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hapter 141 - Chapter 150

168 Chapters

제141화

이도현이 비록 아무리 견문이 얕다 하더라도 마상풍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몸이 허약한 남자가 줄곧 대보약을 써서, 동침 중 자극을 견디지 못해 흥분이 극도로 치솟으면서 경련하고 기절하는 것에 불과한 증상이라는 것을 말이다.비록 자객을 잡지는 못했으나 윤서원의 일은 그에게 있어 의심할 여지 없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소식이었다.“가서 부인을 모셔 오거라. 윤 세자의 상황을 알려 드리고 부인께서 뒷수습을 하시라고 전하거라.”이런 상황에서 이도현이 기뻐하지 않기란 어려웠다.금군대장은 이 시각 섭정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부인 두 글자를 들으며 그 안에 몇 분의 친근함이 섞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분명 윤 가의 마님인데, 어찌하여 왕야의 말투는 자기 부인을 부르는 것처럼 다정하게 들리는 것일까?이도현이 나가자마자 신수빈은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뒤쪽으로 갔다.“잠시 후 그가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그때를 틈타 상처 약을 좀 구해 올게요. 이곳에서 잠시만 머물러 계십시오.”“괜찮습니다.”윤수혁은 신수빈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말하려다 멈추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누구와 어떤 관계에 있든 결국 그녀의 개인사일 뿐, 자신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신수빈처럼 영리한 사람이라면 윤수혁의 눈 속에 잠깐 비친 그 미묘한 감정을 읽지 못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도현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욱이 그처럼 불미스럽고 불쾌한 일을 굳이 남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이때, 문밖에서 기척이 들려왔다.“마님, 섭정왕께서 부인을 주전으로 청하시옵니다. 윤 세자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신수빈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눈가에 번지는 기쁨은 감추기 어려웠다.드디어!그녀는 금자와 은보를 불러 우산을 들라 하고 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화청에 들어서자, 상석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이도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신수빈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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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그러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도 어리지만 마음속엔 온통 음험한 계산을 품고 있었으며, 그의 강압에도 굴복하며 살았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발판으로 삼아 이익을 꾀하는 영악하고 속물스러운 여자일 뿐이었다.이도현이 말하지 않아도 신수빈은 스스로를 자조했다.“저는 본디 상인의 딸이라 이익을 좇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제 본성이겠지요. 자연히 왕야께서 좋아하시는 세가 규슈들과는 다릅니다. 오늘 주서화가 이런 추잡한 약으로 저를 망치려 했는데 제가 어찌 반격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태후께서 아끼는 사람이니 왕야께서 제가 황실 군주를 모독했다 생각하여 죄를 물으신다 해도 저 또한 할 말은 없습니다.”이도현은 약간 멍해졌다. 신수빈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본래 뜻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 속에 주서화의 수작까지 있었다니.“그러니 네가 미리 서화의 계책을 간파하고 되돌려 준 것이란 말이냐?”“그렇습니다.”그러자 이도현의 얼굴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지며 미간에는 짜증이 스며들었다.신수빈은 눈을 내리깔았다.‘속마음을 꿰뚫었나?’그러나 곧 이도현의 눌러 담은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너는 미리 주서화가 본왕에게 약을 쓰려는 것을 알았고 윤서령을 본왕에게 떠넘기려는 것도 알았으면서 막지 않았다는 뜻이지? 정녕 한마디조차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단 말이냐?”그 말에 신수빈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녀는 그저 이도현이 자신을 추궁하려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신수빈은 곧 놀란 기색을 거두고는 낮은 목소리로 부정했다.“저는 그녀가 왕야께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주서화가 왕야와 아가씨를 엮으려 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요.”이도현은 이미 그녀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간교하고 영악한 여우.심계에 능한 그녀가 어떻게 허점을 드러내겠는가?