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091 - Chapter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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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1화

사흘 후, 소예지는 경주 시상식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정상 이틀이 걸리는 터라 고이한에게 연락해 딸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고이한이 이틀째 실험실에 나타나지 않자 소예지는 전화를 걸었다.“내일 아침 열 시 경주행 비행기야. 하슬이 이틀 좀 봐줘.”“알겠어.”고이한이 흔쾌히 대답했다.소예지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체크인 줄에 섰다. 짐을 부치고 나서 탑승 게이트로 향하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막 도착한 그 순간,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12번 탑승 게이트로 가세요.”지난번 난기류를 만난 뒤로 비행기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지만 소예지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비즈니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 승객들이 하나둘 탑승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기내 문이 막 닫히려는 순간, 갑자기 느껴진 인기척에 소예지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고이한이었다.여유롭게 걸어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재킷이 걸쳐져 있었고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그는 소예지 옆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자 소예지가 미간을 좁혔다.“하슬이 봐준다고 하지 않았어?”고이한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두 시 비행기로 돌아가. 하슬이 하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 수 있어.”소예지는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고이한의 시선은 그녀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옆얼굴에 머물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잠시 후,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소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팔걸이를 꽉 붙잡았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가슴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긴장이 밀려왔다.고이한은 그녀의 긴장을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긴장 풀어.”소예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채 이륙할 때의 부유하는 느낌을 견뎌냈다. 비행기가 안정되고 나서야 조금 몸을 풀었다.처음 30분은 매우 순조로웠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나자 봄철 강한 대류 기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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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2화

소예지는 천천히 산소마스크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본 고이한이 곧바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사방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상태를 더욱 심각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 외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듯했다.고이한은 어지럽게 흩어진 소예지의 긴 머리카락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소예지가 그의 손길을 느끼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리며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고이한은 멈칫하며 허공에 손을 멈춘 채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결국 말없이 주먹을 쥐고 시선을 거두었다.소예지는 머리끈을 풀었다.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쏟아지자 그녀는 재빠르게 뒤로 넘겨 낮은 포니테일로 단단히 묶었다.“당신 말이 맞아.”고이한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우리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 안 되지.”소예지가 그를 한번 흘겨보고는 다시 창밖 겹겹이 쌓인 구름에 시선을 돌렸다.“부모로서의 책임이니까.”고이한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소예지의 결정이 옳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두 시간이 지난 후, 비행이 마침내 끝났다.소예지가 짐을 찾는데 고이한이 뒤에서 말했다.“차가 공항 밖에서 기다려.”소예지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난 택시 탈게.”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 게이트를 나서는데 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에는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소예지 박사님’소예지가 막 눈치챘을 때, 그쪽에서도 소예지를 알아봤다. 그는 즉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소 박사님, 저 기억하세요? 임 대위님이 보내셨습니다.”소예지는 그를 알아봤다. 임현욱의 부하였다. 다만 임현욱이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사람을 보낼 줄은 몰랐다.고이한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남자를 날카롭게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필요 없어요. 소 박사는 제가 안전하게 호텔까지 데려다줄게요.”남자가 침착하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저희 상관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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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3화

“교수님, 그런 일이 있었나요?”소예지가 눈을 깜빡였다.이성열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때 네가 거절했잖니. 기억 안 나? 그래도 내가 자리는 계속 남겨뒀어. 그때 양 교수한테 물어봐 달라고 했더니 아이 때문에 당분간 해외는 안 된다고 했다더구나.”소예지의 기억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양정화가 그 얘기를 꺼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고 망설임 없이 거절했던 것도 떠올랐다.“고 대표가 특별히 따낸 자리였는데 가지 않아서 아깝지.”이성열이 말을 이었다.“그래도 지금 네가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다.”소예지의 눈이 살짝 커졌다.‘고이한이 일부러 따낸 자리였다고?’그때 석박사 통합 과정 자리를 안채린에게 줬던 그 시기에 자신을 위해 이런 준비도 해두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소예지는 짧게 웃었다.“제가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딸이 저를 너무 필요로 했거든요.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이성열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사정이 어려웠던 거 알아. 양 교수한테 들었어. 그런데 고 대표가 그때 나한테 한마디하더구나. 네가 알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으니 자기가 준비한 거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고. 그러고는 내가 네게 직접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고 대표가 말렸어. 나중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그때 꺼내자고.”소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그때 이성열이 직접 찾아와 얘기했더라도 결국 거절했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지도 몰랐다.“이혼은 했어도 고 대표가 줄곧 조용히 네 앞길을 닦아줬다는 게 보이는구나.”이성열이 자애로운 눈빛으로 소예지를 바라봤다.경주 학술 세미나에 여러 차례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고이한이 먼저 나서서 기회를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성열은 알고 있었다. 소예지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리였다.하지만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소예지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분명 고이한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방면에서 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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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4화

