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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211 - チャプター 1220

1260 チャプター

제1211화

임선우는 말을 하면서도 그 태도는 지나치게도 담담했고 말투 또한 느긋했다.마치 먼 길을 달려온 손님이 아니라 이미 약속이라도 해 둔 친척을 맞이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이었다.연기준과 서인경은 말에서 내려 밭을 가로질러 임선우의 곁으로 다가갔다.“어르신 땅에 발을 들였으니, 마땅히 그 법을 따라야지요. 모든 건 어르신께 맡기겠습니다.”임선우는 허허 웃었다.“무슨 어르신입니까? 당신은 군이고 저는 백성입니다. 그렇게 부르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연기준이 담담히 답했다.“이곳에선 군과 백성이 따로 없습니다. 한 사람의 젊은이 연기준과, 한 분의 어르신 임선우만 있을 뿐이지요. 연세로 보아도, 이 한마디는 충분히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연기준의 말이 단호하자 임선우는 손을 내저으며 더는 따지지 않았다.“그래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자, 와서 불 좀 지피세요. 밥이란 게 말입니다. 혼자 하면 재미가 없어요. 누가 옆에서 얘기라도 해야 덜 심심하죠.”연기준과 서인경은 임선우를 따라 밭을 빠져나와 초가 옆에 마련된 화덕 앞으로 갔다.허술한 차양 아래 놓인 아궁이였다. 불을 때면서도 사방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과, 시야를 가로막는 것 하나 없는 평지. 확실히 살기 좋은 자리였다.연기준은 서인경에게 손을 쓰게 하지 않았다. 스스로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능숙하게 불을 지폈다.임선우는 배추를 한 장씩 떼어내 물에 담가 씻기 시작했다.연기준의 손놀림을 본 그의 눈빛에 희미한 감탄이 스쳤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서인경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서 노장군의 손녀는 만만치 않군요. 한 나라의 군주가 저렇게까지 감싸주다니, 불 하나 피우는 것도 못 하게 합니까.”연기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묵묵히 장작을 밀어 넣으며 답했다.“변방에서 전장을 누비며 살다 보니, 이런 일쯤은 익숙해졌습니다. 제 부인은 서 노장군께서 곱게 키우신 분입니다. 이런 거친 일에 어울리는 분이 아니지요. 어르신께서도 집안의 세 따님과 다섯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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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2화

연기준의 한마디는 곧장 임선우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한층 창백해졌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배추 잎을 떼어냈다.그 반응을 지켜보던 연기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제가 알아보니, 어르신께서 이곳으로 오시기 전부터 이미 백씨 부인께서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더군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어르신께서 가정을 돌보지 않는 데에 화가 나셔서 불문에 의지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내신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임선우의 손이 떨렸다.그 순간, 움직임이 완전히 멈춰버렸다.서인경은 닭을 먹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란 기색이 스쳤다.무언가를 짐작한 듯 고개를 돌려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연기준은 그녀의 생각이 맞다는 듯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인경의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왔다.한참의 침묵 끝에 임선우가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물기가 고여 있었고 목소리에는 어딘가 내려놓은 듯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역시… 당신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군요. 당신 말대로입니다. 내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그녀를 묻지 않았어요. 특별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해두고 있을 뿐입니다.”죽었으되 묻지 않았다.서인경은 그제야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신 건… 결국 기사회생술이군요. 부인을 다시 살려내기를 바라고 계신 겁니다.”임선우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렸다.그는 멀리 시선을 던졌다. 어딘가 먼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저는 그저… 그녀가 눈을 떠서 말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와 혼인한 걸… 후회했는지.”사람에게는 저마다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임선우에게 그것은 바로 이 집착이었다.서인경은 그와 그의 부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다.어쩌면 그는 사람 하나를 되살리기 위해 어떤 대가가 필요한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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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3화

연기준은 임선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어르신, 말씀해 주십시오. 화족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임선우는 ‘기사회생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무너져 내렸다.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순식간에 열 살은 더 늙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화족이 정말 나를 속였단 말이지...? 내 부인은 다시 깨어날 수 없다는 뜻이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만무림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기사회생이야. 덕비가 그녀의 딸을 되살려내기만 하면… 나도… 내 부인을 살릴 수 있어.”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러니까, 다 알고 있었던 거군요. 변방이 십수 년이나 기근에 시달리는 걸 그대로 두고, 아이들이 끌려가는 것도 방치하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천 명이 희생되는 걸 눈감아 주고… 임선우, 당신은 임 가의 선조들께도, 당신 이름에도 부끄러운 사람입니다.”그 말은 깊이 꽂혔다.임선우는 그 자리에 굳어버린 듯 서 있었다.서인경의 가슴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사람과 말다툼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한 걸음 다가섰다.“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말해 주세요. 화족이 왜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당신과 어떤 거래를 한 건지.”그러나 임선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연기준과 서인경의 말은 그의 귀에 닿지 않는 듯했다.연이어 쏟아진 진실에 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부인에게도, 백 가에도, 백성들에게도 모두 죄를 지었구나. 부인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죽었어야 할 몸이야. 이렇게 오래 버틴 끝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그의 목소리는 허공으로 흩어졌다.서인경은 그를 바라보았다.그가 부인을 향한 마음만큼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는 진심으로 그 여인이 다시 눈을 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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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4화

