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1021 - Chapter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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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1화

제은은 손을 씻고 돌아올 때도 이건의 부축을 받았다.테이블 위 전골냄비는 이미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이건은 제은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었고, 제은이 말한 재료를 먼저 육수에 넣었다. 익으면 공용 젓가락으로 건져 제은의 접시에 먼저 담아 줬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해 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고 나서야 이건도 자기 몫을 집어먹었다.이건은 꽤 잘 먹는 편이었다. 식사량도 많았고, 고기도 많이 먹었다.이건은 전에 제은과 몇 번 식사한 적이 있어서 제은도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넉넉하게 시킨 모양이었다. 둘이 먹기엔 충분했다.제은도 평소 운동량이 많았다. 일부러 체중을 조절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병원에서 한두 시간 허비한 탓에 배도 꽤 고팠고, 한밤중에 야식을 먹는다고 해서 거리낄 것도 없었다.제은은 이건이 또 제은 쪽으로 익은 재료를 먼저 건져 놓고, 그다음에야 자기 걸 챙기는 걸 보다가 문득 물었다.“왜 이렇게 사람 챙기는 데 자연스러워?”이건이 되물었다.“뭘 챙겨.”“이렇게 내 앞접시에 먼저 놔주는 거.”“그냥 손에 익어서.”제은은 이건의 표정을 봤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건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제은은 바로 말을 이었다.“그럼 너 원래 이래? 여자랑 밥 먹으면 원래 다 이렇게 챙겨 줘? 이렇게 사람 잘 챙기는데, 지금까지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없었어?”이건은 왜 말이 저쪽으로까지 튀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내 주변에 여자 없어.”제은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말이 돼? 못생긴 것도 아닌데. 널 좋아하는 애들 아무도 없었다고?”이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시선이 제은 쪽으로 넘어왔다. 아무 표정이 없을 때의 이건은 사람을 은근히 압도했다. 하지만 말투는 덤덤했다.“좋아하는 사람은 있겠지.”“누가 너를 좋아하는데?”“많겠지.”제은은 코웃음을 쳤다.“난 네가 네 얼굴값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네? 신경 안 쓰는 척만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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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이건은 연나가 누군지 떠올리는 데만 몇 초 걸렸다. 제은이 자기를 두고 연나를 좋아하냐고 따지는 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유도 없이 제은의 입에서 쓸데없는 추측이 퍼지는 건 더 싫었다.“한밤중에 여자애 하나가 사람한테 쫓기듯 뛰고 있으면, 그게 누구든 난 갔을 거야. 다친 상태였으니까 병원 데려가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고. 그리고 난 연나 안 좋아해.”이건은 되묻듯 말했다.“왜 내가 부연나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데? 어느 포인트에서 그렇게 생각이 이어져?”제은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이건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니, 그 화가 또 바로 가라앉았다.제은은 피식 웃었다. 자기 반응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이 정말 누구한테나 저렇게 잘해줄 수 있다는 걸 떠올리면 또 기분이 나빠졌다.제은이 말했다.“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아무나 막 도와주지 마.”이건은 곧장 받아쳤다.“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그러게, 왜 이건한테 저런 요구를 하는 건지 따지고 들면 딱히 설명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제은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이건이 남자든 여자든 누구한테든 저렇게 신경 써 주는 걸 상상하면 기분이 더러웠다. 그러니 자기 마음에 들게 굴라고, 멋대로 요구하게 되는 거였다.“이유는 없어.”제은은 턱을 살짝 들고 말했다.“그래도 넌 내 말 들어야 해.”이건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누가 자기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건 싫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는 사람이었다.제은은 끝내 이건의 확답을 못 들으니 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그래도 몇 번 겪어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은 자기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누가 끌고 간다고 끌려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결국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이건의 생각에 달려 있었다.