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381 - Chapter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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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1화

이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어깨가 뻐근하게 당겼고 머리도 살짝 멍했다.팔을 주무르며 서재를 나와, 늘 하던 대로 거실로 가 물을 따르려다 보니 거실 TV가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물을 따라 반쯤 마신 뒤, 소파에 반쯤 기대어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일을 끝내고 나면, 이람에게는 이렇게 완전히 체력이 방전되는 순간이 찾아왔다.대략 십여 분 정도.그렇게 쉬어야 다시 힘을 모아 씻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일 끝났어요?”눈을 감고 쉬고 있던 이람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이람은 바로 눈을 떴다.하준은 머리가 아직 덜 마른 채로 헐렁한 검은색 가운을 입고 다가오고 있었다.‘아, 대표님이 우리 집으로 이사 왔지.’‘상사가... 내 집에 살고 있네.’‘이 집에 살아 있는 남자가 하나 더 늘었어.’각자 방도 있고, 각자 할 일도 분명했지만, 그래도 혼자 살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이람은 무의식적으로 늘어졌던 자세를 바로잡았다.몸을 세우고, 마치 조건반사처럼 자신을 다시 단정한 상태로 전환했다.하준은 이람이 지쳐 보이는데도 괜히 정신을 차려 자신을 상대하려는 걸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하준은 테이블을 한 번 훑어봤다.이람의 물컵은 이미 비어 있었다.하준은 컵을 들어 다시 물을 채운 뒤, 이람 앞으로 내밀었다.“마셔요.”이람은 컵을 받아 들었다.“감사합니다.”마트에서 함께 산 커플 머그컵이었다.이람의 컵은 흰색, 하준의 컵은 검은색으로 나란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함께 살기 시작하니, 집 안 곳곳에 서로의 생활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세탁해 말려 둔 실내복도 마찬가지였다.하준이 입고 있는 것도 커플용 검은색 잠옷이었다.하준은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었다.“물 마셔요.”다시 들려온 하준의 말에 이람은 그제야 약간 흐릿해진 정신을 되찾았다.이람은 컵을 들어 한 번에 다 마셨다.아직 컵을 내려놓기도 전에 하준은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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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사실 지금 시점에서 하준이 반드시 이람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럼에도 하준은 전부터 이람의 집으로 들어와 살기를 서둘렀다.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심지어 스스로 고생을 자초하는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하지만 하준은 그 모든 걸 기꺼이 받아들였다.몸이 불편했지만, 하준은 체념한 듯 찬물로 샤워하며 열기를 가라앉혔다.정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대략 삼십 분쯤이 지나 있었다.하준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침구는 전부 블랙 컬러의 실크였다.방 전체는 화이트 톤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그 조합은 하준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침실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혼자 자기에는 충분했다.설령 이보다 더 작았어도, 하준은 기꺼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다.하준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등은 이미 꺼져 있었고,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들리는 것은 자기 심장 박동과 숨소리뿐이었다.시간이 지나자 마음도 점점 가라앉았다.눈을 감고 잠들 준비를 하던 순간, 막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에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하준은 순간적으로 완전히 깨어났다.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한 시였다.안방은 하준의 방 바로 옆이었다.방음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 움직이면 그는 다 들을 수 있었다.‘무슨 일이지? 이람이 왜 밖으로 나왔지?’하준은 잠시 고민했다.일어나서 확인해 볼까 싶었지만, 오늘은 이람의 집에서 지내는 첫날이었다.이람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밤중에 일어나는 게 그녀만의 생활 습관일 수도 있었다.‘괜히 나갔다가 이람을 놀라게 하면 어쩌지?’하준은 결국 나가지 않기로 했다.이람이 불편해질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그 이후로는 잠이 오지 않았다.삼십 분쯤 지나서야 옆방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이람이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그리고 다시 10분.