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hapter 401 - Chapter 410

414 Chapters

제401화

신수빈의 얼굴에 스친 망설임을 본 윤수혁은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수씨는 체구가 작으니 솜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전에 제가 건네준 인피면구를 쓰십시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우선 저를 따라 바깥 별채로 몸을 피하시지요. 성이 지켜지면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신수빈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바깥뜰에서 셋째 마님이 통곡하며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신수빈은 순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윤수혁은 시댁의 맏형이라 이 시각에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윤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끝내 한숨을 삼키고는 몸을 날려 동쪽 별실로 몸을 숨겼다.셋째 마님은 신수빈을 보자마자 울부짖듯 외쳤다.“조카며느리야, 네가 능력이 있는 걸 다 아니, 어서 방법을 생각해다오. 네 그 동서를 성벽 위에서 구해내야 한다! 더 지체하면 정말 늦을지도 몰라!”은보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은 채 셋째 마님과 신수빈 사이를 막아섰다. 신수빈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셋째 마님의 목소리는 떨리며 서서히 무너졌다.“선항족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내보낸 여인들을 능욕하고 죽인 것도 모자라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삶아 먹는다니… 그야말로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차마 말로 못 할 짓이라고.”신수빈은 성벽 위로 밀려 올라간 여인들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이토록 참혹한 결말일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역사에서는 언제나 그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전쟁은 단 몇 줄로만 지나가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온통 피와 눈물 뿐이었다.무심히 넘기는 한 페이지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의 삶이 비참하게, 평범하게, 혹은 장렬하게 사라져 간다.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생명이 이토록 짓밟혀도 되는 것은 아니다.그때, 바깥채의 관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한겨울인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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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헛소리하지 마세요! 회임한 여인을 죽이는 게 효과가 있다면 어찌하여 이미 이렇게 많은 여인들이 참혹하게 죽어갔는데 성 밖의 군대는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까!”신씨 부인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흠천감의 날 선 칼날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은 채 딸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내 딸아, 저 개 같은 관리를 두려워할 필요 없다. 반드시 네 몸부터 지켜라. 아비와 어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신수빈은 부모가 역적 같은 자들에게 위협당하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원래도 맑고 고운 눈동자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서릿발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흠천감이 권한을 남용해 무고한 여인들의 목숨을 짓밟고 있습니다. 당신은 왕야께서 조정으로 돌아오시면 그 죄를 묻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그러나 진 사정은 코웃음을 쳤다.“장춘도장과 본관이 함께 점을 보았는데 왕야께서는 이미 전장에서 패해 목숨을 잃은 상태라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선항족 군대가 이토록 순식간에 성 아래까지 들이닥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죽은 여인들은 모두 당신 탓입니다! 당신이 순순히 하늘의 뜻에 따르기만 했어도 어찌 그 많은 여인들이 죽어야 했겠습니까!”그의 말은 현장에 있던 어리석은 백성 몇몇을 선동하기에 충분했기에, 군중 사이에서는 점차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평양후가 앞으로 나섰다. “진 형님,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온 것입니까? 저희 두 집안은 본래 사돈이었거늘, 어찌하여 일을 이정도까지 키운 것입니까?”하지만 진 사정은 여전히 당당했다. “본관은 공무를 집행할 뿐이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누가 너와 친분 따위를 논하겠느냐!”신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떠올렸다.그는 바로 둘째 마님의 오라버니였다. 그녀가 쫓겨난 뒤로 두 집안은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되었던 것이다. 