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apítulo 231 - Capítulo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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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그녀를 평양 후부로 돌려보낸 뒤 이도현은 곧장 왕부로 돌아가서 장풍을 불러들였다.“지난번에 신경택이 입경하며 바친 산호수는 어디에 두었느냐?”“진보사에 보관해 두었습니다.”이도현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낮게 입을 열었다.“한 가지 일을 맡기겠다. 네가 나서서 처리하거라.”장풍은 그 지시를 듣고 적잖이 놀라며 의아해했다. 이도현은 더 설명하지 않고 곧 조복으로 갈아입은 뒤 자리를 떴다.장풍은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오늘 밤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다음 날 조정에 나가겠구나 짐작했다.아까 왕야가 내린 명을 곱씹어 보았으나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침 황성사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녕이 그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장풍은 왕야의 지시를 그대로 전했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왕야께서 그 산호에 손을 대서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난 것처럼 꾸미라 하셨는데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요?”장녕은 아우를 힐끗 보았다. 평소엔 영리하고 일 처리도 빠르지만 정작 이럴 때는 왕야의 속내를 읽지 못하는 모양이었다.그는 행궁에서 왕야가 윤씨 마님에게 보이던 태도를 보고 급히 말을 달려 돌아온 뒤부터, 이미 그 여인이 왕야 마음속에서 차지한 무게를 짐작하고 있었다.“어리석긴. 그 산호는 아직 황제 폐하와 조정 대신들 앞에 올려지지 않았잖아. 머지않아 반드시 진상될 텐데 그때 상서가 나타나면 누구에게 이롭겠어?”“신 가지요.”장풍은 그제야 번뜩 깨달았다.“그래! 신 가에 이롭다는 건 곧 마님께 이롭다는 뜻이다. 우리 왕야께서 마님을 대하는 게 단순한 한때의 총애가 아니란 말이다. 장기적인 계산을 하고 계신 거지. 이제 신 가의 격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신 거다.”장풍은 왕야가 마님을 아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그러면 신분을 높여 봤자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마님께서는 첩이 되려 하지도 않잖아요. 아이를 낳아 후부인 자리를 굳히고 나면 더더욱 왕야를 상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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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그들은 왕야의 성정이 얼마나 결단력 있는지를 잘 알았다. 태후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방식으로라도 왕야를 붙잡아 두려 한 것이었다.왕야는 물론이고 그들 역시 그 행태가 몹시도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왕야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고 여 귀비 앞에서조차 태후의 체면을 봐주지 않게 되었다.두 사람 모두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고, 장풍은 결국 입꼬리를 비틀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왕야께서 이미 마음을 정리하셨다면 차라리 명문가 규수들 중에서 왕비를 고르시는 게 맞지 않습니까? 한데 어찌 태후와 몇 분 닮았다는 이유로 그 마님과 계속 얽히시는 건지요? 이건 옛정이 남은 게 아닙니까?”하지만 장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왕야께서 그 얼굴 때문에 마음을 두신 건 아닐 게다. 그 마님이 왕야 곁으로 보내졌을 당시, 왕야는 이미 정신이 온전치 않아 상대가 누구였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 이후에도 아직 경성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마님이 윤서원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사람을 붙여 돌보게 한 건 아마도 마음속의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마님과 접하며 왕야는 그녀를 결코 대역으로 여기지 않았다. 대역이라면 왕야 성격상, 어찌 태후와 닮은 여인을 곁에 두었겠느냐? 마님과 태후는 애초에 같은 부류가 아니다. 왕야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게 바로 계산에 능하고 속내가 깊은 여인이라, 태후가 왕야의 마음에서 멀어진 것이지. 한데 마님을 보거라. 그녀가 벌이는 일 하나하나를 왕야께서는 다 알고도 내버려두시는 것이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아끼고 계시지. 같은 계략가라도 태후는 마님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단 말이다. 아마 왕야께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곁에서 지켜보는 그들 눈에는 분명했다. 왕야가 쏟는 마음은 마님이 왕야에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었다. 그녀는 그럴듯한 말로 이도현을 달래주었지만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다만 남녀 간의 정을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왕야는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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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곧 돌아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마당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막 밖으로 나가려다, 낯선 목소리가 섞여 들리자 걸음을 멈췄다.