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941 - Chapter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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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1화

이람은 비웃듯 말했다.“알아요. 강제헌은 틀림없이 또 난리 치고, 또 저를 찾아오겠죠. 그런데 다 의미 없어요.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저는 이제 그 사람 신경 안 써요.”아이들만 없었다면, 지금쯤 이람은 하준과 계속 함께했을 것이다. 제헌은 이미 한참 전 과거의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생기면서 상황이 갑자기 꼬였다. 그때의 이람은 많이 흔들렸고, 여러 일을 다 정리해서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제헌이 아버지 구실만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게 기대한 적도 있었다.현실이 이람을 똑바로 깨우쳐 줬다. 제헌은 이람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한테 좋은 아버지가 되길 바라는 일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다.할 수 없으면 억지로 시킬 생각도 없었다. 불가능한 일은 안 하면 그만이었다.지후는 이혼 전, 제헌이 이람을 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의 제헌은 오만하고 차가웠다. 제헌에게는 이람이 안중에도 없었다. 부르면 오고, 밀어내면 물러나는 사람 정도로 여겼다. 조금도 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제헌 주변 친구들 가운데 이람을 존중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제헌 역시 그런 친구들이 하나같이 이람을 비꼬고 깎아내리는 걸 보기만 하고 그대로 내버려뒀다.그 시절 제헌에게는 이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혼하고 나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그제야 자기가 사실은 이람을 좋아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는 사실 자체로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하지만 모든 건 이미 늦었다.지후가 말했다.“제헌 형이 알게 되면, 제가 조금은 말려 볼게요.”이람은 지후를 바라봤다.“지후 씨도 저 때문에 뭘 할 필요는 없어요.”지후는 씁쓸하게 웃었다.“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진짜로 이람 씨 곁에서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서 대표라는 걸 저도 알아요.”“그래도 말리는 것 정도는 제가 해보고 싶은 작은 일이에요. 제헌 형한테도 현실을 좀 받아들이라고 말해 볼 생각이고요.”“그러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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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2화

지후는 제헌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제헌은 눈을 들어 지후를 봤다. 며칠 사이에 제헌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제헌은 지후를 잠시 말없이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지후가 이람의 손을 잡고 자기 앞에서 했던 말과 행동이 생생했다. 그 생각이 떠오를수록 제헌 표정은 더 험악해졌다.“네가 부러워할 게 그거 하나뿐이겠냐.”지후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방금 이람 씨 만나고 왔어요.”제헌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죽은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던 눈이 곧바로 서늘하게 날이 섰다.“와서 자랑이라도 하려고?”지후는 느긋하게 눈을 들었다.“내가 뭘 자랑할 게 있겠어요? 형 마음속 경쟁자는 서 대표뿐이었잖아요. 애초에 나를 경쟁 상대로 보지도 않았고요.”제헌은 싸늘하게 말했다.“아니. 이람이가 너를 택할 줄은 몰랐다는 거지.”이람이 지후 손을 잡고 자기 앞에 나타났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제헌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그 장면 때문에 제헌이 하준과 벌여 온 싸움 자체가 한없이 우스워 보였다. 이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는 제헌과 하준이 얼마나 치열하게 맞붙느냐와 아무 상관도 없었다.그래서 제헌은 자기가 처음부터 힘을 잘못 썼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일을 이람에게 바로 말했더라면, 이람은 분명 자기와 함께 아이들을 찾으며 하준을 원망했을 수도 있었다.문제는 그 한 가지가 아니었다. 예전에도 제헌은 이람이 하준과 가까워질 때마다 화부터 냈다. 하준을 너무 크게 의식한 탓이었다. 늘 상대가 자기 것을 빼앗으려 든다고 여겼고, 마음속에서 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기 곁에 있었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헌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미 물은 쏟아졌다. 이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것 같은 감각도 들었다. 그래서 지후가 눈앞에 있어도 예전처럼 손을 쓰거나 시비를 걸 기운도 나지 않았다. 지금의 제헌 자신이야말로 웃음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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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3화

