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811 - Chapter 820

1021 Chapters

제811화

무슨 의도인지 끝내 감이 잡히지 않자, 이람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머릿속을 비운 채 그저 발밑만 조용히 바라봤다.서주연은 이런 시간마저도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J시에서도 정원을 흠잡을 데 없이 가꿀 수는 있겠지만, 남쪽의 습한 기후에서 자란 꽃과 나무가 지닌 생기는 또 달랐다. 서주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일단 나랑 좀 걸어.”이람은 곧바로 대답했다.“네.”희한한 모양의 국화를 구경하고, 작은 호숫가를 지나, 마지막에는 목부용나무 아래에 멈춰 섰다. 그렇게 한 바퀴 도는 데만도 어느새 15분이나 흘러 있었다.“침착한 편이네.”서주연은 이람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나이 또래 사람에게 나는 도무지 맞춰 주기가 어렵더라. 내가 점점 옛날 사람이 되는 건지,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주연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서주연을 어려워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이람이 서주연의 말에 담긴 낮춤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과찬이세요, 회장님.”지금 이람이 서주연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했다. 아랫사람으로서 예를 지키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선을 지키는 것. 그것만큼 이람에게 어울리는 태도가 없었다. 그러니 정중하고 절제된 태도면 충분했다.“나 봐.”서주연이 말했다.살짝 아래로 떨어져 있던 이람의 시선이 다시 올라갔다. 이람은 눈을 피하지 않고 서주연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서주연의 눈길은 이람의 눈매를 천천히 훑었다. 그러다 문득 웃었다.“예전에 네가 하준이랑 만날 때, 내가 준 선물들. 마음에 들었어?”이람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좋았어요.”“그래도 네가 그 선물 자체를 대단하게 여긴 건 아니었지.”이람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서주연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당연한 거야. 나도 그때 너를 대단하게 여긴 건 아니었으니까. 돈으로 해결하는 건 제일 간단하고 편하지. 머리 쓸 일도 없고, 생색 내기도 좋고. 네 마음속에 적당한 호
Read more

제812화

이람의 속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기색은 눈빛에도 아주 조금 비쳤다. 다만 그 위를 더 강하게 덮고 있는 건 차가움과 버티는 힘이었다.어쩌면 그게 늘 이람다운 모습이었다. 그게 바로 이람이 가진 기운이었고, 서주연이 또래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워하던 결이기도 했다.서주연은 알고 있었다. 이람이 지금껏 제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버티고 있다는 걸. 그것만으로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이었다.이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서 있는 이유도 결국은 이람이 스스로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만약 제은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진작 달아나서 아버지 찾고, 어머니 찾고, 할아버지부터 불렀을 것이다.제은은 밖에서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어도 속은 겁이 많은 편이었다. 물론 제은은 애초에 집안 배경이 워낙 탄탄해서 굳이 자기 힘으로 단단해질 필요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그런 성격이 따로 생길 이유도 없었다.사실 서주연은 이람에게 겁주려는 생각이 없었다.“잘했어, 이람아.”이람은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네?”서주연은 담담하게 말했다.“하준이는 참 멍청하지. 너랑 그렇게 오래 만나 놓고도 네 마음을 끝까지 붙잡지 못했잖아. 그건 걔가 능력이 없는 거지, 네 잘못은 아니야.”그 말은 이람의 예상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었다.“회장님, 그 말씀은...”서주연은 바로 말을 잘랐다.“왜, 아직 하준이한테 미안한 마음이라도 남아 있어?”그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준을 폄하했다.“하준이가 널 좋아한 건, 결국 네가 젊고 예쁘고, 또 너라는 사람 자체가 탐났기 때문이야.”“그러니까 잘해 준 거지. 넌 걔한테 빚진 거 없어. 오히려 하준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해. 걔가 자기 입으로 그러더라. 자기 인생은 늘 그늘 속 같았고, 고인 물처럼 답답했는데, 네가 들어오고 나서 자기 삶이 달라졌다고.”“하준이는 원래 재미없는 사람이야. 그런데 네가 나타난 뒤로 걔 일상이 처음으로 알록달록해졌고, 따뜻해졌지. 네 덕에 얻은 게 얼
Read more

