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려진 왕비, 천재로 재탄생: Chapter 1481 - Chapter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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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1화

조정의 신하들은 저마다 다른 속셈을 품은 채 끊임없이 연천능의 한계를 떠보았다. 군신 사이의 호흡을 맞춰 가는 단계였기에,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도 끊임없이 장애물이 생겼다.정말이지 심신이 지칠 지경이었다.월국의 신하들이 오기만 하면 한결 나아질 터였다. 적어도 그들은 연천능과 어느 정도 호흡을 맞춰 왔고, 서로 신뢰도 쌓여 있었으며, 일련의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본 경험도 있었다. 함께 일을 처리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게다가 연천능의 측근들까지 오면 월국의 신하들도 위기의식을 느껴 잡다한 속셈을 거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될 터였다.백진아 역시 한가하게 지내지 않았다. 후궁의 각 부서를 정비하고 간소화했으며, 건물과 재산을 다시 조사해 장부를 작성했다. 선진적인 복식부기법을 도입하고 재산과 물자 관리 제도도 보완했다.그뿐만 아니라 연천능이 재산을 몰수해 얻은 산업도 모두 그녀가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장원에서 재배하는 농작물과 채소의 씨앗은 모두 그녀의 공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또 두 곳의 장원에 온실을 세워 제철이 아닌 채소와 과일도 재배하게 했다. 제대로만 운영하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저택 중 일부는 연천능이 조정의 신하들에게 하사할 수 있도록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임대해 세를 받았다.점포도 정비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으며, 뢰일이 사들인 노비들에게 관리하도록 했다.그 밖에도 전쟁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 경성에서 토지와 저택, 점포를 적지 않게 사들였다. 지금은 이미 가치가 두 배로 올랐고, 조정이 안정되면 몇 배 더 오를 터였다.비록 그녀에게는 공간이 있었지만, 경제를 번영시키려면 역시 상업이 활성화되고 돈이 돌아야 했다. 그래야 소비가 촉진되고 백성들도 할 일이 생겨 돈을 벌 수 있었다.만약 줄곧 공간에서 물건을 꺼내 바깥으로 풀기만 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분주한 나날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두 달 후, 천무성 이남 지역은 모두 영토에 편입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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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2화

고지행과 이유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백진아는 두 사람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보아와 자현을 공간에서 데리고 나왔다.고지행은 여전히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어서인지, 예전의 건들건들한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고 한층 침착하고 차분해진 기색이 엿보였다.이유니의 피부는 더 이상 까맣지 않았다. 옥처럼 새하얗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전의 구릿빛 피부보다는 훨씬 밝아졌고 섬세한 이목구비도 한층 또렷해졌다. 절세미인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미모만큼은 꽤 뛰어난 편이었다.그녀는 키가 크고 걸음걸이도 시원시원했다. 온갖 장식이 달린 넓은 소매의 긴 치마를 입었는데도, 오히려 늠름하고 당당한 기품이 물씬 풍겼다. 지난 일 년여 동안 공부시랑으로 지내면서 관료다운 위엄도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었다.고지행은 딸을 안고 있었고, 이유니는 아들을 안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두 아이는 정교하게 빚어 놓은 인형처럼 곱고 예뻤다.네 식구가 나란히 서 있으니, 그야말로 선남선녀에 화목한 한 가족처럼 보였다. 외모와 기품이 모두 눈부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였다.다만 어딘가 모르게 부부 사이에 부족한 것이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도 부부라기보다는 오랜 친구에 가까웠다.백진아는 행랑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그녀는 금빛 봉황이 수놓인 자주색 황후 예복을 입고 짙은 자주색 허리띠를 둘러 날씬한 몸매를 드러냈다. 그 위에는 앞섶이 트인 옅은 자주색 비단 저고리를 걸쳤는데, 우아하면서도 고귀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풍성하게 올린 머리와 옅게 그린 눈썹, 옥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화를 내지 않아도 사람을 압도하는 윗사람의 위엄이 은은히 배어 있었다.고지행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넋을 잃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슴이 설레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보자 반가운 마음과 함께 희미한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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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3화

