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741 - Chapter 750

1025 Chapters

제741화

제헌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낮고 차가웠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람은 잠깐 착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락했던 것처럼 느껴졌고, 이미 몇 달이나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이람은 건태에게 손으로 잠시 통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뒤,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전화받았다.굳이 ‘무슨 일이야’ 같은 형식적인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서 이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3초쯤 흘렀을 때, 제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새해 복 많이 받아.]또 2초가 지나서야 이람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새해 복 많이 받아.”[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건 없어?]“없어.”[하...]제헌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몇 번이나 낮게 웃은 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괜찮아. 그냥 너무 보고 싶어서.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제헌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이람이 그 목소리를 듣고 싶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늘 그랬듯, 제헌은 자기 감정만 앞세웠다.이람은 미간을 좁혔다.“이제 이런 거 진짜 필요 없어. 각자 자기 인생 사는 게 낫지 않아?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나 하준 씨랑 사귀고 있는 거, 그건 사실이고, 너도 봤고 이미 다 알잖아.”...이람으로부터 약 1000미터쯤 떨어진 호텔 최상층, 로열 스위트룸.통유리창 앞에는 망원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제헌은 렌즈를 조정한 채 정원에서 전화를 들고 서 있는 이람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제헌은 잠들기만 하면 거의 매번 이람을 꿈에서 봤다.하지만 현실 속의 이람은 하준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거리를 걷고, 풍경을 바라보며 지냈다.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안정되고 다정해 보였다.제헌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부터 나는 내 인생을 제대로 살 수가 없었어. 네가 다시 내 옆에 있지 않는 한은.”‘역시 그럴 줄 알았어.’이람의 직
Read more

제742화

이람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조이람, 내가 찾아갈게. 거기서 기다려.”제헌이 전화를 끊은 후, 망원경 시야 안으로 하준이 갑작스럽게 들어왔다. 하준은 곧바로 이람을 끌어안았고, 다친 곳은 없는지 빠르게 확인했다.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하준은 고개를 들어 차갑게 위쪽을 올려다봤다. 거리는 멀었다.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거리였지만, 묘하게도 서로를 의식한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팽팽한 긴장이 맞부딪쳤다.제헌이 낮게 웃었다.“이렇게 빨리 들킨 건가?”제헌은 핸드폰을 바닥에 던지듯 놓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그는 이람을 보고 싶었고, 이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들킬 위험은 분명히 있었다. 하준의 움직임이 이렇게 빠른 걸 보면, 하준 역시 제헌이 무슨 짓을 할지 경계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람은 제헌의 말에서 겨우 벗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하준의 눈에서 경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무슨 일 있었어?”“강제헌이 여기 있어.”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이람은 놀랐다. 제헌의 집요함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았다.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사람 보내서 쫓게 했어. 하지만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하준의 말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스쳤다가 곧 가라앉았다. 하준은 다시 이람을 바라봤다.“전화 왔었어?”이람은 시선을 내리고 제헌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우리 사이에 가시가 되겠대요.”하준은 이람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그럴 일 없어.”이람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랑 함께할지는 내가 정하는 일이야.’그 의지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제헌의 존재 때문에 이람은 당분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고, 함께 있는 시간은 오래된 부부처럼 안정되고 자연스러웠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집중하는 시기였다. 제헌의 도발까지 겹치면서 두 사
Read more

제743화

“작년 6월에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나?”제헌이 물었다.제헌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 이람의 예감은 몹시 좋지 않았다.이람은 물론 알고 있었다. 작년 6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그때 이람은 임신 중이었다.‘왜 지금 이 얘기를 꺼내?’‘추억을 들추려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이람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이람의 변화를 알아챈 제헌이 말했다.“역시 아직도 우리 아이 기억하고 있구나.”이람의 표정이 굳었다.지금의 이람은 아이에 대해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람은 분명 기대하고 있었다. 첫 아이였고 남다른 의미였다. 결국 지켜내지 못한 그 아이는 이람 마음속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고, 누구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되었다.그런데 제헌은 그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이람의 눈에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강제헌, 정말 이 얘기를 하겠다고 나를 부른 거야?”제헌은 이람을 보다가 가슴이 저렸다.“미안해. 그때 나는...”이람이 말을 끊었다.“지금의 너라도 결과는 똑같아. 너는 처음부터 그 아이를 기대한 적 없었잖아.”“그런데 지금 이 얘기를 꺼내서 나를 감동하게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화나게 하고 싶은 거야?”이람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제헌을 똑바로 바라봤다.“우리 반년 넘게 안 봤어. 이 10분 동안 나는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아이 얘기는 하지 마.”“할 말도 없고, 진짜로 말하면 그냥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뿐이야. 네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지.”제헌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웃었다. 자조적이면서도 상처받은 듯한, 어딘가 균형이 무너진 웃음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싸우면 그게 밀당이라던데, 우리는 싸우면 서로 칼을 꽂아. 이람아, 과거에는 내가 잘못했어.”“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 아이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하고.”이람은 잠시 멈칫했다.‘만약’이라는 가정은 이람의 선택지에 없었다.“그런 가정은 아무
Read more