제헌은 그토록 힘을 쏟아붓고도, 결국 자신은 하준 좋은 일만 시켜 준 꼴이 된 셈이었다.제헌은 이 모든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는 눈가가 붉어진 채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너 일부러 나 속이려는 거지? 말해!”지후는 미간을 좁혔다.“이람 씨가 나한테 끝내자고 했는데, 내가 형을 뭘로 속이겠어요? 형,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지금 같은 결말은 형도 어느 정도 예상하셨어야죠.”와장창-제헌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삽시간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금 제헌의 머릿속에는 하준에게서 이람과 아이들을 다시 빼앗아 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내 아이들이야! 내 아이!’‘서하준이 어떻게 내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그 소란에 강운국이 안에서 나왔다.강운국은 마당에서 거실로 들어오다가 바닥에 널브러진 난장판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래?”제헌은 자기 아버지를 노려봤다. 문득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웠다.“아버지, 다 아버지가 만든 일이잖아요!”제헌은 한 단어 한 단어를 이를 갈아가며 내뱉었다. 어깨까지 잘게 떨리고 있었다.“왜요? 왜 이 세상에 서하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해요? 왜 엄마를 배신하셨어요? 왜!”제헌은 강운국이 죽도록 싫었다.이 세상에 하준만 없었어도, 자기 인생은 분명 지금과 달랐을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엉망인 꼴은 아니었을 거라고.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모든 게 망가졌다.이람을 잃었고, 아이들마저 잃었다.이 파국이 정말 전부 제헌의 잘못이기만 한가?강운국이 욕망 하나 제대로 못 다스려서 서주연과 얽히지만 않았어도, 그래서 서주연이 하준을 낳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이제 제헌의 눈엔,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전부 다 원망스러웠다.정말 단 한 가지도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강운국은 완전히 무너진 제헌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꼈다.“일단 진정해.”제헌은 점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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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4화

이람이 운전했고, 단비는 이람 옆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차를 세운 뒤, 단비는 몸을 돌려 이람을 바라봤다. 눈에 담긴 호감은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우리 동생 운전하는 모습 좀 멋있다.”이람이 물었다.“계속 사람 붙여서 내 동선 보고 있었다면서 내가 운전 잘하는 건 몰랐어?”단비 눈이 더 반짝였다.“그건 진짜 몰랐지. 설마 네 실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거야?”이람은 잠깐 말이 막혔다.이람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뭘 하던 단비한테는 이상할 만큼 크게 먹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집요하게 들러붙는 단비의 행동이 실제로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어느새 이람은 단비를 자기 차 조수석에 태우고 있었다.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단비는 이람과의 관계에서 늘 선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업계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감독까지 소개해 줬다. 그 감독이 회사 드라마 한 편을 맡을 가능성도 생겼다.원래 이람은 단비와 지나치게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 회의에 들어가 보니, 다들 이번 건은 꽤 괜찮은 협업 기회라고 했다. 놓치기 아깝다는 의견이 많았다.회사가 이람 혼자만의 것도 아니었다. 다른 임원들을 비롯해 함께 판단할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이람도 받아들였다. 높은 확률로 협업이 성사될 수 있는 흐름이 생기면서, 둘 사이 거리도 빠르게 가까워졌다.어찌 보면 이것도 다른 방식의 ‘달콤한 포섭’이었다.단비는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재촉했다.“이람아,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반만 말하면 어떡해. 얼른 이야기해 봐.”이람은 단비를 봤다. 저렇게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으면, 겉보기에는 맑고 고요한 옥돌 같은 사람인데 하는 짓이나 눈빛은 완전히 수상한 냄새가 폴폴 났다.이람은 단비가 끈질기게 조르는 것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예전에 훈련하던 영상을 꺼내 보여 줬다.단비는 핸드폰을 받아 들여다봤다. 역시 누가 봐도 멋있는 건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법이었다.단비는 영상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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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5화

