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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311 - Chapter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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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서인경이 고개를 돌려 육승에게 물었다.“복래객잔은 어디에 있느냐?”육승은 곧바로 수상쩍음을 감지했다.“왕비 마마, 사태가 석연치 않사옵니다. 누군가 고의로 왕비 마마를 그곳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신이 먼저 가서 살펴보겠사옵니다.”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시간이 없다. 상대는 분명 나 혼자 오라 했다. 너희는 반 시각 늦게 오거라.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구나.”육승은 끝내 막아설 수 없었다. 그는 서인경에게 방향만 일러주고 곧장 사람을 시켜 궁궐로 급히 전갈을 보냈다. 혹여 누군가 왕비를 해치려는 흉계라면 왕야께 반드시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서인경은 복래객잔으로 향하며 머릿속으로 범인을 하나하나 그려냈다.단가는 온 집안이 그녀를 증오하지만 감히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납치하고 협박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평이를 노린 것이라면 범인은 아마 단평안일 터.예전에 맹은영과 벗을 맺을 때 단평안이 시비를 걸어왔고 그를 호되게 혼내준 것도 바로 평이였다. 그 기고만장한 단평안이 그 치욕을 잊을 리 없었다. 그런 자의 손에 평이가 잡혀간 것이라면 결코 온전할 수 없으리라.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서인경의 심장은 조급과 분노로 뒤섞였다. 그녀는 애초에 평이를 말렸어야 했다. 단평안 같은 비열한 자는 감히 그녀에게 직접 손대지는 못하더라도 시녀 하나쯤은 거리낌 없이 해칠 수 있는 족속이었다. 분노와 불안이 교차하며 서인경은 속도를 높였다.복래객잔.오늘은 위층 두 개의 객실이 모두 통째로 빌려져 있었다. 한편, 평이는 분명 서인경의 약재를 짚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사지가 단단히 묶인 채 침상 위에 내던져져 있었다. 곧이어 눈앞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들어왔다. 평이는 깨어난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너희들… 너희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단평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다리는 아직 절뚝거렸지만 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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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평이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나는 아마 오늘 끝장이구나.’죽음을 각오하던 찰나, 그녀의 뇌리에 스친 것은 다름 아닌 고향의 거지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예전의 자신과 똑같은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더는 먹을 것과 옷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그 애들은 다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그녀는 또 왕비 마마를 떠올렸다. 앞으로 자신이 왕비 마마께 음식을 올리지 못해 마마께서 입맛을 잃으시면 어쩌나. 왕비 마마께서 원하던 잠옷도 아직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 옷이 없으면 왕비 마마께서 어떻게 상왕의 눈길을 사로잡으실 수 있단 말인가?그리고, 그녀의 가장 큰 아쉬움은 전하지 못한 진심에 있었다. 아직 연풍에게 말도 못 했는데. 그를 좋아한다고. 만약 연풍이 이 사실을 모른 채로 다른 여인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 따위는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 버린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그 짧은 순간,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평이는 억울했다. 아직 살 날이 이렇게 많은데 끝이라니. 그러나 단평안을 향해 머리로 들이받은 일은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다만 후회라면, 전에 연풍 곁에서 무공을 더 배우지 못한 것. 힘이 부족해 저 천한 쓰레기를 단숨에 죽이지 못한 것.하인이 달려들어 그녀를 침상에서 거칠게 끌어내리더니 억지로 무릎을 꿇린 채 단평안 앞에 짓눌러 앉혔다.단평안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빛은 독에 물들어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평이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더러운 년, 오늘 내가 어떤 놈인지 똑똑히 알려주마… 아악!!”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이가 고개를 비틀며 그의 손마디를 있는 힘껏 물어뜯은 것이다. 