 한층 더 거세졌다.사람들의 시선이 주선웅에게로 옮겨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해자처럼 보이던 그의 위치는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민혁의 말을 듣고 나니 주선웅의 속내가 그리 단순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주선웅의 표정이 마침내 어두워졌다.주민혁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몰아붙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더니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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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주민혁은 심종연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최수빈의 손목을 꽉 붙잡은 채 낮게 말했다.“가자.”말을 마치자마자 심종연과 주선웅의 표정이 얼마나 굳어 있든 상관없이 주민혁은 최수빈을 이끌고 그대로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최수빈은 주민혁의 손에 이끌려 몇 걸음 휘청거린 끝에야 겨우 그의 걸음에 맞춰 따라갈 수 있었다.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온몸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 호기심도 있었고 탐색하는 눈빛도 있었으며 노골적인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주민혁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이 너무 강해 빠져나올 수 없었다.“민혁 씨, 놔요.”연회장을 벗어나 복도로 나오자 최수빈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주민혁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최수빈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손목을 본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잠시 침묵한 뒤, 주민혁은 입을 열었다.“할 말이 있어. 예린이에 대한 일이고 네가 은산시를 떠나는 것에 대한 얘기이기도 해.”최수빈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예린이의 일도, 내가 은산시를 떠날지 말지도 전부 민혁 씨와는 상관없어요. 우린 이미 이혼했잖아요. 정말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면 내 인생에 더는 간섭하지 말아줘요.”“상관없다고?”주민혁은 한 걸음 다가서더니 짙은 눈동자로 최수빈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한 글자씩 또박똑박 말했다.“예린이는 내 딸이야. 네가 아이를 데리고 떠나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은산시를 떠나는 건 오래전부터 정해 둔 일이었어요. 나와 예린이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요. 민혁 씨의 도움 필요 없어요.”“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주민혁의 눈빛이 깊어졌다.“지난번 심종연, 주선웅이랑 식사하다가 약에 당한 거 기억 안 나? 내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면 네가 지금 이렇게 멀쩡히 서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그 일은 이미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이혼한 뒤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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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남자는 이제 정말 더는 방법이 없는 듯, 조금 쉰 목소리에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수빈아, 가지 마. 제발... 은산시에 남아. 너랑 예린이는 내가 지킬게.”“무슨 자격으로 나랑 내 딸 곁에 있으려는 건데요? 어떤 신분으로 우리를 보호하겠다는 거죠?”이 질문들은 그녀가 이미 수없이 되뇌어 온 것들이었다.그녀는 주민혁과 애매한 관계로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아 했으나 그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하지 않았다.주민혁은 최수빈을 꽉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다. 그녀의 질문을 들은 뒤에는 그대로 침묵에 빠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굳어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그렇게 한참동안 주민혁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최수빈은 있는 힘껏 주민혁을 밀어내며 단호한 눈빛으로 그의 앞에 섰다.“민혁 씨, 우린 이제 끝이에요. 더는 가능성도 없어요. 그러니까 과거는 과거로 남겨 두고 앞으로는 나랑 예린이의 삶에 관여하지 말아 줘요. 처음부터 몰랐던 사이였던 것처럼 서로 잘 사는 게 최선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섰다.“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그러자 등 뒤에서 주민혁의 목소리가 울렸다.낮고 차분했지만 흔들림 없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이에 최수빈은 발걸음을 멈췄고 등이 뻣뻣하게 굳으며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뒤를 돌아보는 대신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그 통증으로 간신히 이성을 붙잡은 것이다.‘연기를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민혁 씨, 그만해요.”최수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우린 이미 끝났어요. 이럴 필요 없다고요.”“끝났다고?”주민혁이 빠르게 다가와 다시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두 사람의 사이로 끼어들었다.송미연이었다.송미연은 팔짱을 낀 채 주민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듯 말했다.“주 대표님, 이거 전처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설득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냥 질척거리는 거예요? 전처를 되찾고 싶으면 이렇게 무작정 매달릴 게 아니라 제대로 잘못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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