경주 국가회의센터가 성대한 분위기로 가득했다.오후 두 시 반.소예지는 우아한 짙은 회색 정장 차림으로 조명 아래 서서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수상 소감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함께한 팀원들과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특히 아버지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그 시각, 비행기 안에서 이륙을 기다리던 남자는 우연히 시상식 생중계에서 단상 위의 소예지를 봤다. 오래전의 풋풋했던 그 여자가 이제는 혼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과학자가 되어 있었다.“곧 이륙하니 휴대폰을 꺼주시겠어요?”승무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고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순간, 무의식중에 소예지의 카톡을 열어 한 문장을 입력했다.‘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분명 자랑스러워하셨을 거야.’다 쓰고 나서 고이한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결국 화면을 닫았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감정이 묻어났다.보내봤자 소예지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시상식은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소예지는 이성열 교수와 몇몇 원로 학자들과 함께 걸어서 호텔로 돌아갔다. 그 사이 여러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고 학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카메라 렌즈에 담기는 순간이 이어졌다.A시에서도 이번 시상식 소식은 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강준석은 사무실에서 생중계를 끝까지 시청하며 소예지가 이런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그때 서류를 안고 그의 사무실 앞을 지나가던 안채린은 그 장면을 보게 됐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예지의 수상 소식은 이미 사무실 전체에 퍼져 있었고 민간 프로젝트팀 전체가 그녀의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안채린은 그 소리들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한때 소예지를 비웃었던 기억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녀를 찔렀다. 소예지가 프로젝트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그녀에게 나가라고 요구했던 것부터 떠올랐다. 겨우 2년 반 만에 소예지는 안채린을 저 멀리 앞질러버렸다.지금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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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5화

그때 보조 직원 한 명이 슬그머니 다가왔다.“안채린 씨, 소 박사 뉴스 보고 있었어요?”안채린이 차갑게 웃었다.“볼 게 뭐가 있다고.”“안채린 씨랑 소예지가 같은 학번이었다고요? 진짜예요?”보조 직원이 눈을 반짝이며 캐물었다.“맞아. 같은 학번이었지. 근데 걔가 내세울 게 뭐가 있어? 아버지랑 전남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거기서 큰소리치고 있네.”보조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짝 다가왔다.“진짜요? 소예지가 이번 대상도 아버지랑 전남편 덕분에 받은 거예요?”옆에 있던 다른 보조 직원이 끼어들었다.“그래도 대단한 거 아닌가요?”“대단하긴 뭐가 대단해. 아버지가 남긴 연구 노트가 얼마나 많은데. 그 학문적 토대를 그대로 밟고 올라서서 한두 가지 성과 냈다고 대단한 건 아니지.”안채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두 보조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달라졌다.“그렇게 보니까 소 박사도 별거 아니네요.”“언론이 과장한 거겠죠. 뭐, 이런 상황에 누가 감히 그 사람 욕을 해요. 학술 비리 같은 거 보도하려 해도 고 대표 눈치 보느라 못 하는 거겠죠.”두 보조 직원을 세뇌하는 데 성공한 안채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문득 고이한이 석박사 통합 과정 자리를 가로채 자신에게 줬던 일이 떠올랐다.‘고이한 마음속에서 소예지의 자리가 뭐 그 정도겠지.’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뭐 보고 있어?”안채린이 황급히 휴대폰을 감췄다.“아, 아무것도 아니야, 강 선배.”강준석의 눈길이 세 사람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두 보조 직원은 그의 시선을 피해 얼른 자리를 피했고 안채린은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남아 있었다. 그때, 처음 소예지를 봤던 날이 떠올랐다.입학 첫날, 소예지는 교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화제가 되어 있었다. 미모만으로 신입생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그녀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뚝 끊겼다.열여덟 살의 소예지는 단순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도 맑고 예뻤다. 창가에 조용히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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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6화