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그제야 하준은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이람은 아침 8시에 일어났다.한밤중에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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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선을 넘지 않고 멈추는 것... 진영자는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가사도우미라는 위치에서 고용주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들여다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이람은 다시 서재로 들어가 오전 내내 데이터를 돌렸다.집에 좋은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연산량이 턱없이 부족했다.진행 속도는 느렸고, 결론이 나오지 않는 연구는 결국 성과로 이어질 수 없었다.이람은 외출 준비를 하며 민서를 만나러 갈 생각을 했다.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민서 쪽에서도 동시에 연락이 왔다.[자기야, 전에 내가 말했던 그 건 있잖아. XS그룹 부회장님이 우리 보자고 하시는데, 갈래?]“갈 수 있어. 나도 너한테 할 말 있어.”이혼 이후로 민서가 출장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람과 민서는 거의 매주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그럼 오늘 저녁 동문회에서 보자. 우리 컴퓨터공학과 동문 분과 모임이야. XS그룹이 협력사라서 같이 참여하고, 정운란도 올 거야.]이람은 잠시 멈칫했다.“이렇게 겹친다고?”사실 이람은 그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하유리가 전에 한 번 언급하긴 했고,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겠다고 제안도 했지만.대학 동문회라는 곳은 각 분야의 최상위 인재들이 모이는 자리였다.그 자체로도 강력한 네트워크였고, 동문 연합은 다시 모교로 돌아가 자금 지원, 인재 환류, 명성 확산으로 이어졌다.작년만 해도 동문 연합은 시우대학교에 수억 달러 규모의 기부를 했다.특히 해외 명문대, 소위 아이비리그 계열의 동문 연합은 그 영향력이 훨씬 컸다.법대 출신만 해도 최상위 로펌이나 정부 기관으로 진출해 있었고, 직장 생활에서도 동문과 동문이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같은 전공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전문적인 정보 교류도 훨씬 수월했다.[우연? 자기야, 너 이미 알고 있었잖아.]“난 자격 없어. 안 가.”[자격이 없다고? 웃기지 마. 네가 가고 싶다고 하면 다들 서로 널 모시려 들걸? 명예 동문 중에 네 실력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그래서,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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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한빈 교수는 민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그 시선의 끝에서 이람이 보였다.‘체형만 보면... 예전에 실험실에서 마주쳤던 학생이랑 꽤 비슷한데.’하지만 한빈 교수는 곧바로 기억을 더듬어 정체를 떠올렸다.“설마... 강제헌 대표님 댁에서 일하시던 가사도우미 아닙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민서의 얼굴이 굳었다.이람은 곧바로 민서를 제지하듯 손을 뻗어 막고, 한빈 교수를 향해 담담하게 시선을 주었다.“그래서요. 여기서 저를 보신 게 그렇게 궁금하신가요?”이람의 말투는 차분했고, 불쾌함은 표정에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그런데도 한빈 교수는 순간적으로 난처해졌다.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이람을 알아본 것도 사실이었고, 민서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무심코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상대를 면전에서 ‘가사도우미’라고 지칭한 건... 어떤 이유로도 실례였다.“죄송합니다...”이람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저는 시우대학교 학생 조이람입니다. 강제헌 대표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잠시 멈췄다가 차분히 덧붙였다.“그리고 한빈 교수님 수업을 청강한 적도 있습니다.”한빈 교수는 크게 놀라 이람을 보았다가 다시 민서를 바라봤다.“그럼 혹시... 이분이...”이람은 단호하게 말했다.“아니에요.”한빈 교수는 순간 멍해졌고, 그 얼굴에는 실망에 가까운 기색이 스쳤다.민서가 졸업하던 해의 논문들은 이미 전부 검토해 본 상태였다.확실히 두드러지는 성과는 없었다.‘내가 너무 앞서간 건가.’이람은 Lugi-X의 개발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굳이 여기저기 떠들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이람은 민서를 돌아보며 물었다.“이제 다 끝났어?”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민서는 속으로 꽤 즐기고 있었다.‘역시 우리 조이람.’‘절대 만만한 애가 아니야.’‘자존심도 있고, 자기 생각이 생기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지.’