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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그럼, 네 말대로라면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서 가에는 결코 서 노장군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옵니다.”황제의 심장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였다.“네 말은 상왕비를 가리키는 것이냐?”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연기준은 황제의 마음속에서 곧 서 가의 군권을 넘보는 자로 낙인찍히리라. 황제는 결코 그런 자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연기준은 고개를 저었다.“상왕비는 몸에 아이를 지니고 있사옵니다. 신하로서, 그리고 아우로서 제가 어찌 그녀에게 고생을 더 얹겠사옵니까? 제가 말하는 이는 폐하의 사람이옵니다.”황제는 거친 호흡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말했다.“알겠다. 물러나거라.”대황자부.해가 저물며 혼례 연회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앞마당에서는 술잔이 부딪히고 권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연강헌은 술에 취해 서재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진가이가 붉은 혼례복을 입은 채 눈앞에 서 있었다.붉은 가리개는 이미 젖혀져 있었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요염했다. 그러나 연강헌의 눈썹은 곧 찌푸려졌다.“네가 어찌 나왔느냐? 그것도 스스로 가리개를 벗고서?”진가이는 부드럽게 웃음을 흘렸다.“저는 그저 측비일 뿐, 정실의 예를 누릴 자격은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밤, 대황자께서는 오직 한 처소만 들 수 있고 오직 한 여인만의 가리개를 벗기실 수 있겠지요. 결국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연강헌은 그제야 흥미가 일어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도성에서 가장 정교하고 화려한 신부 화장이 그녀의 미소와 눈짓 하나하나를 더욱 자극적이게 만들고 있었다.연강헌은 흥을 담아 되물었다.“그래서 스스로 상처받는 쪽이 되기로 했단 말이냐? 본 황자는 네가 언제부터 이토록 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구나.”진가이는 눈길로 유혹을 던지며 고혹적으로 웃었다.“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황자의 여인이 되었는데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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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측비는 나를 기다린 것인가?”진가이의 목욕물은 이미 어깨뼈 위까지 차올라 있었다. 백옥처럼 고운 어깨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그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보는 이의 정신을 흔들어 놓을 만큼 강렬했다.“저는 이미 연강헌을 떼어냈습니다. 바깥을 지키는 이도 모두 제 사람들이지요. 오늘 밤, 팔황자께서는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예정임은 더는 억누르지 못하고 손을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물방울이 튀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애욕 섞인 숨결이 뒤엉켰다.“이번 일, 솜씨가 훌륭하더군. 본 황자가 두둑이 상을 내리겠다!”진가이가 억눌린 채 고개를 젖히자 흰 몸의 반쪽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반 시진이 흐른 뒤, 예정임은 목욕통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힘이 빠진 부드러운 여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물결을 장난스럽게 튀기며 방금 전 세게 눌러 벌겋게 된 쇄골 위에 물방울을 흩뿌렸다.“연강헌에게 들킬까 두렵지 않으냐?”진가이는 눈을 감은 채 편안한 숨결을 내쉬었다.“그는 오늘 돌아오지 않습니다.”단여월은 입궁하기 전, 진한 향을 충분히 사 두었다. 그러니 오늘 밤 연강헌은 아예 몸을 추스르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예정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다시 그녀의 몸에 힘을 주었다. 소녀 같은 피부는 물처럼 연약해 이내 여러 곳에 새로운 흔적이 남았다. 그는 이 과정을 즐겼고 진가이는 억지로 그의 손을 밀어냈다.“이제 정사(正事)를 말합시다. 제 사람이 서회윤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가 도망쳤는데…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어쩌실 겁니까?”예정임의 눈빛이 가늘게 좁혀졌다.“그렇다면 다시 한번 죽이면 될 일이다.”진가이는 이해하지 못했다.“왜 반드시 서회윤을 없애야 하는 겁니까? 오히려 그를 끌어들여 제 사람으로 삼는 게 낫지 않습니까?”예정임의 뇌리에 다른 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 섞인 미소가 걸렸다.“서회윤은 완고한 자이다. 