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서인경을 떠본 후, 라은정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면서도 결국 입을 다물었다 서인경은 마음속으로 라은정이 흘린 퍼즐을 맞추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기에 다가오는 그림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다.“정말,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이냐?”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시커먼 얼굴이 이미 눈앞에 와닿아 있었다.서인경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쳇, 그리도 소심하게 굴지 마세요. 말뿐이잖아요. 왕야 같은 상왕을 제가 어디 팔아넘길 수나 있겠습니까?”‘이 여인이 말하는 거 좀 보소!’팔아넘길 수 없다라니... 대체 지금 누굴 흥정거리로 여기고 있는 건지!막 화를 터뜨리려던 순간, 서인경의 손끝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내려앉았다. 그녀의 온화한 촉감에 가슴속에서 치솟던 불길이 잠시 잦아들었다.“상공께서는 어찌할 생각입니까? 라채월의 저 행보, 혹시 우리가 쫓는 소녀 실종 사건과 얽힌 건 아닐까요?”손길은 애무하는 것처럼 부드러웠으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차가운 이성의 칼날이었다. 연기준은 순간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건 모른다.”서인경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상공께서는 이미 지하흑시에 손을 뻗어 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한데 어찌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모를 수 있단 말입니까?”연기준은 그저 묵묵히 그녀를 응시할 뿐, 답하지 않았다.서인경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의 턱을 가볍게 집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의 입가에 짧게 입술을 스쳤다.“말해 주세요, 상공...”연기준은 순간 얼어붙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은 이글거렸고 방금 잠재워졌던 불길은 다시금 치솟았다. 이번에는 분노가 아니라 뜨겁고 가시 돋친 갈망이었다. 그가 몸을 숙이며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찰나, 서인경은 손끝으로 그의 입술을 막아 세웠다.“여긴 남의 땅입니다. 오늘 밤, 우리 방으로 돌아가서… 그때 얘기합시다.”연기준의 가슴속 불길은 더 커져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듯했다.‘밤까지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안 되겠다. 그만 먹고 돌아가자.”연기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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