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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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그렇게 이도현이 떠난 뒤에야, 신수빈의 몸을 팽팽히 조이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방 안이 완전히 고요해진 것을 느낀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궁중의 장식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마음속은 다시 서늘하게 식어갔다.연회는 이미 끝났고 근정전은 인적이 끊겨 적막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궁벽은 잎 하나 없이 메말라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뜰 아래에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다.이 황성은 여러 왕조를 거쳐 온 곳이었다. 벽돌 하나, 기와 하나만 봐도,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비밀이 있을 터였다.그는 훌륭한 군주이며, 사람을 정확히 알아볼 줄 알고 정치를 새롭게 고쳐 나가며 장차 큰 성공을 이룰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태후와 어린 황제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산이었다. 흔들릴 수 없는 산.그가 살아 있는 한, 그의 아들은 강산을 굳건히 지킬 것이고 그가 사랑한 여인은 영원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이는 그들의 발아래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신 가에 영예를 주며 몇 분의 정을 품고 있다 해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태후의 목숨이었다. 장 가 일족의 완전한 몰락, 다시는 뒤집을 수 없는 파멸. 그것은 이도현이 결코 줄 수 없는 것이었다.설령 장 가의 죄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해도, 그가 죄를 묻는다 해도, 태후와 어린 황제만큼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여인이며, 아들이니까.신수빈은 그렇게 누운 채로 있었다.얼마 뒤, 내시가 들어와 조심스레 불렀다.“마님, 어선방에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드시지요.”그녀는 문득 시간이 흐른 것을 깨달았다.이미 신시를 지나 있었다. 그가 떠난 지 한 시진이 넘은 것이다.“알겠다.”어느새 배가 고파져 은보를 깨우려고 했는데, 은보의 얼굴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신수빈은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를 지었다.“이제 괜찮다.”하지만 은보는 그 웃음이 오히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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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빈아...”이도현의 음성은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그녀의 꿈을 깨울까 봐 조심하는 사람 같았다. 신수빈은 정신을 거두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눈매를 환히 열었다.“왕야, 돌아오셨습니까?”“그래. 일이 좀 지체되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본왕이 데려다주겠다.”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도현은 몸을 굽혀 일으켜 세웠다.가까이 다가온 순간, 신수빈은 그에게서 목욕을 마친 뒤의 상쾌한 향을 맡았다.늘 그가 쓰는 차가운 목향. 분명, 따로 몸을 씻고 온 것이다.그를 따라 몇 걸음 옮기던 중, 갑자기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신수빈은 불안을 느끼자마자 급히 그를 밀어내고 회랑 기둥을 붙잡은 채 방금 먹은 것을 토해냈다.“빈아!”이도현은 크게 놀라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렸다.“부인한테 무엇을 먹였느냐?”내시는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린 채, 그녀가 먹은 음식들을 줄줄이 고했다.“마님의 상은 소인이 직접 살폈습니다. 절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신수빈은 더는 토할 것도 없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메스꺼움을 억눌렀다.“왕야,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낮 연회에서 찬 음료를 많이 마셔서 그렇습니다.”이도현은 깊이 미간을 찌푸렸다. 궁등을 등지고 서 있어 눈빛은 보이지 않았으나 음성은 거칠었다.“앞으로 궁에는 적게 오너라.”그런 연회는 배도 차지 않을뿐더러 그녀 자리까지 음식이 오면 이미 식어 버린다. 배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예.”신수빈은 짧게 답했다.그녀의 숨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듣고 이도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어젯밤만 해도 그의 품 안에서 생기 넘치던 얼굴이 지금은 이렇게 창백해졌다. 애초에 아침에 돌려보냈어야 했거늘!그는 자신의 대장을 풀어 그녀를 감싸고 몸을 굽혀 그대로 안아 들었다. 놀란 내시의 시선 속에서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근정전을 나섰다.마차 안에서 신수빈은 눈을 반쯤 감고 그의 품에 기대 있었다.“왕부로 가서 태의를 보게 하자. 내일 돌아가도 늦지 않다.”