제813화

서주연은 이람을 보며 옅게 웃었다.“이람아, 아이들이 생기자마자 네가 하준이랑 헤어지는 쪽을 선택했잖아. 그걸 보면, 너한테는 남자나 연애가 아주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게 보여.”“한 번 결혼을 실패로 겪고 나면, 남자한테 예전처럼 기대하거나 믿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고. 반면에 자식은 끝까지 내 자식이지.”서주연은 잠시 걸음을 늦추며 말을 이었다.“내가 네 엄마였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네가 아이들을 택한 걸 지지했을 거야. 남자는 오늘 사랑한다고 말해도, 며칠 뒤엔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어.”“한 사람만 오래 바라보는 건 엄청난 절제력과 단단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야.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지.”“남자라는 존재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면, 결국 내 손 안에 있는 선택권이 더 중요해. 어떤 남자를 고를지 고민하기 전에 내가 편안할 수 있는 쪽을 먼저 생각하는 게 여자한테는 더 중요해.”이람은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처음에는 온몸이 굳어 있을 만큼 긴장했다. 그러다 서주연이 자신을 몰아세우려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나서야 조금 숨이 트였다. 그리고 어느새, 아주 희미하게나마 어른에게 위로와 격려를 받는 듯한 온기까지 느껴졌다.그래도 이람은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서주연이 정말 단순히 이람을 위로하려고 여기까지 불렀을 리는 없었다. 이 말들이 진심 어린 조언인지, 아니면 일부러 먼저 달래 놓고 다른 말을 꺼내려는 건지, 혹은 겉으로는 좋은 말처럼 들려도 속뜻은 다른 건지, 이람은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그럼에도 분명한 건 있었다. 서주연이 짚어 준 몇 마디 덕분에 이람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갑자기 또렷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람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하준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때의 이람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이들의 존재는 앞으로 하준과 자신 사이에 수많은 감정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고, 쉽게 풀 수 없는 갈등도 계속
Read more

제814화

다만 헤어진 뒤, 이람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실연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는 것, 그리고 하준을 향한 마음 또한 스스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이람은 여기까지 듣고도 여전히 서주연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회장님, 혹시... 제가 마음을 좀 정리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건가요?”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람은 생각했다. 자신이 미련을 버리고 정리해 버리면, 더는 하준과 얽히지 않을 테고, 그러면 하준도 서주연이 바라는 며느릿감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서주연은 태연하게 답했다.“그렇지. 네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면, 내 말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이겠지. 그럼 안 들어도 돼. 네가 편한 방식대로 하면 되는 거야.”이람은 곧장 말했다.“회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서주연은 이람의 그런 차분함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자기 선택을 쉽게 후회하지 않고, 그 결과도 당연히 스스로 감당하려 했다. 아이가 둘이나 생긴 뒤에도... 힘 있는 집안 안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적당히 조율해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감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원래부터 자기 안에 중심이 단단한 사람, 바깥에서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사람. 서주연이 보기에는 그런 이람은 이혼한 뒤 굳이 또 다른 연애가 꼭 필요한 사람도 아니었다.하준이 이람과 이혼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람이 막 이혼을 겪으며 감정의 밑바닥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람의 뒤를 받쳐 줄 어른도 없었다. 거기에 제헌이 너무 거칠게 밀어붙인 탓에, 이람은 두려움과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는 하준이 자극이 된 부분도 분명 있었다.물론 실제 사정이 서주연이 마음속으로 정리한 것만큼 단순하고 정확하게 들어맞는 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가정이 아주 크게 빗나간 건 아니라고 서주연은 여겼다.아무리 강한 사람도 어떤 때는
Read more

