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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231 - Chapter 240

250 Chapters

제231화

“에이, 우리 남궁 오라버니가 혹시 그대 상공보다 더 잘생겼나?”서인경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얼굴을 툭 밀어냈다.“그래도 내 상공이 더 잘생겼네.”연기준이라는 사람은 비록 성격은 개 같아도 얼굴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막효연은 시큰둥하게 혀를 차며 말했다.“굳이 여기저기서 그대가 좋은 아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줄 필요는 없네!”서인경의 고개가 그녀 쪽으로 돌아갔다.“내가 그렇게 좋은 아내 같아 보이는 겐가?”막효연은 모든 걸 다 꿰뚫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대가 상공까지 끌고 약을 구하러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그게 다 좋은 아내라는 형상을 세우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서인경은 말문이 막혔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까미를 데리고 먼저 닭 두 마리를 통째로 구워 먹었다. 두 사람은 배가 부르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서인경은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까미의 코앞에 살짝 흔들며 내밀었다.“얘야, 잘 부탁한다!”까미는 머리를 까딱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막효연은 그 광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경이, 물어보면 안 될 거 아는데… 도저히 못 참겠어서 그러네. 그대는 혹시 조정에서 파견한 수사관인 겐가?”서인경은 까미의 목줄을 이끌며 강가 쪽으로 향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 겐가?”막효연은 방금 그녀가 손수건을 대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보이며 말했다.“봐. 이렇게 하고, 또 이렇게 하니까. 나도 눈은 있네. 다 보인다니까.”서인경은 그제야 그녀를 흘끗 바라보았다.“고대에서도 벌써 개로 사건을 수사했단 말인 겐가?”그녀는 줄곧 경찰견이라는 건 21세기에나 있는 줄로만 알았다. 드라마에서도 관아의 포졸들이 개를 끌고 범인을 추적하는 장면은 본 적이 없으니까.막효연 역시 확신은 없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고대? 그게 무슨 말인가? 나도 본 적은 없네. 다만 소설책에서는 그렇게 나오지.”서인경은 방금의 말실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아마 맞을 것이다. 문학작품은 언제나 생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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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바로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눈에 관리인 티가 나는 인물이 다가왔다.“왜 여기서 어슬렁거리는 것이냐? 어서 내려가거라. 여기를 자기네 뒷마당으로 아는 게냐… 어이쿠, 막 아가씨? 어쩌다 여기 계신 겁니까?”이 목소리…서인경은 곧장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눈앞에 드러난 건 주름이 가득한 쉰이 넘은 한 사내의 얼굴이었다. 방금까지는 그녀를 향해 쏟아내듯 호통치던 관리인의 목소리가 막효연을 보는 순간 곧장 바뀌었다.막효연은 서인경 앞을 가로막으며 나섰다.“최 관사, 잘 지냈습니까? 제가 까미를 데리고 나왔다가 이 녀석이 갑자기 배 쪽으로 뛰어가더군요. 세상 물정 모르는 개라 신기해서 그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곧 내려가겠습니다.”억울하게 누명까지 쓴 까미는 그저 멀뚱멀뚱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과연, 그자는 다름 아닌 최 관사였다.서인경이 어젯밤 몰래 엿들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최 관사는 막효연의 말을 듣자마자 허리를 굽히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 막 아가씨께서 산책하시는 건 자유입니다. 전혀 방해되지 않으니 괜찮습니다.”막효연은 서인경의 굳은 표정을 보고 이 배 위에 무언가 수상한 게 있음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더 캐물었다.“이렇게 실어 나르는 건 다 무엇입니까?”최 관사는 깍듯이 대답했다.“겨울나기에 쓸 짐승 가죽들이랑 산에서만 나는 과일과 들짐승 고기 같은 것들입니다. 밖에서는 구할 수 없어 귀한 물건들이지요.”“와, 이렇게 많다고요?”호기심에 못 이긴 막효연은 그대로 손을 뻗어 한 상자를 툭 열어젖혀 버렸다.최 관사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그 순간, 까미가 훌쩍 뛰어올라 상자 속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하얗게 반짝이는 새 가죽들이 땅바닥으로 흩어지고 그 위에는 순식간에 진흙 묻은 발자국이 찍혔다. 막효연은 황급히 달려가 까미를 잡는 시늉을 하며 연거푸 사과했다.“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철이 없어서… 제가 곧 데려가겠습니다.”최 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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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연기준은 습관처럼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았다.