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831 - Chapter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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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1화

이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핸드폰을 쥔 제헌의 손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하지만 제헌의 말투는 침착했다.“오늘 야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직 애들 보러 못 갔어. 애들 나가서 햇볕 쬐는 영상은 나한테 있어. 애들은 다 잘 있어.”[그럼 그 영상들 다 나한테 보내.]이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근데 CCTV는 왜 그래?]제헌이 답했다.“할아버지가 애들이 좀 더 크면 여기저기 막 돌아다닐 수도 있으니까, 미리 업그레이드하고 안전장치도 손보자고 하셨어. 아마 이번 주는 CCTV 못 볼 거야.”이람은 여전히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다.제헌은 출장도 가지 않고, 아빠로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람으로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 두 명이 언제나 24시간 곁을 지키고 있었다.아이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이람도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람이 바라는 건 그저 아기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보는 일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확실히 달라졌다. 아기 때의 아이들은 매우 사랑스러웠다. 출장 나온 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람은 벌써 그 말랑한 볼과 몸에 밴 분유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물론 이번 출장은 일정이 빠듯했고 할 일도 많았다. 이람은 날마다 이곳 연구소를 뛰어다니며 여러 데이터를 계속 분석해야 했다. 바빠지면 CCTV를 들여다볼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알겠어. 애들 잘 돌봐.]제헌이 말했다.“걱정 마. 내가 잘할게. 내 아들이고 내 딸이야.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거야. 난 네가 생각하는 좋은 아빠가 될 거고, 꼭 널 다시 내 아내로 붙잡을 거야. 우리 네 식구, 같이 행복하게 살게 될 거고.”[뒤에 말은 굳이 안 해도 돼.]이람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그때 제헌이 갑자기 불렀다.“이람아.”[또 왜?]“난... 널 조금 보고 싶어. 넌 나 보고 싶어?”이람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난 아기들 보고 싶어.]제헌이 물었다.“너한텐 아기들이 제일 중요해. 맞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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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윤정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하지만 윤정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이 일을 해낼 수도 있을 사람 하나가 희미하게 떠올랐다.바로 하준이었다.하준이라면 그런 힘도 있었고, 그런 수단도 쓸 수 있었다.게다가 하준은 제헌의 보복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어쩌면 하준은 본래 강씨 가문 사람이나 다름없었으니, 강씨 가문 자체를 겁낼 이유가 없었다.만일 아이들을 데려간 사람이 하준이라면, 아이들은 분명 안전할 것이다. 제대로 보살핌도 받을 것이다. 적어도 수면제를 먹여 가방에 넣어 몰래 빼내는 식의 거친 수법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컸다. 이동하는 동안 어디 한 군데라도 부딪히거나 다치면, 어린 아기들에게는 평생 남을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아이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윤정은 차라리 하준이 한 일이기를 바랐다.애초에 제헌은 아이들을 이용해 하준에게 되갚았다. 그렇다면 언젠가 하준이 아이들을 이용해 제헌에게 되갚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제헌은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었을까?제헌은 모두를 속인 채 몰래 두 아이를 만들어 냈다. 그건 제헌이 직접 뿌린 씨앗이었다. 씨앗을 뿌렸다면, 끝내 어떤 열매든 맺히게 마련이었다.그 열매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 감당해야 할 사람은 제헌이었다.지금 제헌은 자신의 비열함과 이기심의 대가를 혹독히 마주하고 있었다....이람은 통화를 끝낸 뒤, 지친 몸을 소파에 눕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들이 밖에 나가 햇볕을 쬐는 영상이 도착했다.이람은 영상을 보는 내내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정이 점점 깊어졌고, 아기들은 날이 갈수록 더 예뻐졌다. 누가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다.이람은 그 영상만 보고 있어도 아기들에게서 다시 힘을 얻는 기분이 들었다. 지쳐 있던 마음도 한결 느슨해졌다.이람은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 머릿속에는 요즘 맡은 일이 떠올랐다. 이번 출장에서 이람은 한 지능형 연산 센터에서 테스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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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이람은 눈앞에 놓인 것들을 보고, 지후가 오늘 왜 여기 온 건지 대강 짐작했다.솔직히 말하면, 몹시 뜻밖이었다.지후와 가까워진 지난 시간 동안, 이람이 느낀 건 지후의 유쾌함과 안정감 있는 태도,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능숙한 자세, 유난히 대화를 잘 이끄는 재주였다. 어쩌면 이람이 지후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된 것도, 지후의 성격이 친구로 두기에 무척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로서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이람은 문득 예전에 하준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사귀게 되었던 날이 떠올랐다.그날 지후에게 전화가 왔었다. 제헌이 열이 난다며, 한 번 와서 보라고 했었다. 물론 이람이 그곳에 갈 리는 없었다.그런데 지후는 이람이 하준과 사귀게 된 일에 몹시 궁금해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이람은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는 기분을 느꼈다.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몇 번 마주치고 몇 마디 나눈 정도에 불과했다. 