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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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이도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넓은 손바닥이 그녀의 뺨을 쓸어내리자,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서 서서히 부드러운 기색이 떠올랐다.“무슨 수고를 그리 할 필요가 있느냐? 그를 처리하고 싶다면 본왕에게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살릴지 죽일지는 내게 말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굳이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어.”신수빈은 잠시 멍해졌다. 바로 그때 이도현은 몸을 곧게 세우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본왕은 원래 네가 왕부에 들어오길 원치 않는 것은 윤서원과의 부부정 때문이라 생각했다. 한데 지금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정이라 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도 않더구나. 그럼 왜 본왕 곁에 있으려 하지 않는 것이냐?”신수빈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이도현 곁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설령 그의 왕비로 살아간다 해도 말이다.더구나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상가의 딸이고 두 번째로 시집 온 몸이니 측비는커녕 첩자리에 올리는 것조차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신수빈은 그에게 답하지 않고 눈물을 훔친 뒤에야 입을 열었다.“왕야께서는 이제 돌아가셔야 합니다. 잠시 후 왕비 마마와 황실 종친 부인들께서 모두 올 텐데 왕야께서 이곳에 계신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이도현은 그녀가 대답을 피해가는 것을 보고 위아래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아랫배에 멈췄다.볼록하게 드러난 그곳을 보자 이도현의 눈에 맺힌 부드러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녀가 끝내 윤 가와 인연을 끊지 못하는 마지막 매듭은 바로 그 뱃속의 작은 아이란 것을.이도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떠나기 직전 그 눈빛이 신수빈의 마음을 어렴풋이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곱씹을 틈도 없었다. 곧바로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기 때문이다.신수빈의 눈가는 적당히 붉어 상황에 꼭 맞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맞이해 예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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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이 순간 옹왕비는 가득히 찬 분노를 풀 길이 없었다.그녀가 막 신 씨를 꾸짖으려는 찰나, 밖에서 태의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허락을 받고 들어온 태의는 오는 길에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으나 막상 안에 들어와 눈앞의 광경을 보자 얼굴이 단숨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주서화는 태의가 오자 공포에 질린 채 매달리듯 외쳤다.“태의, 저 좀 구해주세요.”그녀는 뱃속에서 무언가가 밀려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태의는 감히 그녀를 제대로 볼 수도 없어 서둘러 맥을 짚었고 곧 불길한 얼굴빛으로 침중하게 말했다.“주씨 부인, 이 아이는 아마 지키기 어려울 듯합니다.”주서화가 비통함에 북받쳐 막 울려는 순간, 그 늙은 태의의 시선이 멍하니 자신의 가슴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수치와 분노에 뒤섞여 소리쳤다.“또 보기만 해보십시오. 당신 두 눈을 바로 찔러버릴 것입니다!”태의는 얼굴이 더 붉어져 고개를 푹 숙였다. 평생 의술을 펼쳐 왔지만 회임하고도 이런 흥분제까지 쓰는 음탕한 부인은 처음이었다.이때 신수빈이 앞으로 나서며 부드럽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태의, 제 서방님께서 어찌 된 일인지도 봐주십시오. 주씨 부인의 아이를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일단 두 사람부터 떼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신수빈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낮고도 다정한 목소리는 왕비와 종친 부인들조차 흠잡을 데가 없었다. 게다가 어떤 집안이든 정실부인이 이런 꼴을 당했다면 대부분 치를 떨며 난리를 쳤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손을 쓰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넓은 도량이었다.태의는 이어서 윤서원의 맥을 짚고는 가볍게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세자께서는 과연 마상풍이 분명합니다. 다행히도 아직 젊으시니 제가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효과가 있기를 바라야지요.”말을 마치고 태의는 침을 놓기 시작했다.그때 주서화는 멀쩡히 서 있는 신수빈을 바라보았다. 자신만 이런 수치스러운 꼴을 보이게 된 것에 수치와 분노가 뒤섞여 악다구니를 질렀다.