옛날 야랑국에 있을 때 부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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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어찌 이리 일찍 돌아오신 겁니까? 술은 안 드신 겁니까?”연기준은 그녀의 나른한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몸이 좋지 않으냐? 호청을 불러오마.”서인경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필요 없습니다. 호청은 제게 안신향을 피워 주었습니다. 왕야께서 오지 않았다면 벌써 잠들었을 거예요.”연기준은 그제야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연을 보았다.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무 일찍 돌아온 게 원망스럽단 말이냐?”서인경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호청 말로는, 먼 곳에 있는 그의 조카가 준 거라네요. 이 향이 특히 잘 듣는다면서 임산부에게도 무해하다고 했습니다. 왕야께서는 아마 모르시겠지요. 호청의 조카가 얼마나 신기한지. 마치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갖가지 수공예 장난감을 꺼내 주더군요. 전부 손으로 만든 거라는데, 그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아십니까? 그러니 왕야께서는 꼭 고마워해야 합니다.”연기준은 ‘도라에몽의 주머니’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청의 조카가 누구인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멀찍이 놓인, 정성스레 깎아 만든 나무 장난감을 보며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걱정 말거라. 그녀는 시간이 넉넉하다. 개의치 말고, 아이가 열 살 될 때까지의 장난감을 전부 만들어 오라 하마.”‘할 일이나 만들어 줘야 매일 밖으로 나가겠다는 생각을 접지.’서인경은 눈을 뜨자마자 그의 눈동자 속에서 드러나는 저 깊은 계산을 읽어냈다.“호청을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의 조카까지 착취하려 드는 겁니까? 호청이 받는 그 쥐꼬리만 한 봉급, 벌어 가기 쉬운 줄 아십니까?”연기준은 속으로 생각했다.‘그 조카에게는 구하려고 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지.’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좋다. 매달 호청의 월전을 더 주어 그 조카에게까지 보답이라 여기게 하마.”서인경은 그제야 안도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그 정도면 됐네요.”약방에서 약재를 갈던 호청은 꿈에도 몰랐다.자신이 아무리 백 번을 울며 곤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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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그는 그저 고요히 서인경 앞에 서 있었다. 말 한마디 없었으나 한 쌍의 인자한 눈에는 오직 걱정과 아쉬움만이 담겨 있었다.서인경의 배는 이미 불러 있었기에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도 벅찼다. 그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서회윤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화면은 돌연 뒤바뀌었다. 눈앞은 피가 강처럼 흐르는 단두대였다. 그러더니 서 가 위아래 수십 명의 생명이 모두 황천길로 사라져 버렸다. 공기에는 역겨울 만큼 짙고 날카로운 혈향이 가득했다.서회윤은 피바다 한가운데 무릎 꿇고 있었으나 언제 어디서나 그의 허리는 곧추 펴 있었다. 그는 억울하다고 외치지도 않았고 단두대 위에서 쏟아지는 모든 죄목을 단 한 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형리의 칼이 번쩍 들려 올랐고 차가운 빛이 섬광처럼 번졌다. 그러나 칼날이 떨어지기도 전에 서인경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반짝 떴다.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단두대의 참혹한 광경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천천히 눈앞에 비친 것은 어둑한 침장뿐이었다. 공기에는 피비린내가 아닌 익숙하고 포근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녀가 소리를 지른 첫 순간, 연기준 역시 놀라 깨어나 곧장 몸을 뒤집어 그녀를 바라봤다.“어찌 된 일이냐?”서인경은 눈을 크게 뜬 채 숨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눈앞의 풍경을 알아보고 서서히 긴 숨을 내쉴 수 있었다.“괜찮습니다. 악몽을 꿨어요.”연기준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묻듯 말했다.“무슨 꿈이었느냐?”서인경은 주춤거리다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것은 전생의 꿈이었으니. 그녀는 심중의 동요를 억누르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제가… 흉측한 아기를 낳는 꿈을 꿨어요.”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이내...“푸흡.”연기준은 불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다시 자리에 누우며 한 손으로 서인경의 어깨를 감싸 끌어안았다.