소예지가 잠깐 멈칫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제가 내려갈게요.”핸드백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자 몇 미터 떨어진 곳에 길고 곧은 실루엣이 서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소예지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참지 못하고 먼저 웃었다.소예지는 그를 바라보며 가슴속에 미안함이 스쳤다. 지난번 찾아왔을 때 밥 한 끼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오랜만이에요.”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이마 옆에 몇 센티미터 길이의 흉터를 발견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분명 꿰맨 자국이었다.소예지가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봤다.“이거 어쩌다 다쳤어요?”임현욱이 손으로 흉터를 짚었다.“총알이 스쳐 지나갔어요. 별거 아닌 작은 상처예요.”소예지의 숨이 잠깐 막혔다. 그 총알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그의 눈 옆을 스쳐 지나갔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놀랐어요?”임현욱이 금세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솔직히 좀 무서웠어요.”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에게는 그냥 일상적인 업무였겠지만 소예지에게는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이야기였다.“자, 타요. 뭐 가져온 거 있어요.”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SUV 쪽으로 걸었다. 차 문을 열자 좌석 위에 티라미수 한 상자가 올려져 있었다. 소예지가 웃으며 집어 들었다.“이걸 좋아하는 거 기억하고 있었어요?”임현욱이 눈썹을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죠. 이번에 식당도 골라뒀는데 마음에 들지 봐요.”임현욱이 경주의 번화한 거리를 가로질러 차를 몰다가 조용한 골목 앞에 차를 세웠다.“여기 프라이빗 식당인데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마음에 들 것 같아서요.”그가 소예지를 이끌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문 안쪽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정갈한 정원에 석등이 은은하게 빛났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고요한 음악이 조용히 깔려 있었다. 도심의 소란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가게 주인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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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7화

“그럼 약속한 거예요.”임현욱이 웃으며 말했다.직원이 요리를 내오기 시작하자 정갈하고 아름다운 음식들이 하나씩 상 위를 채웠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처럼 섬세하고 먹음직스러웠다.“이것 좀 드셔봐요.”임현욱이 공용 젓가락을 집어 생선 한 점을 소예지의 그릇에 담았다.“방금 낚아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신선하고 부드러울 거예요.”소예지가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드세요. 먼 길 오느라 배고프실 텐데.”임현욱이 살짝 굳었다가 가슴속에 따뜻한 감정이 번졌다. 사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가서 씻고 곧장 달려온 터였다.두 사람은 식사를 하며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임현욱은 주변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골라 얘기했고 소예지도 이번 시상식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가볍고 편안했다.“저희 아버지도 예지 씨를 굉장히 높이 평가하세요. 틈만 나면 칭찬하시거든요.”임현욱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찻잔을 들었다. 잔 너머로 바라보는 눈빛이 진지하고 깊었다.“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세요.”소예지가 잠깐 놀란 듯 웃었다.“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야 감사하죠.”임현욱은 소예지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이런 분을 친구로 둘 수 있다는 게 저도 자랑스러워요.”친구라는 단어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 달랐다.소예지가 공용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그의 그릇에 담았다.“많이 드세요. 살이 빠진 것 같아요.”임현욱이 웃었다.“얼굴도 탔죠?”소예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썹 사이에 타고난 영기와 냉기가 서려 있었다. 군복을 입지 않았어도 그을린 피부가 자연스럽고 건강한 남성미를 풍겼다.소예지가 감상하듯 그를 훑어봤다.“많이 탔네요. 근데 그게 또 잘 어울려요.”그때 소예지의 휴대폰에서 영상 통화 알림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양희순이었다. 딸이 걸었겠구나 싶어 소예지는 임현욱을 향해 말을 꺼냈다.“하슬이 같아요.”“받아요. 저도 꼬마 한동안 못 봤는데.”임현욱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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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8화

“저 현욱 삼촌이랑 더 얘기하고 싶은데요!”화면 속에서 고하슬이 귀엽게 얼굴을 들이밀었다.“여름에 현욱 삼촌네 집에 가서 반딧불이 잡고 싶어요.”“여름에 엄마가 시간 되면 데려가 줄게. 알았지?”소예지가 달랬다.“하슬아, 여름에 엄마랑 같이 놀러 와.”임현욱도 부드럽게 말을 보탰다.“네!”고하슬이 금세 기분이 풀렸다.“엄마, 그럼 맛있게 드세요! 내일 선물 꼭 사 오는 거 잊지 마세요!”“알겠어, 안 잊어버릴게.”소예지가 딸에게 약속했다.영상이 끊기자 소예지가 어이없으면서도 흐뭇하게 웃었다.“저 녀석,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나네요.”임현욱이 웃음기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하슬이 정말 귀여워요. 솔직하고 천진난만하고. 잘 키우셨어요.”소예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곁에 있어 주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요.”“하지만 최고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잖아요.”임현욱이 위로하듯 말했다.“일터에서 빛나는 엄마가 아이에게 더 큰 힘이 되는 법이에요.”그 말이 소예지의 가슴을 따뜻하게 건드렸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이 정확하게 위로가 됐다.“다음 주에 할머니 뵈러 가는데 하슬이도 데려와도 돼요? 저도 하슬이 보고 싶거든요.”임현욱이 기대에 찬 눈으로 소예지를 바라봤다.소예지가 잠깐 멈칫했다. 임성국의 지위는 보통이 아니었다. 가벼운 식사 초대처럼 들렸지만 일반 가정의 그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너무 긴장하지 마요.”임현욱이 그녀의 고민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그냥 집밥 한 끼예요. 저희 할머니가 소예지 씨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독립적이고 훌륭하다고 늘 칭찬하시거든요.”임현욱이 웃음을 덧붙였다.“바로 답하지 않아도 돼요. 저도 경주에서 처리할 일이 많아서 일정이 좀 늦어질 수도 있어요.”“그럼 A시 오면 연락해요.”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저녁 식사가 끝나고, 임현욱은 시간이 아직 이른 것을 보고 근처에 고즈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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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9화

