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61 - Chapitre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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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이람은 이렇게 빨리 하준에게 들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첫 반응은 뜻밖에도 하준이 괜히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식하듯 하준을 살폈다. 다행히 하준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저... 강제헌은 못 만났어요.”이람은 그저 제헌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었다.하준이 말했다.“둘 다 백화점 밖에 있었죠. 강제헌은 차 안에 있었고, 조 비서는 카페 앞에 있었고요.”하준이 이런 데까지 알아낸다는 사실에 잠시 멍해졌다. 동시에 이람은 제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걱정’하는 척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강제헌이 나랑 하유민을 본 모양이야.’‘하유민을 보니까 그제야 이건 생각이 난 거겠지.’‘그땐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양심의 가책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내가 착각한 거였어.’지금 이람의 심정은 마치 파리라도 삼킨 듯 불쾌했다.하준은 내내 이람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강제헌 이야기가 나오면, 이람 씨의 멘탈이 괜히 흔들리는 것 같아.’‘머릿속도 온통 그쪽으로 쏠리는 것 같고.’‘지금 이 여자는 내 앞에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생각하다니.’하준의 이성은 말했다. 제헌과 얽힌 일이라면 이람이 그리 반응하는 건 불가피하다고.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주변 공기가 갑자기 묵직해진 걸 예민하게 느낀 이람은 슬쩍 하준을 바라봤다. 남자의 얼굴엔 여전히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람은 알고 있었다. 하준은 제헌 관련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기분이 상한다는 것을...이람은 하준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제가 강제헌을 직접 본 건 아니고, 강제헌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하준이 물었다.“무슨 얘길 했길래, 갑자기 나를 조사한다는 건가요?”이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스스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하나 만들었다.“대표님, 예전에 말씀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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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이람은 당연히 방금 이건과 함께 사고 하나를 치고 왔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하준 앞에서만큼은 늘 단정하고 프로다운 모습을 지켜왔고, A시에서는 추잡한 그 감독을 몰래 쳐낸 일까지 있었다는 건, 굳이 하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이람에게도 하준 앞에서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하준은 이미 이람이 식탁에 쌓아 둔 복잡한 스케치들과, A시에서 처리해 온 일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이람의 전문성은 솔직히 놀라울 정도였다.이건 회사에 구멍이 생기면, 하준이 도울 수 있는 방식은 결국 실력 있는 기술자를 붙여주는 수밖에 없는데...하준이 가진 선택지 중 이람보다 나은 인재는 거의 없었다.하준은 이건이 왜 자신을 경계하는지 이해했다.이람의 실력은 그만큼 뛰어났다.“저는 돈이 있습니다. 이건이가 개발하는 게임 프로젝트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죠. 저는 그저, 그 돈을 이건이에게 가져다줄 뿐입니다.”하준은 이미 이건에 대해 거의 다 파악한 상태였다.이람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대표님. 사실 저는...”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이람을 바라봤다.그 눈빛이 주는 압박감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표정이었다.하준이 한 번 결심한 일은 쉽게 바꿀 수 없다.이람은 고지후의 호의를 거절할 수 있었지만, 하준의 호의는 이상하리만큼 거절이 쉽지 않았다.결국 이람은 더 이상 막아설 말을 찾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대표님, 동생 회사는 동생이 최종 의사결정권자입니다. 대표님이 정말 투자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이건이에게 물어보셔야 해요.”이건이 하준에게 가진 태도를 생각하면, 받아들일 확률은 거의 없었다.하준은 짧게 대답했다.“알았어요.”이쯤에서 이야기할 건 거의 끝났다.이람은 돌아가기 전에 잠시 하준의 얼굴을 보다가 처음으로 장난 같은 말을 꺼냈다.