친하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지후는 제헌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런 지후가 어째서 친구의 전처가 새로 시작한 연애에 관심을 보이는지, 그게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다.그때 이람은 잠깐 의심했다. 하지만 곧 스스로 너무 오지랖을 떨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지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 하나 분명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까.무엇보다 이람의 삶에서 지후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람에게는 자기 생활이 있었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 제헌과 관련된 일들은 오래전에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나 있었고, 그 일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이제야 비로소 다시 떠올랐을 뿐이었다.지후가 이렇게까지 격식을 차린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람은 그때 스쳐 지나간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하지만... 정말 이상했다.‘고지후가 나를 좋아한다고?’이람은 어릴 때부터 얼굴도 예뻤고, 좋아해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다만 정말로 이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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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지후가 그 말을 모두 꺼내고 나자, 늘 수많은 사람 사이를 능숙하게 오가던 고씨 가문의 도련님조차 숨이 막힐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지후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이람 씨,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람 씨를 좋아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정말 이람 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 때는, 저 자신도 많이 놀랐어요.”“제가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마음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제 예상 밖의 일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축하할 만한 일이기도 했어요. 저도 저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됐으니까요.”지후는 손바닥에 땀이 밸 정도로 긴장한 채, 자신을 이토록 흔드는 여자를 눈 한번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지후의 말투에는 이제껏 없던 무게가 실려 있었다.“이람 씨, 제 여자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이람은 지후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해지는 호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지후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후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일 자체는, 그 자체로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애정을 받는다는 건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 쉬운 일이었다.이람은 지후가 내놓는 진심 어린 말들을 들으며,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면 감동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아니면 지후의 눈에 담긴 깊은 감정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컸던 탓인지도 몰랐다. 이람은 이상하리만치 지후의 감정선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갔다. 지후가 만들어 내는 말의 흐름과 호흡을 따라, 이람의 마음도 조금씩 그 아래로 가라앉았다.이람은 지후의 진지함이 좋았다. 특히 이런 남자가 갑자기 한 사람만 바라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그 힘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자세는 상대의 마음을 건드리는 데 충분했다.하지만 바로 그래서 이람은 두려웠다.지후가 정말로 이렇게까지 진심이라는 사실이.한 번 진심이 되어 버리면, 많은 일들을 그냥 넘길 수 없게 된다. 하나하나 따져야 하고, 분명하게 정리해야 하고,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무게가 생긴다.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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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이람은 워낙 일의 강도가 높아, 늘 에너지를 많이 보충해야 했다. 그래서 거절의 말을 다 하고 나서도 어색해하지 않고 다시 포크를 들었다. 지후가 고백했다고 해서 이 일로 서로 영영 등을 돌리게 될 것도 아니었고, 굳이 민망해할 이유도 없었다.친구로만 놓고 보면, 지후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후는 모진이와 모연이를 진심으로 예뻐했다. 성격이 부드러운 삼촌이 곁에서 살뜰히 챙겨 주면, 아기들도 분명 좋아할 터였다.이람은 이제 개인적인 감정보다 아기들을 우선순위에 두는 일이 많아졌다.이람이 아직 하준과 사귀기 전, 지후가 세운 계획은 먼저 가까워지고 그다음에 고백하는 방식이었다.왜 그런 순서를 택했을까?지후는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다. 그는 고백이 두 사람이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되기를 바랐다.원래 지후는 남의 부탁이든 감정이든, 누군가를 단칼에 거절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거절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람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지후는 차마 쉽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거절하지 못했다.그런데 정작 자신이 정말 거절을 당해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물론 지후의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고 아팠다.이쯤 되니 지후는 제헌이 조금은 대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차갑고 매정하게 여러 번 거절당하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으니 말이다.대체 어떤 자신감과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제헌은 그런 식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헌은 한때 이람에게서 아무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 깊이 사랑받아 본 사람은 그 기억만으로도 이상할 만큼 큰 배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상대에게 멋대로 굴 수 있는 것이다.