‘이걸 보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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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이람을 향한 유리의 혐오가 한층 더 짙어졌다.‘조이람, 싸울 거면 차라리 대놓고 싸우지.’‘이렇게 빙빙 돌려서 자기만 빠져나가려고 한다니.’‘겁도 많네.’한빈 교수는 도규를 바라보다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나섰다.“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까지 화내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도규는 비웃듯 말했다.“누가 화났대요? 그냥 보기 싫은 인간을 봐서 역겨울 뿐이지.”정운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지만, 도규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도규는 유리를 보며 말했다.“같이 갈까?”이 자리에 더 있고 싶지 않았고, 유리 역시 남아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그때, 주차를 마친 예정안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유리 선배, 일 다 끝났어요?”이람은 예정안을 알아봤다.민서의 지인이었고, 금융에 관한 전공을 공부한 동문이었다.다만 성별이 한눈에 구분되지 않을 만큼 중성적인 외모라는 점 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민서는 정안의 정확한 배경을 알지는 못했지만, 유리와 도규 무리와 어울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서 이미 커다란 X 표시를 그어 버렸다.처음에 민서는 정안이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솔직히 역겹기까지 했다.정안은 민서를 발견하고 웃었다.“어, 또 보네. 이렇게 자주 마주치네. 같이 술 한잔할래? 지난번에 내가 산다고 했잖아, 계속 기회를 못 잡았어.”그리고 민서 옆에 서 있는 이람을 바라봤다.“이람 씨 맞죠? 같이 가실래요?”민서가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람은 대답하지 않았다.원래부터 차가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예정안도 그걸 아는 듯 굳이 이람에게 말을 더 걸지 않았다. 대신 시선은 민서에게 향했다.민서는 아주 담담하게 잘라 말했다.“다른 세계 사람들이면 억지로 섞일 필요 없어. 너희끼리 놀아.”예정안은 눈을 크게 떴다.“내가 뭐 잘못했어?”민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하유리랑 정도규랑 어울리는 것 자체가 문제야.”그 말에 유리와 도규의 얼굴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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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유리는 속으로 기뻐하며 한시름 놓았다.[백합 목걸이는 지난번에 선물해줬으니까, 이번엔 백합 팔찌로 하자.][그래.][언제쯤 돌아와? 그때 내가 마중 갈게.]이 메시지를 보낸 뒤로 제헌에게서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았다.차가 바에 도착할 때까지도 유리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유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제헌이 선물을 챙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건 충분히 증명된다고 여겼다.유리는 확신했다. 전처인 이람에게 어떤 선물도 준비했을 리 없었다....예정안 일행이 자리를 뜬 뒤, 한빈 교수도 곧바로 떠났다.조금 전 상황은 분명 도규가 먼저 시비를 건 것이었고, 그게 눈에 거슬려 한빈 교수는 몇 마디 거든 게 전부였다.하지만 오늘 밤 도규는 한빈 교수에게 협업 제안까지 했었다. 이제 한빈 교수로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정도규를 택하지 않을지도 몰랐다.그렇다 해도 선택지가 없다면,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어야 했다....한빈 교수가 떠난 뒤, 운란은 이람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도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이람이 담담하게 받아쳤다.“동생이 사람을 죽였다고, 부회장님께서 대신 감옥에 가실 건가요?”“부회장님, 이건 별개의 문제예요. 부회장님의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제가 정도규 씨를 계속 싫어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더 언급하실 필요 없습니다.”운란은 순간 놀랐다.‘조이람 씨는 말이 참 직설적이네. 이러다 사람들 미움 사기 쉬울 텐데.’‘지난번 술자리에서도 우리 아버지 말을 대놓고 끊었지. 그땐 서하준 대표가 있어서 그렇다고 이해했지만...’‘지금도 여전한 걸 보면, 이게 그냥 조이람 씨 성격이겠지.’‘이런 성격이라... 나쁘지 않네.’그때 민서가 갑자기 물었다.“부회장님, 예정안의 배경에 대해 알고 계세요?”“알고 있습니다.”운란은 웃으며 앞에 서 있는 검은색 7인승 비즈니스 밴을 가리켰다.“좀 더 좋은 자리로 옮겨서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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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이람이 말했다.“그러니까 관계가 굉장히 미묘하네요.”‘남매라 해도 언제나 경계는 존재하겠지.’“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죠.”