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동자에 서린 매서운 기운이 조금 옅어졌다.진묵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한껏 여유로운 미소로 다가오더니 커다란 손으로 막효연의 고운 손을 감싸 쥐었다.“가자, 먹고 싶은 거 다 사다 줄게.”그러자 막효연의 눈동자는 기쁨에 반짝이며 빛났다.“정말요? 좋습니다! 경이, 나는 그대랑 같이 못 있어주겠네.”서인경은 그저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알콩달콩한 분위기 속에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기준의 시선은 그녀가 바라보던 방향에 오래 머물렀다. 그 얼굴에는 무슨 생각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기색이 드리워졌다.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니 남은 건 서인경과 연기준뿐이었다.서인경은 화물선을 붙잡을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어 입술을 달싹였다. 자꾸만 마음속에서 이 배는 떠나서는 안 된다는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말이 나오기도 전에, 연기준이 먼저 움직였다.그는 처음으로 서인경의 손을 감싸 쥐며 낯설면서도 전과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었다.“배고프지 않으냐? 내가 가서 밥이라도 사주마.”서인경은 순간 어딘가 익숙한 흉내의 냄새를 맡았다.‘이게 뭐지, 대체? 당당한 상왕께서 지금 누굴 흉내 내고 있는 거지?’그녀의 눈길은 묘하게 뒤틀리더니 곧장 연기준에게 꽂혔다.“뭐 잘못한 게 있습니까?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겁니까?”그 물음에 연기준의 얼굴은 단숨에 굳어졌다. 그러자 서인경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저... 진 가 주루의 소고기 국이랑 단 것이 좀 먹고 싶습니다.”연기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그만두자.그는 이미 실패했다.진묵염의 그 은근하고 답답한 수작들을 자신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었다.자신은 진묵염이 아니고 이 여인 또한 막효연이 아니니까.서인경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할 말이 있어 부랴부랴 그의 뒤를 따랐다.둘은 진 가 주루에 도착했다. 연기준은 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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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서인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리려던 순간, 그녀의 얼굴빛은 단숨에 바뀌었다. 본래는 남궁 집안에서 이 사태와 무관한 듯 선을 긋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전부 위장이었던 것이다. 어젯밤 화물선 위에서 최 관사와 은밀히 대화하던 그 목소리는 바로 남궁열이었다.다만 남궁열 자신도 확신이 없어 시험 삼아 떠본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그는 그대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객실로 돌아오자마자 서인경은 곧장 연기준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알렸다. 뜻밖에도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인경은 당장 불같이 화를 냈다.“상공께서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왜 저한테 말하지 않았던 겁니까?”연기준은 침착히 찻잔에 물을 따르며 대답했다.“본왕 역시 예전에는 남궁열을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그는 말을 마치며 찻잔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서인경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까미가 온난을 찾지 못했습니다. 상공, 혹시 화물선을 출항 못 하게 할 방법은 없습니까?”연기준이 되물었다.“정말 확신하느냐? 그 배 안에 아이들이 있다고.”서인경은 단호하게 말했다.“설령 아이들이 없더라도 단서는 있을 게 아닙니까? 금전초와 그것을 사간 자는 분명 배 안에 있을 겁니다.”그러나 연기준의 태도는 여전히 흔들림 없었다.“이 일, 너는 관여하지 말거라. 개를 데리고 사람을 찾는다니... 다시는 그런 짓도 하지 말고. 그렇게 행동했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십상이다.”서인경은 앞에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정수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듣고 이내 수긍하게 되었다.그렇다!불필요하게 경각심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혹여 아이들이 있다면 적들이 흔적을 지워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녀가 바라는 건 사람을 찾는 것이지 해치는 게 아니었다.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오늘 막효연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지하흑시에서 막효연의 존재만큼 완벽한 위장은 없으니까.잠시 후 점원이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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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보석 경매회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었다.