“조카 며느리, 그간 셋째 숙모가 실례가 많았다. 네 둘째 숙모가 워낙 성미가 급해 내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거든. 네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부디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신수빈이 공손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둔 태도로 응대하며 그 사람과 함께 화청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방금까지 가슴속에 차오르던 열기가 그제야 조금 가라앉았다. 이도현 역시 알고 있었다. 그가 신수빈의 내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된다면 그녀에게 얼마나 큰 화가 미칠지.그제야 그는 신수빈이 평소 입에 달고 살던 ‘간부’라는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그녀 곁에 있는 그는 햇빛 아래 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곁에 있는 그녀 역시 세상에 드러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신수빈은 문을 들어설 때 이미 은보에게서 눈짓을 받았다. 이도현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눈치 빠른 셋째 마님이 무엇인가 눈치챌까 염려했기 때문이다.이윽고 셋째 마님은 완곡한 말투로 자신이 경영 쪽에는 영 재주가 없다며 신수빈에게 대신 살펴달라는 부탁을 꺼냈다. 신수빈은 그 말을 듣고 부드럽게 웃었다.“셋째 숙모께서 저를 높이 봐주시니 영광입니다만, 요즘 뱃속 아이가 점점 커지고 집안 살림도 맡고 있어 여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 혼수조차 친정 큰 오라버니께서 대신 봐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와드리고 싶어도 정말로 힘에 부칩니다...”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이었다. 셋째 마님은 그 말에 막힌 듯했지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은 본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오늘 찾아온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녀의 친정 큰 오라버니는 대리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오늘 그녀는 친정에 들렀다가 그에게서 신도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수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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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신수빈은 다소 난처한 기색을 띠며 답했다.“셋째 숙모의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지금 서방님께서는 병상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셋째 숙모의 조카 따님이 들어와 서방님의 첩이 된다면 그분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서방님께서 과연 회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어찌 그분의 평생을 걸 수 있겠습니까?”셋째 마님은 아무리 속내를 숨기는 데 능하다 해도 이 말에는 거의 숨이 넘어갈 뻔했다.내실에서 내내 울적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이도현이었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괜히 윤 씨 집안에서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까 염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저 영리한 입은 한 번 열리기만 하면 사람 속을 정통으로 찌르는 법이었다.신수빈은 셋째 마님의 분노 어린 얼굴을 보고는 오히려 더 조심스러운 척하며 물었다.“설마… 셋째 숙모께서도 조카 따님을 서방님의 첩으로 들일 생각은 아니신 거지요?”셋째 마님은 이를 악물고 속을 눌러 참으며 대답했다.“당연히 아니지. 네 오라버니와 혼사를 맺으려는 생각이었다.”그제야 신수빈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또다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셋째 숙모께서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희 신 씨 집안은 증조부 대부터 가풍이 정해져 있어 집안 남자들 모두 마흔이 지나기 전에는 첩을 들이지 않습니다. 셋째 숙모의 조카 따님을 제 큰 오라버니의 첩으로 맞이하려는 뜻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마흔이 지난 뒤라면 또 모르겠지만요.”“너…!”성미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했으나 결국 참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에 분노를 띠고 벌떡 일어나더니 신수빈을 노려보았다.“내가 내 친정과 함께 너에게 무슨 큰 죄라도 지었느냐? 이렇게 빙빙 돌려 우리를 모욕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 누가 너희 신 씨 집안에 첩으로 들어가고 싶다 했느냐? 그런 헛된 꿈을 다 꾸다니!”