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hapter 131 - Chapter 140

168 Chapters

제131화

태후는 말 위에서 곁눈질로 이도현 쪽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곁의 여인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삼분 가량의 웃음을 보였다.자신 쪽을 보려고 하지 않는 이도현의 모습에 태후는 억지로 가슴속에 가득한 분노를 억눌렀다. 이제 그는 저런 작은 요물들에게 혼을 쏙 빼앗겨버렸으니 설령 자신이 하나를 죽인다 한들 또 다른 하나가 나타날 터였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지난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뿐이었다.태후는 말의 배를 살짝 차고 달려들 듯 홍팀 속으로 들어갔다.태후의 기마 솜씨는 훌륭했고 마구 실력도 제법이었다. 다만 오랜 세월 깊은 궁궐에 머무른 탓에 예전처럼 신기가 넘쳐흐르지 않아, 패세를 뒤집을 힘이 없었다. 하지만 청팀도 아주 눈치껏 적당히 공을 양보해준 덕분에 태후 쪽은 금세 점수를 따라잡았다.명양 장공주는 몹시 언짢은 듯 눈을 홱 굴렸다.“잘난 척은! 멀쩡한 마구를 무엇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냐? 도대체 뭘 바라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군!”신수빈은 입술을 살짝 굽히며 웃었다. 여자는 사랑받는 사람 앞에서 고운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법이었다. 무엇을 바라겠는가? 결국은 총애를 다투려는 것 아니겠는가?이도현 곁에 새로운 총애가 나타났으니 태후의 마음이 편할 리 없을 터였다. 하지만 신수빈에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일 뿐이었기에, 이도현 곁에 새로운 총애가 하나 생긴 것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태후가 오늘 내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까. 해칠 궁리를 하지 않으니 차라리 속이 후련했다.명양 장공주는 답답하다며 신수빈을 끌고 잠시 바람을 쐬고 오자고 했다. 더는 눈 버리는 경기를 볼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신수빈은 그녀와 함께 나갔다가 한참 뒤에야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태감 복색을 하고 있음에도 키가 훤칠하고 체격이 큰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등이 굽고 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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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예!”금군 통령의 응답과 동시에 이도현의 귀에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깃 화살이 밀림 쪽에서 번개처럼 날아왔고 그 화살이 향한 곳은 바로 어린 황제가 있는 자리였다!만약 목표가 이도현이었다면 그의 무공으로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어린 황제는 바람을 가르는 화살에 완전히 겁을 먹은 듯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폐하!”이도현은 몸을 번쩍 날려 화살을 막으러 갔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두 번째 깃 화살이 곧바로 따라붙었다.하지만 이도현이 첫 번째 화살을 붙잡은 순간, 두 번째 화살이 눈앞까지 날라왔다. 피할 길이 없었기에 화살은 결국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이도현은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곁의 어림군 병사 허리에서 칼을 뽑아 상처 난 부위를 내리쳐 잘라냈다. 그 모든 행동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났고 바닥에 떨어진 피투성이 살점은 이미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이것은 피에 닿는 즉시 목숨을 끊어버리는 맹독이었다.이도현은 곧바로 활시위를 당기듯 화살을 밀림 쪽으로 던졌다. 비록 부상당한 팔로 화살을 움켜줬지만, 그의 힘은 강노 같아 자객의 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분명, 그 자는 이도현이 던진 화살에 맞았다.그러나 독을 바른 자라면 해독약 역시 갖고 있을 터, 그의 목숨까지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동시에 이도현은 온몸에서 살기가 뻗쳐 나오며, 칼집에서 튀어나온 날 같은 기세를 보였다. “한 부대를 남겨 폐하를 호위하게 하고 나머지는 쫓아가거라! 그리고 행궁 곳곳은 모두 봉쇄한다! 생포하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서 참살하거라!”이도현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마구간에서 준마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원에서 기르던 수백 필의 말이 미친 듯 날뛰며 관현들이 있는 방향으로 무차별하게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현장에 있는 이들은 모두 부인들이었다.