제744화

예상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가장 먼저 드는 반응은 부정이었다.이람의 머릿속이 몇 초간 텅 비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도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여전히 뒤엉켜 있었다.“강제헌, 너도 적당히 해야지. 나한테 집착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제는 아이까지 끌어들이는 거야? 양심은 있냐?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사기꾼.”제헌은 이람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람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제헌은 서류 한 묶음을 꺼냈다.“이거 봐.”이람은 서류를 집어 들자마자 그대로 제헌에게 던졌다.“이제는 문서까지 위조해서 나를 속이려고 해?”이혼 이후 이람이 격하게 감정을 드러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몇 마디 말로 폭발하듯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이번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이람의 반응과 말은 단순한 분노 때문만은 아니었다.‘이게 전부 사실이라는 걸, 나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그래서 더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제헌은 날아온 서류를 손으로 막은 뒤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법률 문서를 펼쳐, 이람 앞에서 천천히 한 장씩 넘겼다. 서로 다른 시기의 초음파 사진들이 끼워져 있었다.“우리가 아직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지후한테도.”“이건 나에게 기회였거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됐어. 회사 일로 해외에 나갔다고 한 건 그냥 명분이었고.”이람의 눈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이람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손등의 혈관이 도드라졌다.“이 모든 걸 치밀하게 준비했어. 서하준도 아무 눈치채지 못하게. 목적은 단 하나였어. 너희 모두를 속이는 거. 내가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까지.”제헌은 눈을 피하지 않고 이람을 바라봤다.이람의 눈에는 연약함 같은 건 없었다. 오직 날것 그대로의 증오와... 감정이 넘쳐흐르며 만들어낸 어지러움만이 있었다.“거의 8개월이야. 너랑 서하준이 지금
Read more

제745화

“내가 말했잖아. 나는 너를 사랑해. 내가 한 모든 행동은 너를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거야. 평생 나를 잊지 못하게 할 거고.”제헌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껍질만 간신히 붙들고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이람의 눈에서 눈물이 하나 떨어졌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이미 한계를 넘고 있었다. 이람은 평생 이렇게 깊고 날카로운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사랑이라는 말을 더럽히지 마. 네가 한 짓은 사랑이 아니야.”제헌이 웃었다.“너도 알잖아.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랑 결혼한 거야. 인정할게, 나는 쓰레기야. 너를 사랑하는 방식조차 독으로 가득 차 있어.”“그래서 네가 견디지 못한 거겠지. 그런데 말이야... 독이 섞인 사랑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제헌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하하하. 그러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뀔 생각은 없었어. 그냥 이렇게 끝까지 망가진 채로 가면 안 되는 거야?”이람의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제헌은 제정신이었다.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제헌의 사랑은 이람에게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다.제헌은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다가 다시 시선을 날카롭게 세웠다. 집요함이 서서히 드러났다.“이람아, 네가 앞으로 나랑 함께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네가 평생 나를 잊지 못하게 할 거야. 너랑 서하준 마음속에 박힌 가시가 될 거라고. 나는 말한 건 꼭 지켜.”“허락도 안 받고 이런 일을 저질러서 미안하네. 하지만 이제 아이가 둘이야. 생물학적으로 너는 엄마야.”“나중에 애들을 직접 보게 되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감정이 전혀 안 움직일까? 그건 아니겠지.”제헌은 웃으며 말했다.“너는 도덕적인 사람이야. 나는 사생활도 엉망이고, 도덕 따위 없어. 그래서 나는 이런 짓도 할 수 있어. 아이를 둘이나 만들어낼 수 있고.”“그런데 네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우리 인생에서 절대 끊어낼
Read more

