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231 - Chapter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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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1화

“소 박사님, 좋은 아침이에요.”복도에서 마주친 조교가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소예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옅게 미소 지었다.“좋은 아침이에요.”그녀는 그대로 천천히 실험실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기억들은 다시 깊은 곳으로 눌러 담았다.이제는 일할 시간이었다.오전 내내 소예지는 이호연과 함께 다음 단계 실험 준비 회의를 진행했다.프로젝트 진도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 방향 역시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었다.기존보다 훨씬 위험 부담이 큰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결과를 얻을 가능성도 높았다.점심시간이 되어 두 사람이 구내식당 한쪽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강준석이 식판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이 박사님, 저 소예지랑 잠깐 둘이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이호연은 금세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별말 없이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편하게 이야기하세요.”그는 식판을 들고 자연스럽게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소예지는 조금 놀란 얼굴로 강준석을 바라봤다.“선배, 무슨 일이야?”강준석은 맞은편에 앉으며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예지야, 내가 요즘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어. 우리 다시 연락 닿게 된 거 기억하지? 먼저 연락한 건 나였잖아. 그때 난 진짜 좋았어.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소예지는 조용히 그날 밤을 떠올렸다.강준석이 먼저 메일을 보냈고 마침 온라인 상태였던 소예지가 바로 답장을 했다.그렇게 이어진 첫 통화 이후 두 사람은 스카이프까지 연결하며 자연스럽게 연락을 이어갔다.처음에는 아버지 연구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그러다 강준석이 소예지 이론 몇 개에 깊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대화는 점점 의학 전반과 연구 방향 이야기로 넓어졌다.오랫동안 혼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말에 끝없이 빠져들었다.강준석 눈빛에 짙은 자책이 스쳤다.“가끔 그런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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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2화

강준석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소예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도 그때 네 선택은 결국 가족이랑 하슬이를 위한 거였잖아.”소예지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씁쓸하게 웃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스스로 감동한 희생이었던 것 같아.”그 말에는 후회라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강준석은 소예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고이한이 심유빈이랑 계속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결국 심유빈이 기꺼이 어머니한테 헌혈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던 거야?”소예지는 입술 안쪽을 살짝 깨물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녀는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건 그 사람 선택이었어.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 자체는 이해해. 만약 그때 나한테 솔직하게 말해줬다면... 아마 나도 같이 이 문제를 감당하려고 했을 거야.”강준석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근데 그렇게 됐으면 심유빈은 분명 고씨 사모님 자리까지 요구했을 거야.”소예지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때 고이한이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딸 유전 가능성 문제까지 전부 이야기한 상태에서 심유빈이 나타났다면 그 결말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그 시절의 소예지는 분명 딸을 위해 자리를 비켜줬을 테니까.심유빈에게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고 끝까지 버틸 힘도 없었다.늘 그랬다.하슬이 앞에서는 언제나 자신보다 아이가 먼저였다.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양보도 가능했고 어떤 타협도 감수할 수 있었다.강준석이 조용히 물었다.“그래서... 지금도 고이한이 미워?”소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누군가를 계속 미워하는 것도 결국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잖아. 난 이제 그 에너지를 하슬이랑 연구에 쓰고 싶어.”잠시 말을 멈췄던 소예지는 아주 낮게 덧붙였다.“어쩌면 우리 둘 다 틀린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그냥 부부로는 맞지 않았던 거겠지.”강준석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눈앞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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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3화

고수경은 사실 오래전부터 다시 새언니라고 부르고 싶었다.하지만 소예지가 불편해할까 봐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고수경은 고하슬 앞에 천천히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춘 뒤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엄마랑 우리 오빠가 헤어졌잖아. 근데 고모 마음속에서는 엄마가 아직도 엄청 소중한 사람이거든. 그래서 그냥 예지 언니라고 부르는 거야.”고하슬은 반쯤 이해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렇구나!”그 순수한 반응에 거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소예지는 그런 고수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빛을 풀었다.지난 반 년 동안 고수경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다.예전처럼 제멋대로 감정부터 앞세우던 아가씨가 아니었다.상대가 어떤 기분일지 먼저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엄마, 이리 와봐요!”고하슬이 신나게 소예지 손을 붙잡아 끌었다.“고모가 기타 사줬어요! 앞으로 와서 나 가르쳐준대요!”소예지는 조금 놀란 얼굴로 서재 안을 바라봤다.그곳에는 아담하고 예쁜 클래식 기타 하나가 놓여 있었다.한눈에 봐도 아이 체형에 맞춰 특별 제작된 어린이용 기타였다.“저 예전에 해외에서 음악 공부도 했었거든요.”고수경이 괜히 민망한 듯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아이한테 기타 정도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슬이가 원래 음악 좋아하잖아요. 피아노 말고 다른 악기도 접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그 말을 듣던 고하슬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고모, 저번에 손가락 베여서 피 많이 났잖아요. 흉터 남았어요?”소예지도 그 말에 놀란 눈으로 고수경을 바라봤다.고수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응. 아주 조금 남았는데 지금은 거의 안 보여. 우리 하슬이 그때 엄청 놀랐었지?”고하슬은 기억이 난다는 듯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응. 피 진짜 엄청 많이 났었잖아요. 나 너무 무서웠어요.”소예지 시선까지 함께 자신에게 향해 있는 걸 느낀 고수경이 작게 웃으며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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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4화