아무리 기마에 능하다고 해도 이런 대규모의 놀란 말 떼가 달려오는데 겁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옹왕비의 품에 누워 있던 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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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지고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서야 은보가 돌아왔다.신수빈의 눈에 가득 담김 다급함을 본 은보는 한동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님이 왕야의 상처를 걱정해 이렇게 마음을 졸인다고 생각했다.신수빈은 그녀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더 조바심이 나서 물었다.“어떠느냐? 자객을 잡았느냐?”은보는 마님이 묻는 것이 자객에 관한 것임을 확인하고서야 대답했다.“자객은 잡지 못했사옵니다. 다만 행궁은 이미 엄중히 봉쇄되어 있어 파리 한 마리도 빠져나갈 수 없사옵니다. 이번에 동행한 내시든 금군이든 모두 이름을 등록해 두었고 잡다한 인물들은 자객과 동일하게 처단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왕야께서 행군견을 데려오게 하셨으니 자객이 흔적을 한 가닥이라도 남겼다면 행군견이 반드시 찾아낼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 자는 도망가지 못하겠지요.”이 말을 들은 순간, 신수빈의 마음은 더욱 조여왔다. 여전히 근심이 가시지 않는 표정을 보자 은보는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덧붙였다.“마님, 왕야께서는 무사하시옵니다. 이미 태의가 상처를 치료했고 지금은 태후 곁에 계시옵니다. 폐하께서 놀라셨기에 왕야께서 달래고 계시는 것이지요.”신수빈은 차갑게 비웃었다.이도현의 안위가 그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어린 황제를 달랜다고? 웃기고 있네.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해낸 첫사랑을 달래고 있는 거겠지. 저녁 먹을 시각이 되었을 무렵, 윤서원이 들어왔다.그는 들어오자마자 신수빈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너희는 나가거라. 부인과 따로 할 말이 있으니.”신수빈은 그가 아이 문제를 논하러 온 것임을 알고 금자와 은보를 내보냈다.“그게 무슨 뜻이냐? 이 아이를 적장자로 남겨 우리 윤 가의 문벌을 욕보이려는 것이냐?”신수빈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서방님께서 묻지 않았으면 오해할 뻔했습니다. 저는 서방님께서 윤 가의 씨가 시원찮다고 여겨 일부러 섭정왕의 씨를 빌려 평양 후부의 대를 이으려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너!”윤서원의 두 눈이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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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윤서원은 신수빈이 윤 가의 정실부인 신분을 이고 적장자를 낳겠다고 하는 것에 분을 삼키지 못했다. 그는 뒤어금니를 꽉 물고 소매를 휘날리며 떠났다.돌아가는 길에도 윤서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와 뱃속의 그 잡종을 건드릴 수 없다면 이도현과 따로 조건을 논할 수밖에.그의 아이를 키워준다면 그 역시 무엇인가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저녁 식사 후, 금자가 부엌에서 달인 약을 가져왔다.이것은 신 가의 큰 오라버니가 의원을 불러 지은 처방으로 전조 궁중에 사는 어의가 만든 것이었다. 그는 여인의 출산에 도움 되는 약을 만드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달마다 이 약을 두 번 먹으면 태아가 반 달 정도 늦게 태어날 수 있는데 아이의 건강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한다.신수빈은 막 약을 마시려다 약 냄새가 예전과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금자야, 약을 달일 때 혹시 자리를 비웠느냐?”금자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뒷간에 한 번 다녀왔사옵니다.”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신수빈은 특히 더 조심스러웠다.춘진각에는 외부 사람이 없으니, 그럼 이 약에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뱃속의 아이는 윤서원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라,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서화로선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그러니 이것은 그 둘의 짓임이 분명했다.“가서 주서화가 뭘 하는지 보고 오거라.”금자는 곧바로 다녀와 보고했다.“마님, 그 약에 정말 문제가 있었사옵니다. 주씨 부인은 지금 윤서령 방에 있는데 제가 지붕 위에서 들으니 부인의 명절을 어떻게 망칠지 의논하더군요. 약 안에는 발정 성분이 들어있사옵니다. 마님께서 발작해 외간 남자를 찾아다니게 되면, 그때 바로 들이닥쳐서 마님의 추문을 폭로할 작정이라 했사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태후께 가는 길에 기회를 틈타 왕야에게 약을 먹이겠다고 하옵니다. 윤서령에게는 단장을 마치고 신호를 기다리라 하더군요.”신수빈은 비웃듯 숨을 흘렸다.창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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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임 태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물러갔다.