말을 마친 셋째 마님은 소매를 거칠게 휘두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명문가의 적출 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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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신수빈은 정말로 선을 넘고 그를 유혹하려던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을 가볍게 한 번 잡았다가 이내 놓아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처음부터 그분들이 저를 괴롭혔잖아요. 전에 셋째 오라버니께서 막 옥에 갇혔을 때, 그분이 둘째 마님과 손잡고 제 처지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이 집안에서 이미 발 밑에 짓밟혀 산 채로 뜯겼을 거예요.”이도현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이곳에서 데려 나가겠다는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지금은 아직 모든 것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도 잘 알았다. 지금 그녀에게 떠나라고 한다면, 쉽게 응할 리가 없었다.“왕야, 식사는 하셨습니까?”신수빈이 먼저 화제를 돌렸다.“아직.”“사람들이 너무 성의 없네요. 제가 나갈 때 분명히 당부했는데 말입니다.”이도현은 그녀의 손을 잡아 내실로 이끌며 말했다.“준비는 해두었다. 본왕이 네가 돌아오길 기다려 함께 먹자고 한 것이다.”방 안으로 들어오자 음식은 이미 식어 있었다. 신수빈은 하녀를 불러 데우려 했지만 결국 그대로 식사를 마쳤다. 잠시 후, 신수빈은 이도현이 아직 조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왕야, 오늘 밤 왕부로 돌아가지 않으시나요? 내일은 조정에도 나가셔야 하고요.”그녀의 말투에서 은근히 내쫓는 기색을 느낀 이도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못마땅해한듯 말했다.“본왕이 머무는 게 싫으냐?”“제 몸이 불편해서 왕야를 제대로 모실 수가 없습니다. 밤에도 자주 깨서 괜히 왕야의 휴식을 방해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요.”“본왕은 방해받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한데 너가 대체 무엇이 걱정된다는 것이냐?”이렇게까지 말하니 신수빈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허리띠를 풀며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왕야께서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니 나중에는 왕야 없이 지내지 못하게 될까 봐서요.”그녀는 이런 달콤한 말을 내뱉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신수빈이 겉옷을 벗겨 옷걸이에 걸어 둔 순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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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이도현이 더는 윤서원 저택으로 드나들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설령 그녀를 찾고자 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밖에서 만나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들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다 방법이 있다.”신수빈은 그렇게 말하며 청하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 개자식은 귀가 유난히 밝았기에 혹시라도 들었다가는 또다시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애를 먹어야 할 터였기 때문이다.신수빈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도현은 그녀가 나오자 책에서 시선을 떼고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렸다.“지난번 행궁에서 입었던, 매미 날개처럼 얇던 옷은 어찌 되었느냐? 본왕은 그게 마음에 든다.”신수빈은 요염하게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돌아서서 침상으로 가려 했는데, 이도현이 손짓하며 그녀를 불렀다.“이리 오너라.”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만큼 신수빈도 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눈빛이 깊어지고 기세가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면 대개는 그가 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이도현은 본래 만족을 모르는 사내였다. 어젯밤부터 오늘 마차에서까지, 이미 두 번이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오늘 밤은 그의 인내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지금 그는 기어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기색이 분명했다.신수빈은 이도현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거스를 수 없다는 무력감이 먼저 들었다. 그녀가 다가가 서안(책을 놓을 수 있는 낮은 책상) 앞에 이르자 그는 손목을 붙잡아 가볍게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무릎 위에 비스듬히 기대앉게 되었다.“침상은 싫다 했지. 그럼, 여기는 괜찮지 않느냐?”이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이마를 맞댄 채 말끝까지 다정함을 숨기지 않았다.창 아래에는 원래 미인탑이 놓여 있던 자리였으나 그녀가 서안으로 바꿔 두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자리를 깔아 두어 평소에도 잠시 몸을 누일 수 있게 만들었지만, 창가에 너무 가깝다는 것이 흠이었다. 