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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1화

“다치진 않았느냐? 이 애가가 직접 살펴보아야겠다.”금수 대장공주가 말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듣기로는 상왕비 또한 자객을 만났다고 하더군요. 혹시 다친 데는 없는지요?”태황태후가 코웃음을 쳤다.“그 아이야말로 무슨 상관이냐? 평소에 마음에 꺼릴 짓을 많이 했으니 마침내 벌을 받은 게지.”전각 한편에 서 있던 서인경은 말문이 막혔다. 이건 너무 노골적인 이중잣대였다.태황태후는 곧장 고개를 돌려 황제를 엄하게 노려보았다.“금수 대장공주의 귀환은 두 나라가 얽힌 중대한 일이다. 한데 천자의 발아래에서 자객에게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다니. 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 또 누가 이 자객들을 성 안으로 들여보냈는지, 황제인 네가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야 한다. 이는 나에게만이 아니라 요동 황실에도 반드시 설명해야 할 일이다.”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황조모께서 염려 마십시오. 이 일은 짐이 끝까지 파헤쳐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겠습니다.”그제야 태황태후는 마음을 놓은 듯 대장공주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이내 궁중 연회가 시작되었다. 태황태후가 준비한 음식과 무희들의 춤은 모두 대장공주가 궁을 떠나기 전 가장 좋아하던 것들이었다.본래라면 기뻐했을 터였으나 대장공주의 얼굴에는 별다른 흥취가 없었고 앞에 놓인 음식 또한 손도 대지 않았다.태황태후는 즉시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춤을 멈추게 한 뒤 대장공주의 손을 꼭 잡고 걱정스레 물었다.“금수야, 방금 자객들 때문에 놀란 것이냐?”대장공주는 고개를 저었다.“저는 이보다 훨씬 위험한 암살도 수없이 겪었습니다. 저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태황태후의 마음은 더욱 저릿해졌다.“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어서 고향의 떡을 좀 먹거라. 이것은 네가 가장 좋아하던 것들이 아니더냐?”대장공주는 조용히 답했다.“저는 궁을 떠난 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이미 요동의 식습관에 익숙해져서 단것은 더 이상 입에 맞지 않습니다. 이제는 짭짤한 구운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특히 양고기 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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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서인경은 입꼬리를 억눌렀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질 때가 되자 술잔을 들어 올려 미소가 번지는 것을 가렸다. 이건 대놓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 황제의 번식 능력이 선제와 성조 선제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 아닌가?보통 사내라 해도 견디기 힘든 말인데 하물며 황제에게 하다니. 이 금수 대장공주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까지 거리낌 없이 말하는 걸까?황후는 잠시 멍해졌다가 급히 황제를 감싸려는 듯 아첨하며 나섰다.“대장공주 마마, 폐하께서는 슬하에 황자 열다섯 분과 공주 세 분, 모두 합해 열여덟 분의 자녀를 두고 계십니다. 이는 이미 큰 복이라 할 수 있지요.”대장공주의 시선이 전각을 한 바퀴 훑었다.“그렇다면 그 열다섯 째 황자는 어디에 있느냐? 왜 나는 보지 못했지?”황후는 아래에 앉은 몇몇 황자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대황자는 풍한을 앓아 대장공주 마마께 병기를 옮길까 염려되어 오늘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몸이 회복되면 반드시 입궐해 문안드리게 할 겁니다. 일곱 째 황자는 몸이 허약해 평소 외출을 삼가고 있고요. 그 밖에 넷 째 황자, 여섯 째 황자, 열셋 째 황자, 열다섯 째 황자, 그리고 열일곱 째 황자는 저기 앉아 있습니다.”대장공주는 눈을 굴리며 대충 셈을 했다.“그렇다면 여덟 째는 살아남지 못했고 둘은 병약하다는 말이로구나. 황자로 태어나 몸이 허약하다니. 본궁이 기억하기로는 부황과 황형의 자식들은 병 없이 모두 성년이 되었다. 하늘의 가호를 받은 황실의 귀한 혈맥이 어찌하여 황제의 대에 이르러서는 이리 되었단 말이냐?”황제의 얼굴빛이 또다시 변했다. 반박하고 싶었으나 입에 담을 말이 없었다. 멀리서 귀환한 장로를 거슬러 두 나라의 관계를 해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대장공주의 시선이 옆에서 말문이 막힌 황후에게로 옮겨갔다.“그건 네가 황후로서 무능한 탓이다. 후궁의 황자들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다니. 실로 모후와 황형비가 궁을 다스리던 때만도 못하구나.”그 한마디로 황제를 감싸려던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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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방자 하도다!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는 건 남자가 아니지 않느냐? 상왕이 어찌 아이를 원치 않으실 수가 있겠느냐? 유가영이 상왕의 아이를 품었는데도 너는 문전에도 들이지 않았다. 