방 안에는 태후와 이도현,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그는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낮고 평온된 목소리로 말했다.“신은 아직 자객을 추적해야 하옵니다. 그리고 태의도 태후의 상처가 심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편히 쉬십시오.”한참 뒤에야 태후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 속에는 많은 무력함과 불복이 서려 있는 듯했다.“그렇다면 가거라. 나를 신경 쓸 것 없다.”이도현은 잠시 우뚝 서 있다가 말했다.“신, 물러가옵니다.”이도현이 떠난 뒤에야 소영이 측방에서 들어왔다.“태후, 어찌하여 이 기회에 왕야를 붙들어 두지 않으셨사옵니까? 지금처럼 다치신 몸이라면 왕야께서 차마 거절하지는 못하셨을 텐데요.”태후는 이도현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눈빛에는 평소보다 더 짙은 굳건함이 깃들어 있었다.“너는 저 아이에 대해서 정말 모른다. 머무르고 싶다면 스스로 남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도, 어떤 핑계도 그를 붙들어둘 수 없다. 지금 이게 딱 좋다. 내 뜻을 알게 하고 그의 마음속에 실낱같은 죄책이라도 남는다면 마음은 결국 지난날의 정분에 끌려올 것이다.”태후의 눈썹과 눈가에는 쉽사리 걷히지 않을 짙은 정과 미련이 가득했다.“내가 생각이 짧았다. 며칠 전 갑자기 나타난 그 신 씨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내가 궁에 들어온 후 십 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곁에 나와 닮은 여자 둘이 늘었다 한들 어찌 그동안 쌓아온 정분이 흔들릴 수 있겠느냐? 오늘 그가 목숨을 걸고 황아를 구하려 한 것만 봐도 나를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태도가 차가워진 것은 1년 전 내가 현이에게 황아를 황위에 올리게 하자고 했던 그 일 때문이다. 십여 년의 정분을 그가 완전히 잊을 리 있겠느냐? 언젠가는 스스로 머무르고 싶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이도현은 돌아온 뒤 금군통령에게 물었고 그제야 밀림에서 한차례 자객을 추적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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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들여보내거라.”얼마 지나지 않아 윤서령이 이끌려 들어왔다.동싱 이도현은 반쯤 태사 의자에 기대어 앉아 들어오는 여인을 살펴보았다. 그는 경중의 규수들을 대부분 알아보지 못하기에 당연히 윤서령이 누구인지도 몰랐다.다만 그녀의 눈매에서 윤서원과 비슷한 점이 보였고 더구나 주서화가 보낸 사람이라 했으니 십중팔구 윤서원의 어느 누이쯤 될 거라 짐작했다.그는 속으로 냉소했다.아내를 밀어 넣어도 소용없으니 이제는 누이를 보낸다는 건가?오늘 윤서령은 일부러 단장하고 왔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밀려왔던 것이다.“신녀, 섭정왕께 문안드립니다.”“너는 누구냐?”“신녀는 평양후의 적녀 윤서령입니다.”“약은 저기에 두어라.”윤서령은 약을 탁자 위에 놓았다. 이제 물러가야 할 때였지만 이도현은 아직 아무런 발작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말로는 그 약이 몹시 독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이성 잃게 만든다 했는데 섭정왕은 저 높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반응이 전혀 없었기에 윤서령은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어찌 아직도 물러가지 않는 것이냐?”“신녀… 신녀는…”윤서령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때 숨을 누른 듯한 위엄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혹 너는 이 자리에서 본왕이 언제 약효가 발작하나 기다렸다가 몸을 바치려는 것이냐?”윤서령은 놀라움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도현의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진한 살기였다.바로 그 순간, 문밖에서 또 한 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큰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윤서령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도현은 그녀의 두려움과 당혹이 뒤섞인 표정을 보고 진실을 단번에 알아챘다.평양 후부는 참으로 간도 크군. 감히 자신을 계산하려 들다니!“여봐라!”이도현의 크게 내지른 한마디에 윤서령은 겁이 나 혼이 빠져나갈 듯했다.문밖의 시종들이 들어왔을 때, 이도현은 여전히 태사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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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그 당시의 춘진각은 그야말로 무척이나 떠들썩했다.신수빈은 창가에 앉아 창밖의 무궁화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퍼붓는 장대비 속에서 무궁화 꽃은 우수수 떨어지며 땅을 뒤덮었다.이 하룻밤의 갑작스러운 폭우 속에서 과연 또 얼마나 많은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까?