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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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하지만 민서는 이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였다.이람은 누구에게도 기대며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민서에게만은 모든 걸 내려놓고 기댈 수 있었다.그리고 이람 역시 민서의 버팀목이 될 힘을 지니고 있었다.이람과 민서는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왔다.무슨 일이 생기든, 언제나 상대의 뒤에 서 있었다.“나중에 나이 들면, 우리 둘이서 세계 일주하자.”이람이 말했다.“좋지. 내가 죽을 때까지 네 옆에 있을게.”이람과 민서는 술을 마시며 미래를 이야기했다.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하지만 지금의 두 사람은, 그때와는 달랐다.더 성숙해졌고, 더 단단해졌고, 더 자신감이 있었다.미래는 이미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즈음, 이람의 휴대폰이 울렸다.하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도착했어요.]이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술이 늘었고, 주량도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확실히 취해 있었다.누군가 데리러 와준다는 건, 안전한 선택이었다.“저... 저는 16번 룸에 있어요.”이람이 말했다.민서도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누구랑 통화했어?”이람은 전화를 끊으며 답했다.“서하준.”“데리러 오는 거야?”“응. 서하준한테 너부터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어.”“자기야, 너 진짜 능력 있다.”민서가 이람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서하준이 우리 자기 전용 기사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도착한 것 같아.”이람은 민서에게 조용히 말했다.“이상한 말 하지 말고, 우리 같이 나가자.”이람과 민서는 술버릇이 좋은 편이었다.취해도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평소보다 흐릿했고, 정신은 오락가락했다.문이 열리자 이람의 시야에 검은색 차림의 하준이 들어왔다.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겨 이마를 드러낸 모습, 깊게 들어간 눈썹뼈.검은 셔츠와 검은 넥타이, 검은 수트, 검은 구두.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색은 하나도 없었다.하준은 체격이 유난히 좋았다. 몸에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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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재원이 덧붙였다.“유재원의 자식이란 뜻이에요.”재원은 한쪽 팔로 민서를 안고, 다른 한쪽 팔로 유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자, 우리 아들. 이쪽은 조이람 이모야. 어서 이모라고 인사해야지.”유자는 이람을 향해 몇 번 짖어댔다.이람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그 순간, 하준의 긴 팔이 즉각 뻗어 유자를 막아섰다.그리고 재원을 노려보며 짧게 말했다.“우리 간다.”재원은 속으로 ‘쳇’ 하고 혀를 찼다.‘앞으로 이모부 될 사람이 정이란 게 없네. 괜히 점잖은 척은.’“가라 가.”재원은 손을 휘휘 저으며, 거의 잠든 민서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유재원의 아들 유자는 순식간에 찬밥 신세가 됐다.문밖에 묶인 채, 본체에게서 완전히 잊혔다.민서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고개를 비틀어 재원의 또렷한 턱선을 올려다보았다.“유재원, 경고하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마.”재원은 원래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번의 격렬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재원은 아주 고약하게 민서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눈빛에는 의미심장한 기색이 가득했다.“걱정 마. 사실은 자기랑 밤새고 싶긴 한데, 내가 그렇게 비열하게 취한 사람 건드릴 정도로 굶주린 놈은 아니거든.”민서는 술에 취해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재원이 감탄하듯 말했다.“내가 같이 취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한 번 더 굴러도, 네 약점 잡는 건 아니잖아.”민서는 재원이 대놓고 작업 거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재원은 민서를 가볍게 안아 올려, 익숙한 동선으로 안방까지 데려갔다.이불을 끌어당겨 민서의 배 위까지 덮어주고,미간을 찌푸린 채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많이 힘들어?”그 말이 끝나자마자 민서는 눈을 감은 채로 울기 시작했다.재원은 깜짝 놀랐다.‘진민서가 이런 성격이었나? 웬만한 일에는 남자보다 더 냉정한 인간인데...’‘술 마시더니 왜 이렇게 울보가 됐어. 웃기게 귀엽네.’