평소엔 하준을 향해 농담조차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건의 입에서 나온 막말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대표님은 젊으시고, 정말 잘생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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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기성이 조사 결과를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이것이었다.‘내가 잘못 본 건가? 이게 어떻게 조이람일 수 있어?’‘조이람이 저런 수준의 복구 모델을 만들 실력이 있으면, 난 내 이름을 거꾸로 적겠어!’하지만 이 정보는 이건 회사 기술팀 직원 한 명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고, 확인에 확인을 거쳤다.정말로 모델을 만든 사람은 이람이었다.기성은 그래도 믿기지 않아 계속 따로 조사했다.그러다 알게 된 건...이건 회사 직원들은 이람이 기술을 직접 구현하는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데이터베이스 복구 모델과 새로 구축된 방화벽은 모두 이람이 회사에 가져온 것이며, 기술팀 사람들은 이람을 ‘신’으로 추앙하며 거의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기성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조이람은 그냥 비서였어.’‘강 대표님하고 결혼한 3년 내내 사실상 가사도우미 아니었나?’‘조이람이 저런 고급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기성은 자신이 확인한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제헌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사모님이 시우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라는데... 정말 그렇게 뛰어나신 겁니까?]제헌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 사실은 예전에 강수철 회장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제헌은 신경 쓰지 않았다.이후 하유리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제헌은 처음으로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시우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이람과 유리는 같은 전공이었고, 심지어 같은 학교의 동문이었다.제헌은 잠시 현실감이 사라지는 듯한 황당함을 느꼈다.‘내가 지금까지... 조이람이 이런 고스펙의 소유자라는 걸 전혀 몰랐던 건가?’제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기성은 제헌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짐작했다.하지만 기성은 속으로 단단히 확신하고 있었다.이람이 그 정도 실력일 리가 없다고.그래서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놨다.[대표님, 사모님이 이미 만들어진 모델을 가지고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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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조이람 한 번 제대로 혼나고 나면 바로 기어들어 오겠지!’기성은 이렇게 생각했다.그래서 제헌이 당연히 동의할 거라고 여겼는데, 돌아온 건 얼음장처럼 차갑고 섬뜩한 경고였다.“방금 뭐라고 했어?”기성은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제헌의 목소리에 담긴 살기는, 고스란히 기성의 머리끝까지 전해졌다.심장이 거칠게 빨라졌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너무 나갔습니다!]기성은 이람을 무시했다.솔직히 사람으로조차 안 봤다.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람은 제헌의 사람이었다.제헌이 아무리 냉담하게 굴어도, 그래도 이람은 제헌에게 속한 존재였다.기성 따위가 감히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댈 자격은 없었다.더군다나 ‘대표이사가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완전히 선을 넘은 짓이었다.심지어 고지후조차 이런 사생활 문제엔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하물며 그는 제헌에게 일개 비서일 뿐이었다.기성은 스스로가 얼마나 무모한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이런 실수는 두 번 다시 없을 겁니다.]제헌은 냉랭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다실은 은근하고 진한 차 향기가 가득했다.제헌은 이 향을 좋아했다.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제헌은 태어나서 지금까지28년 동안... 기쁘다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행복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그저 마음이 잠잠해지기만 하면 그걸로 족했다.그런데, 이람이 그 평온을 산산이 깨버렸다.예전에는 이람이 무슨 일을 겪든, 무슨 행동을 하든... 제헌의 감정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이람의 한 번의 냉담한 표정, 거친 말 한마디가 제헌을 통제 불능 상태로 몰고 갔다.그 사실이 제헌에게는 거의 분노에 가까운 치욕이었다.‘내가... 조이람에게 이런 권력을 줬다고?’‘내 감정이 출렁이는 이유가 조이람이라는 게... 말이 되나?’