사실 지후는 아주 놀랐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다만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그래서 지후는 그저 이람이 밥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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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지후가 말했다.“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어요. 제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이거든요.”이람은 지후의 말에 담긴 깊은 뜻을 굳이 자세히 묻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금 전 지후가 던졌던 질문에 답했다.“제가 언제 연애하게 될지는, 그냥 갑자기 심심해서 남자 하나 만나 보고 싶어질 때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우연히... 인연처럼 마주치는 사람이 생길 때일 수도 있겠죠.”이람은 말을 이어 갔다.“상대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하면, 우선 제 눈에 거슬리지 않아야 해요. 같이 가볍게 놀 수도 있어야 하고요.”“저한테 문제를 만들지 않고, 번거로운 일도 안 가져오고, 말이 통하고, 눈치도 있고. 늘 남자들이 여자한테 바라던 조건들 있잖아요. 딱 그런 식이에요.”세속적인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이람은 이제 충분한 위치에 올라와 있었다. 성장 가능성이 큰 IT 회사를 하나 갖고 있었고, 순조롭게 확장 중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본인의 개인 역량도 뛰어났고, 인맥과 자원, 자금력까지 손에 쥔 상태였다. 이미 권력을 쥔 사람들의 영역에 들어가 있었기에,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람에게 기대어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이람은 오로지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고르면 됐다. 그뿐이었다.그때 지후가 불쑥 물었다.“그럼 저... 꽤 괜찮지 않아요?”이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지후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제가 심심풀이 상대는 충분히 되어 드릴 수 있죠. 제가 그런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고요.”“저희는 서로 독립적인 존재고, 저는 이람 씨한테 귀찮은 일 하나도 안 만들 거예요. 저는 완전한 솔로고, 가족도 없고, 아이도 없어요. 부르면 바로 갈 수 있고요.”“남자가 너무 자기한테 취하면 느끼하긴 한데, 객관적으로 봐도 제 얼굴이랑 몸 정도면 연예인 해도 전혀 부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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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J시에 자리한 한 사유 저택은 터가 워낙 넓어, 산 하나의 절반쯤을 품고 있는 듯한 규모였다. 산기슭 대문에서 안으로 들어와 본채까지 가려면, 이곳에서 제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 셔틀 카트를 몰고 몇 분은 올라가야 했다.본채는 옛 멋이 짙게 배어 있었지만, 건물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는 현대적인 유리 온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몹시 귀한 식물들이 가득했고, 서로 다른 생육 지대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열대 지방 식물도 적지 않게 들여와 있었고, 보기 좋게 꾸며진 곤충원까지 따로 있었다. 거의 축소된 생태계를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었다.이 사유 저택은 짓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에도 보기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운영과 경비는 최고 수준으로 굴러갔다. 순찰과 교대 근무를 도는 사람들은 모두 전문 무장 인력이었고, 감시 카메라 말고도 각종 첨단 방호 설비가 촘촘히 깔려 있었다. 누군가 몰래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했고,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으면 조용히 빠져나가는 일도 불가능했다.지도상으로도 이곳은 어떤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황량한 산지 한 구역에 불과했다.하준은 그 사진을 받기 전까지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붓글씨를 쓰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해도 마음이 잠잠해지지 않았다.결국 하준은 수양 삼아 이어 가던 필사를 멈췄다.그러고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종이로 접은 무언가가 가득 들어 있었다. 모양은 전부 장미꽃이었다.하준은 매일 한 송이씩 접었다. 서랍 하나로는 이미 다 담기지 않아, 안쪽 방에 있는 수납실에도 이미 많이 쌓였다.이곳은 하준이 J시로 돌아오기 전부터 천천히 준비해 온 공간이었다. 이람의 두 아이 백일잔치가 있기 전에 정비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하준이 종이를 절반쯤 접었을 때, 연훈이 안으로 들어왔다.“하준아, 거의 다 왔어.”하준은 고개를 한 번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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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이람은 하준의 약점이었다.제헌은 아이들을 앞세워 이람을 붙잡았다.하지만 제헌은 끝내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사실을.제헌이 저토록 거리낌없이 구는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하준이 강수철 회장에게 가진 정 때문에, KU그룹을 건드려 제헌의 날개를 꺾는 일까지는 하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헌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그 팽팽하던 구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서로 같은 약점을 쥐게 된 셈이었다.아이들은 곧 제헌의 약점이기도 했다.아이들이 사라지면, 이람은 제헌과 어떤 식으로도 접촉하지 않을 것이다.아이들을 쥐고 있으면 제헌의 약점도 함께 움켜쥘 수 있다. 제헌의 숨통을 틀어막을 수 있다. 예전에 서태인의 가슴팍으로 밀어 넣었던 그 칼처럼, 하준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은 방식을 골랐다.연훈은 이 수가 제헌에게 얼마나 강한 압박이 되는지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결국 하준의 목적은 이람을 되찾는 일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붙잡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말없이 버티고 밀어붙이는 방식이 정말... 맞는 걸까?제헌도 비슷했다. 제헌은 움직일 때 늘 과감했고, 손을 대면 늘 치명적인 결과를 남겼다. 