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들 중 단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황제가 방망이를 들어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대전 안 깊숙이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잠깐.”늙은 듯 하지만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목소리. 황제는 당장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켜버렸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태황태후가 황후의 부축을 받으며 느린 걸음으로 전각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목소리는 허공을 가르며 울렸다.“애가가 반평생을 살아왔으나 후궁의 빈비가 병권을 쥐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너는 지금 우리 연 가의 황실의 법도를 부수려 하는구나. 훗날 내가 눈을 감으면 어찌 조상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단 말이냐!”황제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하듯 말했다.“황조모,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숙귀비는 단지 병권을 대신 맡아두는 것일 뿐, 서 노장꾼께서 돌아오시면 곧장 회수될 것입니다.”태황태후는 콧김을 세차게 내뿜었다.“진국은 연 가의 진국이다. 천하는 황제의 백성이요. 모두 황제의 것이지. 조정에는 문무 인재가 끊이지 않는데 어찌하여 후궁의 여인을 끌어내야 한단 말이냐? 이리 한다면 열국이 웃으며 말할 것이다. 진국에는 사내가 없다고! 너희들, 높은 벼슬과 녹봉을 쥐고도 여인 하나를 앞세운다면 너희들은 도대체 어디에 써란 말이냐!”그 말은 대전을 가득 울리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백관들은 떨며 무릎을 꿇고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태황태후, 성을 가라앉히소서. 미신이 죄를 지었사옵니다!”대전 안은 삽시에 고요해졌다. 검은 물결처럼 엎드린 군중 속에서 오직 연기준과 숙귀비만이 우뚝 선 채 버티고 있었다.태황태후의 눈빛은 가시 돋친 듯 숙귀비를 위아래로 훑었다.“숙귀비, 폐하가 그대를 아끼니 제멋대로 날뛰는구나. 잊지 말거라, 이 후궁에는 애가가 있고 황후도 있다. 이토록 중대한 일을 우리와 상의 한 번 하지 않다니... 그 죄를 어찌 묻는 게 옳을까!”숙귀비는 곧게 허리를 세웠다. 오늘만큼은 물러설 수 없음을 그녀 스스로도 알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