그렇다고 해서 재원은 전혀 마음 약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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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하준이 고개를 들자마자, 이람과 시선이 마주쳤다.“깼어요?”이람의 차갑던 눈동자는 평소와 달리 서늘함도, 날카로움도 없었다.부드러운 달빛처럼 온기가 어려 있었다.“저 괜찮죠?”이람이 갑자기 물었다.하준은 이런 대화를 이람과 나눠본 적이 없었다.‘괜찮냐’라는 질문은 보통 가까운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었고, 평소의 하준과 이람 사이는 늘 절제되어 있었고, 일정한 거리가 존재했다.“괜찮아요.”“대단하지 않아요?”“대단해요.”이람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하준 씨는 참... 진심이 없어요. 그냥 대충 맞장구만 쳐 주는 거잖아요.”‘아직 완전히 깬 건 아니군.’차를 안정적으로 세운 뒤, 하준은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시트에 기대 미동도 하지 않는 이람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었다.“내려요.”평소의 이람이라면 뭐든 빠르고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다.하준은 이람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해 늘 선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람은 민서와 함께 있을 때처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다.그 솔직한 얼굴을, 하준은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재촉받아 차에서 내린 이람은 자연스럽게 하준의 탄탄한 허리를 시야에 담았다.“걸을 수 있어요?”하준이 고개를 조금 숙여 물었다.“걸을 수 있어요.”이람은 분명 걷고 있었지만, 몸은 이리저리 흔들렸다.하준이 손을 내밀자, 이람은 고집스럽게 말했다.“부축 안 해도 돼요. 혼자 갈 수 있어요.”그 말을 끝내자마자, 이람은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하준이 즉시 이람을 붙잡았다.이람은 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저... 생각보다 잘 못 걷겠네요.”“그럼 손이라도 잡고 가요.”이람은 마지못해 대답했다.“알겠어요.”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이람은 민서가 재원에게 몸을 맡긴 것처럼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혼자 벽에 붙어 서 있었다.하준은 평소와 다른, 흐릿하고 부드러운 이람의 눈빛을 보며 물었다.“아까 왜 갑자기 제가 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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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이람의 머릿속은 흐릿했지만, 생각의 흐름 자체는 또렷했다.하준이 묻는 게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왜 금욕적인 하준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도.이람은 따로 고민하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른 그대로를 입 밖으로 냈다.“하준 씨를 보면... 수학 공식이 떠올라요. 엄밀하고, 완벽하고, 아름답고, 질서가 있고... 무엇보다도, 쉽게 흔들릴 수 없는 진리 같아서요.”이람에게 완벽한 수학 공식은 기독교의 성경과도 같았다.신성하고, 범접할 수 없고,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존재.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완벽함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산산이 깨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파편을 다시 주워 담아 더 정교하고 질서 정연한 형태로 복원하고 싶어지는 욕망.하준의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금욕적인 태도가 이람에게는 그런 연상을 불러일으켰다.하준을 수학 공식에 비유하는 건... 이람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였다.하준이 이 말을 이해했을지 확신이 없어서 이람은 한 번 더 강조했다.“그러니까... 정말, 정말 좋아해요.”“이해했어요.”이람의 입에서 나온 ‘좋아한다’는 말은 하준에게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남겼다.이게 이람의 본심인지... 아니면 술기운에 흘러나온 말인지... 하준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잠시 후, 이람이 다시 말을 꺼냈다.“그럼 하준 씨는 왜 이렇게 입은 거예요?”하준은 짧게 답했다.“장례식에 다녀왔어요.”“누구 장례식이요?”이람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어릴 때 저를 돌봐주시던 분이 돌아가셨어요.”강수철 회장과 함께 지내던 시절, 하준을 보살펴주던 노인이었다.연락했을 때, 유가족들은 하준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준은 직접 그 자리에 다녀왔다.이람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하준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준은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다가 잠깐 멈췄고, 이내 고개를 들어 이람을 바라봤다.“마음 아팠어요?”이람이 물었다.