“걱정 붙들어 매거라. 우리 두 사람의 용모로 낳은 아이가 흉측하다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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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평이는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왕야께서는 지금 서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계시옵니다.”서인경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랐다.“그가 친히 접대할 만한 손님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람인 것이냐?”평이는 그녀의 옷을 고르며 대꾸했다.“왕야께서는 왕비 마마를 보살피기 위해 아예 공무를 모두 왕부 안으로 들이셨사옵니다. 오늘 아침에도 병부 사람들이 여러 명 와서 일을 의논하고 갔지요. 병부 인사들이 떠난 후 지금 서재에 있는 이는 진 가의 도련님, 진방옥이옵니다.”“진방옥?”서인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 단정하고 뽀얀 얼굴에 눈썹이 곱게 뻗은 준수한 청년을 떠올렸다. 마치 현대의 인기 오디션에 등장하는 아이돌 같은 청년. 진 가의 아들이자 진보이의 친남동생이었다. 그 아이는 원래 먹고 마시고 노는 데만 빠진 한량 아니었던가? 그녀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청루였다. 그때도 단평안이 끌고 간 자리였다.“그런 한량 같은 녀석이 연기준을 찾아왔다고? 무슨 정사가 있느냐?”평이는 고개를 저었다가 문득 크게 숨을 들이켰다.“큰일이옵니다! 설마 왕야를 유혹해 청루로 끌고 가 술이나 마시려는 건 아니겠죠? 왕비 마마, 이런 때일수록 왕야를 잘 붙들어야 하옵니다!”서인경은 어이가 없어 입술을 삐죽였다.“네 주인께서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무 여자나 따라갈 것 같으냐? 게다가 굳이 청루까지 갈 필요도 없지. 그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수많은 귀한 집 규수들이 앞다투어 몰려올 테니까.”평이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왕비의 말이 그럴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그가 찾아온 용건은 또 뭘까요?”서인경은 얼굴을 씻고 수건을 걸어두며 말했다.“가 보자. 함께 확인하지.”서재 문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진방옥의 기세등등한 목소리였다.“예전부터 단 가가 도성 장사판에서 전횡을 일삼는다 하기에 과장이려니 했습니다. 오늘 직접 보니 과장이 아니군요! 남의 터전을 빼앗고도 모자라 되레 주인을 두들겨 패다니. 이런 상인들은 마땅히 감옥에 집어넣어 교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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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그 뒤로는 서인경은 연기준의 대답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진방옥은 말을 끝내고 무심히 시선을 돌리다 마침 문 앞에 서 있는 서인경을 발견하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왕비 마마, 오래간만입니다. 기쁜 소식이 있다 들었는데 아직 직접 축하드리지 못했군요. 상왕비께서 경사스러운 몸이시라니, 축하드립니다.”그의 모습은 바르고 반듯했으며 어디서도 소문 속의 한량 같은 기운은 찾을 수 없었다. 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그때서야 연기준도 그녀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가 다가와 앉자 그가 물었다.“일어났느냐? 식사는?”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입맛이 없습니다. 점심이랑 함께 먹을게요.”연기준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그는 곧장 부관을 불러 부엌에다 기장죽을 올리라 명했다. 그 다정한 태도에 진방옥은 눈썹을 치켜올렸고 서인경의 가슴은 어쩐지 편치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애매한 대답으로 나를 실망시켜 놓고선…원래라면 그녀는 서재에서 식사하는 걸 마다했을 것이다. 남자들의 공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하지만 진방옥은 그녀를 막아서며 떠나지 않았다.“어릴 적 도성을 떠난 이래 형제처럼 지내던 우리 둘이 함께 밥 한 끼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상왕부에서 밥 한 술쯤은 먹어도 되겠지요?”연기준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서인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에 기장죽을 들며 속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엿들을 요량으로 응해 주었다.“진 공자께서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제가 주방에 부탁하겠습니다.”진방옥은 손을 휘저었다.“전 바라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먹을 것만 있으면 족하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까다롭지 않으니 아무거나 내주십시오.”