내 보기에 문제는 네게 있다. 상왕비인 네가 질투심이 지나쳐 상왕이 첩을 들이는 것을 막고 스스로는 아이 낳는 고통을 지려하지 않는 것이다. 상왕부에 자손이 적은 책임은 전부 네게 있다.”서인경의 얼굴에는 수없이 혼담을 재촉 받아온 사람의 특유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태황태후의 말씀이 옳습니다. 신첩은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라 다시는 구사일생의 출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왕야에 관해서라면, 신첩이 하루 열두 시진 내내 곁에서 감시한 것도 아닙니다. 왕야께서 정말 아이를 원하셨다면 벌써 여럿 두셨겠지요. 씨를 뿌리지 않은 건 왕야시니 그 책임을 신첩에게 돌리실 수는 없습니다. 유가영 아가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를 부른 채 찾아온 여자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왕부로 들인다면 상왕부가 아이들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왕야께서는 황실의 혈족이니 황실 자손을 혼탁케 했다는 죄명은 신첩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말이 끝나자 태황태후는 분노에 손을 떨었다.“이 무엄한 것이!”“그만하시지요.”대장공주는 기쁨도 분노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히 입을 열었다.“어머니, 오늘은 저의 환영연입니다. 어찌 상왕비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노하시나요? 이 상왕비의 말도 틀린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여인이 회임을 한 채 선황께 찾아왔을 때 모후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셨고 결국 난봉으로 때려죽이지 않으셨습니까?”태황태후는 말문이 막혔다.“오래된 일을 왜 들추는 것이냐?”그 일은 그렇게 화제를 돌리며 넘어갔다.서인경이 자리에 앉았을 때, 맹은영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얼굴이었다.“대체 뭡니까? 왕비 마마를 공격하는가 싶더니 또 감싸주고… 저분은 도대체 어느 편입니까?”서인경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나도 모르네.”맹은영이 더 묻기도 전에 위에서 음성이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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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이 순간 맹은영은 우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어쩌다 갑자기 맞선 분위기로 흘러간 걸까?그때 요동 쪽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키가 크고 체구가 넓어 마치 북극곰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스치는 빛은 그 거대한 체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무력함이었다.“숙모, 저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니 제 혼사는 더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대장공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또 한 번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졌다.“네 그 약혼자. 본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장 바꾸거라. 한마디라도 더 하면 오늘 당장 진국의 미녀 열을 골라 네 이불 속에 밀어 넣어주마. 한 사람당 아이 하나씩 낳게 해서 네 그 약혼자가 울다 죽게 만들겠다.”사내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체념한 듯 몸을 움츠린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녀라면 정말로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서인경은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 대장공주의 무차별 공격은 진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요동의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정 인물을 겨냥한다기보다는 그저 누구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건드리는 성정이었다.마치 온 세상이 자기에게 빚이라도 진 듯한 태도였다. 적인지 아군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면, 대장공주는 아이 낳는 문제에 유난히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두고 말하든 결국은 자손 이야기로 귀결되었으니 말이다.그날 연회장은 온통 숨죽인 기색이었다.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조심했고 몸짓 하나 크게 하지 못했다. 자칫 대장공주의 눈에 띄어 이유 없이 한차례 헐뜯김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들 수도 없고 말로는 더더욱 이길 수 없으니 그 답답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모두가 입을 다문 사이, 대장공주의 시선이 천천히 옮겨가더니 마침내 서왕과 서왕비에게 멈췄다.“서왕 오라버니, 서왕비 형님. 오랜만이군요. 그간 평안하셨습니까?”