서인경은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어 일부러 객실로 가지 않고 대청 첫 줄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효연과 진묵염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서인경을 보자마자 진묵염의 손을 뿌리치고 다정하게 그녀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경이, 우리 할머니께서 곧 환갑이시네. 그러니 오늘 나 좀 도와서 좋은 물건 하나 골라 주게나. 회갑연에 내가 드릴 선물이 필요하네.”서인경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할머니 생신 선물을 이제야 준비하는 겐가?”큰 잔치를 치르지 않는다 해도 집안에서 작은 잔치는 늘 있었을 것이다.막효연도 그녀처럼 방금 전에야 회갑연을 치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닐 텐데...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 우리 집은 원래 그렇게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네. 내가 직접 지은 옷 한 벌은 어제 미리 드렸지. 다만 회갑연을 연다는 걸 이제야 알아서 말이지. 값진 걸 하나 더 준비하고 싶을 뿐이네.”서인경은 그녀의 진심 어린 효심을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대가 드리는 거라면 무슨 물건이든 분명 좋아하실 것이네.”경매 초반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 직전,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좌석은 부족했고 복도마저 발 디딜 틈이 없었다.서인경은 여기 사람들은 다들 참 부자구나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자 곧 막효연이 그녀에게 귀띔하듯 말해 주었다.“다들 할머니의 회갑연 소식을 듣고 선물로 쓸 만한 걸 고르러 온 것이네.”서인경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그 대장로에 대해 점점 더 호기심과 경외심이 깊어졌다.“그대 할머니는 정말 대단하군!”막효연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고 턱을 치켜세웠다.“당연하지. 할머니께서 집권하시던 시절에는 그분 말씀 한마디면 사대 세가가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네. 다만 세월이 흘러 은퇴하신 지 오래니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모여든 건 사실 진시의 보물 때문이기도 하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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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우리는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흠결 하나 드러낸 적 없으니 들킬 리 없지.”그렇게 말하면서도 최 관사의 뇌리에는 어젯밤 일이 스쳐갔다.배 위에서 불현듯 울린 기척.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그냥 길 잃은 들고양이라 여겼는데 만약 그게 단순한 눈속임이었다면…?순간, 그의 온몸은 서늘해지며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최근 수상한 자들이 드나든 건 없었느냐?”갑자기 던진 물음에 라채월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라 얼굴을 찡그렸다.“지금 이 거리에 온통 외지인들뿐인데 최 관사께서 말씀하신 수상한 자라는 게 대체 누굴 뜻하는 겁니까?”최 관사는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사대 세가와 접촉이 잦은 자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화물선에 눈독 들이겠느냐?”라채월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허리를 곧추세웠다.“설마… 그들이?”“누구?”최 관사는 성큼 앞으로 다가서며 눈빛을 날카롭게 그녀에게 꽂았다.라채월의 머릿속에는 단번에 한 여인의 얼굴이 스쳤다.어리석은 라은정을 함정에 빠뜨리고 또 막부의 문 앞에서 자신의 일을 망쳐버린 그 여인.“요즘 막부에 몇몇 외지인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약재를 구하러 온 상인이라지만 제가 보기에는 수상합니다. 그 남자는 매일 진묵염과 함께 드나드는데 병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더군요.”“막 가, 진 가...”최 관사는 턱을 짚고 방 안을 빙 돌며 중얼거렸다.“흥, 막수한은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자이지. 그 고집불통이는 그 늙은 여인과 한통속일 거고. 진묵염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막 가의 딸에게 얹혀서야 겨우 흑시에 발붙인 기생충일 뿐! 우리가 그 둘이 두려워서 이토록 수년을 숨어 지내는 게 아니지 않으냐? 단지 상대하기 번거로우니 몸을 낮추었을 따름이다!”라채월 역시 그들을 벼르고 있었다.하루라도 빨리 계획을 이루어 막수한을 완전히 짓밟고 두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그럼 어쩔 셈입니까? 정말로 회갑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겁니까?”최 관사의 눈빛에 섬뜩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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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최 관사가 막 자리를 뜨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그림자 역시 소리 없이 스르륵 사라졌다. 