“안 돼.”단비가 바로 물었다.“왜 안 돼?”이람은 단호하게 잘랐다.“우린 성격이 너무 달라. 같이 못 지내.”단비는 몹시 상처받은 척했다.“너... 우리 엄마가 아빠한테 약 먹이고 너희 집 망가뜨려서 나 싫어하는 거지?”이람은 이미 단비 낯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충분히 봤다. 그러니 저 말도 전부 연기라는 걸 알았다.단비는 친엄마한테도 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고의 흐름부터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세상이 뭐라고 보든,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러니 저런 말은 그저 불쌍한 척 한번 해 보는 것뿐이었다.단비는 지금 완전히 이람 언니 역할에 취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언니라는 자리에 올라 보니, 그게 꽤 재미있는 모양이었다.“이람아,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마. 나는 너 해치지 않아. 오히려 지켜 줄 거야. 내가 언니잖아.”이람은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적당히 좀 해. 조 회장 성격이 워낙 속 좁고, 우리 엄마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었잖아. 그런 사람들이 오래 갈 리도 없고.”단비가 예전에 그런 얘기들을 해 준 뒤로, 이람도 어린 시절 기억을 하나씩 다시 떠올려 본 적이 있었다. 가령 조성민이 심혜주 학술 연구를 은근히 무시하던 일 같은 것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건 조성민의 질투였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연구자인 아내를 향해 그렇게까지 시기심을 품었다는 사실이 정말 비참하고도 한심했다.이람은 말을 이었다.“부모님 세대 일은 이제 그만하자. 조 회장 얘기도 듣기 싫어.”단비는 웃으며 받아쳤다.“그럼 이제 나 자체는 신경 안 쓴다는 뜻이네. 그런데 왜 아직도 나를 그렇게 질색해?”이람은 단비를 흘겨봤다. 겉보기엔 정말 얌전하고 반듯한 아가씨였다. 바로 그 사람 좋게 생긴 얼굴 때문에 더 소름이 돋았다. 저 얼굴로 사람을 아주 질리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람은 어이없어 웃기까지 했다.“너는 그냥 웃지만 마.”단비는 정말 웃음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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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6화

하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이람이었다. 그다음에야 이람 옆에 서 있는, 비슷한 키의 여자를 봤다. 하준은 저 여자가 단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예의상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단비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하준은 다시 이람을 봤다. 눈빛이 바로 부드러워졌다.“얼마나 기다렸어?”이람은 시간 맞춰 온 거였다. 직접 운전까지 했으니 늦을 리가 없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말하려던 참인데, 단비가 불쑥 이람 팔 한쪽을 끼고 들었다.“거의 한 시간 됐어요.”이람은 제 팔에 바짝 붙은 사람을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뭐 하는 거야?”단비도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나한테 15분도 한 시간이나 마찬가지야.”단비는 흥미롭다는 듯 덧붙였다.“동생아, 너 딱 봐도 누가 만만하게 볼 타입은 아닌데, 연애는 왜 이렇게 순진하게 하냐?”“이런 때는 좀 미안하게도 만들어야 하고, 더 마음 쓰이게도 해야지. 너무 착하게만 굴면 안 돼. 알겠어?”이람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예전의 이람은 늘 하준 생각부터 했다. 정말로 짐이 되지 않으려고만 했고, 이런 식의 밀고 당기기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런 태도는 지나치게 밋밋했다.“한 시간 기다렸어요. 모진이랑 모연이 빨리 보고 싶어서요.”이람은 금세 단비 편에 붙었다. 지후에게도 이미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자기 마음 편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기회를 주는 상대가 하준이라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지나치게 반듯하기만 한 사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람은 아직도 자기가 잘 모르는 하준의 면이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조금은 떠보고 싶었다. 지금의 하준이 정말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싶었다.하준은 과연 이람 예상대로 반응했다. 이람을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미안함이 바로 드러났다.“오래 서 있게 했네. 내가 밥 살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단비가 이람 귀에 대고 속삭였다.“태도는 괜찮네.”그때 이람은 처음으로 단비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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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7화