하준은 본래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가장 익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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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이람이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민서와 재원처럼 그렇게 가까워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오히려 누구와 있든,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항상 존재했다.늘 의식이 또렷했고, 절제되어 있었고, 체면을 지켰으며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하준은 확신하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재원처럼 염치없이 선을 넘는 순간, 이람은 망설임 없이 자신에게 이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이람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아무리 ‘가짜 연애’라 하더라도, 하준의 집으로 들어가는 일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그건 이람이 이혼 이후 몸으로 배운 교훈이었다.이람에게는 자기 집이 있었고,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친구와 가족이 있었고, 그리고 제헌이라는 존재가 남긴 분명한 경고도 있었다.지금의 이람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건 사랑이었다.그래서 하준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이람의 곁에 머무는 것.같이 살고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짜 연인 역할을 함께하는 것.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이람은 이미 충분히 해낸 셈이었다.이람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다.일을 대하듯, 인간관계에도 진지하게 임했다.2년이라는 시간도 절대 짧지 않았다.하준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서하준, 서두르지 마.’...샤워를 마친 하준은 머리가 반쯤 마른 상태로 검은색 가운을 입고 나왔다.이람은 잠깐 쉬었지만 여전히 몹시 피곤했다.작은 소리가 들리자, 다시 눈을 떴다.깨끗이 씻은 하준은 검은 가운만으로도 존재감이 뚜렷했다.질 좋은 원단은 한눈에 보였고, 검은색과 금빛이 섞인 허리 끈이 남자의 허리를 단정하게 잡아주고 있었다.탄탄하고 군더더기 없는 허리선, 넓은 어깨, 과하지 않은 가슴 근육까지.가운 하나로도 충분히 형태를 살리고 있었다.이람은 처음으로 ‘잠옷 차림의 하준’을 봤다.차갑고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밀려왔다.이람은 무심코 하준의 허리를 몇 번 더 훑어본 뒤, 조용히 시선을 거뒀다.“저도 씻고 올게요.”술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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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하준은 ‘강제헌’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아주 짧은 시간, 고작 2~3초였지만 그 침묵은 깊었다.그의 시선은 감긴 이람의 눈 위에 머물렀다.길고 단정한 속눈썹.그 아래에서 하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어둡게 뒤집혔다.감정이 뒤엉켜,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이람이 무의식적으로 다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하준은 그제야 드라이기를 켰다.이람의 목소리는 원래도 작았다.드라이기의 소음은 충분히, 아니 과할 정도로 이람의 말을 삼켜버렸다.이람이 또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하준은 듣지 못했다.정확히 말해, 듣지 않았다.하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굳이 듣고 싶지 않았다.이람의 머리카락은 이미 다 말랐다.이람이 잠든 상태라면 감기 들 일도 없을 것이다.하준은 그제야 드라이기를 끄고, 이람이 잠들었는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바라봤다.그는 아주 가볍게 이람의 뺨을 두드렸다.눈빛은 여전히 깊고 무거웠다.“이람 씨...”잠시 뒤,“응...”하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완전히 잠든 건 아니었다.하준은 그에게 ‘잘 자요’라고 말하려 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화면에는 ‘서주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하준의 어머니였다.서주연은 일 년 내내 하준에게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하준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받았다.[강수철 회장 생신이 아직 보름 넘게 남았지만, 내가 좀 일찍 갈 거야. 그때는 네 집에서 지낼 거고, 이제는 우리 모자도 좀 잘 지내보자.]밤은 고요했다.스피커폰도 아니었는데, 이람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이람은 중요한 일에는 유난히 예민했다.졸음을 억지로 누르며, 천천히 눈을 떴다.하준은 이람이 깨어난 걸 알아차리고, 그를 바라봤다.