“당신은 왜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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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태의는 이미 침을 놓아 윤서원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주서화 역시 시녀들이 옷을 걸쳐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배에 누가 찌르는듯 아팠고, 아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이번에 데려온 태의들은 모두 태후와 황제 곁에 줄곧 있었기에 오직 이 한 명의 태의만이 시간이 남았다.그는 윤서원에게 침을 놓느라 주서화의 상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산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주서화는 복중의 뜨거운 것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유산으로 목숨을 잃는 장면이 떠오르자 그녀의 얼굴빛이 새하얘졌다.주서화는 태의의 손을 꽉 잡고 절박하게 애원했다.“구해주십시오...”태의 역시 크게 난처했다.“지금 태자의 상황도 매우 위중합니다. 제때 침을 놓지 않는다면 큰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군주께서 윤 세자를 돌보지 말라 하신다면 제가 직접 군주부터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분명 태의는 둘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었고 그 선택권을 주서화에게 넘기고 있었다.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피바람 같은 죽음을 떠올렸다.그 새파란 얼굴빛이 그대로 되살아났다.“살려주십시오. 저는 죽기 싫습니다…!”주서화의 눈 속에는 오직 살아남고자 하는 갈망만이 어렸다. 그녀가 태후 곁에서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모든 이가 아는 사실이었다. 평양후의 세자가 어찌 되었든 태후라는 높은 존재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태의는 사세를 살피고 윤서원을 한쪽에 놓아두고 먼저 주서화의 치료를 시작했다.한참 뒤, 그녀 뱃속의 아이가 떨어졌다. 이미 인체의 윤곽이 보일 정도의 남자아이였다.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움이 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반나절을 넘게 뒤흔들린 끝에 주서화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태의가 머리의 땀을 쓱 닦으며 옹왕비에게 아뢰었다.“서화 군주의 목숨은 건졌으나 몸이 많이 상하셨으니 앞으로는 다시 아이를 갖기 어려울 듯합니다.”옹왕비는 태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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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눈앞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자 곧이어 자신이 쓰러지기 전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손발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했지만 입술만 조금 떨릴 뿐 마치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 삐뚤어질 뿐이었다. 침이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그는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그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순간, 윤서원은 공포에 가득 찬 눈을 크게 부릅뜨며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에 도움을 구했다. 바로 그때, 침상 앞에 서 있는 신수빈의 깊고 고요한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호수처럼 차분하고 심연처럼 검게 가라앉은 그 눈빛은 살을 에는 한기처럼 그를 꿰뚫었다. 움직일 수 없는 몸임에도 윤서원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그것은 증오로 가득 찬 눈이었다. 조금의 생기나 온기조차도 없고 오직 진하게 응고된 살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수만의 원귀가 도사리며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물어뜯고 뜯어 삼킬 것만 같았다.“서방님, 깨어나셨군요. 드디어 깨어나셨어요.”그녀 눈 속의 증오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나 입가에 번진 미소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극진했다. 윤서원의 등골은 싸늘하게 굳어버렸다.이때, 의원이 그의 공포로 일그러진 표정과 떨리는 사지, 삐뚤어진 입과 치켜뜬 눈을 살펴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며 신수빈에게 말했다.“마님, 윤 세자를 구해냈습니다만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이미 중풍에 걸렸습니다. 아마 앞으로 평생 침상에 누워 지내야 할 것입니다. 말을 하거나 손을 움직이기는 힘들어 보입니다.”“아… 이게…”신수빈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깊은 슬픔에 잠긴 듯했다.‘아, 이게 얼마나 통쾌한 소식인지!’“마님, 너무 상심 마십시오. 게다가 마님께서는 이제 몸에 새 생명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더욱 몸을 아끼셔야지요.”