서인경은 그의 현대 말투를 듣고 그제야 눈치채고 입가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어쩐지 소문과 달라 보인다 했더니 같은 고향 사람이었군.’“진 공자께서 처음 오신 자리니 허투루 대접할 수 없지요. 잠시 후 제가 직접 부엌에 가서 일러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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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유 유모, 어서 일어나 이것 좀 잘라 작은 토막으로 내어오거라.”서인경이 부르자 무릎을 꿇고 있던 유 유모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까부터 그녀와 함께 반죽을 치대던 터라 육승이 들어올 때는 이미 손이 하얗게 밀가루로 물들어 있었다.“너희 몇은, 저 고기를 푹 삶거라. 특히 육즙이 아주 진해야 한다. 고기는 반드시 비계와 살코기가 알맞게 섞인 걸로 고르도록 하고. 그리고 너, 불길을 세워라. 화력이 식으면 안 된다. 곧 쓰일 것이니. 그리고 너희 둘은 찹쌀 경단을 만들 거라.”부엌 하녀가 물었다.“왕비 마마, 찹쌀 경단 속은 닭고기를 넣을까요, 아니면 대추를 넣을까요?”서인경은 잠시 고민했다. 원래의 주인공이 연기준에게 어떤 맛으로 해주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대답을 내뱉었다.“두 가지 다. 각각 두 개씩 만들도록 하라.”명이 떨어지자 부엌은 순식간에 분주해졌다. 아무도 문가에 서 있던 연풍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결국 육승이 나섰다.“왕비 마마, 왕야께서 드시는 찹쌀 경단은 오직 닭고기만 드시옵니다. 잊으셨사옵니까?”서인경은 손에 쥔 반죽을 뚫어져라 보다가 잠시 멈칫했다.“어… 어, 잊지 않았지. 대추는 내가 먹으려고. 안 되느냐? 얼른 나가거라. 여기서 알짱거리지 말고.”육승은 심란한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왕비 마마가 왕야께 대하는 태도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예전이라면 왕비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찹쌀떡을 빚어내고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안에 넣을 닭고기마저 직접 뼈와 껍질을 발라내고 가장 연한 살 만을 골라 쓰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진 공자의 음식은 손수 공들여 만들면서 정작 왕야의 찹쌀 경단은 대충 부엌 하인들에게 맡기고 있었다.육승은 한참이나 우울해하다가 결국 쓴웃음을 머금었다.누가 왕비를 탓하겠는가? 다 왕야가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탓이지… 아, 참으로 인과응보다!잠시 후, 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았다. 부엌에서 정성껏 차려낸 음식들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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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너희들은 먼저 식사하거라. 본왕은 처리할 일이 있다.”연기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막 고기 찐빵을 맛나게 먹던 진방옥을 향해 날카롭게 한눈을 주었다.“넌 본왕을 따라오거라.”진방옥은 식사 도중 방해받는 걸 가장 싫어했기에 잠시 노기가 치밀었으나 곧 깨달았다. 여기는 진 가가 아니다. 자신의 고집을 받아줄 사람은 없고 눈앞의 사내는 이제 그의 직속 상관이었다. 순찰직을 계속 붙잡고 싶다면 얌전히 따라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병부로 돌아가 이해할 수도 없는 고리타분한 문서들을 봐야 할 것이다.이리저리 계산을 끝낸 진방옥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와중에도 연기준이 손도 대지 않은 고기 찐빵을 집어들었다.“이 귀한 걸 어찌 버립니까? 아깝게.”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나니 식당에는 서인경과 예정훈만이 남았다. 예정훈은 이미 아침 일찍 심어둔 심복들의 보고를 받았다.서회윤이 변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 그리고 그 그림자 뒤에는 예측하던 대로 예정임이 얽혀 있었다.그는 순간, 며칠 전 밤 연강헌의 대혼식 날, 황제가 갑작스레 자리를 뜬 장면을 떠올렸다. 그의 가슴속에는 불길한 예감이 차올랐다.오랫동안 눌러왔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막상 서인경의 천진한 얼굴을 보자 꿀꺽 삼켜버렸다. 연기준이 굳이 감춘 일을 그가 먼저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입술 끝에 맴돌던 진실을 비틀어 다른 물음으로 바꾸었다.“요즘은… 안녕하십니까?”불현듯 건네진 안부에 서인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이틀 만에 사오 근이나 불었는데 그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제 생활이야말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니까요.”예정훈은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왕비께서 살찐 것이 아니라 아마도 태중의 작은 아이가 자란 탓일 겁니다.”서인경은 말문이 막혀 잠시 멍해졌다.“상식도 없습니까? 이틀 만에 사오 근이 는다면 열 달 뒤면 저는 송아지 한 마리를 낳아야 한단 말입니다.”예정훈은 실소를 터뜨리며 태연히 대꾸했다.