제815화

강운국은 감히 서주연의 눈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했다. 긴장한 탓인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자 이람은 서주연이 왜 아까 자신더러 침착하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된 악연이 있었다. 이람이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건 오히려 어색했다. 그래서 이람은 예의를 갖춰 인사만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서주연은 강운국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과거의 정이나 미련 같은 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강운국은 서주연이 먼저 왜 왔는지 물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주연은 입을 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결국 강운국이 먼저 말을 꺼냈다.“왜 온 거야?”목소리에는 감추지 못한 어색함이 묻어 있었다.서주연은 강운국을 한 번 흘겨보더니 무심하게 답했다.“당연히 하준이 때문이지.”강운국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하준이?”서주연이 직접 아들 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낯이었다. 마치 ‘네가 무슨 자상한 엄마라도 되는 줄 아냐’는 말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강운국이 다시 물었다.“걔 일로 당신이 뭘 하러?”서주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나이만 먹었지, 사람 보는 눈이나 눈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서주연은 굳이 길게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네 아들이 나를 달가워하지 않잖아. 네가 좀 더 먼저 다가가. 먼저 연락도 하고, 신경도 좀 쓰고.”서주연은 예전에 혼담이 오갔던 일을 통해, 하준이 자신과 J시의 집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미 알게 된 상태였다. 평가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최악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서주연 입장에서도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고, 그래서라도 이미지를 조금은 좋게 만들고 싶었다.강운국은 결국 지금도 서주연 앞에서는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이람이 다시 본채 쪽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평소 내내 이람에게 좋은 낯빛 한 번 주지 않던 채영희가 먼저 다가와 물었다.“서주연 회장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이람
Read more

제816화

서주연의 말은 듣기에는 바람처럼 가벼운 듯했지만, 그 안에 실린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서주연이 저렇게 못을 박아 둔 이상, 이람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든든한 산 하나가 더 생긴 셈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이제는 이람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서주연이 무심한 듯 내뱉은 한마디는 분명 이람을 감싸는 말이었다. 그 말이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서주연의 지체가 워낙 높기 때문이었다. 그 위치에서 나오는 말은 무엇이든 권위가 되었고, 사람을 눌러 버리는 위압이 되었다.채영희가 더 발끈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명분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설령 채영희가 끝까지 이람을 물고 늘어진다 해도, 이람을 괴롭게 만들거나 얌전히 말 잘 듣는 사람으로 눌러 놓는 효과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원하는 결과는커녕 채영희만 완벽한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사실 서주연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부터 채영희는 이미 웃음거리가 되어 있었다.서주연이라는 존재 자체가 채영희에게는 평생 지워 내지 못할 마음속 응어리였다.분노와 억울함, 분함이 뒤엉키자 채영희의 안색은 핏기 없이 질렸다. 채영희는 원망이 가득 밴 눈으로 서주연을 노려보더니, 이람에게도 독기 서린 시선을 한 번 더 꽂았다.끝내 채영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을 홱 돌렸고, 가방을 거칠게 집어 들어 곧장 밖으로 나가 버렸다.그때 강운국이 돌아왔다.채영희는 속으로 말했다.‘결국 다 이 남자가 벌여 놓은 일이잖아?’‘강씨 가문에 시집오자마자 이런 치욕을 겪게 만든 것도, 체면을 바닥까지 떨어뜨린 것도 전부 강운국 때문이잖아.’그 모든 일의 원흉이면서도 강운국은 뻔뻔하게도 서주연 앞에 가서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채영희는 남자라는 존재의 밑바닥이 어디까지인가 싶어 기가 막혔다. 그녀는 강운국의 어깨를 세게 밀쳐 내듯 부딪치고 나서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강운국은 분을 참지 못한 채 떠나가는 채영희를 한 번 보고, 곧 고개를 돌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서주
Read more