신수빈은 손수건을 내리고 눈물 한 방울 없는 눈으로 윤서원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웃음을 꾹 참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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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태의가 떠난 뒤, 신수빈은 금자와 은보, 그리고 주서화의 두 시녀만 밖에 남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주서화는 침대의 다른 쪽에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분노에 몸을 일으키고 싶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다.신수빈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윤서원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담담했다.“태의께서는 제때에 도착하셨고 원래는 서방님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침대에 마비된 상태로 누워 있을 필요는 없었단 말입니다.”윤서원은 그 말을 듣자 더는 침착할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부릅뜨며 마치 신수빈에게 따져 묻듯이 노려보았다. 정말 네가 벌인 짓이냐고.“당연히 궁금하겠지요? 제가 방해해서 서방님의 치료를 늦춘 것인지 아닌지.”윤서원의 눈 속에서 증오가 튀어나왔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눈이었다. 그러나 신수빈은 가볍게 웃었다. 그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인정하겠습니다. 유이연이 나타난 그 순간부터 서방님의 몰락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한 짓이 맞습니다. 유이연을 시켜 밤마다 향락의 약을 먹인 것도, 매일 서방님 밥상에 보양식을 넣은 것도 다 제가 한 일입니다. 그래서 서방님께서는 결국 이렇게 된 것이지요. 한데 서방님께서는 젊으시니 제때에 치료만 했더라면 기껏해야 남자로서의 기능이 사라지는 정도였을 겁니다. 살아가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저는 서방님께서 제 뱃속의 아이를 인정하게 만든 뒤 천천히 망가뜨릴 계획이었습니다. 한데 서방님께서 가슴에 품고 있던 그 귀첩이 유산하게 되었버렸더라고요. 태의께서는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여인은 죽음이 두려워 자신부터 살리라고 한 것입니다. 보이십니까? 전 그저 서방님의 씨를 끊으려 했을 뿐이고, 그 여인은 서방님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한 겁니다.”신수빈은 침대에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속이 시원해 술이라도 들이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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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은보가 막 들어오려 하자 이도현이 손을 휘저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도현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내가 왕비를 모시는 건 어떠느냐?”신수빈은 그와 이렇게 가까워지는 것이 싫어 고개를 틀며 그의 은근한 접근을 피했다.“왕야께서는 하루 종일 소동을 피우셨습니다. 돌아가 쉬셔야지 왜 제 방에서 시간을 허비하시는 겁니까?”이도현은 그녀가 전처럼 온순하게 순응하지 않으며 몸을 빼는 모습에 곧장 그녀를 안아 들어 정실로 향하고자 했다. 이에 신수빈은 다급히 다리를 버둥거리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서 내려주세요.”그녀는 이도현이 오른쪽 팔을 다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허둥대는 척하며 손을 들어 힘껏 그의 오른팔 상처 부위를 움켜쥐었다. 살점이 크게 도려진 채였고 태후전에서 대충 처리만 했기에 신수빈의 손아귀가 파고들자 그는 이를 악물며 짧게 숨을 들이켰다.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진 것을 보니 고통이 꽤 심한 모양이었다.그녀는 마치 이제야 깨달은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의 얼굴과 식은땀이 흐르는 관자놀이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왕야, 다치셨습니까?”이도현은 그녀의 복숭아꽃처럼 고운 눈동자 속에서 순간 가득 고이는 당혹과 걱정을 읽어냈다. 바로 그 한 줄기 걱정이 그의 거친 마음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그는 그녀를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괜찮다.”그러나 신수빈의 걱정은 더욱 깊어졌고 그의 소매를 붙잡아 침상으로 이끌며 굳이 상처를 확인하겠다고 우겼다.“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겁니까? 태의는요? 태의가 대체 무엇을 한 겁니까? 피가 소매를 적실 정도인데도 왕야께서는 말도 안 하시고… 어찌 이렇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십니까?”이도현은 본래 피는 이미 멎었으나 그녀가 너무 세게 움켜쥔 탓에 다시 터진 거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숙연히 내려다본 그녀의 근심 어린 눈동자에 괜한 자책을 더할까 두려워 그는 입을 꾹 닫았다.“괜찮다. 전에는 이보다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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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마님이 걱정할까 두려웠던 금자는 섭정왕의 좌시위에게 부탁해 많은 상처약을 보내오게 했다. 