제746화

제헌이 놓은 이번 수는 너무도 악랄했다. 한 번에 두 사람을 향한 복수를 완성한 셈이었다.이람은 아이들과 평생 얽히게 될 가능성을 피할 수 없었고, 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이람은 알고 있었다. 하준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그래서 더 괴로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준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한 발 더 물러서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만약 하준이 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람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 짐을 하준에게 지울 수 있을까?시선을 바꿔보면 더 잔인했다.하준에게는 이람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곧 태어날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이람은 아주 평범한 여자였다. 제헌에게서 겪은 냉담한 관계 속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뒤, 다시는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픈 사랑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관계에서는 오직 서로만 바라보고 싶었다.그렇기에 이람에게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만큼의 여유도 관대함도 없었다.아이들은 계속해서 이람에게 상기시킬 것이다.이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와 아이 둘로 평생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그 고통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이별은 예정된 수순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사랑이 남아 있어도 반드시 떨어져야 했다. 긴 고통보다는 짧은 고통이 낫다고, 이람은 스스로를 설득했다. 앞으로의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걸린 가시를 안고 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로 인해 조금씩 두 사람의 사랑이 지치게 하는 삶도 원하지 않았다. 그런 관계는 이람이 바랐던 사랑의 모습이 아니었다.사랑은 사람을 치유해야지, 괴롭혀서는 안 됐다.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하준에게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건 비열한 짓이었다.‘내가 원하지 않는 걸... 왜 하준 씨에게 강요하지?’그렇게 하면 이람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고, 마음속에서도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준과 계속 함께
Read more

제747화

이람의 말은 그대로 제헌의 심장을 후벼 팠다.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더 정확히, 더 잔인하게 상대가 아파할 말을 골라낼 수 있었다.제헌이 갈구하던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은 제헌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 말이 닿는 순간, 제헌의 상태는 눈에 띄게 무너졌다.“서로 상처 주는 거지. 내가 너 겁낼 줄 알아?”이람은 한 발 다가가 제헌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시선은 제헌을 놓아주지 않았다.“내가 예전에 너 대단하다고 말한 적 있지. 결혼 같은 거 안 믿게 해줬다고. 근데 너 오늘 또 하나 해냈어. 착하게 살면 손해라는 거, 다시 한번 확실하게 알려줬잖아.”이람은 웃지도 않았다.“나랑 다시 같이 있고 싶다며? 좋아, 기회 줄게. 네가 나한테 제대로 한 번 구애 좀 해봐. 너 같은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제헌이 저지른 일은 이미 감정의 문제를 넘어 있었다. 인간이 가진 상식의 선을 비틀어 놓은 짓이었다. 그렇게 놓고 보니, 이람은 오히려 제헌에게 너무 관대했다.‘오늘부터는 달라.’이람은 마음속으로 결심했다.제헌이 원하는 게 사랑이라면, 그 감정을 쥐고 흔들 생각이었다.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게 해서 제헌이 평생 그 틈에서 허우적대게 할 작정이었다. 이람은 절대 제헌이 바라는 결말을 주지 않을 것이다.“오늘 우리가 만난 거, 하준 씨한테는 잘 숨겨.”제헌은 이람의 갑작스러운 폭발에서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웃었다. 제헌은 지금의 이람이 마음에 들었다.“왜? 서하준한테는 말 안 할 거야? 평생 속일 생각이야?”“나를 너랑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이람은 단호하게 말했다.“나는 하준 씨랑 약속이 있어. 너랑 관련된 일은 내가 직접 말할 거야. 네가 나를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이런 짓을 했다는 것도 내가 직접 말할 거야.”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람은 하준에게 이 충격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Read more