“그럴 리가 없습니다!”임선우의 눈빛이 단단히 굳었다.“그 호부는… 분명 그때 열셋 째 왕야, 연도현의 손에 있었습니다. 태황태후가 그걸 손에 넣으려고, 그분에게 형벌까지 가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요. 그때 당신들은 아직 갓난아기였습니다. 헌데 어떻게 그 호부가 당신들 손에 있을 수가 있는 겁니까?”연기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당신이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까?”임선우는 순간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이미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결국 그는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흑갑군은… 지금도 제 손에 있습니다. 그때 태황태후는 흑갑군이 열셋 째 왕야에게 넘어갈까 봐 온갖 수단을 다 써서 그분을 제거하려 했지요. 군부를 손에 넣으려 했던 겁니다. 헌데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왕야가 죽은 뒤, 호부의 행방은 사라졌고… 태황태후는 저를 회유하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하면서 흑갑군을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허나 임 가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규율이 있습니다. 호부 없이는 절대 군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결국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흑갑군은 이미 오래전에 해산되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고는 군을 그대로 묶어두고, 때를 기다리게 했습니다.”그 이야기를 들은 서인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래도 완전히 양심을 버린 사람은 아니었다.만약 흑갑군이 정말 태황태후의 손에 들어갔다면 진국에는 또 하나의 ‘무측천’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연기준이 짧게 물었다.“그럼 지금 흑갑군은 어디 있습니까?”임선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만무림에 있습니다.”그 한마디에 서인경의 머릿속이 하얘졌다.마치 벼락이 떨어진 듯, 순간 모든 감각이 멈췄다.“뭐라고요? 만무림에 있다고요? 그럼… 덕비랑 금수 대장공주와 함께 있는 그 세력이 흑갑군이라는 말입니까?”말을 내뱉은 순간, 서인경은 스스로 이상함을 느꼈다.“아닙니다. 이상합니다. 금수 대장공주가 그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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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5화

말 위에서, 연기준은 서인경을 품에 안은 채 북쪽을 향해 달렸다.말은 숲길을 가르며 질주했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는 어딘가 비가 몰려올 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서인경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화족과 임선우…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합니까?”연기준은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낮게 속삭였다.“임선우가 왜 스스로 부인에게 미안하다고 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왜 천 명의 목숨을 대가로라도 그녀를 되살리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왜 굳이, 그 입으로 ‘후회했느냐’는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는지.”서인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곧 답을 찾은 듯 입을 열었다.“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찔리는 일이 있으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임선우는 다른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것도 혼인한 뒤에. 그러니까 죽은 사람의 대답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예요. 아마… 백 년 뒤에라도 다시 만났을 때, 스스로를 변명할 수 있게 하려고 말입니다.”연기준의 팔이 조금 더 단단히 조여졌다.“맞아. 그럼 하나 더 맞춰볼래? 그가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연기준이 굳이 이렇게 묻는 순간, 이미 답은 하나였다.“화족의 후손…?”연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말을 몰았다.숲을 빠져나가기 직전, 서인경이 갑자기 손을 뻗어 연기준의 팔을 꼬집었다.“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했습니까? 저 혼자 바보처럼 헤맸잖아요.”그 정도 통증은 연기준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그는 가볍게 웃었다.“연풍이 처음 알아낸 건 단서뿐이었다. 전부 다 맞춰진 건 아니었지. 임선우의 말을 들으면서 야 대충 윤곽이 잡힌 것이다. 임선우는 평생 두 여자밖에 없었다. 부인의 친정은 대대로 상업으로 기반을 쌓은 집안으로, 오백 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어. 제 가나 단 가처럼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명문은 아니지만, 강남에선 제법 뿌리 깊은 가문이지. 조상 중에 지방관도 여럿 있었고,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그런 집안에 화족의 후손이 섞여 있었다면,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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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6화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화족 전체의 부흥이라는 짐을 대신 짊어질 이유도 없으며, 함부로 일불락의 다른 이들을 미워해서도 안 된다는걸요. 저는 임 가의 모든 재산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그 아이의 목숨 하나만은 바꾸고 싶습니다. 부디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연기준은 시선을 정면에 둔 채, 그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어르신께서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임선우의 얼굴빛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다.“폐하의 총명이라면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제 불효 자식… 화족의 후예이자, 임 가의 장남, 임충서입니다.”장남이라고?서인경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조금의 숨김도 없이 비웃음을 흘렸다.“그러니 임씨 부인이 끝내 눈을 감지 못했겠죠. 정식으로 혼례를 올린 본처였는데도, 임 가의 장남 자리는 이름도 없는 첩의 자식에게 넘어갔으니. 정작 임씨 부인의 친아들은 평생 그 아이를 형님이라 불러야 했을 테고… 저라면 형님은커녕, 아버지라는 말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을 겁니다.”임선우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중병에서 막 회복된 사람처럼,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러나 서인경은 그의 안색 따위는 보이지 않는 듯, 계속해서 가슴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어르신께서 줄곧 임씨 부인의 대답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던 건, 스스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헌데 알면서도 결국 그렇게 행동하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은 굳이 물을 필요도 없겠네요. 임씨 부인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아마 가장 먼저 당신을 베어버리고 싶어 할 겁니다.”임선우는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졌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이나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다가 겨우 속에 고인 쓰라림을 눌러 담았다.“황후 마마,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연기준이 낮게 말했다.“짐은 오히려 황후의 말이 지극히 옳다고 봅니다. 임충서의 생사는 그가 어떤 짓을 했느냐에 달렸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더라도 돌아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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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7화