그녀는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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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이른 아침부터 부 안은 분주했다. 마차는 이미 대기 중이었고, 신수빈은 단정히 몸을 차린 뒤 오늘 가져갈 하례품을 하나하나 점검하러 나섰다.막 출발하려는 찰나,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익숙한 고삐 잡는 소리가 마차 앞에서 멈추자 그녀는 발을 들어 올렸다.윤수혁이었다.요즘은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부에 살면서도 그녀는 안채에 머무는 몸이니 마주칠 기회가 드물었다.“아주버님, 이른 시간에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먼 길이라도 다녀오신 건가요?”윤수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처럼 따뜻한 웃음이었다.“며칠 전 부친께서 일정이 바쁜 탓에 신 가 개부연에 직접 가지 못하니 제가 윤 가를 대신해 축하를 전하라고 하셨지요. 헌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하례품을 하나 구하느라 잠시 나갔다 온 겁니다.”신수빈은 옅게 웃었다.“아주버님께서 너무 예를 차리십니다. 하례품은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헌데 어찌 또 비용을 쓰시려 하십니까?”윤수혁의 눈매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말끝에도 단정한 기품이 묻어났다.“예법상 하례는 윤 가에서 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찌 제수씨 혼수로 대신하겠습니까? 그건 제수씨 몫이고, 제수씨 아이의 몫입니다.”그 말에 신수빈의 눈빛이 잠시 멈추었다.윤수혁은 곧 덧붙였다.“잠시만 기다리세요. 급히 오느라 옷에 먼지가 묻었습니다. 이런 차림으로 신 가에 가는 건 실례니 갈아입고 함께 갑시다.”그가 이토록 정중히 나서는데 어찌 기다리지 않겠는가.“예.”그는 말에서 내려 부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윤수혁이 말을 타고 그녀의 마차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신 가로 향했다.마차 안에서 발이 내려오자 청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하아... 그때 마님께 청혼한 분이 큰 도련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윤수혁은 무인 출신이었다. 청하의 속삭임이 아무리 작아도 그의 귀를 피해 갈 수 없었다.말 위에 앉은 그는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는 듯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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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곧이어 신수빈은 뒤에 서 있던 윤수혁을 떠올려, 두 부인께 먼저 양해를 구한 뒤에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아주버님께서는 앞채로 가셔서 우리 큰 오라버니와 셋째 오라버니를 찾아뵈세요. 저는 두 부인을 모시고 뒤뜰로 가겠습니다.”윤수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제수씨께서는 그저 편히 보살피십시오. 저는 형님을 찾아가겠습니다.”다시 두 부인 곁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연신 윤수혁을 흘낏거리며 살피기 시작했다.저이가 바로 윤부의 서장자라지!그런데 이토록 단정하고 훤칠한 사내일 줄은 몰랐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을 닮은 기품이라니. 외모와 태도가 모두 빼어나서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흔들릴 정도였다.그러나 곧 윤 가의 집안 분위기를 떠올렸다.이 윤부에서 제정신인 사람은 저 윤씨 부인 하나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집안에 딸을 들인다면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격이 아니겠는가?… 그만두자.신 가는 본래 상가 출신이라 이토록 많은 귀한 손님을 모셔 본 적이 없었다. 시녀와 하인들 가운데 붙박이로 데려온 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경성에 올라온 뒤 급히 들인 이들이었다. 짧은 기간에 예절을 가르쳐 오늘 자리에 세웠으니 실수가 없을 리 없었다. 다행히도 경성 상단의 여러 점주들이 나서 도와주어 큰 흠은 되지 않았다.신수빈은 문득 실감했다. 가문의 저력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생에 자신이 경성으로 시집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며 살아서야 겨우 합격선의 후작 부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종정가문(대대로 벼슬을 이어온 명문가)의 하녀들조차 세가의 노복으로, 엄격한 규율 속에서 길러졌다. 그러니 밖에서 사들인 이들과는 손에 익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다행히 큰 형수는 손님을 맞는 데 능숙했다. 자잘한 실수는 모두 무난히 수습했고 처세 또한 유연해 부녀자들은 마치 제 집에 온 듯 편안히 담소를 나누었다.바깥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큰 오라버니는 오랜 세월 외지에서 상행을 해왔으니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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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신수빈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진하빈이든, 신 씨든, 그저 이도현이 세상에 보이기 위해 세워둔 가림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그가 진정으로 마음에 둔 이는 사실 따로 있었다. 