운란은 이람을 한번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세상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금도가 있는 법입니다. 한 번 건드리면, 남아 있던 남매의 정마저 사라지죠.”이람 역시 정운란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깊어졌다.운란이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진 대표님께서 조이람 씨에게도 남동생이 있다고 하셨죠. 두 분 사이는 정말 좋으신가요?”“네, 아주 좋아요.”이람은 이건을 떠올리며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귀찮긴 한데, 그래도 확실히 잘 지내요.”민서가 이람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고생 많다, 우리 자기. 이렇게 어린 나이에 큰아들 하나 키우느라.”이람이 바로 받아쳤다.“이건이가 들으면 너랑 진짜 절교한다.”“절교하면 어때. 누가 조이건 무서워하나?”운란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조이람 씨와 동생분의 관계가 정말 좋은 게 느껴지네요.”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솔직히... 부럽습니다.”다들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 민서가 웃으며 물었다.“부회장님, 말씀에 숨은 뜻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운란은 더 이상 돌려 말하지 않았다.“아버지께서 물러나시면, 저는 XS그룹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도규에게 자리를 순순히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너무도 직설적인 말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고백에 이람과 민서는 동시에 놀랐다.“이미 부회장님이신데요. 정 회장님께서 이미 중용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민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운란은 쓴웃음을 지었다.“부회장 자리는 제가 제 힘으로 얻어낸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이 자리는 임시일 뿐이고, 결국 회장직은 도규에게 넘길 거라고요.”이람이 미간을 좁혔다.“그런 이야기를 왜 저희에게 하시는 건가요?”민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저희가 부회장님을 배신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 안 하세요?”“생각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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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이람은 순간 멈칫하더니, 먼저 운란에게 양해를 구했다.“잠깐만요. 금방 끝낼게요.”이람은 핸드폰을 들어 바로 답장을 보냈다.[지금 집에 계세요? 집이면 굳이 데리러 오실 필요 없어요.][밖에 있어요.]이람이 아직 답을 보내지 못했는데, 하준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주소 알려주세요.]이람은 위치를 찍어 보냈다.[아직 한 시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아요. 급하게 오실 필요는 없어요.][알았어요.]이람과 하준은 이웃이지만, 일부러 함께 귀가하는 편은 아니었다.다만 같이 살게 된 이후로는 하준이 이람을 데리러 오는 일이 생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오늘 이람은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민서와 술 한잔 정도는 마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전 약속 때마다 운전해야 해서 술을 못 마셨고, 그때마다 민서에게 몇 번이나 붙잡혀 잔소리를 들었다.그래서 오늘은 아예 몇 잔쯤은 마실 각오로 나온 자리였다.이람이 메시지를 정리하는 사이, 민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부회장님, 제 눈에 이람이는 그냥 업계 탑이에요. 부회장님도 이람이를 좋게 보신다니, 그거 하나만으로도 제가 드리는 점수는 엄청 올라갑니다.”그리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부회장님이 XS그룹의 실권자가 되신다면 저는 진심으로 기쁠 것 같아요.”“이 세상에 권력과 실력을 갖춘 여성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거잖아요. 손뼉 치면서 축하할 수 있어요.”민서는 솔직하게 덧붙였다.“숨기지 않겠습니다. 저는 부회장님 동생분을 정말 좋아하지 않습니다.”운란은 그 말이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어릴 때는 도규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크면서 다들 자기 앞날을 계산하게 되더군요.”도규는 점점 운란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고, 외부 사람들 앞에서도 운란을 존중하지 않았다.운란은 그 일로 크게 상처받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다만 아쉬울 뿐이었다.이람이 동생과 맺고 있는 그런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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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운란은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제가 진 대표님과 조이람 씨를 직접 찾아온 건, 충분히 고민한 끝의 결정입니다.