미혹술.직접 본 적은 없어도, 그 이름만으로도 여인이 남자를 홀리는 기술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임선우가 어디 그런 색욕에 휘둘릴 인물인가. 그가 어찌 그런 것에 얽매일 수 있단 말인가.잠시 멍해졌던 그는, 이내 얼굴빛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저도 압니다. 진국이 외실을 업신여긴다는 것을. 헌데 황후 마마께서 이미 세상을 떠난 한 여인을 이렇게 모함하는 건, 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 그녀는 결코 유곽 출신 따위가 아니었습니다!”서인경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연기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막 손을 쓰려는 찰나, 서인경이 그의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손바닥 위를 살짝 긁으며 화를 누르라는 뜻을 전한다.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서인경은 임선우를 바라봤다.“제가 모함을 하는 건지 아닌지는, 어르신께서 이미 짐작하고 계셨을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지요. 임씨 부인은 명문가 출신으로, 저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강남에서 이름난 기인이었고, 문무를 겸비한 데다 재색 또한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그런 여인이, 도대체 어떻게 외실 하나에게 무너졌을까요? 물론 남자들 입장에선 집 안의 꽃보다 들꽃이 더 향기롭다고들 하죠. 헌데 어르신은 눈이 먼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분도 아니시잖아요. 출신도 모를 여인 하나 때문에, 평생 임씨 부인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아닙니까?”서인경의 말에, 임선우의 머릿속에 오래전 기억이 스며들었다.그의 부인은 아름다웠다. 가문도, 재능도, 기품도 강남에서 견줄 자가 없었다.혼례를 올리던 날, 강남의 사내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두 사람은 한동안, 분명 사랑했다.하지만 고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그의 마음에 잔물결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그 여인이 나타난 뒤부터였다.부인이 모란이라면 그 여인은 들꽃이었다. 자유롭고 거침없으며, 제멋대로 피어나는 꽃.처음에는, 그저 호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향한 가벼운 감탄에 불과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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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8화

진실을 알게 되면, 그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다만 지금의 서인경에게는, 그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앞쪽에 펼쳐진 홍주림을 바라보며, 연기준에게 먼저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지금은 흑갑군을 만날 때가 아니에요. 자칫 덕비와 금수 대장공주가 눈치채면, 그들이 대비할 수도 있고, 심하면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산 아래 백성들과 산속 아이들을 구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거예요.”흑갑군을 동원해 적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금족과 화족의 전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양쪽이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피해는 반드시 참혹해질 터였다.그건 서인경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가능한 한, 희생을 최소로 줄이고 싶었다.연기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먼 곳을 응시하며 홍주림 입구의 지형을 눈에 담아 두고 마음속에 또렷이 새겼다.이윽고 그는 말머리를 돌려 산 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임선우는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데다, 서인경에게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말을 던져진 상태였다.그는 곧장 말머리를 돌려 뒤따라갔다.뒤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서인경은 뜻을 이룬 듯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임선우가 우리 손에 있는 이상, 협상에서 한 수를 더 쥔 셈이에요. 임충서가 제 아버지의 목숨까지 모른 척하진 않겠죠.”서인경은 미혹술이라는 미끼를 던진 순간부터, 임선우가 반드시 따라올 것을 알고 있었다.연기준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웃음이 스며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도 바보는 아니니 곧 눈치채겠지. 묶어 둘 생각인 것이냐?”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사람을 묶어 두는 건 너무 저속하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그녀는 태연하게 부인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대책이 다 서 있었다.연기준의 어깨가 더 크게 들썩였다. 그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뒤따라오던 임선우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다.임선우는 서인경이 말한 미혹술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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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9화