그러니 여기서 괜히 더 부딪치면 안 됐다. 잘못 건드리면 이건 특유의 반발심만 세질 게 뻔했다.제은은 바로 말을 바꿨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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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갑자기 눈앞으로 손 하나가 뻗어왔다. 이건은 제은의 핸드폰을 빼앗듯 가져가더니, 그대로 소파 위에 툭 던져 버렸다.제은은 날아가듯 던져진 핸드폰 쪽을 한 번 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이건을 노려봤다.“뭐 하는 거야?”이건이 낮게 말했다.“난 그런 거 필요 없어.”제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이건은 담담하게 말했다.“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세뱃돈 받는다고 진짜 복이 생겨? 난 그냥 쓸데없다고 생각해.”제은은 곧바로 받아쳤다.“의미는 그냥 의미인 거지. 기분 좋은 시작이고, 하나의 기분 좋은 핑계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일이잖아. 그걸 왜 못 받아들여?”이건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했다.“싫어. 안 하고 싶어. 그게 다야.”제은은 화가 치밀어 올라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한테는 뾰족한 가시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누가 호의를 내밀어도, 그걸 통째로 찢어 버릴 만큼 날카로운 가시였다.제은이 모처럼 좋은 뜻으로 뭘 해 주려 했더니, 하필 안목 없는 이건은 주는 떡도 받아먹질 못했다.제은은 거칠게 쏘아붙였다.“그러니까 네 주변에 친구가 없는 거야. 너 진짜 이상해. 완전 별종이야. 누가 좋게 대해 줘도 못 받아들이고, 너 진짜 재미없어도 너무 없거든? 세상에 너 같은 애가 다 있냐? 진짜 짜증 나.”이건은 제은이 화가 잔뜩 오른 얼굴로 뱉어내는 말을 가만히 들었다.예전에도 이런 말은 많이 들었다. 너무 차갑다, 사람을 무시하느냐, 왜 그렇게 벽을 치고 사느냐 등등. 이건을 향해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은 적지 않았다.이건은 진작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가슴 안쪽이 따끔했다. 날카롭게 찔린 듯한 불쾌감이 훅 올라왔다. 그 불편한 감정에 이건은 미간을 꽉 좁혔다.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없이 자기 앞에 있던 그릇과 젓가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더는 여기 앉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 반응을 본 제은은 더 화가 치밀었다. 제은은 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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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이건이 그렇게 미련 없이 가 버리자, 제은은 화가 나서 머리가 멍해졌다.예전처럼 서로 틀어져 있던 상황이면, 이건이 자기 체면 안 세워 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멀쩡하게 함께 야식을 먹고 있었고, 새해라고 제은이 먼저 세뱃돈까지 보내 줬다. 제은 나름대로는 꽤 잘해 준 편이었다. 그런데도 이건은 그렇게까지 매몰차게 등을 돌려야 했나 싶었다. 정말 저렇게까지 사람 체면을 무시할 수 있나 싶었다.제은은 여태 살면서 이건처럼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이람도 이건만큼 종잡을 수 없는 쪽은 아니었다.이건의 반응은 진짜 제은이 알고 있던 인간관계의 범위 자체를 벗어났다. 제은은 어이가 없을 만큼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완전히 휩쓸리진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떨어져서 자기 상태를 객관적으로 구경하듯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오늘 있었던 일들은 하나같이 너무 황당했다. 떠올릴수록 웃겼다. 그래서 제은은 한동안 소파에 앉아 혼자 조용히 웃었다.그러고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자기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이건과의 대화창이 그대로 떠 있었다.상대가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보였다.제은은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뭐야.’‘설명이라도 하려는 건가?’정말 뭐라도 변명할 생각이라면, 그건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유만 그럴듯하면 이번 한 번쯤은 그냥 넘어가 줄 수도 있었다.제은은 은근히 기대했다. 그래서 소파에 기대앉은 채 느긋하게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뭐야, 왜 안 와?’‘안 보내는 거야?’제은은 심지어 한참 더 기다렸다. 그러다가 입력 중이라는 표시마저 사라졌고, 대화창은 다시 조용해졌다. 새로 뜨는 메시지도 없었다.그제야 제은은 확실히 알았다.이건은 안 보낼 생각이었다.‘와, 미친.’이건이 또 자기 사람 약 올린 거라는 생각에 제은은 그대로 심장을 부여잡았다. 진짜 이건 때문에 화병에 걸릴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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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제은은 전에는 자기 얘기만 툭툭 던져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이건에게 물었다.