제817화

더구나 서주연은 이미 하준의 생각을 알아차린 상태였다. 그렇다면 하준의 뜻을 존중해 주고, 한편으로는 힘을 조금 보태 주면 됐다. 그렇게만 해도 얼어붙은 관계는 서서히 풀릴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서주연에게는 그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서주연은 그저 엄마로서 자기 자식을 위해 무언가 하나쯤 해 주고 싶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하진희는 속으로 생각했다.‘하준이 뭐가 못났다고. 저건 친엄마니까 저렇게까지 깎아내리는 거지.’하진희가 다시 물었다.“이람이한테 대하시는 태도를 바꾸신 게, 결국 하준이 때문만은 아니신 거예요?”서주연이 짧게 답했다.“조이람은... 나도 마음에 들어.”처음 서주연은 아들과의 관계를 풀어 보겠다고 하면서도 정성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순서대로 할 일만 하듯, 하준에게 집안과 어울리는 며느릿감을 붙여 주고, 혼사를 챙겨 주는 것으로 엄마 노릇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했다고 여겼다.그래서 서주연은 이람의 사람됨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서로 신분이 맞느냐만 보면 충분했다.이람은 제헌의 전처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서주연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상대였다.그것이 서주연이 처음 이람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이기도 했다.지금은 달랐다. 서주연이 진심으로 마음을 쓰기로 한 이상, 이람 역시 제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나씩 들여다보다 보니, 이람의 좋은 점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더 곱씹어 볼수록 이상한 일이었다.서주연은 이람에게서 흠잡을 만한 구석을 조금도 찾아내지 못했다.오늘도 서주연은 이람을 데리고 뒤뜰을 꽤 오래 거닐었다. 그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서주연 나름의 시험이기도 했다.그런데 이람은 끝까지 서주연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특히 압박을 견디는 힘이 눈에 띄었다.아무리 격식이 큰 자리라도 이람은 그 한가운데에서 끝내 버텼다.어린 나이인데도 중심이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거기에 서주연의 눈에 유독 잘 들어오는, 차갑고 맑은 눈매까지 있었다.이런저런
Read more

제818화

하진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서주연의 의도를 알아들었다.“헤어지자고 먼저 말한 건 조이람이었어도, 여자로서는 상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하잖아요.”“그런데 그렇게 바로 헤어진다고 하면, 서로 다 같이 놓아 버린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두 사람 다 앞으로 닥칠 일을 함께 버텨 낼 마음이 없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하진희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을 이었다.“제 생각엔, 조이람도 헤어진 뒤에 후회했을 거예요. 그래도 하준이 너무 망설임 없이 돌아섰으니까, 이람 입장에서는 다시 돌아가자고 먼저 말할 용기조차 잃었을 것 같아요.”서주연이 낮게 말했다.“그러니까 하준이 욕먹어도 할 말 없는 거야. 연애할 때야 흠잡을 데 없는 남자친구인 척하는 건 문제없지.”“근데 이별 앞에서는 그렇게까지 상대 마음을 다 헤아려 주는 게 아니지. 거기서는 하준이가 한 번 더 자기 생각을 밀어붙여야 했어.”서주연은 한숨 비슷한 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 갔다.“이람은 갑자기 나타난 아이들 때문에 하준이랑 같이 버텨 낼 자신이 없었던 거야. 그러면 하준이가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했어야지.”“이람이가 믿고 함께할 수 있게, 하준이라면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부담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여줬어야지.”“그래야 이람이도 안심하고 계속 함께 갈 수 있었을 테고,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겠지. 두 사람의 미래를 믿어 볼 마음도 생겼을 거고.”조금 전 서주연이 이람 앞에서 하준을 두고 한심하다고 했던 말은, 단순히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서주연은 정말 속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이람은 갑작스럽게 두 아이의 존재를 맞닥뜨리면서 큰 충격과 고통을 겪었다.마음속이 복잡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그런데 하준은 이람을 감싸안고 버텨 줄 사람처럼 나서지 않았다. 이람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그때, 하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놓고 있었다.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식어서 벌어진 일이 아닌, 함께 맞서야 할 어려움이 생긴 것뿐이었
Read more

