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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1화

“그렇다면 열셋 째 황자의 뜻은 무엇이냐? 폐하께서는 어떻게 하셨어야 한다는 것이냐?”서인경이 차갑게 묻자 열셋 째 황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폐하라면 당연히 경성에 머물며 조정을 지켜야 합니다. 황숙께서는 예전부터 무장이셨으니 칼과 창을 휘두르며 싸우는 데 익숙하시겠지요. 툭하면 변경으로 달려가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헌데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황숙은 황제입니다. 눈에는 변경의 전쟁만이 아니라 진국의 모든 백성과 천하의 일을 담아야 합니다.”말의 속뜻은 분명했다. 연기준은 여전히 예전처럼 칼만 휘두르는 무장에 불과하며 국정을 감당할 그릇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서인경의 눈빛이 순간 얼음처럼 식어 갔다. 그 시선이 열셋 째 황자를 향했다.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이 그녀의 약점을 제대로 찔렀다고 여긴 듯 더욱 기세등등해졌다.“물론 조카도 이해는 합니다. 황숙께서는 국정을 다루는 경험이 부족하십니다. 부황께서 재위하실 때 저는 운 좋게도 부황을 도와 정사를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재해와 기근을 다루는 일이라면 저에게는 경험이 있습니다.”그는 대전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황숙께서 그렇게 변경을 좋아하신다면 황제가 되셨더라도 그곳에 계시게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국정은…”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제가 대신 맡겠습니다.”대놓고 황위를 노리는 말이었다.순간 대전 안이 조용히 술렁였다. 대신들과 그 가족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들은 멍하니 굳어 있었다.그저 궁연에 참석했을 뿐인데 어쩌다 황위 다툼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어떤 이들은 미묘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열셋 째 황자와 손을 잡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오늘 서인경이 끌어내려지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또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분노가 떠올랐다. 이미 황위는 안정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또 변란이 일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서인경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열셋 째 황자. 지금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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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2화

태황태후는 용머리 지팡이를 들어 올려 대전에 모인 대신들을 향해 내보였다.그 모습을 본 대신들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외쳤다.“성조 선제 만세!”서인경은 속으로 씁쓸하게 생각했다.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남겨 놓은 물건 하나의 위세가 이토록 크다니.태황태후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렸다.“나는 성조 선제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태상황의 열셋 째 황자, 연기훈이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지지한다. 연기준은 덕이 부족하여 황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나를 학대하고 태상황을 감금했으니 마땅히 처형되어야 한다!”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대전 안은 숨조차 삼킨 듯 고요해졌다.얼마 전에도 이와 같은 황위 다툼의 장면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연기준이 우위를 점해 태상황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인경에게 향했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리고 있었다.그 순간,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누가 황숙이 전쟁밖에 모르는 무장이라고 했습니까?”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자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그는 검은 옷을 입고 두 손을 뒤로 모은 채 서 있었다. 키는 아직 어른들보다 작았지만 몸에서 풍기는 기세와 눈빛의 날카로움은 어딘가 연기준을 닮아 있었다.그동안 사람들은 그를 그저 허수아비 태자로만 여겼을 뿐,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그가 이런 자리에서 나설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열셋 째 황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 결국 가장 무해해 보이던 열다섯 째 아우에게 막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태자를 보자 그의 얼굴에서 이전의 온화함은 사라졌다.“열다섯 째 아우는 아직 어려 속아 넘어간 것도 이해는 한다. 황숙의 공적은 전장에서 빛난 것이지 조정이 아니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 요동 변방과 서북이 동시에 문제를 겪고 있는데 황숙은 서북의 수만 백성을 버려둔 채 변경의 학살 사건에만 매달리고 있다. 죽은 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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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3화