단평안은 고통에 절규했고 하인들조차 이 작은 시녀의 저항을 가볍게 본 나머지 허술해졌다. 힘이 풀린 그 틈을 타 평이는 몸을 일으켜 곧장 옆 기둥을 향해 몸을 날렸다.쾅!순간, 선혈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은 윙윙 울리고 손은 허공을 휘젓다 힘없이 풀려 버렸다. 그녀의 몸 전체가 축 늘어지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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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그는 뒤로 손을 내저었다.“너희 둘, 나가서 문밖을 지키거라. 본도련님과의 자리를 방해하지 말거라.”하인들은 명을 받들어 물러나며 아예 문까지 꼭 닫아주었다.문이 닫히자 단평안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정욕이 눈에 가득 차 서인경에게 달려들었다.“이 년, 내가 너를 몇 해나 그리워했는 줄 아느냐! 오늘은 네가...”그의 말은 채 끝맺지 못했다. 단평안의 몸은 서인경 눈앞 한 치 앞에서 멈춰 섰고 그의 눈빛은 공포에 굳어졌다.단평안은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날카로운 칼끝은 이미 그의 살 속을 파고들었다. 피부가 찢기는 순간, 그는 멍해졌고 그제야 밀려드는 고통에 비명을 삼켰다.그러나 이미 늦었다. 서인경은 단숨에 베개를 움켜쥐어 그의 입과 얼굴을 틀어막았다.그의 입에서는 신음 하나 새어나오지 못했다.서인경의 다른 한 손에는 비수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그 차가운 칼날을 단평안의 넓적한 다리에 꽂았다가 다시 뽑고 또다시 찔러 넣었다.피와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쳤다. 붉은 피가 사방에 튀고, 역한 비린내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녀의 눈앞에는 오직 하나의 장면. 평이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맥박이 사라져 가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단 한순간이라도 늦었다면 평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인경의 눈빛은 차갑고 고요했다. 마치 감정조차 없는 기계처럼 매번의 칼질은 공허하게 허공을 찌르는 듯했다.몇 번이나 찔렀는지 그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단평안은 이제 발버둥도 신음도 멎었다. 마침내 그는 탁자 위에서 흘러내리듯 바닥에 축 늘어졌다.서인경은 그제야 몸을 곧추세우며 베개 깨끗한 면으로 비수에 묻어있는 피를 닦았다. 그리고 비수를 다시 약왕곡에 놓아두었다.그녀는 곧장 평이를 끌어안았다. 몸이 무겁게 처지는 그녀를 안아 올리자 발걸음이 흔들렸다. 팽팽히 버티던 신경이 풀리자 눈가에서 뜨거운 액체가 줄기 쳐 흘러나왔다.단평안이 평이를 건드린 것은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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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복래객잔 2층 난간 아래, 예정임은 두 팔을 가슴 앞에 교차한 채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한 방향. 연기준이 여인을 품에 안고 떠나는 뒷모습에 박혀 있었다.“저이가 바로 상왕비인가?”그가 흘리듯 물자 곁에 있던 시위가 답했다.“예. 듣자 하니 상왕비의 시녀가 납치당해 상왕비께서 홀몸으로 뛰어들어가 범인을 수차례 찔렀다고 하옵니다. 지금 그 방 안은 피로 가득 차 있고 주인은 이미 관아에 신고했다고 하옵니다.”예정임의 입가가 휘어졌다.“다들 말하길, 진국의 여인이라 하면 허약하고 겁만 많아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했지. 어젯밤 맞이한 그 무리 역시 뼈대라곤 없는 허수아비 같아 조금만 건드려도 맥이 풀려 시시하기 짝이 없더구나. 한데 이 상왕비라는 여인은 홀몸으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러 갔다니, 꽤 흥미롭지 않으냐?”그의 눈에 비친 건 계단을 내려올 때 스쳐간 피 내음과 함께 묻어난 야수 같은 광기와 냉혹할 만큼 차가운 침착함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취향을 정조준하는 매혹이었다. 시위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나지막이 간언했다.“주군, 다시 생각하시옵소서. 상왕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옵니다.”예정임은 그 말에 코웃음을 흘렸다.“일찍이 들었다. 진국의 여인은 삼종사덕을 지켜야 하고 남편에게 버림받으면 가문에서 쫓겨난다 하지 않더냐. 그 말대로라면, 만약 상왕비가 휴출 당한다면 그녀가 내게 와도 무방하지 않겠느냐?”시위는 기겁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주군,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선 아니 되옵니다! 그녀는 진국의 대장군, 서회윤의 친손녀이옵니다. 설령 상왕비가 원한다 해도 진국이 그녀를 내줄 리 없사옵니다. 누가 감히 군권을 쥔 장군가와 적국의 황자를 연결시키겠사옵니까? 그것은 곧 스스로 적에게 칼을 쥐여주는 격이옵니다!”서회윤의 이름이 거론되었지만 예정임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날카롭게 빛나며 욕망에 찬 결의가 번뜩였다.“좋다. 사람도, 병권도… 이 황자의 손에 모두 들어올 것이다.”