‘조이건이 답장 할까?’제은은 그걸 가늠해 봤다.만약 이건이 답하지 않으면, 제은은 또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다음에 얼굴을 마주치면 왜 답을 안 했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또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갈 구실이 생긴다.설날에 있었던 불쾌한 일은 제은이 굳이 오래 마음속에 붙들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이건이 그런 식으로 굴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제은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나중에 이건이 제은 말도 잘 듣고 얌전히 굴게 되면, 그때 가서 하나씩 다 따질 생각이었다.제은은 본가에 와도 딱히 할 게 없었다. 집 자체는 손을 많이 봐 둬서 무척 고급스럽고, 먹고 자는 환경도 H시에 있을 때랑 별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이쪽이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었다.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 제은에게는 아무 매력이 없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건 인정했다. 그런 건 하루이틀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길어지면 제은은 답답해서 더 견디지 못했다.예전에 한 달 동안 여기서 근신했을 때를 떠올리면, 그때 안 미친 게 용할 정도였다.그래도 이번에는 집안 행사라서 제은이 오늘만큼은 꼭 내려와야 했다.심심할 때는 이건을 공략하는 것도 제법 괜찮은 소일거리였다.제은에게 이건을 공략하는 일은 마치 게임 퀘스트 같았다.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도 하나의 관문 같았고, 그걸 해치우고 나면 잠깐 쉬어도 되는 식이었다.점심을 다 먹고도 이건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제은은 일단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심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묘하게 마음에 안 드는 점도 하나 있었다. 집안 행사인데 정작 오빠 제헌은 오지 않았다는 거였다.제은은 정말 한마디하고 싶었다. 자기는 이런저런 규칙을 다 지켜야 하는데, 왜 제헌은 늘 예외인지 불만이었다.물론 최근 제헌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었다. 모진과 모연의 일 이후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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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이건이 아직도 제은의 다친 발목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끝까지 차갑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정도면 됐다 싶어서 제은은 이건의 무성의한 답장을 그냥 넘기기로 했다.[이틀인가 사흘 정도 안 걸었더니 이제 거의 다 나았어.]제은은 원래 몸이 튼튼한 편이었다. 기본 체력도 좋았고, 몸 관리에 필요한 상식도 어느 정도 있었다. 평소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지금은 거의 멀쩡한 상태였다.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이건은 또 답이 없었다.제은은 바로 짜증이 났다.[너 있는 데로 가서 테니스 치겠다니까, 그것도 거절하려는 건 아니지?]한참 뒤에야 이건의 답장이 천천히 올라왔다.[알겠어. 와.]제은은 굳이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저 답장이 오기 전 몇 초 동안, 이건은 분명 속으로 이것저것 재고 있었을 거였다. 오게 할지 말지, 귀찮아할지 받아줄지 혼자 따져 보다가 결국 오라고 한 게 뻔했다.그 반응만으로도 제은은 기분이 꽤 좋아졌다. 어차피 이건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제은은 그런 과정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다만 이건이 정말 끝까지 틈 하나 안 주고, 체면도 안 세워주고, 기회도 안 만들려 들면 꽤 피곤해졌을 것이다.그런데 이렇게라도 이건이 물러났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제은은 또 습관처럼 이건을 건드렸다.[왜 이렇게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 같지?]이건은 한번 결정하면 더는 같은 문제로 끙끙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정이 끝나면 그다음 해야 할 일만 완벽히 정리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인지 제은의 짓궂은 말은 받아주지도 않고, 바로 주소부터 보냈다.[대충 얼마나 걸려?]벌써 순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제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 딱딱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좀 재밌고 말이 통해야 했다.[나 본가에 있어. 지금 출발하면 두 시간쯤 걸릴 것 같은데, 너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말투는 너무도 당연했다. 명령에 가까웠다.