서왕과 서왕비는 서로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대장공주 마마를 뵙습니다. 이렇게 다시 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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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어머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지금 요동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후이며 요동과 진국의 우호를 이어가는 증인이자 그 관계를 이끄는 사람입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진국에서 화친으로 시집간 공주들 가운데 저만한 지위에 오른 사람이 또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어머니께서 당시 내리신 선택 덕분이지 않겠습니까? 설령 일생 자식을 두지 못한다 한들 저의 요동 내 지위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고 진국의 이익을 해치는 일도 없습니다. 한데 제가 무엇 때문에 불만이 있겠습니까?”이런 대답은 태황태후의 마음을 조금도 편하게 하지 못했다.“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굴 필요는 없다. 네가 정말로 원망이 없다면 아까 대전에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그렇게 훈수를 둘 이유도 없었겠지.”대장공주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그들이 정말 못났으니까요. 부황께서 자신의 후손들이 이렇게나 줄어든 걸 아신다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부황을 대신해 한마디 한 것뿐입니다. 저는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지 않습니까? 연 씨 조상들께 죄를 덜 지으려면 다른 이들이라도 많이 낳아야 하겠지요. 어머니, 미리 말씀드리지만 어머니께서는 저와 열셋 째 동생, 단 두 아이만 낳으셨습니다. 한데 하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고 하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지요. 남이 낳은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으신다면 저승에 가셨을 때 부황께서 어머니를 책망하실 겁니다.”태황태후는 숨이 턱 막혀 얼굴빛이 푸르게 질렸다.“금수야, 네가 감히!”대장공주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소매를 가볍게 당겼다.“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저는 요동에서 이십여 년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했어요. 집에 돌아온 지금은 조금 방자하고 제멋대로 굴고 싶을 뿐입니다. 한데 어머니의 이런 태도를 보니 차라리 요동에 남아 있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담담한 태도로 던진 이 말은 오히려 태황태후의 죄책감을 자극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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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대장공주는 유가영을 본 체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본궁이 들은 바로는 네가 사신단을 따라다니며 상왕을 유혹했고 되돌려 보내진 뒤에는 상왕의 아이를 가졌다고 떠들고 다닌다더구나. 우선 너는 부녀자로서의 도리를 저버렸고 염치도 없다. 그런 일을 하고도 입에 올릴 낯이 있느냐? 그리고 그 아이가 정말 상왕의 핏줄이라면 명분도 주지 않은 채 너를 취하고 혼자서만 경성으로 돌아오게 만든 상왕 또한 결코 떳떳한 인물은 아니다. 너희 둘은 그저 한 패거리일 뿐, 누구 하나 피해자인 척할 자격은 없다. 진정으로 가엾은 사람은 명매정혼으로 들어온 상왕비 서인경이다. 반대로 만약 그 아이가 상왕의 아이가 아니라면 황실 혈통을 혼동케 한 죄는 구족을 멸하는 대죄다. 너와 네 아이는 물론이고 유 씨 가문의 조상 묘까지 파헤쳐 질 일이지. 결국 어느 쪽이든 너 같은 것은 본궁 앞에 설 자격조차 없으니 당장 꺼지거라.”유가영은 온몸이 얼어붙은 채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녀는 그대로 무릎을 꿇어 바닥에 엎드렸다. 대장공주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그날 밤, 태황태후는 대장공주를 침전에 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황후를 찾았고 황후는 이들 모녀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히 묻지도 못한 채, 급히 궁녀들을 시켜 태황태후의 거처에서 멀지 않은 옛 궁전을 정리해 임시 거처로 내주었다. 대장공주는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고 그날 밤은 유난히 깊이 잠들었다.이튿날 새벽, 아직 하늘이 밝기도 전에 서인경은 맹은영에게 흔들려 잠에서 깼다.“왕비 마마, 얼른 일어나십시오. 큰 건 하나 떴습니다.”서인경은 꿈속에서 연기준과 유가영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연기준은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겼고 서인경은 설령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이런 풍파를 불러온 책임은 전부 그의 것이라고 맞섰다. 막 연기준이 한쪽 무릎을 꿇고 물러서려던 찰나, 맹은영이 얄짤없이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서인경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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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화