백진아는 고개를 돌려 현상에게 말했다.“공주와 태자를 작은 사랑방으로 모셔 오거라.”새 왕조가 세워졌지만 백진아는 여전히 황후였고, 보아 역시 자람공주로 책봉되었다. 연천능은 자현을 태자로 봉하기까지 했다.이렇게 하면 자현이 표적이 될 수도 있었지만, 태자를 미리 정해 두면 조정의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백진아는 고지행과 이유니를 평소 손님을 맞이하던 본청이 아닌 작은 사랑방으로 안내했다.본청에는 높다랗게 상석이 놓여 있어 손님들은 모두 아랫자리에 앉아야 했다. 격식을 중시하는 자리인 만큼 군신과 상하의 구분이 뚜렷했고, 다소 차갑고 거리감도 느껴졌다.반면 작은 사랑방은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 역시 주객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긴 했지만, 가까운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백진아는 현빙에게 말했다.“소독한 담요를 가져와 바닥에 깔아 주렴. 아이들이 그 위에 앉아 놀게 하고, 노리개도 전부 가져오너라.”“예!”현빙은 대답한 뒤 사람들을 데리고 준비하러 갔다.“큰 스승님께서 오신 겁니까?”보아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우렁찬 아이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곧 보아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고, 그 뒤로 자현을 안은 현우가 따라 들어왔다.연천능이 천무성에 모습을 드러낸 뒤, 월군에 남아 있던 그의 대역과 보아의 대역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보아를 지키며 위장 역할을 하던 현우와 현설도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보아는 고지행을 보자 제법 의젓하게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올렸다.“큰 스승님을 뵙습니다.”고지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이따가 너를 시험해 보마. 지난 반년 넘게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봐야지.”보아는 작은 가슴을 쭉 내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마음껏 시험하세요. 어머니와 둘째 스승님, 셋째 스승님께서도 제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셨어요.”이유니는 분홍색 진주 팔찌 하나를 꺼내 보아에게 건넸다.“가지고 놀렴.”보아는 백진아를 바라보았다. 백진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보아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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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4화

월군 관원들이 경성으로 이주해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이 분명 많을 테니, 길에서 습격을 당하더라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게다가 이들은 가족까지 모두 데리고 오는 터라, 사실상 온 집안이 통째로 이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당한 재산도 함께 가져왔을 테니, 떠돌이 무리나 도적 떼가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했다.고지행은 뼈마디 하나 없는 사람처럼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말했다.“자잘한 문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렬이 워낙 길었고, 중무장한 병사들이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각 가문에도 호위무사와 하인들이 있었으니 어렵지 않게 해결했죠.”백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 듣자 하니 노곡주께서는 함께 오지 않으셨다던데, 몸은 괜찮으세요?”고지행이 대답했다.“아직 정정하십니다. 경성으로 오는 게 싫다고 하시더니, 신의곡으로 돌아가 의술을 연구하러 가셨습니다.”그에게 작위가 생긴 이상, 조정과 완전히 연을 끊고 지낼 수는 없었다. 노곡주는 예전부터 조정의 권력 다툼에 끼어들기를 원치 않았기에, 이번에도 은거를 택한 것이었다.백진아가 말했다.“전조 연씨 황실 종친들의 작위도 우리와 맞서지만 않으면 그대로 유지해 주었어요. 그러니 노곡주께서도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어쨌든 폐하도 연씨 황실에서 자란 분이니, 연씨 종친들에게도 어느 정도 정이 있으시겠지요.”지금 연천능의 성은 백리였으니, 대량의 강산은 사실상 주인이 바뀐 것이나 다름없었다.백진아는 백리 가문에 외가를 멸문당한 원한이 있었고, 애초에 연천능이라는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줄곧 그를 연천능이라고 불렀다.고지행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외조부께서는 그저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신 겁니다. 참, 제가 행림후라는 작위를 받았으니 녹봉만 받아먹을 수는 없잖습니까? 대량 전역의 회춘당에서 매달 하루씩 무료 진료를 하기로 했습니다. 진료비는 받지 않고, 약값은 환자의 형편에 따라 외상으로 달아 두거나 집이나 자녀, 논밭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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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5화

세 사람은 일제히 세 아이를 바라보았다.자현은 진짜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작은 호랑이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있었고, 평이는 그것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두 아이 모두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자현은 장난감을 지키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소리를 질렀고,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평이는 어릴 때부터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 하늘이 무너질 듯 울어대면서도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양쪽 시녀가 각각 두 아이를 안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장난감을 놓지 않으니 감히 힘을 주어 떼어놓지도 못했다. 자칫 아이들이 다칠까 봐서였다.안이는 작은 토끼 인형을 안은 채 한쪽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이 장난감을 빼앗으려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울음소리는 하늘을 뚫고 지붕까지 날려 버릴 기세였다.보아는 작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작은 눈썹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한 명은 친동생이고, 한 명은 큰 스승님의 딸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도와야 할까?이유니는 깜짝 놀랐다. 자현은 태자였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평이를 안으려 하자, 고지행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그는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당신은 끼어들지 말게. 애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백진아가 그를 흘겨보았다.“아직 돌도 안 된 애들인데 혼자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그녀는 아들이 걱정스러웠다!보아의 커다란 눈에 잔뜩 화가 난 기색이 떠오른 것을 본 백진아는 보아가 평이를 때릴까 봐 걱정되었다.동생을 지키려는 누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대는 남도 아니었다. 게다가 보아는 이제 거의 네 살이나 되었으니, 어린아이를 때리게 내버려 두는 건 좋지 않았다.그러면서도 백진아는 보아가 두 어린아이의 다툼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보고 싶었다.보아는 손을 뻗어 작은 호랑이 인형을 붙잡더니, 동생을 대신해 그것을 빼앗으려 했다.평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들어 자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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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6화

