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의 반란이나 투항을 막기 위해, 무장의 가족, 특히 정실부인과 적출 자녀들은 사실상 인질로 경성을 떠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시중을 들 첩 한 명 정도만 데리고 다닐 수는 있었다.백진아는 임강성에서 자랐고, 진의댁과 함께 백근당을 따라 임강성으로 갔었다. 그녀가 임강성에서 살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아들이 아닌 딸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백근당이 황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였기에 황제도 모른 척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경패까지 곁에 두고 직접 가르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연천능은 이제 무장들에게 가족과 연경곤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이어 연천능은 두 번째 조서를 내렸다.“성문을 열어라. 다만 오가는 행인은 철저히 검문하고, 호적을 지참해야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하라. 무장들의 저택에는 중병을 배치해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라.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되, 나오는 것은 금한다. 명을 어기는 자는 참한다!”“명을 받들겠습니다!”병부상서 위청란이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받들었다.과거 백진아가 그의 어린 손자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그의 장남 위동해는 백근당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백진아가 그의 다리를 치료해 준 뒤 원한을 풀었고, 두 집안은 적에서 친구가 되었다.이 일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다. 위청란이 가장 먼저 나서서 조서를 받들자, 모두가 깨달았다. 위씨 가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천능이나 백근당에게 귀순한 것이 틀림없었다.위엄을 세우고 은혜를 베풀며 조정 대신들을 정리한 뒤, 연천능은 월국에서 시행했던 일련의 민생 안정 정책도 공표했다.세금 감면, 부상병 지원 정책, 황무지 개간 장려, 수리 시설 정비, 무료 서당 건립, 도로 정비와 우편 관청 설치….대량의 백성들은 오래전부터 옥대하 이남의 번영과 안정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성공 사례가 눈앞에 있었기에, 백성들은 정책의 장점을 더욱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연천능을 지지하게 될 가능성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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