누군가를 두 시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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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설날에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는데도, 제은의 성격에 어떻게 또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건지 이건도 이해가 안 갔다.제은은 그 뒤로도 메시지를 여러 번 보냈다. 전부 별것 아닌 일상이었다.자기 일상, 있는 그대로 날것의 생활.이건은 제은이라면 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면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가에 내려가 있는 모습은 의외로 생활감이 있었다.닭을 키우는 제은의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이건은 무의식중에 핸드폰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시간을 확인했다.오후 2시.제은은 대충 4시쯤 도착할 거라고 했다.제은이 오면 이건은 같이 테니스를 쳐야 했다. 그러려면 체력을 조금 아껴야 했다. 남은 두 시간 동안은 더 이상 코트에 들어가면 안 됐다.원래 이건 계획은 한 시간만 치고 바로 돌아가는 거였다.이제는 계획을 바꿔야 했다.이건은 원래 정해 둔 흐름이 흔들리는 걸 싫어했다. 갑자기 변수가 생기거나, 일정이 바뀌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거절했을 것이다.그래도 이미 제은에게 오라고 했으니, 바뀐 상황에 맞춰 다시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기다리는 동안 이건은 체육관 휴게실에 앉아 이것저것 자잘한 일을 처리했다.제은은 핸드폰을 끄고 가족들한테 가서 먼저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원래는 허락되지 않을 일이었다. 오늘 밤은 본가에서 자고 가는 걸로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예상대로 엄마는 바로 반대했다.제은이 곧장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친구한테 급한 일이 생겼어요. 저 진짜 지금 가봐야 해요.”채영희는 단호했다.“네 친구들이 어떤 애들인지 내가 모르겠어? 맨날 얼굴도 안 비쳤으니 오늘은 무슨 일 있어도 집에서 자고 가.”채영희는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한 엄마였다. 성격도 센 편이었고, 자식 교육에도 강한 압박을 주는 방식이었다. 특히 제헌에게는 더 심했다. 하준의 어머니를 의식하는 감정까지 섞여 있어서, 제헌이 어릴 때 받던 압박은 더 견디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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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제은은 원래 이건한테 왜 마중도 나오지 않느냐고 물을 생각이었다.이런 경우에는 먼저 나와서 데리고 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낯선 장소에 왔으면 길도 안내해 주고, 이것저것 자연스럽게 챙겨 주는 게 더 매너 있는 거니까.제은은 누군가와 어울릴 때 이런 식의 홀대를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와서 아무도 안내해 주지 않고, 알아서 찾아오라는 식으로 굴다니. 솔직히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그래도 제은은 이건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다.대신 몰래 들어가서 이건이 뭘 하고 있는지 먼저 보고 싶어졌다.제은은 자기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제은은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걸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제은에게 중요한 건 늘 하고 싶은지 아닌지 둘 중 하나였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까지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제은은 애초에 이건이 고른 장소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방금 산 장비를 들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당장 되돌아가고 싶어졌다.코트 수가 많은 걸 보니 체육관 실내 규모는 꽤 컸다. 대신 단점도 분명했다. 넓은 공간 하나에 수많은 코트가 한꺼번에 몰려 있다 보니, 실내가 너무 시끄러웠다. 코치가 소리치는 목소리, 공 치는 소리, 응원하는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가 사방에서 뒤섞였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다.실내 공기도 탁했다. 답답하고 텁텁했다. 어디선가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땀 냄새와 담배 냄새 같은 것도 옅게 섞여 있어서 약간 불쾌했다.‘조이건은 이런 데서도 아무렇지 않아?’제은이 평소 테니스를 치는 곳은 회원제 클럽이었다. 서비스야 말할 것도 없고, 공기마저 관리된 향이 날 정도로 깔끔했다. 그런 곳만 다니다가 이렇게 후끈하고 시끄럽고 냄새까지 뒤섞인 공간에 들어오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제은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한 번 굴렸다.‘내가 진짜 별 고생을 다 하네.’