깊은 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람은 하준이 아직 통화 중이라는 사실을 잊은 줄 알고, 입을 열려고 할 때 하준이 먼저 말했다.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안 됩니다. 저는 지금 여자친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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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하준 씨, 오늘은 일찍 쉬세요.”이람의 그 한마디에 방금까지 이성을 뚫고 나오려던 충동은 단숨에 끌려 내려왔다.하준은 그제야 정신이 또렷해졌다.조금 전까지 눈에 서려 있던 짙은 어둠이 마치 놀란 것처럼 순식간에 물러났다.하준은 속으로 안도했다.이람이 취해 있어서 다행이었다.조금이라도 맑은 상태였다면, 모든 걸 드러낸 자신의 시선을 느꼈을 테니까.‘그땐 이람이 나를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야.’‘이람이 나를 혐오하지 않을지가 문제겠지.’‘내가 계산적이고 속내를 숨긴 비열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까...’하준은 감정을 억눌렀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몸부림치던 짐승을 다시 눌러두고, 늘 그래왔듯 차분하고 절제된 남자로 돌아왔다.“푹 쉬어요.”그 말을 남기고 하준은 안방을 나섰다.문이 조용히 닫혔다.이람은 관자놀이를 눌렀다.머리가 약간 욱신거렸다.조금 전, 순간적으로 어떤 시선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노려보는 것처럼.자신은 아무 힘도 없는 양이었고, 한 번 물리면 저항조차 못 한 채 삼켜질 것 같은 기분.‘무서워...’이람은 속으로 생각했다.‘술을 너무 마셨네. 헛것까지 보이고.’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단단히 다짐했다.‘다음부턴 절대 이렇게 마시지 말자.’이람은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잠들었다....하준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심장 박동은 여전히 고르지 않았고, 호흡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한참을 그렇게 누워 뒤집히는 감정을 스스로 다독였다.‘언젠가는... 이람의 머릿속에서 강제헌이라는 이름을 전부 밀어낼 거야.’‘그 자리에 나 하나만 남게 할 거야.’‘어릴 때부터 나는 강제헌과 다투지 않았어.’‘오히려 늘 양보했지. 하지만 이람 씨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아.’...새벽 4시.하준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연훈이었다.이 시간에 연훈이 전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대개는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전화받자마자 연훈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제헌한테 찍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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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남진은 말을 마친 뒤에도 하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이람은 하준이 각별히 신임하던 인물이었고, 대외 일정이 있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곁에 두던 비서였다.그런 이람이 갑작스럽게 퇴사를 이야기했으니, 하준이 불편한 기색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이람이 이 일을 하준과 미리 상의했는지까지는 남진도 알 수 없었다.그러나 하준은 잠깐 미간을 찌푸렸을 뿐, 별다른 감정 변화 없이 말했다.“알겠습니다.다른 사람 따로 붙이지 말고, 이번에는 우 비서랑 가요.”“네, 알겠습니다.”남진은 하준의 얼굴에서 어떠한 동요도 읽어내지 못했다.‘그럼 이람 씨랑 서 대표님이 이미 얘기된 사안이겠군요.’‘괜히 더 관여할 일은 아니겠지.’남진은 그렇게 판단하고 사무실을 나섰다.문이 닫히자 하준의 미간은 오히려 더 깊게 파였다.‘왜 갑자기 퇴사겠다고 하지?’하준은 당장이라도 이람을 불러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하지만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지금은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들을 것만 같았다.‘일단 나가서 일부터 처리하자.’하준은 문득 이해됐다.왜 자신이 선물한 블록이 이람의 집에서 장식장이 아닌 수납장 안에 들어 있었는지.이람에게 하준은 그만큼의 비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이럴 때마다 하준은 제헌을 깊이 질투하게 되었다.이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지... 그 마음을 주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 사람인지,하준은 잘 알고 있었다.그런 이람이 제헌을 깊이 사랑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하준을 더욱 괴롭게 했다.하준의 눈가에 서리가 내렸다.‘나도... 정말 딱, 아주 조금만 더 빨랐으면.’하준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답답함을 눌러 담고, 세진에게 연락을 넣었다.출국 준비는 이미 남진이 모두 마쳐둔 상태였다.세진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하준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밖으로 나갔다.