제819화

“너는 왜 너를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때문에 나를 거절하는 거야? 우리가 이미 이혼했어도, 나는 포기할 생각 없어.”“내가 해 온 모든 건 다 너를 되찾으려고 한 거야. 그런데 너는 끝내 내 마음을 못 본 척하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제헌은 이람의 어깨를 붙잡았다. 원하면서도 끝내 가질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갈증이 제헌을 짓눌렀고, 그 고통 탓에 목소리가 잠겼다.“이람아, 이제 자신을 속이는 짓 그만해. 너는 아직도 서하준을 못 놓고 있잖아. 근데 서하준은 너희 사이를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어. 붙잡을 마음도, 미련도 하나 없었잖아. 그렇게 차갑게 돌아선 남자가 뭐가 그렇게까지 좋다고 못 잊는 건데?”제헌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너를 제일 신경 쓰는 사람은 나야. 네가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나 정말 바뀔 수 있어. 아니, 요즘 내가 달라지려고 애쓰는 거 너도 다 봤잖아. 그런데 왜 자꾸 나를 밀어내는데?”그 말을 듣는 내내 이람의 가슴 한복판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파고들었다.갑작스럽게 밀려온 아픔은 제법 거셌고, 이람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이람은 줄곧 이성적으로 따져 왔다.헤어지는 쪽이 더 나은 해결책이라고 판단했고, 하준 역시 이람의 선택을 존중했다.지금까지의 흐름도 모두 이람이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하지만 이람은 여자였고, 한 번도 남자의 자리에서 이 일을 바라본 적은 없었다.정말 제헌의 말처럼 그런 식이었다면 하준은...이람은 더는 생각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이를 악물고 버티며 입을 열었다.“강제헌, 그만해. 어차피 나랑 하준 씨는 이미 끝났어. 하준 씨가 무슨 생각을 하든, 이제 나랑 상관없어.”그러자 제헌이 헛웃음을 터뜨렸다.“하, 조이람.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나한테는 이러고, 서하준한테는 또 다르게 구네. 너무 뻔하잖아.”이람은 제헌의 몰아붙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뭐가 다르다는 건데?”제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너
Read more

제820화

그렇게 이람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자기 말을 끝까지 듣고만 있으면, 이람이 결국 자기에게 돌아올 거라고 제헌은 굳게 믿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품 안의 이람이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했다.이내 이람은 제헌을 단호하게 밀어냈다.이람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몇 번 눌렀다.곧 핸드폰에서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이람이 아이를 잃었던 바로 그날, 지후가 보내온 영상이었다.이람은 떨리지 않으려 애쓰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유리 귀국하던 날, 너 걔한테 장미를 한가득 안겨줬지. 네 친구들은 옆에서 신나게 분위기 띄우고, 한번 서로 안아 보라고, 뽀뽀도 해 보라고 떠들었어. 예전에 프렌치 키스를 길게 했던 일까지 입에 올렸고.”이람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에 눌린 감정은 또렷했다.“네 친구들은 네가 나랑 결혼한 걸 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었지. 걔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 네가 밖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야.”“나를 그렇게까지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런 식으로 무시할 수 있었겠어? 걔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건,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얼마나 가볍게 취급했는지 그대로 드러나.”이람은 숨을 한 번 고른 뒤, 더 아픈 대목을 꺼냈다.“나는 너한테 병원 와서 수술받을 때 같이 있어 달라고 전화했어. 근데 너는 그 전화를 끊었지. 그러고 돌아서서 사람들 다 보는 데서 하유리를 안고 반갑다고 웃었어. 하유리 돌아왔다고 그렇게 기뻐했잖아.”이람은 제헌을 똑바로 바라봤다.“하유리는 그렇게까지 중요했는데, 나는 너한테 뭐였어? 너는 나한테 장미 한 송이도 준 적 없잖아.”제헌은 재생되는 영상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하유리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제헌에게는 이미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전생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이람은 제헌의 반응 따위는 보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내가 이 영상을 어디서 봤는지 알아? 병원이었어. 수술 막 끝내고, 혼자 택시
Read more
PREV
1
...
8081828384
...
10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