하준은 이람이랑 단비를 데리고 식사하러 갈 생각이라 말했다.“이람아, 내가 데려다줄게.”단비는 바로 거절했다.“서 대표님, 저는 제 동생이랑 같은 차 탈게요.”그러고는 이람을 돌아보며 흠잡을 데 없이 반듯한 웃음을 지었다.“저희는 서 대표님 차 뒤만 따라가면 돼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하준은 당연히 이람이 옆에 세워 둔 벤틀리로 옮겨 타길 바랐다. 그래야 틈을 봐서 이람을 한 번 안아 볼 수도 있었다.하준은 굳이 말을 보태지 않고 이람 뜻부터 살폈다.그런데 단비는 벌써 이람 손을 붙잡고 차 쪽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우리는 그냥 따라가면 돼.”하준은 잠깐 말이 막혔다.예전에는 이람의 마음만 얻으면 그걸로 됐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언제나 태도를 단정히 해야 했다. 이람의 언니인 단비가 자기한테 나쁜 인상을 가지게 두면 안 됐다. 자칫하면 단비가 이람 귀에 무슨 말을 얹을지 몰랐고, 그러다 보면 힘들게 쌓아 올린 이미지가 금방 흔들릴 수도 있었다.결국 하준은 다시 아이들이 타고 있는 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이람은 하준 차를 몰고 그대로 시내 쪽으로 향했다.이람은 이미 하준이 모진이와 모연이를 위해 준비한 생활 공간도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다. 머물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더 하이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집이었다. 원래는 하준이 둘이 같이 살 집으로 준비하던 곳이었다. 다만 하준은 이람 앞에서 단 한 번도 신혼집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냥 같이 살자고만 했을 뿐이었다.200평이 넘는 넓은 한 층짜리 집이었고, 반년 전쯤 전면 리모델링까지 끝낸 상태였다. 거기에 모진과 모연의 생활에 맞춰 다시 손을 봤다.또 하나는 단독주택이었다. 예전에 하준이 살았던 집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었고, 훨씬 조용하고 안전한 쪽이었다. 하준의 생각으로는 주말에 그쪽으로 가도 되고, 한곳에만 있기가 답답하면 기분 전환 삼아 옮겨 가며 살아도 됐다.두 곳 다 이람은 아직 직접 가 본 적이 없었다.단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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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8화

단비가 한 말은 이람이 지금까지 단비를 보며 쌓인 인상과도 딱 들어맞았다. 그때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이람이 순순히 말을 들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의 일을 겪고 예전으로 돌아가 가정해 본다면, 이람은 단비가 정말 자기를 막아 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람은 그동안 조성민과 얼굴을 맞댄 적이 몇 번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J시로 가서 연구를 시작한 뒤로는 더 그랬다. 이람은 대부분 자기 일은 스스로 하며 컸다. 결국 이람이 젊은 혈기에 휩쓸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곁에 있어 주며 붙잡아줄 사람이 없었던 셈이었다.이건도 처음에는 세상 탓, 남 탓만 하며 거칠게 튀어 오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누군가가 곁에서 붙들어야 했다. 지금은 이람이 어떻게든 조금은 바로잡아 놓아서 그나마 나아졌지만, 아니었으면 이건은 제멋대로 자랐을 것이다. 나중에는 회사에서도 자기 말만 맞다고 우기며 독선적으로 굴었을 거고, 어쩌면 수범과도 틀어졌을지 모른다.이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람도 성격상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이람은 그저 무언가 하나라도 붙잡고 싶었다. 거기에 처음 좋아한 사람이었으니 마음이 더 깊게 쏠렸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놓쳐 버릴 정도였다.그래서 만약 정말 단비가 그 시절 이람 곁에 있었다면, 분명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줬을지도 몰랐다.단비가 이람을 힐끗 보며 물었다.“무슨 생각 해?”이람이 답했다.“네 말.”단비는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었다.“감동했어?”이람은 입술만 살짝 당겼다. 단비의 기대대로 반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어쩌면 너랑 절교했을지도 모르지.”그 말이 또 단비 웃음 버튼을 눌렀는지, 단비는 한참 웃더니 말했다.“너 진짜 유치하다.”이람은 그 말에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는 기분 좋게 올라간 기색이 남아 있었다.아이들을 더 하이엘 아파트 단지에 먼저 데려다 준 뒤, 하준은 곧바로 이람 차에 올라탔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운전석으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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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9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단비는 이람 앞에서만 드러내던 것처럼 제부를 못마땅해하는 티를 더 내지는 않았다. 의외로 아주 시원하게 먼저 자리를 떴다.그래서 하준과 이람은 둘이 함께 단지로 돌아가게 됐다.차는 불빛으로 가득한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 하준이 운전하고, 이람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이람은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익숙한 풍경과 번지는 불빛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치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이 조용히 올라왔다.다만 지금의 두 사람은 아직 연인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단둘이 있을 때도 서로 조심스러운 선을 지키고 있었다.예를 들면 J시에서 이람이 몸을 추스르던 때도 그랬다. 처음 이틀 밤은 하준이 슬쩍 틈을 만들어 같은 침대에서 아무 일 없이 잠만 잤지만, 그 뒤로는 따로 지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선을 넘지 않았다.그리고 J시를 떠나기 전, 이람이 하준에게 어느 정도 확실한 말을 해 준 뒤 입맞춤이 있었다.이람은 이미 옆에 있는 남자와 가장 깊은 친밀함까지 나눠 본 사이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둘만 있을 때 되레 조심스럽게 간격을 두는 일은 이상하게도 낯설고도 짜릿하게 느껴졌다.차는 이람이 사는 동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5동 쪽으로 향했다.이곳이 바로 그 200평이 넘는 대형 평형이었다. 인테리어 시안은 예전에 한 번 본 뒤로 이람은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뒤로는 전부 하준이 직접 뛰어다니며 챙겼다. 그래서 이람에게는 오늘이 처음이었다.하준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 앞으로 돌아와 이람 쪽 문을 열어 주려 했다. 그런데 이람이 먼저 내려 버렸다.그대로 하준과 딱 마주쳤다. 이람은 하준의 깊게 가라앉은 눈을 정면으로 받자, 괜히 조금 어색해졌다.“먼저 길 알려 주세요.”하준이 낮게 웃었다.“그래.”하준이 앞서 걸었고, 이람은 그 뒤를 따랐다. 시선만 피하면 숨이 조금 편해졌다. 그래서 이람은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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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0화