신수빈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누군가 했더니… 둘째 숙모의 오라버니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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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금자와 은보는 계속해서 신수빈의 곁을 지켰고, 어느새 함께 외성 성벽 아래까지 이르렀다.그런데 흠천감이 퍼뜨린 소문 덕분인지, 성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윤씨 부인이 과연 어떤 ‘재앙의 별’인지 직접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성벽 아래에서 신수빈이 고개를 돌리자, 참혹한 울음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결박된 여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절망과 무력함에 잠긴 채,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듯 서 있을 뿐이었다.기울어가는 석양은 서쪽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여름날처럼 찬란하지 않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정말 내가 틀린 것일까? 다시 살아난 것 자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일이라,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 모든 고통은 마땅히 내가 짊어져야 마땅한 게 아닐까? 불길에 타들어가고 영혼마저 사라지는 그 고통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은 그 누각에 갇혀 영원히 윤회하지 못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하늘은 어찌 이리도 불공평하단 말인가…’신수빈은 고개를 숙인 채 부풀어 오른 배 위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럽게 쓸어 내렸다.‘연우야, 어미는 너를 지켜내서 네가 무사히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헌데 저 성 위를 보거라. 저 여인들 또한 누군가의 어미다. 저마다 품은 바람과 기다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어미가 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이들이 헛되이 죽게 될 것이다. 외조부와 외조모, 외숙부와 외숙모까지도 말이다… 미안하구나. 어미가 부족해서 다시 주어진 이 삶에서도 끝내 너를 지켜내지 못하는구나.’장풍과 장녕은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성벽으로 달려왔지만, 신수빈은 이미 성 위에 올라가 있었다.“마님!”장풍과 장녕의 절박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사람들을 이끌고 성 위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를 막으려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한 손에는 명패를, 다른 손에는 장검을 쥐고 있었다.명패는 다름아닌 이도현의 것이었다. 명에 따르는 자는 길을 열고 거스르는 자는 베어 넘기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흠천감은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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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성 안의 백성들은 성벽 위에 선 그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얼굴을 만져보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누가 먼저였는지도 모르게 한 사람이 무릎을 꿇자, 그 뒤를 이어 성 안의 백성들 모두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었다.그러자 자신들의 편에 창을 겨누고 있던 병사들 역시 얼굴에 부끄러움이 스쳤다. 신수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성벽의 다른 쪽을 향해 걸어갔다.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었다.그런데, 그때였다.“이랴!”긴 장안의 거리에서 말몰이 소리가 터져 나오며 철기병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굽이치는 기세 속에서 한 소년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는 창끝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품은 채 성벽을 향해 외쳤다.“빈아!”신수빈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뒤를 돌았는데, 성 아래에 넷째 오라버니인 신태안이 서 있었다.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군장 차림에 손에는 은창을 쥐고 있었다. 그는 핏줄이 서서 붉게 물든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성 위를 올려다보았다.신수빈의 코끝이 이내 시큰해졌다. 눈물이 쏟아질 듯했지만 억지로 눌러 삼키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는 넷째 오라버니께서 전장에 나가 적을 베는 장수가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네요.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다시 남매로 꼭 태어나요.”신태안의 입술이 단단히 굳어지며, 고삐를 쥔 손에도 핏줄이 섰다. “나는 다음 생 따위 필요 없다! 이번 생에 너는 반드시 살 것이다!”신태안은 성 위의 장수들을 둘러보고는, 그곳에 서 있는 정양왕을 발견하자 은창을 바로 겨누었다.눈빛이 번쩍이며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저는 돌파하여 원군을 청하러 갑니다! 