제748화

이람은 지금 당장이라도 하준을 찾아가고 싶었다.하준을 보고 끌어안고, 손을 그의 따뜻한 피부 위에 얹고, 익숙하고 편안한 그 냄새를 느끼고 싶었다.하지만 지금의 이람은 자기 감정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저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그 사이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한두 가지 있었다. 원래라면 음성으로 의견을 전달했겠지만, 이람은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눈물이 번진 채로 타이핑으로 지시를 남겼다. 손이 계속 떨려서 글자를 몇 번이나 잘못 눌렀다.얼마나 울었는지, 가슴이 얼마나 오래 아팠는지 가늠할 수 없을 즈음, 하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갑자기 출장 잡혔어.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는 게 어때? 출장 가는 도시에 예술 전시가 열리는데, 네가 전에 좋아한다고 했던 작가 작품도 나온대. 내가 하나 사 올게.]제헌은 약속을 지켰다. 하준의 시선을 피해 움직였고, 하준이 미리 알아차리지 않게 했다.제헌은 하준보다 크게 뒤처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하지만 이 몇 줄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이람의 눈물은 멈출 수 없이 떨어졌다. 숨이 막히는 것처럼 괴로워서 이람은 한참 동안 답장을 치지 못했다.갑자기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이람은 놀라서 바로 끊어버렸다.곧바로 메시지가 이어졌다.[우리 이람이 기분 안 좋아?][내가 약속 어긴 거네. 내가 집으로 갈게.]이람은 급히 답장을 보냈다.[지금 좀 바빠요... 오늘 밤도 일이 있어요. 그냥 당신 출장 다녀오면 그때 집에서 같이 전골 먹어요.]하준은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지금 상태로 하준을 만나면, 하준은 분명 출장을 취소하고 이람 곁에 남을 것이다.‘이틀만... 이틀만 더 버티자.’이람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때 말하자고. 적어도 이틀은... 하준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마치 하준이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잠시 후 메시지가 다시 왔다.[진짜 괜찮아? 안 힘들어?]이람은 울면서 답장을
Read more

제749화

하준은 이람을 끌어안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뭔가 이상했어. 네가 신경 쓰여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일정 앞당겨서 돌아온 거야.”하준은 이람의 입가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따뜻한 숨결이 얼굴에 닿았다. 예전과 다를 것 없이 그 온도는 이람을 잠시나마 안심하게 했다.“괜한 걱정 아니었네.”하준은 이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무슨 일 있어? 왜 이래. 나한테 말해. 같이 짊어질 수 있잖아.”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람의 눈물은 한꺼번에 쏟아졌다.이람은 많은 것들을 하준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하지만 이 일만큼은 함께 짊어질 수 없었다.“자기야.”하준은 처음엔 단순한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람의 상태를 보고서야 상황이 가볍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준의 태도가 바로 달라졌다. 손가락으로 이람의 눈물을 닦아냈지만, 아무리 닦아도 멈추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가슴이 조여 왔다.“괜찮아, 말해.”하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자기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람은 하준의 목을 끌어안았다.“나... 당신이랑 하고 싶어요.”하준은 그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 하준에게 중요한 건, 이람의 상태였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이람을 이렇게까지 흔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누군지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하준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시켜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준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마주하는 게 무서웠다.이람이 잠에서 깼을 때,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목도 따끔거렸다.하준은 이미 곁에 있었고, 이람을 부드럽게 일으켜 세웠다.“꿀물 좀 마셔.”이람은 하준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그의 손에 들린 컵을 봤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유난히 또렷해 보였다.이람은 남자의 손을 덮어 함께 컵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하준 씨... 당신한테 할 말 있어요.”“힘든 얘기면, 굳이 안 해도 돼.”하준은 잠시 말을 멈췄
Read more

제750화

잔인하고 냉혹하며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을 마주할 때라면, 이람에게는 나름의 대응 방식이 있었다. 맞서 싸우거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좀처럼 먼저 물러서거나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하지만 진짜 따뜻함 앞에서는 달랐다.도저히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하준이 그 말을 꺼낸 순간, 이람의 가슴은 더는 버티지 못할 만큼 아팠다. 이람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고, 남자의 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아니에요... 당신을 버리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버려요.”이람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떨렸다.“당신이 너무 아플까 봐 그래요. 그런데 나랑 함께 있으면 아무 잘못도 없는 당신이 이런 것들까지 감당해야 하잖아요...”“내가 감당할 수 있다면?”하준은 망설임 없이 이람의 손을 꽉 잡았다. 깊이 생각한 뒤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본능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낮아진 목소리에는 억눌린 감정이 배어 있었다.하준은 늘 단단한 산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산이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이람은 그 안개를 헤치고서야 겨우 하준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한다고?’사랑이 사람을 이토록 낮아지게 만들 수 있는 걸까?어린 시절, 하준을 진심으로 돌봐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준은 누군가가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줘도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인 걸까? 서주연에게 깊이 상처받았음에도 나중에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까?그래서 지금도 자신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이나 태어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람 곁에 남으려고 하는 걸까?그 대가가 무엇이든,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든 상관없이.이람은 하준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 아팠다.사실 이람은 하준이 이 모든 걸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준의 사랑에 기대어, 계속 그의 곁에 머무르며 지금의 행복을 이어가는 상상도 했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아
Read more
PREV
1
...
7374757677
...
10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