그래도 이를 한 번 깨물고 안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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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이건은 미간을 좁혔다. 말 섞고 싶지도 않았고, 귀찮다는 기색도 분명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아직 안 온 것 같은데요. 그럼 오기 전까지만 잠깐 칠래요? 제가 서브 넣을게요. 받아만 주시면 돼요, 네?”여자의 웃는 타이밍이 적절했다. 너무 들이대는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소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거절하기가 곤란했다.이건은 여자의 청을 이미 한 번 거절했다. 그런데도 여자가 계속 매달리자,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은 차갑게 한 번 쳐다본 뒤, 그대로 시선을 거뒀다.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내린 채, 눈앞의 예쁜 여자 자체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상대를 공기 취급하는 건 꽤 무례한 방식이었다. 당하는 쪽은 민망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여자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건 같은 정도로 잘생긴 남자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제은은 그런 모습의 이건을 보며 냉담한 반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저기서 이건이 조금이라도 여지를 줬으면, 제은 쪽에서 바로 뒤집어졌을 것이다.예전에는 이건의 차가운 태도가 짜증 났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냉정한 걸 보니 오히려 괜찮았다.온 세상 사람을 다 밀어내는 식이라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또 제법 마음에 들었다.제은은 평소 이런저런 투자 건으로 사람 많이 만나고, 여러 부류의 사람과 협상도 자주 했다. 보는 눈도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먼저 들이대는 여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이건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낯선 남자한테 저렇게 먼저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꽤 대단한 배짱이었다.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여자다.다만 운이 없었다.이건은 제은이 점찍은 먹잇감이었다. 제은의 소유욕은 강했고, 때로는 병적으로 느껴질 만큼 집요했다.그러니까 저 여자는 여기서 빠져야 했다.제은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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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설날 밤에도 제은은 뜬금없이 이건에게 연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이건은 제은이 엉뚱한 데로 생각이 튀는 사람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런 쓸데없는 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유치하고, 심심하니까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거라고 여겼다. 굳이 맞받아치지도 않았다.사실 이건은 평소 자기 방식대로라면, 제은의 질문을 그냥 흘려듣고 곧장 공이나 치자고 했을 거였다.하지만 제은은 성격은 만만치 않았다. 한번 무시당했다 싶으면 화를 내거나, 아니면 더 심하게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게다가 설날 그날 밤, 이건은 변명 한마디 없이 제은의 집을 나와 버렸다. 그 뒤로 따로 연락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제은은 그 일을 오래 붙들지 않고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제은 같은 사람에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이건의 성격이 아무리 까다롭고 제 기준이 분명해도, 지금 여기서 제은에게 싸늘하게 구는 것은 결코 유리한 선택이 아니었다.무엇보다 제은과 공을 치기로 한 것도 이건 자신이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기 때문에 여기서 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그래서 이건은 짧게 설명했다.“우리 집에서 여기 가까워. 편해서 온 거야.”제은은 바로 받아쳤다.“프라이빗한 데도 있었을 텐데? 네가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잖아. 내가 알기로는 고급 클럽 한두 번 끊는 게 부담되는 수준도 아닐 텐데, 왜 굳이 이런 데 와? 너는 손발 고생이 취미야?”제은은 자꾸 주변 시선이 이쪽으로 꽂히는 걸 느꼈다.제은이 오기 전에는 다들 이건을 보고 있었을 거였다.그걸 떠올리니 기분이 또 나빠졌다. 자기가 눈여겨보는 걸 다른 사람들이 같이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슬렸다. 제은은 괜히 시비를 걸듯 코웃음을 쳤다.“아무리 봐도 고의성이 다분해. 사람들 시선 끌려고 일부러 이런 데 오는 거지.”이건은 제은의 막무가내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면 진짜 할 말이 없어졌다. 성격이 다르면 같은 말을 해도 자꾸 틀어질 수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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