라채월은 홀로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수년간, 그녀는 종종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둔 채 자신이 처음 라 가로 시집왔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의 구석에 잠들어 있던 증오가 조금씩 자라나 더 깊고 날카롭게 뿌리를 내렸다.막수한의 첫날밤.지하흑시의 대장로가 딸을 시집보내고 새 며느리를 맞이했던, 그야말로 경사스러운 밤이었다. 그날은 흑시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떠 축배를 올렸던 날이기도 했다.그 소란과 환희 속에서 하찮은 하녀의 딸인 그녀를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래, 그녀는 본디부터 하인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의 이름 앞에 붙은 굴레가 바로 그것이었다. 금빛 열쇠를 입에 물고 태어난 도련님과 아가씨들과는 달랐다.그래서 막수한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봉수정은 병약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었으나 막수한이 그녀를 아내로 맞은 것은 흑시의 권세를 움켜쥐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봉수정에게 진 것이 아니라 권력에게 패배 당한 것이다.라북명.그의 용모가 얼마나 흉측했으면 길거리의 아이들조차 그의 얼굴을 보면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만약 그가 서성의 성주의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었다면 라채월은 결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권세의 유혹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짐했다. 반드시 권력을 손에 넣어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발아래에서 짓밟을 거라고.생각할수록 그 욕망은 불길처럼 타올라 그녀의 이성을 삼켜갔다. 더 이상 억누를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그러던 순간,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님, 가게의 장사치가 장부를 가지고 왔사옵니다.”라채월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었다. 오늘 장부를 보고받기로 한 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있었다.“내가 몸이 좋지 않으니 내일 다시 오라 전하거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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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세월과 고통에 짓이겨진 얼굴 전체가 드러났다.그러나 무너진 윤곽 속에서도 이 인물이 오래전 이미 죽었다고 전해졌던 바로 그 라북명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탁한 물이 그의 입가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라북명은 입을 열어 마치 고목 위의 삐걱대는 까마귀 같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너… 대체 뭘 하려는 것이냐?”라채월의 입술은 비틀린 미소로 말아 올라갔다.“당연히 예전에 네가 했던 그 방법 그대로 우리 아들을 위해 성사시켜 주려는 것이지.”라북명은 격분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철사슬이 요란히 덜컹이며 울리더니 그의 몸은 고작 한 치 앞으로 나아가다 곧 묶여 버렸다. 그는 라채월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네가 아까 그러지 않았느냐? 효연과 묵염은 이미 약혼했다고. 네가 감히 막 형님의 딸을 건드린다면 막 형님도, 묵염도 절대로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채월의 웃음은 점점 더 방탕하게 번졌다.“용서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예전에 막수한도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했지. 그런데 결국은 나를 너에게 시집보냈잖아!”라북명은 격렬히 반박했다.“그건… 그건 다르다, 전혀 달라!”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채월은 단번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짤막한 순간, 한쪽 뺨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쨍하게 울려 퍼졌다.라채월의 눈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물론 다르지! 나는 그저 하인의 딸에 불과했으니 어찌 그의 친딸과 견줄 수 있겠어? 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 막수한과 봉수정의 딸에게 내가 겪은 치욕을 똑같이 맛보게 할 거다.”말을 마친 그녀는 서서히 몸을 굽혀 라북명과 시선을 맞췄다.“그 막수한은 스스로 형제 의리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했지? 좋아, 그럼 두고 보자고. 그는 과연 죽은 형제의 외아들을 베어 딸의 원수를 갚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딸이 나처럼 평생 무능한 놈에게 짓눌려 살게 내버려둘 것인지.”라북명은 연민 서린 빛을 띠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미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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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지하실을 빠져나가는 인영과 함께 방금 전까지 울려 퍼지던 라채월의 웃음소리도 점차 사라져 갔다. 라북명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더는 움직일 기운조차 잃은 채 허공만 응시했다.