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고, 어떤 순간에는 한 번쯤 판돈을 걸어야 할 때도 있죠.”“제 직감이 말해줬습니다. 두 분과 함께라면, 이 도박에서 제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요.”운란은 온화하지만 내면에 단단한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 세심하고 신중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는 추진력이 있었다.“이미 선택했고,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저는 받아들일 겁니다.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전부 제가 집니다. 지더라도, 담담히 인정하겠습니다.”운란의 눈빛에는 날카롭고도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아직은 첫걸음일 뿐이에요. 지금은 모든 게 쌓여 가는 단계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늘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결국은 넘을 수 있다고 믿어요.”그 담대함과 자기 확신은 이람과 민서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감탄했다.“부회장님.”민서가 웃으며 말했다.“내일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제가 한턱낼 테니 식사 한 번 같이하시죠. 제대로 대접하고 싶어요. 꼭 와주셔야 합니다.”운란은 분위기로 이미 결론이 났다는 걸 느꼈다.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좋습니다.”이람은 하준에게 대략적인 시간만 전해 두었다. 아직 여유는 있었다.세 사람은 업무 이야기를 마친 뒤, 더 이상 그쪽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이후의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일상 이야기, 가벼운 뒷얘기, 쇼핑 취향 같은 소소한 대화들이 오갔다.이람은 그 과정에서 운란이 현재 싱글이며, 비혼주의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권력 다툼에는 오히려 딱 맞는 성향이네.’이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운란의 앞날에 행운을 빌었다.운란은 워낙 바쁜 사람이어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내일 뵙겠습니다, 진 대표님.”그리고 이람을 보며 물었다.“이람 씨도 오실 건가요?”“상황 봐서요.”“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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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연구에 전념하는 일은 시간도, 체력도 많이 소모되는 작업이라는 걸 민서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일, 서하준한테는 얘기했어?”“아직.”이람도 조금 전에야 마음을 굳힌 참이었다.결혼 후, 시어머니에게 모욕을 당했던 그날 밤, 이람은 곧바로 이력서를 넣었다.그리고 SY그룹에 입사했다.그때는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서하준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이람은 제헌의 어머니 채영희를 떠올렸다.차갑고, 날이 서 있고, 누구에게도 웃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제헌 역시 채영희와 전혀 가깝지 않았다.불가피한 자리 외에는 거의 왕래가 없을 정도였다.“이람아, 갑자기 생각해보니까 너랑 서하준이랑 은근히 인연 있는 것 같아.”민서가 말했다.“아니면 네가 왜 하필 서하준 회사에 들어가서 비서 일을 했겠어. 편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잖아.”“그러게.”이람은 고개를 돌리며 뒤늦게 실감이 났다.“나 SY그룹에서 벌써 3년이나 있었네.”이람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결혼한 이후 몇 년 동안, 솔직히 잘 지낸 건 아니었어. 회사에만 가면 숨을 좀 돌릴 수 있었고, 거기서야 조금 버틸 수 있었어.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일자리가 나를 보호해 준 셈이야.”사랑 없는 결혼 속에서 이람은 뜻밖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해야 할 일이 있었고, 회사에서 사람을 만났고,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차분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이람이 처음 퇴사를 고민했던 건 임신 때문이었다.아이를 잃은 뒤에도 회사를 떠나지 못했고, 그러다 하준의 귀국을 맞이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람 자신도 고개가 끄덕여졌다.‘확실히... 인연이긴 하네.’“퇴사하려면 한 달 전에 말해야 하잖아. 아직 한 달은 여유 있어.”“괜찮아, 그 한 달 정도는 시간 있어.”민서가 바로 말했다.“어차피 너 오기 전에 팀부터 꾸려야 해. 사람 뽑고, 면접 보고. 이 한 달 동안은 내가 준비할게. 네가 합류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구 들어가면 되지.”민서는 정도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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