백진아는 아들과 딸에게 서로 의지할 형제자매를 더 만들어 주고 싶어졌다. 훗날 누군가 괴롭히면, 함께 힘을 합쳐 맞설 수 있도록 말이다.연천능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몇 명 더 낳고 싶은 것이냐?”백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니, 둘에게 편이 되어 줄 아이를 하나 더 낳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지만 연천능은 단호하게 말했다.“더 이상 당신에게 아이를 낳게 하고 싶지 않아. 너무 고생이잖아! 당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놀라서 견딜 수가 없더군.”백진아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여자는 아이를 낳을 때 결국 그 고비를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거잖아요.”연천능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부드럽게 말했다.“황실의 형제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 돕는 사이가 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 자현이 다섯이나 여섯 살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생각하자꾸나. 그때쯤이면 자현이 책임을 감당할 자질이 있는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테니. 만약 자질이 평범하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낳자꾸나. 자현이 뛰어난 아이라면 굳이 당신이 출산의 고생을 겪을 필요는 없어. 물론 뜻밖에 아이가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 정 안 되면 융적과 설제국까지 정복해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 그만이지.”그 말에는 태연함과 패기가 넘쳤다. 마치 창란 대륙 전체가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어, 원하기만 하면 마음대로 나눠 줄 수 있다는 듯했다.백진아는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예. 당신 말을 따르겠습니다.”이 일에 관해서라면 연천능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었다.그는 대량과 월국, 두 나라에서 벌어진 황위 계승 다툼을 직접 겪었다. 수많은 황자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결국 그뿐이었다.그 과정에서 얼마나 잔혹하고 냉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얼마나 무력감과 고통을 느껴야 했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연천능은 아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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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7화

백진아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그녀는 그를 물어뜯어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풀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연천능은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왜? 아직 더 하고 싶은 것이냐?”백진아는 눈을 흘겼다. 그녀는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덤벼요! 내가 당신을 무서워할 것 같아요? 밤새도록 더 겨뤄 보자고요!’하지만 그녀는 겁쟁이였다. 정말 그렇게 했다가는 꼼짝도 못 하고 침상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만큼 당할 게 뻔했다.그래서 그냥 벙어리인 척하기로 했다.연천능은 잔뜩 부풀어 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각지에 격문을 보내고 외국에도 국서를 보냈다. 두 달 뒤에 건국대전을 거행할 것이야. 그때는 당신과 보아, 자현도 모두 참석해야 해. 날씨가 더우니 예부에 예복을 간소화하라고 명하거라.”번거롭고 무거운 예복에 묵직한 봉관과 장신구까지 떠올리자, 백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연경곤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연씨 황족들이 분명 훼방을 놓을 것입니다.”연씨 황족의 적통은 이미 연경곤에게 몰살당했지만, 방계의 많은 사람들 역시 연씨의 강산이 다른 성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였다.연천능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걱정하지 말거라. 난 오히려 그들이 움직이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달빛은 물처럼 흘러내리고 밤하늘은 몽롱했다.행림후부의 객청에서는 임회백이 고지행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그 뒤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열여섯 살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푸른색 넓은 소매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체형은 약간 통통했지만, 오히려 색다른 운치가 있었다.고지행은 느긋하게 술잔을 들어 한 모금씩 홀짝였다. 살짝 내려간 속눈썹이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모두 가리고 있었다.임회백은 연씨 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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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8화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촛불이 일렁이며 꺼질 듯 말 듯 흔들렸다.이로 인해 요괴 같기도 하고 신선 같기도 한 고지행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임회백은 죄책감이 어린 눈빛으로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다. 오늘 그가 찾아온 목적은 고지행을 떠보는 것이었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자네 부인은 폐하께서 혼인시킨 사람이 아닌가? 자네는 연씨의 외손자네. 하지만 연씨의 강산을 폐하께 빼앗겼고, 혼인까지 남의 손에 좌우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렇게 남에게 휘둘리고만 있을 셈인가?”고지행은 입가에 보조개를 살짝 띄우며 웃었다.“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어쩌겠습니까? 연씨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도 저에게 작위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행림후라는 작위는 대대로 세습할 수 있고, 대가 끊기지 않는 작위입니다. 이 얼마나 큰 부귀입니까?”임회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질투를 감추기 어려웠다. 그의 선조 역시 작위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대를 거치며 작위가 계속 강등된 끝에 세습되었고,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실권도 없는 백작에 불과했다.그는 눈빛을 번뜩이며 목소리를 낮췄다.“자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지 않은가?”그러면서 하늘을 가리키고 눈을 깜빡였다.고지행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아쉬운 듯 말했다.“하지만 저에게는 병사도 사람도 없는데요.”임회백의 작은 눈이 반짝였다.“그건 걱정할 필요 없네. 자네가…”그는 목을 긋는 듯한 손짓을 하며 말했다.“나머지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지.”고지행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제 무공은 그들보다 못하고, 의술과 독술도 황후 마마보다 못합니다. 제가 어찌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임회백이 웃었다.“하지만 자네에게는 그들의 신임이 있잖은가! 허를 찌르면 단숨에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어. 천하를 내려다보며 후궁 삼천을 거느리는 자리 말일세.”고지행은 가볍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천천히 손뼉을 쳤다.“짝! 짝! 짝!”임회백은 고지행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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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9화