하준이 말을 꺼낼 때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손에는 차가운 김이 맺힌 생수병이 들려 있었는데, 쥔 힘이 제법 들어가 있는지 손등 위로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이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준을 바라봤다.고요한 안방에 열기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하준은 답을 기다리다 말고 들고 있던 찬물을 내려놓았다. 대신 이람을 위해 따라 둔 미지근한 물잔을 들고, 천천히 이람 쪽으로 걸어왔다.하준이 가까워질수록 이람 심장은 자꾸만 세게 뛰었다.눈앞까지 다가오자 심장 뛰는 소리가 더 또렷해졌다.그래도 이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하준은 물잔을 이람 앞으로 내밀었다.“모진이랑 모연이 돌보느라 고생했잖아. 물 좀 마셔.”이람의 시선이 컵을 스쳤다. 다만 곧 옆으로 미끄러져 하준 손 위에 머물렀다. 남자 손치고도 꽤 큰 편이었고, 손가락은 길고 곧았다. 마디도 분명했다. 손만 봐도 얼굴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저절로 떠올릴 정도였다.이람은 하준의 얼굴도 마음에 들었고, 지금처럼 세심하게 챙겨 주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이람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3초쯤 지나서야 물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그래도 이람은 아까 하준이 했던 말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이람은 물잔을 든 채 소파 쪽으로 걸어가 앉았다.모진이와 모연이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렇다고 돌보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이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준도 따라와 맞은편에 앉았다.소파 배치는 마주 보고 대화하기 좋게 되어 있었다. 마주보고 앉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구조였다.이람은 컵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내 집도 가깝잖아요. 오늘은 그냥 내 집으로 넘어갈게요.”하준도 크게 아쉬운 티는 내지 않았다.“이따가 내가 데려다줄게. 일단 여기서 좀 쉬어.”이람은 하준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그래도 여기서 쉬라고 하려면, 생활용품은 다 있긴 해요?”하준은 말 대신 바로 이람을 데리고 드레스룸으로 갔다. 문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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