“마님, 이렇게 있으시면 고뿔에 걸리실 것이옵니다. 제가 마님을 모시겠사옵니다.”은보가 뒤에서 조심스레 일렀다.“나는 비가 좋다.”불길에 휩싸여 몸이 타들어 가던 고통은 이미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쇄혼루는 오행 중 불에 속하는데, 그 뜨거운 불길이 그녀와 연우의 혼을 무려 칠 년 동안이나 태워왔었다.그러니 세상에서 그녀보다 비를 더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이때 금자가 바깥에서 뛰어들어왔다.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양 엄지손가락을 들어 서로 맞대더니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으로 말했다.“해냈사옵니다! 주씨 부인께서 회임하셨다 보니 세자께서는 곁에 있는 시녀에게 시중을 들라 했사옵니다. 그말에 기분이 언짢았는지 주씨 부인께서는 시녀들을 전부 내쫓았지요. 그러고 세자께 임신 초 석 달만 지나면 같이 자는 것도 괜찮다고 했사옵니다.”은보는 그녀를 흘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참 천진난만한 아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신수빈은 그녀가 또 지붕 위에 올라갔을 거라 짐작하고 가볍게 웃으며, 수건으로 금자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어서 가서 뜨거운 물로 목욕하거라. 또 비 맞지 말고.”그리고 은보에게 일렀다.“부엌에 가서 생강차 좀 끓여오너라. 몸속의 한기를 끊어내야 한다.”금자는 괜찮다는 듯 말했다.“마님, 저는 괜찮사옵니다. 예전에 군을 따라 전쟁할 때도 비 오는 날에 행군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사옵니다. 이 정도 비쯤이야 아무것도… 아취!”말을 마치기도 전에 재채기가 튀어나오자 신수빈은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계속 강한 척하기는.”금자는 담담하게 말했다.“정말이옵니다. 진짜 아무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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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잠깐만요.”신수빈은 앞으로 나서서 한 번 훑어보았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고 그중 한 사람은 더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저를 따라오세요.”신수빈은 그들을 데리고 정실을 돌아 병풍으로 나눠둔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당분간 불편은 좀 감수해 주세요.”신수빈은 이 말을 할 때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윤수혁은 그녀의 뺨 위로 스친 붉은 기운을 보고서야 이곳이 어떤 곳인지 깨달았다.다름아닌 화장실로, 안에는 요강이 놓여 있었다. 여인에게 있어 극히 사적인 장소였다.윤수혁은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꼈고 지금은 예를 갖추기 어려워 진심을 담아 말했다.“감사합니다.”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불편하지는 않습니다.”그는 그 말과 함께 다친 사내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신수빈은 희미하게 풍기는 피 냄새를 맡으며 만약 누군가 진짜로 수색하러 들어온다면 쉽게 들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급히 옷걸이에서 자신의 옷 두 벌을 꺼내 윤수혁에게 내밀었다.“이걸로 덮으세요.”옷을 받아드는 순간, 그녀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그의 곁에 스며들었다.윤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동료의 몸 위를 덮었다.바로 그때, 바깥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누군가 수색하라고 크게 외치자 발걸음 소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신수빈은 화장용 상자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분가루를 꺼내 방 안 곳곳에 뿌렸다.그녀가 그것을 바닥 깊숙이 넣어두었던 이유는 연지 분가루 향이 지나치게 진해서였다. 둘째 오라버니가 해외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긴 했지만, 그녀는 그 향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진한 향은 방 안에 남아 있던 희미한 피 냄새를 완전히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모든 것을 마친 찰나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그녀의 급한 심장박동과 딱 맞아떨어졌다.신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머리의 금비녀와 구슬을 뽑아내 푸른 머리칼이 흘러내리도록 하고 입고 있던 옷을 가벼운 침의로 갈아입었다.문 앞으로 간 그녀는 한 번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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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금군이 흩어진 뒤, 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턱관절이 바짝 굳어버려 억지로 분노를 누르며 말했다.