신수빈은 이도현의 겉옷을 벗기고 조심스레 피 묻은 속옷을 벗겼다. 검은 겉옷에서는 피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한 속옷은 그의 상처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오른팔의 속옷은 거의 붉게 젖어 있었고 찰나의 그 한 번 움켜쥔 것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신수빈은 이전에 감싸 두었던 붕대를 한 겹씩 벗겼다. 비록 눈앞의 이 남자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차디찬 뼈가 드러난 상처는 그녀조차도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도현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앞쪽으로 당겨 끌어안으며 말했다.“하인들에게 시키거라. 더 놀랄라.”신수빈은 고개를 저으며 직접 갈아주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그녀는 상처 주변의 피를 닦아내고 조금씩 약가루를 도려진 살점 위에 뿌려주었다. 이 약은 최상이라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스며 나오던 피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연우는 전생에 장난이 심해 자주 다쳤고 신수빈은 그의 상처를 돌볼 때마다 마치 고통을 덜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살짝 불어주곤 했다. 지금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 상처 위에 살짝 입김을 불었다. 이도현은 상처 부위에 스치는 은은한 서늘함에 반신이 모두 마비되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촛불 불빛 속, 신 씨의 눈에는 3월 햇살 같은 온기가 머금어져 있었고 부드러움이 맺혀 눈두덩 위에 은빛처럼 번져 있었다.숨결이 난초처럼 향기로웠고, 서늘한 감각을 따라 그의 반쪽 몸이 서서히 저려 왔다.“신 씨...”이도현의 목젖이 다시 한 번 출렁였다. 그의 불음에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직 걱정이 가시지 않은 그 눈동자를 보고는 아픈 오른팔 대신 왼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품에 껴안았다. 거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떨어졌다.“너는 말했었지. 네 남편인 윤서원이 너를 본왕에게 바친 것을 미워한다고. 또 너를 욕보이려 했던 그 마 씨도 네 손으로 죽였다. 본왕은 네 몸을 가졌고 네 정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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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본왕이 너를 대하는 것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냐?”억지로 화를 내는 그의 목소리에는 본래의 위협이라곤 전혀 없었다. 귓가에 스치듯 낮고 허스키하게 들려오는 음성에 신수빈은 자연스레 그의 진짜 감정을 분간할 수 있었다.“족합니다. 한데 남녀의 일에서 좋고 나쁘다는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신만큼은 그 속에 담긴 차가움과 따뜻함을 아는 법이지요. 저도 한때는 꿈꾸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서로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을요. 한데 저는 결국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닿으려 하면 멀어지는 것을 손에 쥔 셈이더라고요.”“왕야께서 매번 제 방에서 나가실 때마다 혹 누군가 보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감히 왕야를 향해 눈길조차 오래 두지 못했지요. 혹시라도 무언가 눈치챌까 봐서요. 이건 제가 원하던 삶이 아니지만, 저는 아무것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이지요.”“왕야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한데 제가 그리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니 밤마다 지금의 처지를 떠올릴 때면 당연히 원망이 일지요. 그럼에도 왕야께서 저를 생각해 주신다는 걸 알기에 원망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하나 저는 그저 모자라고 못난 여인일 뿐입니다. 남녀의 정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기에 원망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이 말이 이도현의 귀에 스며들자 그는 전신이 사월 꽃향기 속에 잠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망하지만 놓지 못한다는 말. 그 억울하고 여린 어조 속, 다정하고 애틋하게 얽힌 마음을 그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그녀의 마음에 원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녀가 이렇게 자신 스스로를 전부 보여주는 것이 몹시 기뻤다.그는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가볍게 떨리는 속눈썹이 억울함을 덮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깨닫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심지가 물처럼 부드러워져 있다는 것을. 미간에 머문 연무 같은 온기가 그의 목소리마저 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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