그때 소예지의 눈에 타워 하나가 들어왔다. 위에서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소예지가 문득 흥이 나서 뒤를 돌아봤다.“저기 올라가 봐도 될까요?”“그럼요, 같이 가요.”임현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타워 쪽으로 걸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꽤 훌륭했다. 다만 오래된 건물이라 통로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고 키가 큰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정도였다.임현욱에게는 꽤 버거운 구조였다.두 층을 올라 세 번째 층에 다다랐을 때, 위에서 관광객 네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좁은 공간 안에서 맨 앞의 여자가 정중하게 물었다.“죄송한데 좀 비켜주실 수 있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요.”소예지가 얼른 아래쪽 평평한 곳으로 물러섰다. 그 순간 임현욱의 단단한 몸이 피할 곳도 없이 가까워졌다. 앞에서 내려오던 관광객 중 체격이 큰 여자가 지나치다가 임현욱을 스쳤고 그의 몸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렸다.어두운 통로 안에서 소예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임현욱은 그녀와 부딪히지 않으려 양손을 벽에 짚어 그녀를 벽과 자신의 몸 사이에 감쌌다.네 명의 관광객이 임현욱의 옆을 하나씩 겨우겨우 지나쳐 내려갔고 좁은 공간에서 소예지는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머리 위로 남자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자 임현욱이 낮게 말했다.“미안해요.”좁은 공간에서 그 목소리가 유난히 묵직하게 울렸다.소예지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붉어져 있었다.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기운과 상쾌한 비누 향이 뒤섞인 냄새가 은근히 좋았다.임현욱이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제가 앞서갈게요.”소예지가 그의 뒤를 따랐다. 가파른 계단이 나올 때마다 임현욱이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올렸다. 마침내 다섯 번째 층에 올라서자 발 아래로 오래된 골목과 기와지붕들이 한눈에 펼쳐졌다.소예지가 난간을 붙잡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봤다. 올라오는 과정이 다소 아찔했지만 눈앞의 풍경이 그 모든 것을 보상해 줬다.먼 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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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0화

“괜찮아요, 호텔에서 택시 부르면 돼요. 푹 쉬세요.”소예지가 손을 저었다.“일어날 수 있어요.”임현욱이 웃으며 말했다.“들어가요.”소예지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 돌아보니 임현욱이 아직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 잠깐 멍하니 있을 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고이한이었다.[하슬이 잠들었어. 걱정 말고 일찍 쉬어.]소예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짧게 답하고 방으로 향했다.그 시각, 라온 파크 저택 안방에 있는 남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서재 통유리창 앞에 서서 휴대폰을 쥔 채, 화면에는 소예지와의 채팅창이 멈춰 있었다.그 짧은 ‘응’ 한 글자가, 아주 작은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방금 영상 통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임현욱과 저녁 식사를 하며 환하게 웃던 소예지의 얼굴,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 밝은 웃음이었다.고이한은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속이 복잡하게 뒤엉키는 것을 느꼈다.이튿날 이른 아침.소예지는 캐리어를 끌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임현욱에게 공항까지 배웅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일부러 일곱 시에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공항에서 아침을 먹으면 그만이었다.문자를 보내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딩,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소예지가 캐리어를 끌고 로비로 나와 체크아웃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소예지가 그 자리에 굳었다.임현욱이 의기양양하게 눈썹을 올리고 있었다.“소 박사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도망치려 하셨나요?”소예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언제 온 거예요?”“도망칠 것 같아서 일찍 왔죠.”임현욱도 웃었다. 방금 들어온 문자를 보고 몰래 빠져나가려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소예지는 민망했다. 이 시간이면 충분히 일렀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더 일찍 와 있었다.체크아웃을 마치고 소예지는 결국 임현욱의 차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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