제헌은 가슴께의 옷자락을 움켜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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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제헌이 물었다.“누구 전화야?”“유민이.”제헌은 유민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건성으로 말했다.“받아.”유리는 나쁜 소식일까 봐, 제헌 앞에서 감정이 무너질까 봐 겁났다.그래서 룸 밖으로 나가 전화받았다.전화받자마자, 유민의 분노가 폭발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누나! 우리 회사 데이터베이스가 해킹당했어! 이건 그 개자식 짓이야, 틀림없어!]유리는 잠시 멍했지만, 곧바로 차분하게 말했다.“증거는? 추적은?”정말 이건이 한 짓이면, 유리는 이건을 감옥에 보내버릴 생각이었다.이건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유리와 유민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조이람도 끼어 있으면 더 좋고. 둘이 나란히 감방에 들어가면 그림이 완벽하겠네.’유리는 사실 이람과 이건을 깊이 미워하지 않았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유리에겐 너무 강렬하고, 이람과 이건 따위의 존재는 그런 감정을 가질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마음의 에너지를 쓸 상대도 아니었다.‘조이건 짓이면 좋겠네.’‘조이건 회사 기술팀은 실력도 형편없으니까, 분명 실수 하나쯤 남겼을 거야.’유민은 조이건을 떠올리자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추적이 안 돼! 조우빈이 바로 확인했는데, 해킹 이후에 방화벽을 너무 단단하게 쳐서 손도 못 댄대. 조우빈이 완전히 밀렸어.]“말도 안 돼.”유리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갔다.유민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유민은 이건의 회사에서 우빈을 스카우트해 왔다.우빈은 방화벽과 보안 시스템 구축에 있어서 거의 천재였다.그가 와서 회사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최신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자동 감지, 자동 차단, 추적 기능까지 완벽했다.이미 수많은 공격을 막아냈다.그런데 오늘 어떤 해커가 그 모든 보안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마치 장난처럼 가볍게 우회하고, 코드를 수정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붕괴시켰다.데이터베이스는 유민 회사의 최대 규모 게임 프로젝트의 심장부였다.수년간 쌓아온 개발 자료, 구축했던 시스템... 모두 한순간에 사라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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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유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건이 곧 무너질 거라는 확신.그런데 그 확신이 통째로 뒤집혔다.그리고 유리의 계산으로는 최소 한 달은 걸릴 문제를... 이건은 단 일주일 만에 해결해 버렸다.‘조이건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 리가 없어.’‘분명 외부에서 누군가 도와준 거야.’유민의 직감이 맞다면, 오늘 밤 유민 회사 DB를 해킹한 사람, 그리고 이건 회사 DB를 복구한 해커는 아마도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았다.‘조이건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인력을 구한 거지?’‘겨우 스타트업 사장 하나가... 투자도 못 받고 끙끙대는 주제에...’‘뭔 인맥이 있어서 그런 인물을 데려와?’유리의 머릿속에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만 가득했다.혹시 제헌은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유리는 룸으로 돌아갔다.제헌이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리는 유민에게서 들은 일을 모두 말했다.제헌 또한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유리가 보기엔 분명 큰일인데도, 제헌의 반응은 담담했다.‘원수는 반드시 갚는다...’‘딱 서하준의 스타일이네.’유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누군지 알아?”“서하준.”유리는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다.눈이 크게 흔들렸다.“서... 하준? 어떻게 서하준이?”유리가 하준을 본 건 루미에르 팰리스에서 열린 만찬장이 유일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잊기 힘든 인물이었다.압도적인 외모, 품위 있는 태도, 사람들이 하준에게 건네는 예우의 수준...누가 보더라도 특별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있는 남자.‘그런 사람이... 조이건 편을 들어?’하지만 유리는 곧바로 떠올렸다.‘조이람...’유리의 표정은 더 얼어붙었다.“이람 씨 때문에?”제헌의 차갑게 닫힌 표정이 대답을 대신했다.유리는 그제야 마치 누군가 자기 뺨을 세게 후려친 듯한 충격을 받았다.‘나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조이람이... 서하준의 마음을 얻었다고?’