열셋 째 황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충격에 굳어 버렸다.그는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상소문을 주워 들고는 눈을 부릅뜬 채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갔다. 읽을수록 얼굴빛이 점점 더 굳어 갔다.“이럴 수가…!”그가 다급히 외쳤다.“재해 소식이 경성에 전해진 건 겨우 사흘 전이다! 어떻게 반달 전부터 준비할 수 있었다는 말이냐!”태자가 냉소를 머금고 웃었다.“사흘 전이라는 말은 귀신이나 속일 소리입니다.”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했다.“서북의 재해는 아직 통제 가능한 수준입니다. 형님께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지요. 그리고 방금 말한 열세 개 성의 피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는 단 한 곳만 중재해 지역이었고 나머지는 그저 약간의 피해만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구호 물자가 도착하면 곧바로 해결될 문제지요.”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제혁은 이미 현지 백성을 조직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고 현지 관아의 인력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굳이 병력을 더 동원할 필요도 없지요.”태자의 시선이 차갑게 빛났다.“본래 이 일은 괜히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까 봐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인데 어떤 자가 이를 이용해 경성에 소문을 퍼뜨리고 민심을 어지럽혔습니다.”그는 한 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이 죄는 가볍지 않으니 반드시 처벌받아야 합니다.”열셋 째 황자는 숨이 거칠어졌다.연기준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했던 약점이 이 어린 태자에게 단번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서 있었다.그때 태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태자는 일부러 말을 멈추며 그의 반응을 바라보았다.열셋 째 황자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자 태자의 눈빛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스쳤다.“황숙께서는 서북의 요현을 열일곱 째 아우에게 봉지로 하사하셨습니다. 그곳에 가서 서북 구호 사업을 돕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열일곱 째 아우는 아직 어리지만 신태비께서는 혼인하기 전 초원 부족의 공주셨습니다. 중재해 지역이 바로 초원과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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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4화

육승은 한 번 궁 밖으로 다녀오더니 곧장 다시 돌아왔다. 그는 서인경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서왕과 서왕비께서 어떤 정체 모를 힘에 의해 저택 안에 갇혀 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결계 같은 것이 둘러져 있습니다. 속하는 들어갈 수 없고 안에 있는 사람도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떤 소식도 알아낼 수 없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인경의 심장이 잠깐 멎은 듯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지금 상황은 마치 일불락의 결계와도 같았다. 하지만 일불락 사람들 말고 경성에서 이런 술법을 쓸 수 있는 자가 또 있을까?설마 화족이 나타난 것일까?서인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대전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오늘 궁연에는 삼품 이상 대신과 그 가족들이 전부 참석해 있었다. 단 한 사람, 빠진 사람이 있었다.바로 서왕과 서왕비였다. 그들은 줄곧 서인경과 연기준이 가장 신뢰하고 존중하던 어른이었다.부디 그들이 적이 되지만은 않기를.서인경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표정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태황태후를 바라보았다.“열셋 째 황자는 이미 끝났습니다. 후궁에는 더 이상 황자가 없으니 이제는 태황태후께서 지지하실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서인경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차라리 궁으로 돌아가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무부 사람들을 보내 새 옷을 맞추고 생활용품도 새로 들여놓게 하겠습니다. 밖에서 계속 저희가 마마를 학대한다고 말씀하시니 괜한 오해만 커질 뿐입니다.”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태황태후께서는 황실의 어른이십니다. 하루라도 살아 계시는 동안 저와 폐하는 반드시 효를 다할 것입니다. 그러니 괜히 밖에서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의심이 간다면 언제든 내무부 장부를 확인하시면 됩니다.”사실상 태황태후가 일부러 연극을 하며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대놓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태황태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하나 끌어다가 대전 안에 앉아 버렸다.“오늘 일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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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5화

검은 옷의 사내가 음산하게 웃었다.“내가 한 약속, 잊지 않았겠지. 장생불사 약을 손에 넣으면 진국의 황위는 내가 잠시 앉아 보겠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손을 한 번 휘둘렀다. 순간 바닥에 널려 있던 시위의 시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대전 안으로 날아들었다.서인경은 갑작스레 몰려오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섬뜩한 살기를 두른 채 곧장 날아들고 있었다.서인경이 몸을 피하려는 찰나, 곁을 지키고 있던 안포가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그는 공중에서 시위의 시체를 힘껏 걷어차 바닥으로 떨어뜨렸다.쿵!시체가 바닥에 부딪히며 굴러 떨어졌다.그때였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가린 사내 하나가 시위의 시체를 밟고 천천히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안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 사람은 대전 밖의 시위들을 아무 소리도 없이 처리해 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서인경의 바로 곁을 지키는 호위였는데도 아무 기척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 무공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신 같은 호위는 죽어도 마땅한 존재였다.갑작스러운 변고에 대전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신들과 그 가족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문관들은 잽싸게 무장들의 뒤로 몸을 숨겼다. 괜히 화를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무장들은 그런 문관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의리를 지켜 앞에 나서서 막아섰다.“네놈은 누구냐! 감히 후궁에 침입해 황후 마마를 암살하려 하다니. 삼족을 멸할 죄다!”그때 허공에서 웃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후후.”그 목소리는 내력을 실은 음성이었고 공허한 울림처럼 대전 위를 맴돌았다.“나는 너희의 조상이다.”서인경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그녀는 눈을 떼지 않고 앞에 선 검은 그림자를 노려보았다.익숙했다. 너무도 익숙했다. 단지 체형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 그것은 설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냉혹한 기운이었다.설산에서 온 사람?순간, 일불락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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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6화

