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apítulo 221 - Capítulo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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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1화

곧 상점 주인이 옷 몇 벌을 가져온 후, 손발이 재빠른 시녀 하나를 곁에 세워 두더니 사위 어른의 시중을 들게 했다.하지만 그는 안으로 들어서며 문가에 서 있는 시녀를 한 번 흘끗 보기만 하고는, 목소리에 차갑고 담담한 기색을 담아 말했다.“부인만 들어오면 된다.”신수빈은 속으로 그를 한 번 욕해 주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채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상점 주인은 옆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나 금슬 좋은 부부였다. 사위 어른은 다른 여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눈에는 오직 자기 집 마님만 담고 있으니 말이다.신수빈은 얼른 이도현의 옷을 갈아 입혀 주었다. 비록 평범한 천으로 지은 옷이긴 했으나 사내의 체격이 워낙 크고 어깨가 넓었기에 이런 소박한 옷자락마저도 기세를 머금은 듯 보였다. 몸가짐에는 절제된 귀함과 서늘한 위엄이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신수빈은 한 번 훑어본 뒤 제법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훗날 연우가 이 사람처럼 키가 크고 반듯한 체구를 닮는다면 틀림없이 늠름한 사내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인성은 영 별로지만 씨는 참 좋았다.이도현은 신수빈의 눈에 담긴 흡족함과 감탄을 읽고 속으로 꽤나 흐뭇해했다. 역시 윤서원 같은 폐물과는 애초에 견줄 대상이 아니었다.신수빈은 기성복 상점을 나간 뒤, 마부에게 성외로 가자고 일렀다.“성외로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왕야께서 도착하시면 아실 겁니다.”그녀가 일부러 말을 아끼자 이도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달리할 일도 없을 테니 그녀의 안배에 맡기기로 했다.도착해 신수빈이 수레의 발을 걷자 익숙한 네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이도현은 ‘청운서원’이라는 현판을 보는 순간 적잖이 놀랐다. 신 가에서 이 서원을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어진 건물과 터가 끝없이 펼쳐져 족히 백 묘는 되어 보였다. 규모만 놓고 보면 국자감보다도 훨씬 컸다.“어찌 이리 큰 것이냐?”이 서원은 확실히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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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신수빈은 이도현의 깊고 맑은 눈동자가 서서히 짙어지는 것을 보았다.그 안에서 무엇인가가 아련히 흔들리고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쉽사리 가늠할 수 없었다. 그의 속내를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에 신수빈의 마음에도 잠시 불안이 스쳤다. 자신이 뒤에서 펼쳐 놓은 그 그물망을 혹시 그가 눈치챈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였다.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덮었는데, 가느다란 그녀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왕야, 제가 혹시 말을 잘못한 건 아니겠지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큰 오라버니께서도 그저 신 가가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 백성들의 돈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으나 늘 선한 이에게 기운다. 하늘은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지만 선을 행하는 사람은 결국 보살핀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큰 오라버니께서도 백성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으셨던 겁니다.”그러자 신수빈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스스로를 낮추듯 말을 덧붙였다.“저는 그저 작은 여인에 불과해 군국의 큰일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요즘 태교를 핑계로 역사책을 조금 읽다 보니 감히 왕야 앞에서 이런 말을 꺼낸 것뿐이지요. 혹여 틀린 말이 있었다면 부디 탓하지 말아 주세요.”이도현은 그녀의 불안한 시선을 마주한 채, 손을 뒤집어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틀린 말이 아니다.”그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니 본왕이 어찌 너를 나무라겠느냐?”그 말에 신수빈의 얼굴에는 안도와 함께 밝은 기색이 번져 나갔다. 이도현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신 가는 잘하고 있다. 그리고 너도 참으로 잘하고 있다.”그 말에 신수빈은 몸을 일으켜 앉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맑은 눈동자에 옅은 근심이 스며들었 다.“왜 그러느냐?”이도현은 아직 자신의 마음이 그녀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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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이도현이 서원 안으로 들어서자 관리로 보이는 차림의 인물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처음에는 학문을 배우러 온 유생이라 여겼던 듯했으나 이도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눈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기골이 장대하고 기운이 단정하며 한눈에 보아도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몸에 걸친 옷차림은 지극히 수수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큼은 옷자락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실례지만 어느 분이십니까?”그는 자기도 모르게 공손한 어조가 섞여 나왔다.“본… 그냥 들러 본 것이다.”이도현이 애써 담담하게 답하자, 관리인은 즉각 눈치를 챈 듯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그렇다면 소인이 모시고 서원을 둘러보지요.”이도현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서원은 아직 초창기라 비어 있는 건물도 많았고 학생들은 연령대가 제각각이었다. 다만 한눈에 보아도 대부분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안의 아이들이었다.