“금군이 수색하러 온 걸 알면서 옷 한 벌 거칠 생각을 못 한 것이냐?”신수빈은 하품을 하나 늘어뜨리며 게으르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왕야, 요즘 참 간섭이 많으시네요. 이제는 옷마저 간섭하시려는 겁니까?”그러면서 그를 밖으로 밀어내며 무심하게 말했다.“볼 일 없으시면,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왕야께서는 돌아가세요.”이도현은 그녀가 자신을 종이라도 내쫓듯 대하는 모습에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왔다.“본왕이 빗속을 헤치고 달려온 건 네가 금군에게 충돌당할까 염려해서다. 한데 본왕에게 보답하는 방식이 이런 것이냐?”“왕야의 정사를 방해할까 봐 그랬던 것이지요. 왕야께서는 참으로 분별이 없으시네요.”문가로 빗줄기가 들어오자 얇게 입은 그녀의 모습이 더욱 아련해 보였다.이도현은 비바람을 가로막으며 그녀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다.신수빈은 속으로 조급했으나 겉으로는 차마 티낼 수 없었다.그녀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내실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도현의 콧날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신수빈은 혹시라도 냄새를 맡을까 두려워 서둘러 자신의 손목을 그의 코앞으로 내밀었다.“왕야, 새로 산 분가루 향은 어떠십니까? 제 둘째 오라버니께서 해외에서 직접 가져온 것입니다.”이도현은 몸을 굽혀 그녀의 목덜미 근처를 가볍게 맡아보았다. 평소 그녀에게서 나는 자연스러운 향이 아니라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본왕은 이 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의 본래 체향이 훨씬 좋다. 앞으로 다시는 쓰지 말거라.”“왕야도 참 까다롭습니다.”신수빈이 작게 중얼거렸다.이도현은 동쪽 익실을 둘러보더니 침상 주변의 숨겨진 공간들을 살펴보았다.그러고는 이윽고 발을 돌려 정실로 향했다.“왕야 어디 가십니까? 저는 그래도 윤 가의 정실 부인인데 왕야께서 이렇게 제 방에 들어오신 후 문까지 닫아버리면 그 많은 금군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한참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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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그렇다면 본왕은 먼저 나가겠다. 이따가 다시 오마.”신수빈은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문 앞까지 배웅해 주자 이도현은 그녀의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고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앞으로 밤에 본왕이 없을 때는 이렇게 얇게 입지 말거라!”신수빈은 얼른 그를 내쫓고 싶었기에 대충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이도현은 만족한 듯 방을 나서며 문을 꼭 닫아주었다.그 시각, 뜰에 있던 금군들은 막 서쪽 익실과 하인의 뒤채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주전의 문을 오래 두드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자 누군가 이도현에게 고했다.“왕야, 평양후 세자께서 문을 열지 않사옵니다.”이도현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가웠으며 삶과 만물에 무심한 냉혹함으로 가득했다.“문을 부수거라.”금군이 문을 걷어차는 순간, 밖에 있던 병사들은 일제히 안으로 들이닥쳤다.안쪽에서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이내 욕설이 이어졌다.“대담하구나! 나가거라, 어서!”이윽고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벌게진 얼굴로 뛰쳐나와 이도현에게 보고했다.“왕야, 안에는… 안에는…”이도현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자 대장은 그 기세에 눌려 급히 말을 덧붙였다.“평양후 세자와 서화 군주께서 동침 중이셨사옵니다.”이도현의 눈빛에는 차가운 조롱이 스쳤다. 그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폐하를 시해한 흉수가 더 중요한 것이냐, 아니면 윤서원의 찰나의 즐거움이 더 중요한 것이냐? 당장 수색을 시작하거라. 어느 모퉁이도 놓쳐서는 안 된다.”명령을 받은 대장은 더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주서화를 건드렸다가 태후의 노여움을 살까 겁먹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사람들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침상 위의 두 사람은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윤서원은 기절한 듯 아무런 미동 없이 침상 위에 똑바로 누워 있었고, 주서화는 그의 위에 걸터앉은 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다.모든 이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입 밖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 황실의 귀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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