한 쌍의 연인은 그렇게 갈라졌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서왕이 권세도 배경도 없는 일개 병사에서 피로 길을 열어 스스로의 자리를 쟁취해 낼 줄은.이후 그는 성조 선제로부터 진국 최초의 이성왕으로 봉해졌다.서왕은 단순한 무장이 아니었다. 그는 군사뿐 아니라 군신 간의 균형과 권력의 미묘한 줄다리기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황제가 즉위하자마자 그는 미련 없이 병권을 내려놓으며 충심을 드러냈고 스스로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다. 그러니 진국에서 드물게 끝까지 몸을 온전히 보존한 왕이기도 했다.스무 해가 흘러 다시 마주한 옛 연인이 어제와 같은 표정을 보였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그 태황태후라는 사람, 진짜 사람 인생 망치는 데 선수입니다.”맹은영은 한참을 쏟아내듯 떠들다가 결국 이렇게 결론지었다.그러나 서인경의 생각은 달랐다.“감정만 놓고 보면 사랑하던 두 사람을 희생시킨 건 맞네. 한데 두 나라의 흐름으로 보면 그때 그녀의 선택이 없었다면 진국과 요동이 이렇게 오랫동안 평온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만약 금수 대장공주가 정말 서왕과 혼인했다면 서왕이 지금처럼 무사했을 거라 생각하나?”맹은영은 잠시 멍해졌다.“좀 더 자세히 말해 보세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서인경은 차분히 설명했다.“황제가 서왕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든든한 외가도 없고 서왕비의 친정 또한 권문세가가 아니기 때문이네. 설령 야심이 있다 해도 큰 파도를 일으킬 수 없지. 한데 만약 서왕이 부마였다면 어땠을 것 같나? 황제가 과연 지금처럼 안심할 수 있었을까?”그제야 맹은영의 얼굴에 이해의 기색이 떠올랐다.“특히 금수 대장공주의 부마라면 더더욱 말도 안 되지. 그녀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네. 다른 공주들처럼 규중에 머물며 남편 하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야심도 있고 계략도 있는 인물이지. 서왕이 병권을 내려놓겠다고 해도 그녀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네. 만약 둘이 부부가 되어 진국에 남았다면 황권의 견제 속에서 어떤 결말을 맞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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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8화

“그건 처음에 요동의 태자가 금수 대장공주의 강한 성정을 좋아하지 않아 측비 은 씨만을 총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은 씨는 회임하게 되었고 금수 대장공주가 틈을 타 태자를 유혹할까 두려워서 장홍화 한 그릇으로 대장공주의 출산 가능성을 끊어 버렸답니다. 그 뒤에 금수 대장공주는 낙태약 한 그릇으로 은 씨와 그녀의 뱃속 아이를 함께 죽였지요. 이 일은 당시 요동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그때 요동 황실은 대장공주에게 빚진 게 있었고 또 진국에서는 그들이 생산할 수 없는 농경과 방직, 약재 같은 것들을 제공해 주고 있었기에 요동에서는 이 일을 끝내 추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죄는 은 씨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그럼 요동 태자는? 그는 어떤 태도였는가?”서인경의 물음에 맹은영은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처음엔 당연히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한데 당시의 황제가 눌러 놓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후 태자가 즉위한 뒤에도 진국이 두려워서 금수 대장공주에게 대놓고 맞서지는 못했지만 한동안은 그녀를 냉대했습니다. 그러다 이 멍청이가 국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마다 금수 대장공주가 늘 막힘없이 나서서 몇 차례 위기를 해결해 줬지요. 반면 후궁의 빈첩들은 아첨만 할 줄 알았지 정작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태자는 그녀의 진가를 알아보고 둘은 서서히 앙금을 풀게 되었어요. 한데 금수 대장공주가 잃은 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녀에겐 자식이 없지요.”맹은영의 이야기를 들은 서인경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 하나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나 또 무엇 하나 온전히 옳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그럼에도 분명한 건 금수 대장공주는 절로 고개가 숙여질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소년 시절의 연인과 강제로 갈라졌고 진국을 떠나 요동으로 원정 결혼을 했으며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그 어느 하나만으로도 여인의 마음을 꺾기에 충분한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진국의 문화를 요동에 전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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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9화