“과인은 아직 부인을 맞아본 적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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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서인경은 곧 깨달았다. 상대 나라의 내정 문제는 자신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술을 닦았다.“좋습니다. 그럼 제가 대신 보관해 주겠습니다. 다만… 그 예정임 쪽은 어쩌실 겁니까?”예정훈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무겁게 울렸다.“그가 그대를 건드리지 않으면 멀리 피하세요. 만약 그대에게 손을 대면 주저할 것 없습니다. 국교의 체면 따위도 신경 쓰지 말고 가차없이 치세요.”이 말은 서인경에게 무엇보다도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다.“이 말만으로도 됐습니다. 안심되네요.”예정훈은 이미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인경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니 굳이 찔러 말하지 않았다.잠시 후, 연기준의 서재에서 나온 진방옥의 얼굴빛은 썩 밝지 않았다.서인경은 그를 붙잡아 오랜만에 21세기의 농담이라도 주고받고 싶었으나 그는 바람처럼 발걸음을 재촉했다. 떠나며 남긴 말 한마디는 더더욱 알쏭달쏭했다.“걱정 마세요. 간신히 제대로 된 고기 찐빵을 먹을 기회를 얻었으니 그걸 위해서라도 저는 결코 왕야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요.”고작 찐빵 하나인데 타락한 낭인이 개과천선이라도 한 듯한 기시감은 뭐지?예정훈과 진방옥이 모두 떠나고 나자 서인경은 연기준의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녀의 손에는 아까 그가 한 입도 대지 못한 찹쌀 경단이 들려 있었다.“어서 하나라도 드세요. 아까 밥도 제대로 못 드셨잖아요.”연기준은 이미 찹쌀 경단에 흥미가 사라진 뒤였다. 그것이 서인경의 손길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도 더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그녀가 눈치채지 않도록 체면치레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을 그녀의 평평한 아랫배 위에 얹으며 물었다.“오늘은 얌전했느냐?”서인경의 얼굴에 한층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었다.“괜찮았어요. 방금 전에 부엌에 있을 때도 전혀 뒤척이지 않았답니다.”그녀의 시선은 문득 탁자 위에 엎어둔 봉서에 닿았다. 방금 중도에 끊긴 식사 자리가 떠올라 조심스레 물었다.“무슨 일 있었던 겁니까?”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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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니 만물이 다시 소생했다. 본디라면 생기가 넘쳐야 할 계절.그러나 뜻밖의 소식 하나가 온 경성을 뒤흔들었다.서가군의 영수, 서회윤 노장군이 백여 기병을 거느리고 막북에서 실종된 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이었다.어떤 이는 말한다. 서회윤이 반역해 적국에 투항하여 지금쯤 다른 나라의 봉상을 기다리고 있다고.또 어떤 이는 말한다. 그는 눈사태에 매몰되어 이미 시신조차 찾을 수 없다고.그리고 이런 말도 떠돌았다. 장군은 거짓으로 죽음을 꾸며 조용히 은퇴하려 한다고.혹자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막북의 그 경계는 일불락의 땅과 맞닿아 있으니 오래된 전설 속에 남아 있던 영혼들이 서회윤을 데려갔다고.서인경은 상왕부 깊은 후원에 갇혀 있었기에 바깥의 풍문이 직접 그녀 귀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인의 예민한 감각은 어느새 기운의 흐름이 뒤틀렸음을 감지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이들이 그녀를 대할 때마다 조심스레 숨을 죽이고 연민 어린 눈길을 보냈다.평이가 네 번째로 말도 없이 들어왔을 때, 서인경은 침상에 앉아 가볍게 기침을 흘렸다.“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난 것이냐?”평이는 눈가부터 시큰해진 채 고개를 저어 부정하려 했다. 그러나 서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입을 닫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내가 직접 거리에 나가 묻겠다.”평이가 깊은숨을 들이켠 순간, 끝내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서인경의 심장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제발 날 겁주지 말고 말하거라. 대체 누구에게 무슨 일이 난 것이냐?”평이는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울음 섞인 목소리를 짜냈다.“노… 노장군께서 실종되셨사옵니다!”서인경은 번개 같은 속도로 벌떡 일어섰다.“무슨 소리냐? 실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평이는 흐느낌 속에서 들은 소식을 토해냈다. 비록 두서없이 한 말이었지만 서인경은 요점을 곧장 알아들었다.“연기준은 어디 있느냐?”평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서둘러 뒤따랐다.“왕야께서는 막 궁에서 돌아오셨사옵니다. 마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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