한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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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여기서 한 발짝도 떠나지 말고 지키거라. 왕비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거라.”하인들은 일제히 머리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복래객잔에서 일어난 큰 소동은 주인장이 이미 일찌감치 관아에 신고해두었다. 형부상서 유준산은 마침 방금 전 단가가 사람을 사주해 제약방을 모함한 사건을 경조부윤에게 이첩하고 막사에 돌아온 참이었다. 아직 앉은 자리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또다시 급보가 날아들었다. 서인경이 단가의 도련님을 죽였다는 소식이었다.그는 번개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 한마디 없이 곧장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단평안은 이미 단가로 실려 돌아가 있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지만 상황은 참혹했다. 복부에 한차례 깊은 상처가 있었고 그 뒤로 서인경이 그의 다리를 향해 수없이 칼을 꽂아 넣어 피와 살점이 뒤엉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못 이기고 기절했을 뿐이었다.유준산은 현장에서 직접 검시하며 아전들에게 목격자를 찾아 진술을 받게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상왕부에 가서 왕비를 심문하자니 혹여 상왕이 발길질로 내쫓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를 짓눌렀다.바로 그때, 아전 하나가 허둥지둥 달려왔다.“대인, 상왕께서 오셨습니다!”유준산은 그 말에 흠칫 놀라며 결코 태만하지 않겠다는 듯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를 맞이했다.“왕야를 뵙습니다.”허리를 굽히려는 순간, 연기준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유 대인은 예를 갖출 것 없다. 본왕이 직접 온 것은 유 대인이 사건을 조사함에 있어 협조하기 위함이다. 내 부인은 충격이 심해 조사가 불가하다. 필요하다면 본왕에게 묻거라. 모두 내가 답하겠다.”유준산은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곧 사예를 불러 상왕의 진술을 기록하게 했다.연기준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한 뒤에도 매우 공손히 덧붙였다.“혹여 사건 조사에 더 필요한 것이 있거든 언제든 본왕을 찾아오거라. 다만 본왕이 바라는 것은 유 대인이 결코 사사로이 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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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진가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진보이의 얼굴은 즉시 뒤틀려 흉측한 기색으로 일그러졌다. 한때 그녀 발밑에서 짓밟히던 천한 여인이 이제는 뜻밖에도 대황자의 곁을 차지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경성에 들어온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진 가사람들조차 상상도 못 한 격변이 벌어졌다.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친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고 반대로 진가이는 그녀를 대체하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단여월은 스스로를 한탄하며 고개를 숙였고 진보이는 냉소를 띤 눈빛으로 그녀를 업신여기듯 노려보았다.“쓸모없는 것! 아직 혼인도 하기 전인데 그 천한 년에게 밟히고 있으니!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단여월은 억울함을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제가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가이 언니는 저보다 훨씬 더 대황자의 환심을 살 줄 아니까…”진보이는 코웃음을 흘리며 냉혹하게 내뱉었다.“모두 그 어미에게서 물려받은 요사스러운 술책이지. 두고 보거라. 내가 반드시 그 진상을 들춰내 그녀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단여월은 눈가를 적시는 시늉을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그 천 조각 뒤에서 그녀의 입가가 교활하게 올라갔다. 단은설이 일러준 방법은 실로 탁월했다. 이번 계책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진보이를 부추겨 진가이를 적대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대황자를 위해 야랑국의 팔황자를 끌어들이는 길을 열어두었으니. 앞으로 대황자부에서 진정한 안주인은 자신 한 사람이 될 것이다.단평안의 변고는 삽시간에 온 도성에 퍼졌다.마침 대황자 연강헌은 황후의 궁에서 문안을 드리던 중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듣자 그는 미간을 살짝 치켜세웠다.‘저 여인이 그런 수완도 있었단 말인가?’문득 떠오른 생각과 함께 그의 입가에는 흥미로운 곡선이 그려졌다.요즘 단여월의 행실은 이미 황후의 심기를 거슬러 있었다. 