이도현이 앞으로 나아가자 관리인은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으며 서원의 운영에 대해 설명했다.“어찌하여 경작지가 있는 것이냐?”이도현은 넓게 펼쳐진 밭을 보고 다소 뜻밖이라는 듯 묻자, 관리인이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귀인께서 모르실 수 있습니다만, 백성들은 해마다 씨앗을 남겨 심습니다. 땅도 척박한데 종자마저 빈약하니 수확이 넉넉할 리 없지요. 저희 집안 어르신께서 각지를 돌며 곡식을 거둘 때 따로 우량종을 골라 두셨고 농사에 밝은 이들을 함께 불러 종자를 기르고 있습니다. 또 어르신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재능은 저마다 다르다고요. 글을 잘 읽는 이도 있고 섭정왕처럼 병법에 밝은 이도 있으며 저희 집 셋째 도련님처럼 지세와 수로에 흥미를 두는 이도 있지요. 모두가 장수나 장원급제가 될 수는 없기에, 만일 재능이 농사나 장인 일에 있다면 누군가 제대로 이끌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보탬이 된다고 하셨습니다.”관리인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그래서 서원에 원장님을 따로 모시고 있습니다. 학생 선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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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이도현은 돌아가기 전, 학사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마침 학생들이 훈장에게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익었다. 그는 무심코 시선을 던졌다가 놀라운 사실에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강단에 서서 수업을 하고 있는 훈장이 다름 아닌 예왕인 것이었다.선황이 붕어한 뒤, 황자들은 제각기 다른 운명을 맞았다. 다섯 째 황자는 지난해 먼저 봉지로 떠났고 남은 이들은 친왕의 명목만 남긴 채 봉읍은 받되 모두 경성에 묶여 있었다.그중에는 모가의 세력이 두터운 자들도 있었고 이유 없이 병사한 자들도 있었다. 다만 예왕만은 작년의 그 대대적인 숙청 속에서도 이도현이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인물이었다.예왕은 모가에 기대할 만한 세력도 없었고 손에 쥔 병권도 없었기에 선황에게도 내내 외면받았었다. 정사에 관여한 적도 거의 없어 황실 안에서도 늘 존재감이 옅은 인물이었다. 그런 예왕을 이런 곳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도현의 놀란 기색을 눈치챈 관리인은 그가 예왕을 알아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방문객이 범상치 않음을 확신했다. 그는 더욱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강단에 계신 분은 예왕 전하십니다. 서원을 세울 당시, 강학할 훈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때 예왕께서 신 가의 의로운 뜻을 들으시고 스스로 나서 주셨습니다. 사례는 한 푼도 받지 않으셨고 이제 강학을 맡으신 지도 한 달이 넘었어요.”이도현은 짧게 응답했다. 그는 예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조용히 몸을 돌려 서원을 나섰다.마차에 다시 올라 신수빈을 마주했을 때, 그는 할 말이 참으로 많았다.지금 느끼는 이 후련함을 당장이라도 전하고 싶었고 조정에서조차 도저히 실행 불가능하다고들 말하던 일을 신 가가 해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그러나 그녀의 눈가에 번진 잔잔한 미소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말이 불필요해졌다.‘백성은 근본입니다. 다스릴 수는 있어도 노예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을 터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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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신수빈은 이도현이 지금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만 이 사람은 성정이 높고 자존심이 강하긴 해도 달래기 어려운 유형은 아니었다. 잠시 후에만 잘 달래 주면 풀릴 성미였다.그가 아이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상, 음험한 수단까지 쓰지는 않을 것이다. 권력을 쥔 사내가 설령 나쁘다고 해도 대놓고 수완을 드러내는 법은 없으니까. 그 점만큼은 신수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이도현은 내내 얼굴을 굳힌 채 걸음을 옮기며 그녀의 작은 행동들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신수빈은 그가 속으로 자신을 분명히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껏 호의를 베풀어 부친에게 관작을 내리려 했는데 그녀가 단칼에 거절했으니 말이다.지금 그의 속은 분명 불쾌함으로 가득 차 있을 터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왕부로 들일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만약 =그녀의 출신이 높아질수록 그 일은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그의 곁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배려를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절 아래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 신수빈은 일부러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손을 뿌리쳤다.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이 산은 그리 높지 않았고 절은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길도 완만해 걷기 수월했으므로 신수빈에게 큰 부담은 없었다.다만 앞서가는 그 사내가 문제였다. 다리가 길어서 보폭이 큰 그는 잠깐 사이에 그녀를 훌쩍 따돌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뒤처진 걸 알면 마치 풍경을 감상하는 듯 멈춰 서 있다가, 그녀가 가까워지면 다시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또다시 거리를 벌렸다.신수빈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절에 도착하면 두고 보자고.’절에 이르렀을 때, 이도현은 이미 절의 주지와 경전을 논하고 있었다.마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양 굴었는데 그 모습만 봐도 여전히 심기가 상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주지는 두 사람의 신분을 알지 못했으나 이도현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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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그렇다면 시주께서는 한 번 더 제비를 뽑아 보시지요. 