궁 안에는 있지만, 외부에는 차마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여인.여인들의 화제는 늘 한 갈래로만 흐르지 않았기에, 이내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흩어졌다.한편 정 씨는 줄곧 막내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마치 그들이 떠들어대는 인물이 막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 듯 보였다.정 씨는 시녀를 불러 막내의 찻잔을 배수(배를 달인 물)로 바꾸게 했다.“아까 보니 목소리가 좀 잠긴 것 같더구나. 배수는 목을 부드럽게 해주니 마셔보렴.”“역시 형수님은 저를 제일 아끼세요.”오늘 와서는 아직 어머니를 뵙지 못했다. 이틀 전 급히 떠났던 탓에 신수빈은 아직 묻지 못한 것이 있었다.“형수님, 어머님은요? 나오시는 걸 못 봤습니다.”정 씨가 낮게 답했다.“마침 나도 그거에 대해서 말하려던 참이었다. 어머님께서 이틀 전 궁에서 돌아오신 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밤중에 아버님과 크게 다투셨다. 나와 네 큰 오라버니가 함부로 캐묻기도 어려웠지. 네 오라버니가 이후에 두어 마디만 전해주었는데 아버님이 젊은 시절 어머님께 몹쓸 일을 하셨다더구나. 아마 그 일로 또 다툼이 난 모양이야.”신수빈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저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요…”정 씨는 며느리로서 시부모의 젊은 시절 일을 속속들이 알 리 없었다. 남편 또한 말을 흐렸기에 더 묻지 않고 넘겼다.“돌아가면 네 오라버니에게 직접 물어보렴. 나도 자세하게는 모르니…”신수빈은 문득, 큰 오라버니가 언젠가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있다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그것이 이 일과 관련된 것일까?하지만 지금은 앞마당에서 손님을 맞고 있을 테니 당장 만날 수는 없었다. 연회가 끝난 뒤에야 물을 수 있을 것이다.“형수님은 여기서 손님을 살피세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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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어머니, 적녀라니요?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또 누구를 보셨다는 겁니까?”신씨 부인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갑자기 날카롭고 높게 울리는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태후 마마 행차이십니다!”신수빈은 순간 멍해졌다.태후라니? 태후가 어째서 신가에 온단 말인가!하지만 이미 태후가 온 이상,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빌미를 줄 수도 있으니 더 이상 신가도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지금은 신씨 부인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을 때가 아니었다.형수가 바깥에서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 신수빈은 신씨 부인에게 조용히 말했다.“어머니, 집안일은 잠시 미뤄 두세요. 태후께서 오셨으니 먼저 맞이해야 합니다.”신씨 부인도 일의 경중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감정을 겨우 가라앉히고 딸과 함께 작은 화청을 나와 태후의 행차를 맞이하러 나갔다.*태후는 마당 가득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와서 흥을 깨뜨린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태후 마마.”“태후께서 오셨으니 기쁘기만 합니다!”하지만 그 중에서 정 씨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태후의 얼굴이 자신의 막내 시누이와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예전에 섭정왕과 시누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왜 그렇게 걱정 어린 눈빛을 보였는지 이해가 갔다.비록 닮긴 했지만 그래도 차이는 분명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자신의 막내 시누이가 훨씬 더 뛰어났다.그리고 속으로 확신했다. 남자라면 아마도 자기 시누이 같은 여자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정 씨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태후는 이미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상석에 앉아 있었다.“요즘 폐하께서 왕야와 아주 붙어 지낸다. 한가할 때마다 왕야를 찾아가 경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지. 오늘도 왕야를 찾으셨는데 내관들이 말하길 왕야께서 신가의 연회에 오셨다 하더구나. 하여 어쩔 수 없이 내가 함께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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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놀란 것은 신씨 부인 뿐만이 아니었다. 정 씨 역시 충격에 굳어졌다.하지만 신수빈은 워낙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던 의문들이 진하빈 모녀가 태후의 행차를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마치 안개가 걷히듯 한꺼번에 풀려 버린 듯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다툼이 조부모까지 불러내게 된 이유. 