‘서하준이 조이람에게 이런 큰 도움까지 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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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유리는 지금 제헌이 반지를 ‘깜빡 잊고 안 낀 건지’, 아니면 ‘이제부터 절대 안 낄 작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만약 정답이 후자라면 유리는 갑자기 숨이 막힐 만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관계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건... 큰 싸움이나 폭발적인 갈등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변하는 작은 디테일 때도 있다는 걸... 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내 오해였으면 좋겠어.’...운전기사는 룸미러로 유리를 흘끔 보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하유리 씨가 자꾸 이쪽을 보고 계시던데, 말씀하실 게 있는 건 아닌지...”제헌은 눈을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기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속도를 살짝 높여 차를 몰았다.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유리는 정신을 차린 듯 깊게 숨을 내쉬고, 유민의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회의실에서는 유민이 폭발하는 중이었다.게임 프로젝트 담당 기술팀은 유민의 분노를 고스란히 맞으며 얼어붙어 있었다.유리는 회의실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문밖에서 가만히 지켜봤다.유민이 눈치채고 나올 때까지.유민은 누나를 보자 화를 억누르며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유리는 뒤돌아 유민의 사무실로 걸어갔다.그리고 평소 유민이 앉는 자리에 앉아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유민은 비웃듯 말했다.“누나, 설마 나 비웃으려고 온 거야?”유리는 냉정하게 받아쳤다.“일 생겼다고 흥분하면 뭐가 해결돼? 소리만 지르면 결과가 바뀌냐?”유민은 즉각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왜 안 돼? 이건 내 회사고 내 프로젝트야! 조우빈 그놈이랑 기술팀이 허접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누나! 나한테 훈계하러 온 거면 그냥 가!”유리는 얼굴이 굳어졌지만, 지금은 유민을 다그칠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상황부터 말해줘.”유민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억지로 감정을 눌러 담고, 유리를 데리고 기술팀으로 갔다.유리는 이해가 잘 안 됐다.어차피 DB 복구가 가능하다면, 유민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이유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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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하유민!”유리도 결국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래, 제헌이 너한테 일 시킨 건 맞아. 근데 전제조건이 뭐였는데? 제헌이가 너한테 600억 원을 투자했잖아. 투자받았으면, 제헌이 요구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기본적인 사람 대 사람의 의리라도 있어야지!”“그리고, 제헌이가 손대라고 한 대상은 조이건이었어. 그때 너 지금처럼 쪼그라들었냐? 아니거든? 오히려 네가 더 적극적이었어!”“왜냐면 너도 조이건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었고, 그걸로 얻을 이익을 기대했으니까! 하유민, 널 내가 몰라? 그 마음 내가 모를 것 같아?”“근데 지금 실패하니까 싹 발뺌한다고? 세상이 그런 좋은 일만 골라서 생기는 줄 알아? 하유민, 이득은 다 가져가고 책임은 하나도 안 지려고 하지 마.”“그리고... 그거 하나 프로젝트 날아갔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야. 적어도 제헌이 투자한 600억이면 네 손해는 다 메꾸고도 남아. 그런 상황에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제헌이한테 뒷수습까지 바라?”유민의 표정은 잿빛으로 굳어졌다.“누나... 누나 진짜 왜 이렇게 남의 편만 들어? 누나 팔은 밖으로만 굽냐?”유리는 단호하게 쏘아붙였다.“난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조이건이 정말 망했으면, 네 회사가 피해를 안 입었으면, 지금처럼 하늘 무너진 얼굴 하고 있었을까? 아니야. 벌써 조이건 머리 위에 올라가서 승리 선언했을걸?”“근데 실패했다고 이렇게 주저앉아? 그게 뭐가 그렇게 무서워? 살아있으면 다시 일어설 기회는 언제든 와.”“근데 너처럼 울부짖고 감정에 휘둘려서 아무 판단도 못 하고 난리 치면, 사업에서도 지고, 그 사람에게도 지는 거야.”“네 적들이 지금 너를 비웃고 있을걸? 그걸 모르겠어?”유민은 헛웃음을 터뜨렸다.쓴웃음도 아니고, 거의 미쳐버린 웃음이었다.“누나가 나 신경이나 쓰긴 해? 아니지. 그냥 나 때문에 누나 체면 깎일까 봐 싫은 거잖아.”유리는 마치 벽과 얘기하는 느낌이었다.유민과 이건은 나이가 비슷했다.둘 다 겨우 스무 살.유리와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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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유민이 이건을 찾아가면 확실히 손해만 볼 것이다.