바깥의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만큼 안의 기척 또한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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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이도현은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더니 가볍게 웃으며 읊조렸다.“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걷고 있는데, 얼굴이 무궁화처럼 곱도다. 훨훨 날 듯 걷는 자태에 옥패 소리가 고요히 울리네. 아름다운 맹강이여 그 고운 수빈이 잊히지 않도다. 네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냐.”신수빈은 줄곧 그를 무인이라고 여겼다. 글 몇 편쯤 읽었을지는 몰라도 문인들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진 시경의 구절까지 줄줄이 읊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를 얕잡아보았다는 걸 깨달았다.“맞아요. 저와 오라버니의 이름은 모두 조부께서 지어주셨습니다.”“좋은 이름이구나.”이도현은 문득 신수빈의 조부를 떠올렸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노인은 이미 환갑을 넘긴 뒤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 이도현의 군영을 찾아와 신 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아 난을 평정하는 데 보태겠다고 했다.난세에 상인 가문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 전쟁과 혼란이 몇 차례 지나가고 나면 조금이라도 재산이 있는 집안은 예외 없이 약탈당했다. 바로 그 결단 덕분에 신 가는 난세 속에서도 의탁할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노인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분이셨지. 본왕이 듣기로는 맨손으로 시작해, 불과 이삼 대의 경영으로 천하에 손꼽히는 부를 이뤘다고 하더군. 실로 대단한 분이지.”신수빈은 이도현을 바라보았다. 혼인하기 전부터 조부와 부친은 늘 그의 이야기를 했다. 신분의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일까? 그들의 말에는 언제나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도현의 말투에는 묘하게도 이전보다 가까워진 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신수빈은 이도현과 신 가의 관계가 좋을수록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신 가에 돌아올 이익도 커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왕야의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신 가에게는 그저 운이 조금 따랐을 뿐이고 무엇보다 당시 왕야께서 난을 평정하신 군대가 인의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조부께서 오래도록 명성을 듣고 의탁하신 것이지요.”그러자 이도현은 항주성이 함락된 뒤를 떠올렸다.그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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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이도현이 그녀의 이불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녀는 꽁꽁 숨은 채로 버텼고 그 앙탈 같은 모습에 이도현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이불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며 말했다.“본왕은 그냥 입맞춤만 하겠다. 그 이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이도현은 이내 고개를 숙였고, 그의 마지막 말은 입술과 숨결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신수빈은 조심스럽게 그의 입맞춤에 응했다. 손은 그의 어깨에 얹기만 할 뿐, 더 깊이 흔들지는 못했다. 이미 그의 호흡이 눈에 띄게 거칠어지고, 정신은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다급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신수빈은 깜짝 놀라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고 이도현은 즉시 얇은 이불을 끌어당겨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그 사람은 병풍 바깥에 멈춰 서서 보고를 올렸다.“마님, 사람을 잡았습니다! 그 감독관의 아내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왕야 곁에 있는 우호위가 데리고 갔습니다.”금자였다. 그녀는 겉으로 한없이 무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날카롭고 수는 빨랐다. 그 때문에 감독관의 부인 곁에 붙어 있어도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았던 것이다.금자의 말을 듣고 신수빈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이 미끼를 문 것이다.신수빈은 몸을 일으켜 옷을 여미고는 이도현을 돌아보며 말했다.“왕야, 그 감독관의 부인이 하천 은전의 행방을 적은 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속 사람을 붙여 지켜보게 했는데 아마 누군가 장부를 빼앗고 입막음을 하려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잡혔으니 제가 가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이도현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가 오라버니의 사건을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그가 나서면 충분했다.“본왕이 돌아온 이상, 네가 더 애쓸 필요는 없다. 