그리고 며칠 전, 부모가 크게 다투었던 이유. 모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적녀로 인정하라고 했던 그 사람, 진 씨의 짓이던 것이었다.그렇게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신수빈이 다시 살아난 뒤로 많은 일들이 전생과 달라져 있었다.비록 전생에서는 진하빈이 이도현의 후원에 들어갔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죽기 전까지 신 가는 줄곧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사생… 아니, 숨겨진 자식이라는 말은 가족들 입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진하빈이 어머니를 데리고 직접 왔고, 그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가 받은 후작 작위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부유한 상인의 딸이라는 신분과 후작가의 아가씨라는 신분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컸다. 후작가의 혈통이라면 섭정왕의 후원에서도 당당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단순히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태후에게까지 붙어 그 권세를 등에 업고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을 인정하도록 몰아붙였다.사람들이 놀라 수군거리는 사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신수빈이었다.태후의 기습에 처음엔 당황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이제 이 일은 단순한 안채의 다툼이 아니었다. 작은 균열 하나가 집안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내택의 문제라 해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기에, 신 가는 이 모녀를 절대로 집안으로 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이 문제는 지금 모두 어머니의 어깨 위에 얹혀 있다.자신은 이미 출가한 딸이기도 하니, 웃어른의 일에 나서기라도 하면 태후가 곧장 막아 버릴 것이 분명했다.신수빈은 옆에 얼이 빠진 청하를 힐끗 바라보고는,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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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언… 언니가 저를 여동생으로 받아 주신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하지만 신씨 부인은 눈빛에서 금방이라도 불꽃이 튈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차라리 죽어 버리면 될 터였지만 이제 그녀는 어릴 적처럼, 백련화 같은 가식에 휘둘려 이성을 잃고 어리석은 짓을 할 나이는 아니었다.태후가 이 자리를 마련한 목적이 자매 상봉을 돕기 위함일 리 없다는 것 또한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때 태후가 진하빈을 힐끗 바라보았고, 곧이어 눈빛의 뜻을 알아챈 진하빈은, 앞으로 나와 신씨 부인 앞에서 천천히 몸을 굽히며 예를 올렸다.“큰어머니께 인사드립니다. 딸 빈이, 큰어머니를 뵙겠습니다.”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딸?이런 경우라면 보통 조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혹시...?그리고 곧이어 사람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택 싸움 속에서 단련된 사람들이었기에, 두 자매가 한 남편을 섬긴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섭정왕의 총애를 받는 그 여인이 바로 서출이지 않았던가?섭정왕이 갑자기 신 가를 후대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애첩의 신분을 끌어올리려 하기 위함 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신씨 부인이 분노에 떨며 외쳤다. 진하빈이 스스로를 “빈이”이라 부른 순간, 그녀의 분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치솟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딸과 같은 이름을 쓰다니!“너는 대체 뭐 하는 물건이냐! 대체 누가 네 어미라는 것이냐!”그 말에 정 씨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큰일 났다!아직도 저 여자가 섭정왕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게다가 태후가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이었기에, 지금처럼 대놓고 욕을 퍼붓는 것은, 속은 시원할지는 몰라도 남들에게 잡힐 구실을 주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태후가 얼굴이 굳어진 채로 차갑게 꾸짖기 시작했다.“신씨 부인, 위세가 참 대단하구나! 진 씨는 섭정왕의 사람이다. 개를 때리려 해도 주인을 봐야 하는 법이지. 게다가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진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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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신 가의 어르신께서는 애초에 이 천한 여자가 집안 문턱을 넘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태후가 관부인들을 다스릴 수는 있어도 어찌 남의 집안일마저 좌지우지하려 드는 것인가?