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안영수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아빠도 네가 힘든 거 알아. 근데 지금 회사 상황이 이렇잖니. 아빠가 부탁하는 거야. 고 대표한테 한 번만 가봐 줘.”“아버지, 남한테 기댈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 해요.”“그러면 이렇게 하자. 오늘 저녁에 자리가 있는데 거기 와봐. 대영 그룹 대표를 소개해 줄게. 그 사람도 네 재능을 많이 높이 평가한다더라.”안영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아버지, 저 그런 자리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말 들어. 아빠 체면 생각해서 밥 한 끼 같이 먹는 거잖아.”안영수의 말투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게다가 너도 회사 주주로서 참석하는 거야.”심유빈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회사가 자신과 무관했다면 상대하기도 귀찮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주주였기에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알겠어요. 주소 보내줘요. 갈게요.”심유빈이 말했다.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저녁 무렵 소예지가 집에 돌아오니 고이한이 딸과 함께 와 있었다.“엄마, 왔어요!”고하슬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이한은 옆에서 만화를 함께 보고 있었다.“응!”소예지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딸에게로 걸어갔다. 고하슬이 두 팔을 뻗으며 안겨들었다.“엄마, 무슨 냄새예요?”“소독약 냄새야. 엄마 먼저 씻고 내려와서 같이 있을게, 괜찮아?”“네!”고하슬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슬이 좀 더 봐줄게. 금방 갈 거야.”고이한이 말했다. 저녁은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그래.”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가서 양희순에게 한마디하고는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머리를 감고 씻고 내려온 소예지는 편한 홈웨어 차림이었다. 풍성한 긴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어깨 뒤로 늘어뜨린 채였다. 샤워 후의 그녀에게서 맑고 부드러운 기운이 풍겼다.발코니로 나오자 불빛 아래 소파에 고이한이 아직 앉아 있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보는 순간 굳었다.이런 소예지의 모습이 결혼 생활 속 일상을 불러왔다. 화장기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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