본왕이 다녀올 테니 너는 쉬도록 하거라.”이도현은 여인이 조정의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방금 급한 마음에 그 점을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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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정양왕부.정양왕은 부하의 보고를 듣는 순간 심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암살은 실패했고 보낸 자들은 도리어 황성시의 손에 산 채로 붙잡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자신 스스로가 누군가의 덫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는 것을.황성시의 사정은 이도현의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그 감독관의 죽음부터가 이미 함정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황성시는 판을 깔고 자신이 뛰어들기만을 기다린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식은땀이 정양왕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만약 이도현이 이 일에서 실마리를 잡아 산중에 숨겨 둔 병력과 사병 훈련까지 캐내게 된다면… 그땐 정말로 끝이었다.그는 급히 옷을 걸치며 궁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궁중 규율은 철벽과도 같았다. 한밤중에 궁문을 두드리게 되면, 바로 이도현의 귀에 들어갈 게 분명했다.결국 그는 얼굴을 가리고 태후가 일러준 비밀 통로를 택했다. 이럴 때를 위해 남겨 둔 길이었다.영수궁에 도착했을 무렵, 태후는 이미 잠자리에 든 뒤였다. 정양왕은 망설이지 않고 황상궁에게 명해 태후를 깨우게 했다.“큰일이다.”그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말을 쏟아냈다.“이도현 곁의 장녕이 내가 보낸 자객을 산 채로 붙잡았다. 황성시의 심문을 견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내일만 되면 이 모든 일이 내 지시였다는 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태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어찌 이렇게 경솔하단 말입니까?”“장녕, 그 아이가 함정을 팠고, 자객이 나타나자마자 그대로 붙잡혔다.”“장부는요?”“손도 대지 못했지. 바로 그게 문제다! 이도현이 우리 쪽에서 손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장부에 출처 불명의 거액이 기록돼 있다는 것까지 발견하게 된다면 반드시 의심할 것이다. 그가 산중의 병력까지 캐내면 장 가 전체가 연좌될 가능성이 높다. 장 가가 무너지면 너도, 그리고 폐하의 자리도 안전하지 않아.”태후 역시 사태가 이 지경까지 번질 줄은 몰랐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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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태후는 정양왕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듯한 눈빛이었다.“최 씨 남매입니다.”정양왕은 순간 멈칫했다. 이내 태후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깨닫고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그건 어렵다. 최 씨와 혼인한 지 일 년 남짓밖에 안 됐지만, 그녀의 성정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영악하고 냉정한 여인이라 장 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짓은 안 할 것이다. 게다가 최문화를 끌어들이는 일이라면 더더욱 응하지 않을 테지.”태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응하지 않으면 목을 매게 하면 됩니다.”정양왕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죄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흔적을 만드세요. 오라버니께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모든 일은 최 씨가 벌인 것으로 돌리고 최문화를 끌어들여 남매가 함께 은전을 빼돌린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에요. 은전이 어디로 갔는지는 오라버니께서도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태후의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다.“평소 최문화에게 오가던 서신도 모두 최 씨의 필적입니다. 오라버니께서 부인하기만 하면 누구도 잡아내지 못할 거예요.”정양왕은 태후의 말을 듣고 속이 서늘해졌다.태후는 그의 망설임을 읽은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대장부가 어찌 부인 하나에 연연하는 것입니까? 이 일이 지나가면 경성의 귀한 규수들은 얼마든지 오라버니께서 고를 수 있습니다. 최 씨는 재가한 여인일 뿐인데 아직도 아쉬운 겁니까?”정양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아쉬워서가 아니다. 다만 최 씨가 갑작스레 죽고 죄까지 남매에게 뒤집어씌운다면 최 가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최 가는 대족의 수장이다. 일족 자제들이 조정 곳곳에 포진해 있고 뿌리가 깊지. 괜히 등을 돌린다면 좋을 게 없지 않겠느냐?”태후는 짧게 웃었다. 차갑고 계산적인 웃음이었다.“그건 제안이 약해서입니다.”그녀는 담담히 덧붙였다.“예전에 최 씨가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적장녀를 이도현에게 들이고 싶다고요. 그때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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