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을 바꿨다.그래, 그냥 안기게 두자. 남자한테 한 번 안긴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세 사람은 긴 내리막길을 한참이나 걸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벽이 움푹 파인 공간들이 나타났지만 그 안에는 나무 침상 하나씩만 놓여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진방옥은 볼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침상들이 빈 상태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이 오히려 섬뜩했다. 사람이 누웠던 흔적조차 없이 텅 비어 있다는 점이 더더욱 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손발이 얼어붙을 듯 차가워지고 더 내려가면 사람 자체가 얼음덩이가 될 것 같다고 느낄 즈음, 앞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빛이 꺾이는 모퉁이를 지나자 지금까지 지나온 곳들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은 그 광경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공간은 넓었지만 한가운데에는 침상 하나만 놓여 있었다. 앞서 보았던 것들보다 훨씬 크고 재질 또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웠다. 상등의 황화리 목재로 만든 침상이었다. 그리고 그 침상 위에는 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그는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평온했고 두 눈은 가지런히 감겨 있었으며 두 손은 배 위에서 차분히 포개져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든 사람 같았다.노인은 진홍빛 수의를 입고 있었고 옷차림은 흠 하나 없이 단정했다. 천의 질만 봐도 값비싼 물건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빛의 근원은 노인의 머리 위에 놓인 거대한 야명주였다.연기준은 천천히 다가가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얼굴은 기억 속 어머니의 얼굴과 점점 겹쳐 보였다.연기준은 확신했다. 이 사람은 금족의 족장이며, 어머니의 친부. 곧, 자신의 외조부일 것이라고.금족은 토장을 하지 않는다. 대신 족내의 풍수 좋은 곳에 지궁을 만들어 그곳에 안치한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바로 이곳처럼 말이다.족내에서 숨을 거둔 사람들은 모두 이 지궁으로 들어온다. 지위가 높을수록 안치되는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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