고지행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촛불을 켜지 않고, 방 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에만 의지해 병풍 뒤로 걸어감과 동시에, 한 손으로는 허리띠를 풀었다.그때 갑자기 방 안에 누군가 있다는 기척이 느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할 뻔했다.그는 황급히 허리춤을 움켜쥐고 기척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보았다.창가의 평상에는 한 여인이 옆으로 누워 꽤 유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어둠 속에서 연명혜는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요염한 목소리로 말했다.“후작님…”그녀는 집안에서 막대한 공과 돈을 들여 길러낸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원래는 궁에 들어가기 위해 키워졌다. 하지만 연경곤은 도망쳤고 연천능도 후궁을 들이지 않으니, 뜻밖에도 이 얼간이 후작에게 기회가 돌아온 셈이었다.얼간이 후작 고지행이 천천히 걸어왔다. 새빨간 비단 두루마기는 다소 흐트러져 있었고 허리띠도 느슨하게 매여 있었다. 은빛 달빛이 그의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 위로 쏟아지자 옥처럼 빛나는 미모가 한층 돋보였다.연명혜는 유혹적인 자세를 유지한 채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야 겨우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후작님, 소녀입니다.”고지행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가볍게 한마디를 내뱉었다.“꺼져!”서늘한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연명혜는 무섭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 더 컸다.어렵게 오늘 밤 같은 기회를 얻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앞으로는 다시 좋은 기회를 얻기 어려울 터였다.그녀는 몸을 조금 움직여 옷깃을 더 벌리고 살짝 속살을 드러냈다.“소녀는 후작님을 무척 사모하고 있습니다. 소녀가 모시겠습니다…”“나갈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네가 골라 보거라!”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지행이 말을 잘라 버렸다.연명혜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놀라 황급히 평상에서 내려왔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두 걸음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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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0화

고지행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뻔뻔함으로 따지면 이유니가 우세였기 때문이다!이유니는 환하게 웃으며 고지행의 등을 끌어안았다.“좋아요! 가시지요! 봄날 밤의 한때는 천금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오늘 밤 저희 부부, 제대로 실력을 겨뤄 보시지요.”말을 마친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마치 의형제라도 되는 것 같았다.부부의 정을 나누러 가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오랜 친구끼리 술을 마시거나 도박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주변의 하인들은 턱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이 순간, 고지행의 마음속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이유니는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장대를 하나 세워 주기만 하면 냉큼 기어 올라오는 것 아닌가?이 일을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설마 정말 그녀와…‘안 돼, 안 돼! 도저히 못 하겠어!’이유니는 곁눈질로 그의 착잡한 눈빛을 살피더니 짓궂게 웃으며 그의 턱을 한 번 쓸었다.“긴장하지 마세요. 제가 부드럽게 대해 줄 테니.”고지행은 이를 악물었다.“난 당신을 조금도 봐주지 않을 것이야! 당신이 침상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게 해 주지!”이유니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좋습니다. 어디 한번 해 보시지요! 어서 덤벼 보세요!”고지행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혀 잠시 이를 악물었다.“좋아! 오늘 당신이 제대로 알게 해 주지!”그러고는 이유니의 손을 잡고 침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공까지 펼쳤다.곁을 지키던 호위무사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세상에, 세상에! 우리가 지금 뭘 본 거지?’‘주인께서 이렇게까지 다급하시다니!’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고지행은 이유니를 끌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쾅!” 하고 문을 닫았다.두 사람은 달려오느라 숨을 헐떡였고, 두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방 안에서 아이들을 달래고 있던 하인 몇 명은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아이들을 안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주인들이 지금 한창이구나!’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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