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보의 대답에 신수빈은 멍하니 옷을 걸쳐 입었다. 은보는 옆에서 그녀에게 빗질을 해주고 얼굴을 정갈히 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마님, 왕야께서 마차를 준비하셨습니다. 마님을 친히 보내시라 하셨어요.”신수빈은 짧게 응답한 뒤, 후부로 향하는 마차에 오르자 비로소 지옥에서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어둑한 서재에서의 기다림은, 마치 온몸의 팽팽한 현이 끊어질 듯 조여드는 공포였다. 혹여 이도현이 사람을 시켜 낙태약 한 그릇을 들여오게 하지 않을까... 그 두려움 속에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었다. 이제 왕부를 떠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가슴을 적셨다.창란원에 다다르니 청하는 이미 문 앞에서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신수빈을 보자 하늘에 감사라도 드리듯 다급히 부축하며 안으로 모셨다. 어릴 적부터 곁을 지킨 청하는 신수빈의 창백한 얼굴과 드러난 피로감, 목덜미에 일어난 햇볕 물집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신수빈이 또다시 태후에게 괴롭힘을 당해 돌아온 줄만 알고 감히 시비를 논하지 못한 채 조심스레 연고를 발라주었다.“마님, 앞으로는 입궁해야 할 일이 있다면 되도록 피하세요.”신수빈은 그 말을 듣고 입가에 서늘한 조소를 그렸다.“사람이 도마 위의 고기라면, 칼날과 흥정을 할 자격이 어디 있겠느냐?”청하는 그 깊은 의미를 다 알지 못지만 신수빈의 피곤한 기색이 걱정스러워 그녀를 재우려 했다.씻을 준비를 하던 중, 청하는 신수빈의 몸 곳곳에 남은 멍 자국을 발견했다. 특히 가슴 위에 남은 지배적이고도 거만한 흔적이었다. 그제야 신수빈이 왜 그렇게 지쳐 있고 얼굴빛이 우울한지 알 수 있었다. 청하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그녀를 재우고 장막을 드리운 뒤 소리 없이 퇴장했다.그날 밤, 신수빈은 도무지 편히 잠들지 못했다. 몇 번이나 악몽에 시달리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몸을 옆으로 돌린 그녀는 조심스레 뱃속의 아이를 어루만졌다. 더는 잠들 수 없었기에 깊은 어둠 속에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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