하지만 심혜영이 함께 있으면 조금은 나았다.게다가 심혜영은 이람과 이건의 혈육인 이모였다.피붙이 친척이 외부 사람 편을 들면, 그건 마음을 후벼 파는 공격이었다.사업에서 지는 건 인정할 수 있어도 사람 마음을 꿰뚫는 그 ‘마음’은 절대로 견디기 힘들다.그래서 유민의 표정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하지만 유리는 이번 해킹 사건을 도무지 잊을 수 없었다.민서의 ‘에이스’에도 미치지 못했고, 하준이 붙여준 기술자는 또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그 둘과 비교하면 유리의 기술력은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유리는 이미 업계에서 충분히 인정받는 사람이었다.그런데도 갑자기 자신보다 훨씬 위에 있는 ‘전부 천재들로만 이뤄진 세계’를 엿본 듯한 느낌이었다.마치 머리 위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실력 차이를 들이대는 것처럼.유리의 가슴 속에서 씁쓸함과 질투가 동시에 밀려왔다.물론 유리는 유민처럼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다.기분이 나빠도 겉으로는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그저 업무처럼 조우빈을 불러 상황을 들을 뿐이었다.우빈과 몇 마디 나누고 나서 내린 결과는 똑같았다.데이터베이스는 복구 불가능.유리는 궁금한 것을 직접적으로 물었다.“이건 공격에는 왜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당한 건가요?”우빈은 고개를 저었다.“그땐 제가 조이건의 회사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반으로 바이러스를 대량 심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야 흔적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고요.”“제가 못 한 건... 의도해서가 아니라 아예 실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우리를 공격한 해커는 아예 정면으로 침입해 들어와서 대규모 파괴, 코드 변조, 위장 프로그램 설치까지 단숨에 해냈습니다.”“이건... 순수하게 실력의 문제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유리의 표정은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우빈이 조심스레 말했다.“하 대표님... 하유민 대표님을 조금만 진정시켜 주십시오.”유리는 속으로 냉정하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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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유민은 정말로 이건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그런데... 패기는커녕 호되게 맞고 올 게 뻔했다.이건에게 가는 건 결국 자기만 더 망신당하는 길이었다.유민은 깊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심혜영에게 전화걸었다.전화받는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왜, 유민아?]그 한마디가 들리자 유민의 눈가가 붉어졌다.유민은 오늘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억울함 가득 담아 이야기했다.심혜영은 유리처럼 날 선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말을 자르는 일도, 비난하는 일도 없었다.오히려 차분하게 유민의 감정을 달래고 나서 말했다.[그래, 좋은 경험한 셈 치자. 이만큼 크게 다친 건... 앞으로 조심하라는 신호야.]유민은 어머니의 이런 말은 기묘하게 잘 들렸다. 증거도 없이 먼저 공격한 건 자기 쪽이었고, 제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억울했지만 결국 인정하고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유민의 목소리가 울컥했다.“네, 어머니.”심혜영은 바로 이어서 말했다.[지금 바로 이건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줄게. 잠깐 기다려.]유민은 감사함으로 숨이 막힐 뻔했다.“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하지만 심혜영은 현실적인 말을 덧붙였다.[근데 뭘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알고 있어요.”심혜영이 이렇게까지 나서주는 것만으로도 유민에게는 충분히 위로가 됐다.신경 쓰지 않으면 굳이 손댈 이유 없는 일인데, 심혜영은 유민을 위해 움직였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처참한 패배였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이건 쪽의 잘못을 입증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억울해도 혀를 깨물고 삼켜야 했다.만약 유민이 시작한 게 아니었다면 유민은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유민이 제일 두려운 것은 그것이었다.이건 곁에 아주 무서운 실력을 소유한 기술 인력이 있다는 사실...짧은 시간에 유민 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 실력.‘앞으로 내가 조이건한테 뭐라도 하면... 그만큼의 보복을 당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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