임선우를 보내고 난 뒤, 서인경은 다시 봉한설에게 편지 한 통을 써서, 암위를 시켜 급히 전하게 했다.그 일을 마치고 나서, 연기준은 흑갑군의 병부를 들고 두 시간 동안 모습을 감추었다.흑갑군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진국의 부름을 받지 않았다.연기준으로서도 그들의 충성심이 여전히 확고한지, 지금 그들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만일 성미 까다로운 인물이라면, 그를 복속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그 사이, 서인경은 마을의 배치를 살피러 나섰다.눈앞의 마을은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고, 노무림은 산허리에 위치해 있었다.대략 반 시진쯤 산을 오르자 가파른 절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그곳은 어느 정도 무공이 있거나, 지형을 잘 아는 이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곳이었다.예전에 사냥꾼 하나가 떨어진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그 때문에 노무림은 오랫동안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마을 동쪽의 좁은 길 하나가 산으로 오르는 유일한 통로였다.하지만 만무림 안에 사는 이들은 내려올 때 굳이 마을을 거칠 필요가 없었고, 산속의 비밀이 들통날까 두려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마을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냉담하게 대응했고 시간이 흐르며 양쪽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마주쳐도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을 정도였다.이 모든 이야기는 서인경이 마을 동쪽 어귀에 앉아 아낙네들이 신발 밑창을 꿰매며 수다를 떠는 사이사이에 캐낸 것이었다.필요한 것을 다 캐낸 뒤에도,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았다.두 손을 소매 속에 넣은 채 바람 부는 쪽에 앉아, 아낙네들의 이런저런 잡담을 듣고 있었다.만무림 속에서 칼을 차고 다니는 험악한 사내 이야기,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서생 이야기, 그리고 동쪽 집 며느리가 먹기만 하고 게으르다는 이야기부터, 서쪽 집 남자가 못생겼으면서도 입만 열면 욕을 한다는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하나하나 모두 엿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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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0화

“다친 거예요?”그제야 서인경은 알아차렸다. 연기준이 떠날 때 입고 있던 겉옷이 사라지고 지금은 검은 속옷 한 벌만 걸치고 있다는 것을.손을 뻗어 만져 보자, 옷감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손바닥에는 선명한 피가 묻어났다.서인경은 곧장 그의 옷을 헤치려 했지만 연기준이 가볍게 두 손을 붙잡았다.“밖이지 않느냐. 이건 좀 곤란하다.”치켜 뜬 서인경의 눈꼬리는 살짝 붉어졌다.그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연기준은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내 피가 아니다.”서인경은 여전히 그를 노려봤다.“거짓말하면... 알죠?”연기준은 난처한 듯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등 뒤 어깨 쪽으로 이끌었다.그곳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하나 나 있었고, 피가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그냥 겉상처일 뿐이다.”서인경은 곧장 그의 뒤로 돌아가 직접 확인했다.상처가 크지 않고, 이미 피도 멎은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얼른 돌아가요. 제가 약 발라줄게요.”연기준은 다리로 말배를 죄자, 말이 속도를 높여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가는 길에 그는 흑갑군의 상황을 서인경에게 들려주었다.지휘관은 성격이 좀 거칠긴 했지만, 의리 있고 우직한 사람이었다.연기준이 그를 제압했고, 호부까지 쥐고 있으니 더 이상 문제는 아니었다.*거처로 돌아와 서인경이 막 연기준의 상처를 다 치료해 주었을 때였다.문이 벌컥 열리며 평이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숨은 가쁘게 차올랐으며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뒤따라 들어온 연풍이 얼른 물을 따라 건넸다.평이는 몇 모금 연달아 들이켜고서야 겨우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됐어요. 다 얘기 끝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잠시 떠나기로 했어요.”서인경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이틀은 잡아준 일이었는데, 반나절 만에 끝낼 줄은 몰랐다.평이는 다시 물을 한 잔 따라 들고, 컵을 감싼 채 말을 이었다.“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움직이면 소리가 커져서 산속 사람들한테 들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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