그 순간 신씨 부인의 기세는 완전히 살아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이 여자가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태후 마마.”신씨 부인은 몸을 바로 세운 채 또렷하게 말했다.“신첩이 질투가 심해 사람을 못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헌데 이 여인의 첩차는 신첩이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딸이 비록 섭정왕의 측비가 되었다고 해도!”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단단해졌다.“설령 정비가 된다 한들, 신첩은 시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고 조상의 가법을 짓밟을 수도 없습니다.”그 말에 땅에 무릎을 꿇고 첩차를 받쳐 들고 있던 진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도 이 적장녀가 또다시 신 가의 시부모를 끌어들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는 태후와 딸, 그리고 아들도 있으니, 이번만큼은 신 가의 문을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신수빈은 어머니가 올바른 방향으로 말을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시집간 딸인 데다가 이번 일은 어른들만의 일이었다.지나치게 나서면 오히려 사람들이 신 가의 가주와 주모가 무능하다고 비웃을 수도 있었다.그때 태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그녀가 너희 신 가를 위해 자식을 낳았는데 어찌 그게 시부모를 거스르고 조상의 가법을 어긴 일이 된다는 것이냐?”말끝에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으나 신씨 부인은 물러서지 않았다.지금 그녀에게는 자식들이 있었다. 태후의 칼날 같은 시선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그 일의 연유를 말하자면… 본래 집안의 수치라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헌데 태후 마마께서 물으시니 신첩이 감히 숨길 수는 없을 것 같네요.”신씨 부인은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을 극도로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 서녀 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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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여기까지 말이 이어지자 신수빈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처음 이 모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오래된 몇 가지 사연을 짐작하고 있었다.조부는 세상 물정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난세 속에서도 가문을 이끌고 화를 피하며 새로운 권세가들과 관계를 맺어 왔다. 집안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그가 직접 눌러 두었을 것이다.그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버지 쪽에서 별다른 소동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경성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조부는 여전히 항주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아버지 쪽에서 문제가 터졌다.이제 어머니가 이 일을 조부모의 권위까지 끌어들여 이야기했으니 이 문제는 결국 신 가의 집안일로 돌아가게 된다.태후가 만약 백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나중에 어사에게 탄핵을 당할까 두렵지 않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억지로 밀어붙이기 어려울 것이다.그리고 진하빈에 대해서라면...신수빈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그녀가 측비가 되고 싶다 마음껏 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이도현은 언젠가 반드시 ㅂ인을 맞고 첩을 들여 천하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태후와 자신 사이의 관계를 감출 수 있으니까.마침 신수빈도 이도현의 혼인을 거절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딱 맞는 구실이 굴러 들어왔다. 그녀에게 있어 진하빈이 측비가 되는 일은 오히려 가장 반가운 일이었다.어찌 보면 태후가 한 가지 좋은 일을 한 셈이었다.태후 역시 신 가 내부에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진 씨 모녀를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 지금 진하빈은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고 진 씨 역시 욕을 먹어 몸이 떨리고 있었다.태후는 속으로 혀를 찼다.쓸모없는 것들.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이런 다툼이 있었을 줄은 나도 미처 몰랐구나. 다만 이미 스무 해나 지난 일 아니더냐.”태후의 시선이 신씨 부인에게 향했다.“신 가의 두 어르신도 이제는 노여움이 풀리지 않았겠느냐.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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