만약 난군 속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제 운명일 뿐입니다! 헌데 제가 돌파에 성공한다면 성 위의 여인들과 제 누이를 풀어주고 저 요사한 도사를 베어내세요! 그리고 장수들은 성을 굳게 지키십시오! 제가 원군을 이끌고 돌아올 때까지 말입니다!”정양왕은 성 밖의 선항족 군대가 얼마나 사나운지 잘 알고 있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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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신태안이 말을 몰아 성문 앞으로 달려갔다.수성관이 성문을 열려는 순간, 멀리에서 다시금 철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야, 신태안! 너 이 자식, 우리 몰래 공을 세우러 가는 거냐? 형제들을 빼놓는 건 좀 아니지 않냐?”한 무리의 철기병이 달려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그들 역시 전투복 차림에 검을 쥐고, 등에는 칼을 메고 있었다. 신태안은 그들을 보자마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져,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하며 말했다.“이번 길은 몇 겹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반드시 형제들의 마음에 보답하겠다. 돌파는 나 혼자면 충분하다. 너희는 남아서 성을 지켜라.”누구나 알고 있었다. 성문이 열리는 순간, 그는 십중팔구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 모여 그를 따르겠다는 자들은 이미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이들이었다.“너 혼자만 대의로운 척하는 거냐? 우리는 평소에 그저 웃고 떠드느라 잊어버린 것 뿐이야. 우리 조상분들 중 천하를 일으키지 않으신 분들이 있느냐?”“맞아! 평소에 싸움 붙으면 같이 가자고 해놓고서는, 이제 판이 벌어지니까 버리는 거야?!”그들은 너도나도 떠들며 웃어 댔지만, 결국엔 진지한 얼굴로 말을 맺었다.“대장부가 어찌 바지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겁쟁이들처럼 여인들을 성벽 위로 밀어 올리겠느냐! 우리는 너와 함께 돌파해 원군을 구하러 갈 것이다! 우리 부모와 가족이 모두 이 성 안에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손만 놓고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느냐!”“전장에서 죽는다면 조상들 따라 명예를 빛내는 것이고! 운 좋게 살아 돌아온다면 말을 타고 반달은 거리를 누비면서 장안의 아가씨들한테 우리의 기개를 보여줘야지!”그 말에 성을 지키던 수많은 장졸들의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들은 하나 둘 씩 신태안에게 두 손 모아 절을 올렸다.“신 소장군을 따라 돌파하겠다!”사실 신태안은 정식 군직이 없었기에 ‘소장군’이라고 불릴 자격은 없었다.하지만 은창을 들고 정양왕을 향해 외치던 그 순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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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그들은 싸움에 집착하지 않고, 서로를 엄호하며 오직 돌파만을 목표로 움직였다.높은 곳에 서 있던 선항왕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은갑에 백포를 걸친 한 젊은 장수가 눈에 들어왔다. 기개가 드높고 싸움에 능하며 막아낼 수 없는 기세였다. 칼이 내려칠 때마다 피가 샘처럼 솟구쳤으며, 겹겹이 둘러싼 포위망까지 다 뚫어버렸다.“장안성에 언제 저런 인물이 있었지? 혹 이름을 아느냐?”“이름 없는 미천한 자라, 신원조차 알 수 없습니다.”선항왕은 한동안 지켜보다가 곧 눈치챘다.이 열몇 명은 싸움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라 돌파를 노리고 있었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들은 꼭 막아라. 절대 돌파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예.”선항군이 다시 병력을 증원해 포위망을 좁혀오자 신태안과 그 뒤의 열몇 명은 점점 한 덩어리로 몰려들었다.동행 중에는 이미 부상을 입은 자도 있었다.“태안아! 어쩌지? 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뚫고 나갈 수가 없어!”신태안은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선항군의 대기가 꽂혀 있었는데, 바로 그 아래 주영 앞에 선항왕이 서 있었다.“너희는 사람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돌파하고, 나머지 둘은 나를 따라 대영을 향해 돌진한다. 중병을 끌어내 나를 포위하게 만들어.”“태안!”모두가 대영으로 돌진하는 것은 곧, 스스로 불씨가 되어 적의 화력을 끌어당기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랴!”신태안은 그들에게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그러자 뒤에서 두 사람이 급히 따라붙었다.과연, 그의 계책은 효과를 발휘했다.그들의 주변을 압박하던 적군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대부분의 병력이 신태안을 막으러 몰려들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들은 그 틈을 타, 서쪽으로 길을 열며 돌파해 나갔다.선항왕은 신태안이 점점 더 기세를 올리며 자신을 향해 돌진해 열여 명을 힐끗 보고는, 비웃듯 말했다.“담력 하나는 있군!”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중병이 버티고 있는 한, 저 언덕까지 오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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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그가 쓰러지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장창도 함께 떨어졌다.