서인경의 표정이 한층 더 의미심장해졌다.“폐하께서는 왜 갑자기 하선준의 집안에 다시 기회를 준 걸까? 태자에게 그런 큰 죄가 있었는데도 슬그머니 풀어 주지 않았더냐. 궁중을 좀 더 들여다보거라. 요즘 황후의 처소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도 함께 조사해.”연풍이 품에서 한 통의 서신을 꺼냈다.“오늘 아침 신 황귀비께서 사람을 보내 전하신 편지입니다. 왕비 마마께서 궁금해하실 만한 내용이라고 하셨습니다.”서인경은 봉인을 풀어 내용을 읽었다. 편지에는 신 황귀비가 짐작한 후궁 내 변화가 적혀 있었다.이전에는 황제가 초하루와 보름에만 황후의 처소에 들렀는데 최근 들어 빈도가 갑자기 잦아졌고 때로는 며칠 연속 머무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유가영이 황후의 침전으로 들어온 시점과 정확히 맞물려 있었다. 그 뒤로 태자가 풀려났고 하선준의 집안이 다시 중용되기 시작했다.이 모든 정황을 엮어 보면 황후가 황제에게 다른 이들은 감히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대신 처리해 주었고 그 대가로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서인경은 편지를 연풍에게 건네며 지금의 황제에 대해 또 하나의 인식을 더했다.“나이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가만있질 않는군.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다. 연기준에게 전갈을 보내거라. 일을 마치는 대로 곧장 귀경하라고. 더 늦으면 정말로 아들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겠다.”연풍은 다급히 편지를 다시 훑어보았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폐하께서 자신의 아들을 왕야의 자식으로 꾸미려는 겁니까? 왕야께서는 진국을 위해 이토록 헌신해 왔는데 그분을 경계하기까지 하다니요.”말을 마친 연풍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아니 이상합니다. 왕야께서 유가영 아가씨를 건드릴 리 없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유가영 아가씨를 회임시켜 왕야의 아이로 둔갑시키려 했다면 왕야께서 돌아오시는 순간 모든 게 들통나지 않겠습니까?”서인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가 돌아오지 못하게 할 생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그 한마디에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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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맹은영이 말했다.“흥.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오기가 생기네. 평이, 우리 한번 해 보자. 반드시 만족하게 해 줄게.”이게 무슨 망측한 소리란 말인가?옆에서 시중들던 부엌데기와 막 들어오던 부관이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아가씨들, 그런 말은 삼가셔야지요. 맹 아가씨께서는 아직 혼인도 안 하신 분이시잖습니까.”맹은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흥, 누가 시집간다고 했느냐? 가고 싶은 사람이나 가라지. 난 이렇게 멀쩡한데 왜 사서 고생을 하겠느냐? 왕비 마마께서 늘 하던 말을 못 들었느냐? 현자는 사랑에 빠지지 않고 쇠솥에는 거위만 삶는다고.”서인경은 말이 없었다.그래, 분명 자기가 한 말이긴 했다.맹은영은 평이의 볼을 꼬집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사내 하나 때문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인생, 그게 내 목표는 아니거든. 너도 기운 내 거라. 연풍이 안 돌아오면 더 좋다. 내가 더 괜찮은 놈들로 소개해 줄 테니까. 매일매일 골라 쓰면 된다.”평이는 맞잡힌 볼을 문지르며 웃었다. 아까만큼 서운한 기색은 없었다.“맹 아가씨, 농담은 그만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왕비 마마와 맹 아가씨 식사나 모시겠습니다.”맹은영은 평이의 손을 잡아 그대로 자리에 앉혔다.“다 같은 식구인데 무슨 시중이냐? 어서 먹거라. 배부르면 사내 생각할 기력도 없다.”그때 부관이 얼굴에 난처함을 가득 담고 다가왔다. 마치 맹은영이 자기 집 왕비와 세자를 나쁜 길로 이끌까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였다.“왕비 마마, 별채에 있던 열세 명의 아이들이 모두 뒷문으로 들어왔습니다.”서인경이 물었다.“본 사람은 없었느냐?”부관은 고개를 저었다.“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니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좋다. 거처를 잘 마련해 주고 앞으로는 왕부에 머물게 하거라. 외출은 금지다. 의식주 마련도 흔적이 남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거라.”“명 받들겠습니다.”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맹은영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뭡니까? 무슨 일입니까? 열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라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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