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 전념하는 일은 시간도, 체력도 많이 소모되는 작업이라는 걸 민서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일, 서하준한테는 얘기했어?”“아직.”이람도 조금 전에야 마음을 굳힌 참이었다.결혼 후, 시어머니에게 모욕을 당했던 그날 밤, 이람은 곧바로 이력서를 넣었다.그리고 SY그룹에 입사했다.그때는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서하준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이람은 제헌의 어머니 채영희를 떠올렸다.차갑고, 날이 서 있고, 누구에게도 웃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제헌 역시 채영희와 전혀 가깝지 않았다.불가피한 자리 외에는 거의 왕래가 없을 정도였다.“이람아, 갑자기 생각해보니까 너랑 서하준이랑 은근히 인연 있는 것 같아.”민서가 말했다.“아니면 네가 왜 하필 서하준 회사에 들어가서 비서 일을 했겠어. 편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잖아.”“그러게.”이람은 고개를 돌리며 뒤늦게 실감이 났다.“나 SY그룹에서 벌써 3년이나 있었네.”이람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결혼한 이후 몇 년 동안, 솔직히 잘 지낸 건 아니었어. 회사에만 가면 숨을 좀 돌릴 수 있었고, 거기서야 조금 버틸 수 있었어.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일자리가 나를 보호해 준 셈이야.”사랑 없는 결혼 속에서 이람은 뜻밖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해야 할 일이 있었고, 회사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차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이람이 처음 퇴사를 고민했던 건 임신 때문이었다.아이를 잃은 뒤에도 회사를 떠나지 못했고, 그러다 하준의 귀국을 맞이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람 자신도 고개가 끄덕여졌다.‘확실히... 인연이긴 하네.’“퇴사하려면 한 달 전에 말해야 하잖아. 아직 한 달은 여유 있어.”“괜찮아, 그 한 달 정도는 시간 있어.”민서가 바로 말했다.“어차피 너 오기 전에 팀부터 꾸려야 해. 사람 뽑고, 면접 보고. 이 한 달 동안은 내가 준비할게. 네가 합류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들어가면 되지.”민서는 정도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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