그는 한 손으로 어깨에 꽂힌 창끝을 움켜쥐고는 적장 창에 걸린 힘을 이용해 몸을 힘들게 일으켰다. 다른 손에 든 칼로 눈앞의 병사를 베어 넘기고 몸을 틀어 한 번 더 휘둘러 말 위의 적장을 단번에 베어 버렸다. 그때였다. 막 신태안의 형제가 쓰러질 때, 곁에서 함게 쓰러져 있던 전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곧장 신태안을 향해 달려왔다.신태안은 안장을 붙잡고 방금 떨어뜨렸던 장창을 낚아채듯 쥐어 들었다. 몸을 뒤집듯 올라타 다시 말 위에 올라선 그는 곧장 아래를 향해 다시 돌진했다.신수빈은 넷째 오라버니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나 다시 말을 타고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성벽에 몸을 기대어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조심하시오.”소리에 신수빈이 돌아보자 어느새 윤수혁이 그녀의 뒤에 서, 흔들리는 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창백해진 신수빈의 얼굴을 보자, 그는 당황해서 잠시 머뭇거리다 곁에 있던 병사에게 공손히 말했다.“장군, 활과 화살을 잠시 빌리겠습니다.”그러고는 이내 활을 당겨 화살을 걸었다. 연달아 날아간 화살이 신태안을 포위하던 병사들을 하나 둘 씩 쓰러뜨렸다.신태안은 성 위를 한 번 보고는, 다시 고삐를 당겨 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성 위의 병사들도 정신을 차린 듯, 일제히 활을 당겨 신태안을 도왔다. 마치 사자와 호랑이가 양떼 속으로 뛰어든 듯, 신태안이 거침없이 휩쓸자, 선황왕의 진형은 결국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항왕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화살을 쏴라! 저놈을 쏴 죽여라!”그러자 선항군에서도 화살이 쏟아졌다.신태안의 팔에 화살이 박히기 시작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진할 뿐이었다.신수빈은 신태안이 적군의 진형을 흐트러뜨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결심이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마침 장풍과 장녕이 성 위로 올라와 그녀 곁에 서 있었다.그녀는 낮게 물었다.“지금 이 순간 성을 나가 돌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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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선항왕은 전장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화살이 눈에 들어왔지만,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은 뒤였다.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밀려온 순간, 화살이 빗나갔다. 그의 뺨을 스쳐 피 한 줄기만을 남기고는 땅속 그대로 박혀 버렸다.단번에 화살의 위력이 느껴졌다. 만약 빗나가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었다.그는 놀란 눈으로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소박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한 여인의 곁에 서서 장궁을 들고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호위하라!”“왕상을 보호하라!”순식간에 선항왕 앞에 겹겹의 방패진이 둘러 쌓였다.그러자 성 위에서 곧바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제 선황왕을 더 이상 기습으로 노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미안합니다, 제가…”신수빈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윤수혁이 이미 충분히 잘해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버님께서는 이미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이제 순항용이 경계를 세웠으니, 더는 사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대신 저 왕기를 쓰러뜨릴 수는 있습니까?”윤수혁은 잠시 눈으로 거리를 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해보겠습니다.”그는 다시 활을 들었다.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다.순간, 선항왕 대영 위에 세워져 있던 왕기가 갈라지며 깃발이 무너져 내렸다.“됐습니다!”신수빈은 기쁨에 손뼉을 쳤다.“저기도요!”그녀는 다시 적진의 또 다른 깃발을 가리켰다.윤수혁의 화살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고, 가리키는 곳마다 정확히 명중했다.순식간에 적군의 대기가 몇 개나 쓰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병사들은 불안이 번져갔고, 장녕은 그 틈을 타 병력을 이끌고 거칠게 돌진했다. 성 밖의 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신수빈은 마지막으로 적대 위에서 깃발을 흔들며 병력을 지휘하던 지휘관을 가리켰다.윤수혁은 다시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쉭—!화살이 날아가 적대 위의 지휘관을 그대로 명중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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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장녕은 성 위에서 울려 퍼진 신호를 받고 한 차례 적진을 휩쓴 뒤 상대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성 안으로 돌아왔다.