연강호가 손을 내지르자 그의 장풍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곧장 서인경을 향해 밀려들었다.안포가 즉시 몸을 날려 서인경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맞서 싸우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그를 그대로 날려 보냈다. 안포의 몸이 공중으로 튕겨 올라 옆에 서 있던 기둥에 세게 부딪혔다. 순간 피비린내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안포는 참지 못하고 핏물을 토해 냈다. 오장육부가 뒤틀린 듯 뒤엉켜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고통이 밀려왔다.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안포는 연기준 곁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고 그가 특별히 남겨 서인경을 지키게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상대의 손에서 단 한 수조차 버티지 못했다. 이 사람의 실력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다.연강호는 힘을 거두고 계단 위에 섰다. 그와 서인경 사이의 거리는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그러나 안포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본 순간, 서인경의 가슴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녀의 입가가 싸늘하게 올라갔다.“제가 후회하는 건 그때 당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겁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인경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약가루가 허공에 흩어졌다.기묘한 향기가 대전 안에 퍼져 나갔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향에 휩싸여 머리가 무겁게 울리고 눈앞이 흐릿해졌다.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 힘없이 쓰러지기 시작하자 태황태후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서인경! 네가 감히 무슨 짓을...”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황태후 역시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뒤에 있던 유모들과 단은설도 그녀를 부축할 틈도 없이 함께 쓰러졌다. 문가에 서 있던 태상황조차 도망칠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대전 안에서 의식을 유지한 사람은 이미 해독제를 복용한 육승과 안포뿐이었다.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연강호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히 서 있었다.“허.”음산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연강호는 길게 늘어진 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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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화

서왕…?설마 서왕비가 본래 부엌일꾼의 딸이 아니라 연강호의 증손녀라는 말인가? 이 사실을 서왕비는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연도현의 화족 패령을 자신에게 건넸을 때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서인경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들은 정보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대전 안의 대신들과 가족들은 이미 전부 쓰러져 있었다. 연강호는 더 이상 아무 거리낌도 없이 당당하게 조건을 꺼냈다.“황위를 나에게 넘겨라. 그러면 너와 네 아들이 계속 후궁에 머물 수 있게 해 주겠다. 평생의 부귀영화를 보장해 주지.”서인경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였다. 그러다 무심코 말이 튀어나왔다.“만약 제가 거절한다면요?”연강호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그 어조는 모든 것을 이미 계산해 둔 듯한 여유가 담겨 있었다.“네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이 황위는 내 것이 된다. 다만 네가 협조한다면 너와 네 아들은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겠지. 헌데 협조하지 않는다면…”그의 목소리가 더욱 잔혹해졌다.“나는 너를 죽이고 네 아들을 내 노예로 만들겠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비참하게 목숨만 이어 가며 존엄도 없이 살아가게 할 뿐이지.”연강호는 자신의 목적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인경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연강호는 과거 일불락의 비술 금약을 복용한 덕분에 일불락 수장 일족의 운명과 자신의 목숨을 함께 묶어 버렸다. 일불락의 후손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다면 연강호는 수명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불락의 후손이 모두 죽는다면 그의 목숨도 그 자리에서 끝난다.지금 서인경에게는 꼬막이가 있었다. 그래서 연강호는 더욱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어른은 통제하기 어렵지만 아이 하나쯤 마음대로 휘두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니까.두 사람이 말을 나누는 사이, 태후 옆에 쓰러져 있던 단은설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 작은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했다.연강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대전을 훑어보았다. 눈을 드러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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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8화