그런 방법은 다른 일에는 꽤 잘 먹힌다. 하지만 여자를 붙잡는 데까지 그 방식을 가져오면, 선을 조금만 잘못 넘겨도 무슨 결과가 생길지 알 수 없다.이렇게 영리한 하준이 그걸 정말 모를 리 있을까?하준은 장미꽃을 다 접고 나서 핸드폰을 집어 들려 했다.지금 하준이 핸드폰을 들었다면, 이람과 지후가 입 맞추는 사진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모진이와 모연이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하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죠.”하준은 이람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신은 두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고, 아이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으며, 필요한 모든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걸.저택 안 아기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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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지후는 오래 입을 맞추지 않았다. 키스를 끝낸 뒤, 지후는 제 입술을 가볍게 눌러 보더니 이람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이람의 품 안에는 지후가 건넨 장미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화사한 꽃다발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마주 선 모양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지후의 얼굴 위로 비스듬히 내려앉자, 이람은 새삼스럽게 느꼈다.‘이 사람, 정말 잘생겼네.’사람을 홀리는 눈매였다.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정교한 이목구비, 웃는 듯 마는 듯 걸쳐 있는 입가, 사촌형인 유재원보다도 더 섬세하게 다듬어진 듯한 생김새. 그 생김새는 지후 특유의 퇴폐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한층 더 부각했다. 저 남자는 길가 쓰레기통 옆에 세워 두어도, 쓰레기통마저 괜히 멋있어 보일 것 같았다.이람은 예전에는 지후를 이렇게까지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꾸만 눈길이 갔다.아무래도 이제는...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언제든 끝낼 수 있는 자기 남자친구가 되었으니까.얼굴도 좋고, 몸도 좋고, 집안도 H시 안에서는 손꼽힐 정도였다. 조건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이람은 제헌을 만나며 한때 자기 보는 눈까지 의심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람의 취향 자체가 형편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람이 지후와 이렇게 갑자기 관계를 시작해 보기로 한 건, 이전 사람을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어서였다.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아픈 감각을 끝내고, 새 삶으로 들어가고 싶어서였다.무엇보다 하준이 워낙 깊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 지금 곁에 두는 도구 같은 남자친구 역시 너무 조건이 떨어져서는 안 됐다.아무 남자나 대충 골라 두면, 비교 끝에 오히려 하준의 좋은 점만 더 또렷해질 뿐이었다.그러면 그건 정반대의 결과 아닌가?그런 의미에서 지후는 꽤 완벽했다.고백한 시기도 묘하게 알맞았다. 아이들을 계기로 서로 어느 정도 믿음이 쌓였고, 함께 지내며 편안한 관계도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람이 하준과 헤어진 지도 어느새 석 달이 넘었고, 거의 넉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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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이람은 지후의 말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제헌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이람 앞에서 대놓고 비웃지 않았던 사람은 지후가 유일했다. 물론 뒤에서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리에 섞여 지내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한마디쯤 얹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나쁜 짓 한 사람은 결국 벌받게 되어 있어요.”이람이 덧붙이듯 말했다.지후는 이람의 말이 누구를 겨냥한 건지 금방 알아들었다.제헌은 이제 아이들까지 얻었다. 원하는 건 거의 다 손에 넣은 셈이었다. 정말이지, 해로운 인간은 오래도 버틴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저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고 나서야 보상받았잖아요. 이람 씨. 어쩌면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나쁜 사람이 벌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언젠가는 이루어질지 몰라요.”이람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 진짜 제 마음에 딱 들었어요. 지후 씨랑 이야기하면 그래서 좋아요.”“저도 이람 씨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이람 씨,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이람 씨를 만났으면, 이람 씨는 틀림없이 저를 사랑했을 거예요.”지후는 원래도 돌려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이람 앞에서만 유독 망설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지후는 마음껏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마음껏 이람에게 잘해 줄 수도 있었다.곧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참이었지만, 이람은 그 말에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지후는 이람을 호텔 객실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얌전히 돌아서서 가 버리기에는, 지후로서는 도저히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지후는 거의 눌어붙듯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비록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라고는 해도, 지후는 이제 이람을 여자친구라고 부를 수 있었고, 자신은 이람의 남자친구였다. 이 관계가 끝났다고 말해지기 전까지는, 분명 연애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이였다. 관계가 이렇게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후에게는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정말로 큰 행운이 머리 위로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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