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낮고 차가웠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람은 잠깐 착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락했던 것처럼 느껴졌고, 이미 몇 달이나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이람은 건태에게 손으로 잠시 통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뒤,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전화받았다.굳이 ‘무슨 일이야’ 같은 형식적인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서 이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3초쯤 흘렀을 때, 제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새해 복 많이 받아.]또 2초가 지나서야 이람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새해 복 많이 받아.”[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건 없어?]“없어.”[하...]제헌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몇 번이나 낮게 웃은 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괜찮아. 그냥 너무 보고 싶어서.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제헌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이람이 그 목소리를 듣고 싶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늘 그랬듯, 제헌은 자기 감정만 앞세웠다.이람은 미간을 좁혔다.“이제 이런 거 진짜 필요 없어. 각자 자기 인생 사는 게 낫지 않아?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나 하준 씨랑 사귀고 있는 거, 그건 사실이고, 너도 봤고 이미 다 알잖아.”...이람으로부터 약 1000미터쯤 떨어진 호텔 최상층, 로열 스위트룸.통유리창 앞에는 망원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제헌은 렌즈를 조정한 채 정원에서 전화를 들고 서 있는 이람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제헌은 잠들기만 하면 거의 매번 이람을 꿈에서 봤다.하지만 현실 속의 이람은 하준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거리를 걷고, 풍경을 바라보며 지냈다.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처럼 안정되고 다정해 보였다.제헌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부터 나는 내 인생을 제대로 살 수가 없었어. 네가 다시 내 옆에 있지 않는 한은.”‘역시 그럴 줄 알았어.’이람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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