방금 전 약왕곡에서 네 마리 악어는 연강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녀석들은 온천수 속에서 이리저리 날뛰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겠다는 듯 난리를 피웠다.[저희를 내보내주세요! 연강호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겁니다!]그리고 지금 약왕곡을 막 빠져나온 악어는 곧장 연강호를 향해 핏빛이 도는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연강호는 대전 안에 악어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순간, 팔에 격렬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악어의 이빨이 검은 옷을 뚫고 연강호의 팔에 깊이 박혔던 것이다.잠시 후 그의 살점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이 자식들아!”[형제들, 백 년 묵은 원한이 바로 오늘이다!][물어뜯어! 죽을 때까지!]말이 끝나자 네 마리 악어가 동시에 다시 달려들었다. 연강호도 즉시 무공을 펼쳤다. 그는 거기에 더해 자신이 익힌 일불락의 술법까지 사용했다.대전 위 공기가 뒤집히듯 요동치며 폭풍 같은 기운이 휘몰아쳤다.하지만 네 마리 악어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요즘 그들은 일불락에서 가져온 온천수를 마시며 체력이 크게 늘어난 상태였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았다.그들은 연강호를 향해 죽기 살기로 물어뜯었다.연강호가 칼을 들어 악어의 몸 깊숙이 찔러 넣어도 악어는 목구멍에서 짧은 신음을 흘릴 뿐 교합력은 더 세졌다. 그들은 이를 악물듯 더 세게 연강호를 물어뜯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강호는 네 마리 악어에게 완전히 얽혀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검은 옷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그때 대전 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마침 연강호의 팔에 비쳤다. 악어에게 찢긴 탓에 옷이 벌어진 팔이었다.그 순간, 연강호의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했다.그는 마지막 힘으로 칼을 휘둘러 악어 한 마리의 꼬리를 단칼에 베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두 마리 악어는 이미 심각한 상처를 입어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악어만이 연강호의 허벅지를 끝까지 물고 놓지 않았다.연강호가 다시 칼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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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9화

맹국공은 방금 전, 그 검은 옷의 사내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인경의 몸에 묻은 피와 대전 안에 가득한 혈비린내만으로도 방금 전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만약 서인경이 패해 그 검은 옷의 사내가 황위에 올랐다면 진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맹국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 순간 맹국공의 눈에는 더 이상 예전처럼 태상황을 향한 존중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태상황을 노려보았다.“태상황께서는 그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시면서 감히 아무도 모르게 궁으로 들여와 왕조를 뒤엎으려 하셨습니다. 대체 진국의 강산을 어디에 두신 겁니까?”태상황은 처음으로 맹국공이 이런 말투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감히 짐에게 그런 말투로 말하다니! 반역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지금 연기준이 조정에 없으니 짐이야말로 황제다! 짐은 아직도 구오지존이란 말이다! 너희가 예전에 연기준에게 복종한 것 자체가 이미 반역이요 역적이다! 짐은 너희 구족을 모조리 멸할 것이다!”태상황의 말이 끝나자 현장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태상황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너희는 전부 짐이 끌어올린 사람들이다! 헌데 감히 짐을 배신하다니! 은혜도 모르는 것들! 천리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서인경은 그가 발광하듯 날뛰는 모습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황제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강산과 백성을 한 번도 눈에 담지 않았지요. 검은 옷의 사내와 손을 잡고 변경의 학살 사건을 꾸며 냈습니다. 진국과 요동의 갈등을 격화시키고 열국에게 진국을 공격할 명분까지 주었죠. 그런 황제를 어떤 대신이 믿고 따르겠습니까?”태상황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었다.“황위를 빼앗는데 희생이 없을 수 있느냐? 연기준을 끌어내야 너희 둘을 따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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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화

하지만 단은설의 얼굴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놀라움과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그 순간, 무언가가 서인경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혹시 아까 그녀는 약에 취해 쓰러지지 않았던 걸까?서인경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태황태후는 유모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내가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라. 진국의 강산이 서 씨 집안 사람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너희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단은설은 태황태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서인경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스쳤다. 마치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서인경의 심장이 순간 세게 조여들었다. 단은설은 더 이상 살려 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궁연의 소란이 마침내 가라앉자 대신들과 가족들은 마치 죽다 살아난 사람들처럼 길게 숨을 내쉬었다.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궁에 한 번 들어왔을 뿐인데 또 한 번의 궁변을 목격하게 될 줄을. 이번에는 자신들마저 궁 안에서 죽을 뻔했다.서인경이 한마디 하자 대신들과 가족들은 일제히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맹국공이 고개를 들어 서인경을 바라보았다.“황후 마마께서 신에게 태자를 보좌하라 하신다면 적어도 사정을 알려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다음번에도 오늘 같은 일이 갑자기 벌어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서인경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본궁이 맹국공을 속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일은 너무 기이하여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그대가 정말 알고 싶다면 본궁과 함께 서왕부에 가보자.”오늘 같이 중요한 자리에서 서왕부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맹국공은 이미 의심을 품고 있었다.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서인경은 가볍게 차림을 갖추고 궁을 나섰다. 눈에 띄지 않는 마차 한 대만 타고 큰 소란 없이 움직였다.마차에 오르려는 순간, 연강호를 추격하러 갔던 육승이 돌아왔다. 그는 마차 곁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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