한편 선항군은 원래 해가 진 뒤 성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사기가 한창 고조되어 있었으나 이 와중에 세 사람이 돌파해 나가고, 성 안에서도 기병이 난입하자 군심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제자리에서 정비를 택하고 날이 밝은 뒤 공성에 나서기로 했다.세 사람이 돌파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성 전체가 들끓며, 장졸들은 성루 위에서 환호성을 터뜨렸다.성 위로 끌려왔던 여인들도 결국 모두 내려 보내졌고, 각자의 가족들이 나와 그들을 데리고 돌아갔다.금자와 은보의 부축을 받으며 신수빈이 성루에서 내려오자 성 안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입을 모아 부인의 은혜를 외치며 감사의 말을 쏟아냈다.첫 싸움에서의 승리와 신태안의 성공. 이 두 가지가 성 안의 군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모두 그가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신수빈은 다양한 모습의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각기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입으로는 연신 감사의 말을 올리고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제 넷째 오라버니가 떠나며 대산관으로 가서 원군을 청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경무를 급히 한다고 해도, 이틀은 걸릴 겁니다. 성 밖의 적군은 맹수와 같아, 저희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내일 새벽 공성하겠다는 전령이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선항족은 교활합니다. 만약 한밤중에 기습한다면 성 안의 병력으로 이틀을 버틸 수나 있겠습니까?”그녀의 말에 한숨 돌리던 백성들의 마음이 다시 조여 들어왔다.“또한 대산관의 병력은 촉중의 반란을 경계해야 하니 전부를 빼올 수 없습니다. 일부 병력만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왕야의 대군이 돌아올 때까지 성을 지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성 안의 군사들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성을 지키고 자신의 부인과 자식, 부모를 지켜주십시오.”백성들은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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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정양왕은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이도현의 그림자와도 같은 자들. 황성시 직속으로 오직 이도현의 명만을 따르는 자들.조정에서 그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고 태후가 나서도 통하지 않았다.정양왕은 결국 이를 악물고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장풍은 일을 맡치자마자, 직접 신수빈을 호위해서 돌아갔다.신수빈은 성문 쪽을 한 번 바라보고 장풍에게 낮게 당부했다.“선항족이 정말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것 같지는 않다. 장녕에게 전해주거라. 오늘 밤은 반드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요.”“마님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저희 둘이 있는 한, 반드시 마님을 지켜내겠습니다.”신수빈은 오늘 하루 기력이 크게 소모된 탓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랫배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식사도 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잠에 들고 말았다. 한밤중이 깊어갈 무렵, 굉음이 울렸다.그녀는 놀라 깨어났다.“선항족이 공성을 시작한 것이냐?”은보가 방 안으로 들어와 등불을 밝혔다.“금자가 확인하러 갔습니다만, 아마 공성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외성 쪽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끊이지 않는 함성. 성 안의 백성들 중 제대로 잠들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그리고 곧이어 금자가 돌아왔다. 정말로 선항군이 공성을 시작한 것이었다!“마님, 염려 마십시오. 장안성은 성벽이 견고하고, 오늘 밤 수비도 완벽하게 준비 되어 있으니 반드시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신수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무지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싸움의 소리는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들었다.그러나 고작 반 시진 남짓 숨을 고른 뒤, 곧바로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선항군 역시 원군이 도착하기 전이 가장 좋은 공성의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틀에 걸쳐 성 밖에서 끊임없는 공세가 이어지며, 성 아래에는 시신이 산처럼 쌓여갔다.성 안의 수비군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끝없이 교체되었고, 또 교체되기를 반복했다. 신수빈은 저택 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밖으로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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