노승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신수빈은 이도현을 바라보며 가서 뽑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이도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별로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신수빈은 입술을 살짝 다물더니 그를 흘겨보았다.그리고 이내 그의 손을 붙잡아 제비통 앞으로 끌고 가서는 직접 한 장을 뽑게 했다.주지는 점문을 한 번 훑어본 뒤에야 비로소 눈매가 한결 누그러졌다.그는 천천히 읊조리듯 말했다.“높은 누각에 오르지 말고 몸을 숨기어 가시덤불 숲에 은거하시라. 하늘은 높고 군주의 명은 길고 짧으니 태극귀인을 보아야 하리라.”신수빈이 주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대사님, 어떻게 풀이해야 합니까?”주지는 차분히 설명했다.“귀인께서는 강건하나 지나치게 강해 부러지기 쉽습니다. 즉, 살기를 부르는 화를 입기 쉬운 상이란 뜻입니다. 그 화가 닥칠 때에는 절이나 누각 같은 곳을 피하시고 산림에 몸을 숨겨야 치명적인 살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귀인의 명 속에 있는 태극귀인에 달려있습니다. 그분이 과연 손을 내밀어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이지요.”신수빈은 설명을 들은 뒤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하고 향유전도 넉넉히 보탠 다음 후원의 처소로 향했다.방 안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도현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이런 승려들이야 말로 늘 신비로운 말로 꾸며내며 너 같은 무지한 여인들에게 향유전이나 뜯어내는 법이다.”신수빈은 속으로 눈을 한껏 굴렸다.‘전생에 억울할 것도 없지. 저 오만한 성미로는 누가 안 죽이고 버티겠나?’“예, 왕야께서는 영명하신 분이고 저는 무지한 여인일 뿐입니다. 헌데 누가 감히 왕야의 총명함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이도현은 그녀의 비아냥 섞인 말투를 듣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이 작은 여인이 점점 자신 앞에서 대담해지고 있었다.그가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는 순간, 바깥에서 승려가 채식 상을 들고 들어왔다.이곳은 불문이기에 승려 앞에서 지나치게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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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돌아오는 길 내내 그는 억지로 자신을 형부라고 부르라며 그녀를 압박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더라면, 신수빈은 절에서 그를 건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다.성 안으로 들어설 즈음, 그녀의 숨결은 약간 불규칙적이었고 뺨에는 엷은 홍조가 남아 있었으며 옷자락도 그의 손길에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반면 이도현은 여전히 단정했다. 그녀가 옷매무새를 추슬러 정리하려 하자 그는 다시 그녀를 끌어당겼다.“본왕이 해 주겠다.”신수빈은 몸을 틀어 그의 호의를 피했다.등을 돌린 채 옷을 정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도현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순간, 신수빈은 속으로 그를 수없이 욕했다.“본왕이 너를 데려갈 곳이 있다.”이도현이 이내 뒤에서 그녀를 감싸안고 낮고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신수빈은 조금 전, 그가 끝내 풀지 못한듯한 기색을 떠올렸다. 마차 안이기도 했고, 들킬까 봐 두려워 끝까지 거부했는데, 그때만큼은 그도 더 강요하지 않고 물러났었다.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은 단단했고 체온은 지나치게 뜨거웠다.신수빈은 그의 성정을 알고 있었다. 이도현은 자신을 놓아줄 리 없을 것이다.어디로 데려가려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도착하자, 이도현이 먼저 내렸다. 신수빈은 마차 발을 살짝 걷어 올려 밖을 훔쳐보았다.이도현이 무언가를 말하자 문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그렇게 사방이 조용해진 뒤, 그는 마차를 가볍게 두드렸다.“나오거라.”신수빈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내렸다. 그 몰래 움직이는 모습에 이도현은 콧소리를 냈다.‘내 사람이 되면 이렇게 숨을 필요도 없을 텐데.’안으로 들어서자 머리 위에 걸린 홍문관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신수빈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홍문관은 장서를 관장하는 관청이었기에, 이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이도현은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에는 드물게 부드러운 빛이 감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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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잠시 후, 서가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다.”소리를 따라가자 이도현은 한 줄로 늘어선 서가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볼 때는, 늘 오만했던 얼굴에 희미한 부드러움이 덧입혀져 있었다.“이곳은 역대 왕조의 사관들이 기록한 문헌과 사료다. 민간 학자들이 모은 전기들도 있고 밖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고본도 적지 않다. 와서 보거라.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본왕이 사람을 시켜 보내 주겠다.”신수빈은 잠시 멈칫했다.“왕야께서 저를 데리고 오신 이유가 책을 고르기 위함이었습니까?”“그럼 무엇이겠느냐? 홍문관에 서책 말고 또 무엇이 있다고? 본왕이 너를 데려와 장신구를 고르겠느냐?”이도현은 그녀의 눈에서 놀람이 가라앉고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기색이 스쳐 가는 것을 보았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뒤섞인 듯 그녀의 뺨은 붉어졌다. 그녀는 힐끗 한 번 그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 신수빈은 귀 끝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도현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무슨 경박한 말을 했기에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들어올 때부터 그녀는 고개를 낮추고 얌전히 그의 곁을 따랐다. 