세진은 한눈에 알아봤다.하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강제헌 때문이겠지.’그 정도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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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너, 부연훈 하나만 계속 물고 늘어질 생각이야?”제헌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천천히 캐다 보면 언젠간 증거 나오겠지.”제헌의 1차적인 목적은 KU그룹 관련 건을 정리하는 것이었다.실질적인 손실은 크지 않았지만, 사안이 복잡해 마무리까지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했다.이제 큰 고비는 넘겼고, 원래라면 슬슬 돌아가도 될 시점이었다.하지만 제헌은 하준의 꼬리를 잡고 싶었다.설령 증거를 손에 넣는다 해도 그게 하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현실적으로 보면 큰 의미는 없었다.그럼에도 제헌의 속은 답답했다.‘서하준한테 당했는데, 왜 나만 이 억울한 걸 삼켜야 하지?’제헌은 강수철 회장에게 이 일을 알리고 싶었다.최소한 강 회장이 아끼는 손자 하준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이라도 알게 하고 싶었다.지후는 제헌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몇 장을 집어 들고 대충 넘겨봤다.그러다 피식 웃었다.“원현, 진짜 답 없네요. 이 정도 일도 정리를 못 해요?”원현은 분명 능력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지후의 눈에는 영 시원찮아 보였다.제헌이 미간을 좁히며 낮게 말했다.“원현, 애 생겼어.”지후는 잠깐 말이 막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렇구나.”그리고 투덜거리듯 덧붙였다.“인생은 참 부지런히 즐긴다.”원현이 무능력해서라기보다는 하준이 판을 짠 상황이 워낙 정교했다.보통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든 수였다.“너는 부연훈 쪽 계속 주시하고 있어. 나는 따로 사람 풀어서 조사할게.”지후가 어깨를 으쓱했다.“여기까지 온 김에 나도 좀 움직여야지.”제헌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때 지후의 시선이 책상 옆에 놓인 쇼핑백으로 향했다.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보자 백합 모양의 팔찌가 들어 있었다.지후는 하유리가 백합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굳이 묻지 않아도 이게 제헌이 유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건 분명했다.지후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마음속에서 불쾌감이 스쳤다.‘조이람 씨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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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제헌은 이람의 차분하고 서늘한 모습을 떠올렸다.‘조이람은 딱 이과생 같아. 전공도 이과인데, 예술이랑 연결된다고?’‘그림보다는 차라리 레이싱이 더 어울리지.’윤정이 말을 이었다.“네. 현재로서는 확인된 유일한 가능성 있는 취미입니다.”제헌은 고개를 숙였다. 본능적으로 이람이 미술관에 간 건, 그저 순간적인 기분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이람과 예술은 썩 어울리지 않았다.하지만 문제는 제헌이 이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건 제헌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제헌은 마음속으로 계산했다.이람을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면, 한두 번쯤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솔직히 마음에 들지도 않는 방식이었지만.그래도 제헌은 인정했다.이람의 시선이 다시 오롯이 자기에게만 머무는걸... 제헌은 분명히 좋아했다.그게 자신의 진심이라면,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었다.‘조이람은 원래 나를 사랑했어.’‘내가 조금만 먼저 다가가면, 다시 데려오는 건 어렵지 않아.’제헌은 그만한 자신이 있었다.‘서하준이 일부러 나를 따돌리려고 M국으로 보내서 뒤처리하게 만든 거잖아.’‘그래서 나를 비워 두고, 자기가 그 틈을 파고들겠다는 건데...’제헌의 입꼬리가 차갑게 굳었다.‘조이람은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야.’‘서하준이 아무리 애써 봐야 이람이는 돌아보지도 않을 거야.’‘결국 헛수고지.’제헌은 무표정하게 지시했다.“근처 미술관들 조사해. 작품 괜찮은 거 있으면, 사 와.”선물 따위는 윤정에게 한마디 던지면 끝나는 일이었다.그 정도로 수고를 들이는 건... 제헌에게 전혀 부담이 아니었다.이람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그 미묘한 불편함도 어느새 사라졌다.‘고작 여자 하나 달래는 거잖아. 아주 쉬운 일이야.’‘유리 선물도 그랬지. 말 한마디면 끝나는 거지.’...이틀 뒤가 되어서야 제헌과 지후는 하준이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하준은 해외 지사 정리를 명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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