거기에다 단가에서 또 이런 분별없는 소동을 벌였다는 말에 황후의 얼굴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단가는 대체 요즘 어떻게 된 것이냐? 본궁을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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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유준산이 조심스레 아뢰었다.“상왕께서 말씀하시길, 왕비께서 놀란 탓에 이미 왕부로 데려가셨다 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거든 자신을 찾으라 하셨사옵니다.”황제는 가볍게 콧김을 흘렸다.“사내를 저 꼴로 만들어놓고도 놀랐다고? 저지른 화를 피하려고 숨은 것일 뿐. 지저분한 일은 어지간히 잘도 내팽개치는구나.”유준산은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상왕을 불러오너라.”유준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폐하, 방금 상왕께서는 태황태후의 부름을 받아 들러 가셨사옵니다.”황제는 그 말을 듣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두 걸음을 떼다가 이내 멈춰 서더니 천천히 발길을 거두어 제자리로 물러앉았다.“너는 물러가거라.”유준산은 황제의 뜻을 가늠치 못한 채 더 말하지 않고 공손히 퇴하했다. 황제는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사색하다가 곧 내시를 불렀다.“숙귀비에게 가자.”숙귀비의 궁.열다섯 째 황자는 서재에서 글씨를 쓰고 있었고 숙귀비는 창가 너머로 그 정성스러운 자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그때, 유모가 바깥에서 다급히 뛰어 들어와 아뢰었다.“마마, 큰일이옵니다. 상왕비께서 단가의 도련님를 거의 죽일 뻔하셨답니다. 단가에서 이미 상소를 올려 폐하께 고하였고 지금 폐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시옵니다.”숙귀비의 안색이 굳어졌다.“경이는 어찌 되었느냐?”“마마께서는 안심하소서. 상왕비께서는 무사하시옵니다. 다만 곁에 있던 시녀 하나가 상처를 입었으나 이미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하옵니다. 두 사람 모두 상왕부로 돌아갔다 하옵니다.”숙귀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단평안은 죽었느냐?”그러자 유모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옵니다. 중상을 입었으나 평생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하옵니다. 단가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폐하와 상왕께 반드시 공도를 요구하겠다 아우성이옵니다.”숙귀비는 비웃듯 콧소리를 냈다.“경이가 아무 이유 없이 칼을 들 리가 없다. 틀림없이 단평안이 무례를 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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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황제가 숙귀비의 손을 이끌며 함께 침전에 들어섰다. 궁문이 닫히자 그 뒤의 말은 열다섯 째 황자의 귀에 더 이상 닿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그는 모후의 행동이 이해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는 방금 황제께 오해받은 것이 속상하여 눈가에 억울함이 번졌다.“유모, 저 방금은 분명…”유모가 다급히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댔다. 그러자 열다섯 째 황자는 곧장 입을 닫았다. 유모는 그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오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노비도 황자께서 억울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마마께는 마마만의 도리가 있사옵니다. 황자, 부디 이 말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나무가 숲에서 돋보이면 반드시 바람에 꺾이기 마련이옵니다. 상왕비께서도 황자께서 이 뜻을 깨닫기를 바라셨지요.”열다섯 째 황자는 잘 이해되진 않았으나 모후와 외숙누이의 뜻이라 하니 더는 묻지 않았다.침전 안.숙귀비는 황제께 차를 내어 드리며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각에 신첩의 궁에 오시다니 무슨 일 때문입니까?”황제는 찻잔을 받아 가볍게 한 모금 머금은 뒤 다시 내려놓았다.“상왕비가 궁 밖에서 일으킨 소동, 이미 들었느냐?”숙귀비는 순간 멈칫했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막 전해 들었습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숙귀비는 두 걸음 물러서더니 곧 무릎을 꿇었다.“폐하, 경이가 어찌 이유 없이 칼을 들었겠습니까? 부디 폐하께서 밝히 살펴 주소서.”황제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이미 경위는 모두 들었다. 모두 단평안이 자초한 일이지. 짐은 이미 유준산에게 명하여 반드시 상벌을 공정히 하고 억울한 자 없게 하라 명했다.”숙귀비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렸다.“폐하는 성덕이십니다. 신첩, 경이를 대신하여 폐하께 감사드립니다.”황제는 몸을 숙여 그녀를 일으키며 다정히 곁으로 끌어 앉혔다.“하나, 상왕비의 성정도 고쳐야 한다. 짐이 기억하기로 예전부터 그녀는 자주 상왕을 노엽게 하지 않았더냐? 보거라. 