비록 거부도, 저항도 없었지만 표정 어딘가엔 지울 수 없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줄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신수빈의 눈에 이도현은 언제 어디서든 욕망만 앞세우는 사내였단 말인가?이도현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서가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한 손을 서가에 짚어 그와 서가 사이 피할 수 없는 공간에 그녀를 가두었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몰아넣은 것 같았다. “네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본왕이 너를 여기로 데려온 데에는 그런 마음도 있긴 하니… 그리고 사람도 없는데,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자리 아니겠느냐?”희롱하듯 던진 그의 말에 신수빈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그를 오해한 것이 부끄러웠고 그 오해를 이렇게 들춰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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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신수빈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런데 곧 닥칠 것이라 여겼던 통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벽 모퉁이에 기대어 있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리를 굽혀 작은 공간 하나를 떠받치고 선 이도현의 모습이 보였다.그 광경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창백한 얼굴로 움츠리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에 맞은 줄로 여긴 것이다.“어디 다쳤느냐?”신수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사방에는 흩어진 책들이 널려 있었고 그의 등 뒤에는 무너진 서가가 그대로 얹혀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단정히 묶였던 그의 머리칼을 고정하던 잠이 비뚤어져 있었다. 그제야 이 서가가 얼마나 세게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왕야, 괜찮으세요?”“문제없다.”그는 그녀를 안전한 자리로 옮긴 후, 한쪽 팔로 무거운 서가를 밀어 올리듯 힘껏 밀어냈다.신수빈은 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이 순간에서야 비로소 그가 지닌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토록 거대한 서가가 사람 위에 덮쳐 눌린 상황에서 과연 몇이나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그러자 문득 술집이나 찻집에서 이야기꾼들이 늘 입에 올리던 말이 떠올랐다. 이도현은 삼군 중에서도 가장 용맹하고, 힘으로 솥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내라고. 그리고 오늘 이도현이 뽑았던 그 제비 문구도 함께 떠올렸다.천성이 빼어난 인재, 전쟁을 끝내고 한 번에 천하를 바로잡아 제후들을 제압하네. 세상을 덮는 공명,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겠으나 어찌하여 숲속 언덕에 묻히는가?그는 이 혼란한 시대를 끝낼 사람이었다. 본디 천명이 그에게로 돌아가야 했으나 끝내 제위는 그의 손을 벗어났다.예로부터 강산과 미인 사이에서 과연 몇이나 강산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던가?그는 구중궁궐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궁 안에 있는 그 태후라는 존재는 그에게 얼마나 무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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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이도현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짙고 깊은 눈동자는 먹구름에 잠긴 하늘처럼 흐릿하게 일렁여 그 안에 어떤 생각이 깃들어 있는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었다.“그런 게 좋으냐?”신수빈은 잠시 멈칫했다. 이도현이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옅게 웃으며 숨김없이 입을 열었다.“출가하기 전에는 세상 물정을 몰랐습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마련해 준 풍족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며 그저 그 삶에 만족했지요. 그렇기에 조정의 관원들이 무엇을 맡고 어떤 일을 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했고 집안에서도 저를 정략에 쓰려 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날개 아래에서 평온하고 무탈하게 살기를 바랐을 뿐입니다.”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한데 제가 만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꾸며 낸 사랑에 빠져 남자를 믿어서는 안 될 만큼 믿어 버렸지요. 그는 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왕야께 바쳤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어릴 적부터 붙들고 살아온 모든 신념과 가치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약간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리고 또다시 저를 마용에게 넘기려 했을 때 이미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저항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이미 그의 아내였고 제 영광과 치욕은 모두 그에게 매여 있었으니까요.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까요? 그저 왕야께서 그날 밤의 인연만이라도 기억해 주시어 제 손을 잡아 이 심연에서 끌어내 주시길 바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왜 그때 저는 반항하지 못했을까요? 왜 스스로를 구할 힘이 없었을까요? 왜 오직 왕야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신 가의 힘이 너무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큰 오라버니께 호소한들 무엇이 달라졌겠습니까? 당대의 각로요, 일품 내각 대신인 자를 신 가가 감히 건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마용이 대놓고 요구한다 해도 신 가는 손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그녀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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