한편, 경매회가 끝났을 즈음은 이미 황혼이 깔릴 무렵이었다.서인경과 막효연은 각각 상자 하나씩 들고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막 몇 걸음 옮기지 않았을 때, 옆 골목에서 불쑥 한 그림자가 튀어나와 곧장 막효연을 향해 달려들었다.서인경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려는 순간, 진묵염이 그녀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그 인물을 제압했다. 얼굴을 확인한 진묵염은 무심결에 이름을 내뱉었다.“운석? 여기서 뭐 하는 겐가?”팔을 붙잡혀 고통에 찡그린 얼굴은 다름 아닌 라운석이었다. 그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덜덜 떨며 말을 더듬거렸다.“나… 나, 연이한테 할 말이 있네.”진묵염과 막효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운석 오라버니, 무슨 일입니까?”라운석은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나… 난, 너랑 단둘이 말하고 싶다.”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라운석이 막효연에게 품은 마음을 진묵염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단호히 그녀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반드시 제삼자가 있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마시게.”라운석이 말문이 막히자 막효연도 순간 굳어졌다.난생처음 보는 진묵염의 이런 강압적인 태도에 막효연은 뜻밖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눈앞에서 초조하게 움찔거리는 라운석을 더 자극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일부러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에헴… 운석 오라버니, 묵염 오라버니는 저희와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숨길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라운석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렸다. 그는 망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제 삼자가 있어도 된다. 묵염만 빼고 말이지.”“안 되네.”진묵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라운석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거의 울음이 터질 듯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정말 딱 한마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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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라운석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말은 또렷했다.“너, 요즘… 우리 어머니를 조심하거라.”막효연은 순진한 얼굴로 되물었다.“어머니께서 왜요?”막효연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인경은 속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도대체 뭘 알고 있는 겁니까?”뜻밖에 끼어든 질문에 간신히 가라앉아 있던 라운석의 목소리는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두 손은 진정이 되지 않은지 가슴 앞에서 계속 허우적댔다.“저, 저…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서인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됐어, 차라리 막효연에게 묻는 게 낫지.’막효연은 부드럽게 바통을 이어받았다.“혹시, 어머니께서 또 오라버니한테 뭐라 하셨습니까? 그럼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며칠 우리 막부에서 지내도록 하면 되잖습니까?”라운석은 고개를 연달아 저었다.“아냐,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네게 해코지하려는 것이다. 나… 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인경 같았으면 벌써 멱살을 잡고 추궁했을 터였다.이 녀석,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막효연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타일렀다.“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말하세요. 어머니께서 왜 저를 해치려 한다는 겁니까?”라운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애써 말을 고르더니 한참 만에야 내뱉었다.“내가… 그냥 그렇게 짐작한 것이다.”서인경은 속으로 당장이라도 주먹을 불끈 쥘 기세였다. 반나절을 뜸 들여서 겨우 내뱉은 게 이 한마디라니!막효연은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왜 그렇게 짐작한 겁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라운석은 두 손으로 옷자락을 꼭 움켜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어머니 방에 몰래 숨어 있다가 들었다. 어머니께서 서둘러 배를 타고 나가려는 모양이야. 대장로의 회갑연을 막으려는 것 같았어. 막 백부는 무공이 뛰어나고 막 백모는 은거 중이라 해치기 어렵지.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생각해 보면 너에게 손을 쓰는 게 가장 쉽지.”드디어 그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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