지금도 이렇게 큰일을 일으켰다. 단 가는 머지않아 황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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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유모는 곧 숙귀비의 뜻을 눈치채고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마마, 이런 말씀은 조심하셔야 하옵니다!”숙귀비는 냉랭히 입꼬리를 올렸다.“괜찮다. 걱정하지 말거라. 서가와 황자를 위해서라면 내가 참아야지. 어서 저녁을 준비하거라. 폐하께서 밤에 오실 것이다.”유모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얼굴 가득 근심을 지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서인경은 연기준이 눌러놓은 혈자리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입술 사이로 평이의 이름을 부르려다 문득 멈춰 섰다. 그녀는 평이가 아직 상처로 요양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서인경은 몸을 일으켜 촛불을 켰다.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물들일 즈음,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왕비 마마, 깨어나셨사옵니까? 노비가 들어가도 되겠사옵니까?”낯선 시녀의 목소리였다. 아마 연기준이 새로 배치한 인물일 터.서인경은 옷장을 열어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밖을 향해 대답했다.“들어오거라.”시녀는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와 문가에 얌전히 서 있었다.“왕야께서 부엌에 명하시어 죽과 작은 반찬을 준비케 하셨사옵니다. 왕비 마마께서 언제 드시든 상관없다 하셨는데 지금 드시겠사옵니까?”이제야 서인경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첫 피를 묻혔을 때의 충격은 사라지고 차가운 평정만이 남아 있었다.만약 지금 눈앞에 단평안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녀는 주저 없이 더 빠르게 그의 숨통을 끊었을 것이다.서인경은 걸음을 돌려 방 밖으로 나섰다.“평이를 보러 가겠다.”그녀가 곧장 평이의 방으로 향하려 하자 시녀가 서둘러 목소리를 높였다.“왕비 마마, 평이 언니는 지금 연풍 귀군의 방에 있사옵니다. 의원께서 절대 움직이지 말라 하셔서 연풍 귀군께서 자기 방을 내어드린 것이옵니다.”서인경은 잠시 멈추더니 발걸음을 돌려 연풍의 뜰로 향했다.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으나 평이가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뜻밖에도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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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서인경은 그 말에 곧장 눈빛을 번쩍이며 투지를 불태웠다. 가득 쌓인 울분을 이제야 풀어낼 기회였다.단 가는 그녀를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인가? 감히 악인이 먼저 고발이라니! 이번에야말로 단가의 대를 잇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리라.그리고 저 태황태후.연기준과 단은설을 한데 붙잡아 궁중에 머물게 한 의도, 결코 선한 뜻일 리 없었다.“마차를 준비하거라.”세 사람은 깜짝 놀라 모두 눈을 크게 떴다.“이렇게 늦은 밤에, 왕비 마마께서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서인경은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궁으로 가야지! 나 또한 상소를 올려 고할 것이다. 그리고 내 사내를 데려와야지!”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육승과 안포는 서둘러 움직여 마차를 준비했다. 서인경이 한밤중에 부름도 없이 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본디 규칙에 맞지 않았다. 마차가 궁문 앞에 닿았을 때까지만 해도 실랑이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차는 막힘없이 성문을 지나쳐 태황태후의 침궁 앞까지 곧장 들어갔다.말고삐를 잡고 뒤따라온 이는 연풍이었다. 그는 궁문 앞에서 몇 시진이나 왕야를 기다렸으나 끝내 나오지 않자 초조함에 가슴이 찢길 지경이었다.마침 왕부의 마차가 성문에 도착하자 그는 마부를 밀어내고 직접 고삐를 잡아 끌었다. 서인경은 아무런 막힘없이 순조롭게 도달하니 오히려 마음 한쪽에 의문이 번졌다.연풍은 담담히 대꾸했다.“폐하께서는 이미 왕야께서 태황태후 마마의 부름에 응했다는 것을 아시옵니다. 그러니 왕비 마마께서 오실 거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지요. 아마도 미리 당부해 두었을 것입니다.”서인경은 발치에 드리운 발을 살며시 풀며 가림막 너로 물었다.“그렇다면 페하의 뜻은 무엇일까?”연풍은 낮게 목소리를 죽였다.“아마도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그저 싸움 구경을 하시려는 거겠지요.”그 말을 듣자 서인경은 오히려 어깨에 힘을 뺐다.좋다. 폐하께서 보고 싶다 하니 오늘 제대로 구경할 거리를 보여주리라.한편, 황제는 마침 숙귀비의 궁전 문 앞에 막 이른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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