소예지는 몸을 숙여 실험용 원숭이 몸에 센서를 부착하기 시작했다.시선은 계속 옆 모니터에 고정돼 있었다.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데이터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있었던 탓에 실험대 위 원숭이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날카로운 발톱이 그대로 팔을 긁고 지나갔다.순간 여러 줄의 깊은 손톱 국이 팔 중간을 가로질렀고 피가 순식간에 흰 가운 절반을 붉게 적셨다.옆에 있던 이호연과 이서연도 그대로 굳어버렸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서연이었다.그녀는 곧바로 달려들어 날뛰는 원숭이를 붙잡았다.마취 용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다행히 잠시 뒤 다시 마취 효과가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원숭이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고 이서연은 재빨리 실험 우리 안으로 다시 밀어 넣은 뒤 문을 잠갔다.이호연은 거의 뛰다시피 실험실 밖으로 나갔다가 응급 처치함을 들고 돌아왔다.“소예지 씨, 지금 바로 파상풍이랑 광견병 백신 맞아야 해요.”소예지는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피로 젖은 가운을 벗었다.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 중간에 길고 깊은 할퀸 자국 여러 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일단 응급 지혈부터 하고 바로 병원 가야 해요.”이호연은 말을 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급하게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는 손끝에도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소예지는 통증 때문인지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이서연은 이미 구급차에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구급차 곧 도착한대!”잠시 뒤 도착한 구급차에 소예지가 실리자 이호연과 이서연도 함께 올라탔다.구급차 안에서 상황을 정리하던 이서연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하나를 빠르게 보냈다.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뒤 의사가 상처를 확인하며 처치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응급실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고이한이었다.중요한 회의 자리에서 그대로 달려온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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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5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게 될 줄은 소예지도 몰랐다.봉합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팔 절반은 두꺼운 붕대로 단단히 감겨 있었고 피로 젖었던 실험복 대신 느슨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소예지는 병상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상처가 욱신거리는 데다 출혈까지 겹친 탓인지 몸 전체에 힘이 빠졌고 머리까지 무겁게 가라앉았다.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창백한 소예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보다 훨씬 깊고 복잡했다.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가 소예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슬이한테는 말하지 마.”고이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응.”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예전에도 원숭이한테 다친 적 있었잖아.”소예지는 순간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그 사실을 그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잠깐 의문이 스쳤다.고이한 눈빛에는 짧은 자책이 스며들어 있었다.“다음부터는 이호연 씨한테 더 신경 쓰라고 할게.”소예지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몸도 무거웠고 정신도 지쳐 있었다.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소예지는 옆 의자에 앉아 있는 고이한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이제 가. 간호사들도 있으니까.”고이한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자세만 조금 고쳐 앉았다.“쉬어. 방해 안 할게.”“안 그래도 돼...”소예지가 다시 말하려는 그때였다.고이한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그제야 소예지는 천천히 긴장을 풀었다.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병실 밖 복도에서는 김경환이 다가와 내일 출국 예정이던 항공편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고이한은 창가 앞에 선 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깥 야경만 바라봤다.그리고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일정 취소해.”김경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이번 실버 벨리 출장이 어떤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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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6화

“내가 시킬게.”고이한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더니 잠시 뒤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예전에 좋아하던 닭죽 집에서 시켜줄게.”소예지는 그 말을 듣고 잠깐 고이한을 바라봤다.맑고 담담한 눈빛이었다.“괜찮아. 예전에 좋아하던 거라고 지금도 입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잖아.”고이한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눈빛 아래로 짧고 어두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잠시 말이 없던 그가 다시 조용히 물었다.“그럼 지금은 뭐 먹고 싶어? 가져다줄게.”소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병원 영양식이면 충분해.”고이한은 아무 말 없이 소에지 옆얼굴을 바라봤다.예전과는 달랐다.그녀에겐 이제 새로운 취향이 생겼고 새로운 생활 습관이 생겼고 자신 없이도 굴러가는 완전히 다른 삶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응.”고이한은 결국 짧게 대답했다.병실 안으로 잠깐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고이한은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먼저 갈게. 김 비서 밖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하고.”“안 그래도 돼. 김 비서님도 보내줘. 필요하면 간호사 부를게.”소예지는 더 이상 그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고이한은 그 말을 듣고도 고개만 느리게 저었다.“열 시까지는 있으라고 할게.”끝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말투였다.고이한은 양복 재킷을 손목에 걸친 채 병실 문을 열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다시 적막해진 병실 안에서 소예지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와 메일을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한참 화면을 내려보던 그때였다.병실 문이 조심스럽게 두 번 노크 됐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며 김경환이 안으로 들어왔다.“소 박사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소예지는 고개를 들었다.김경환은 문을 조용히 닫고 침대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평소보다 훨씬 신중한 표정이었다.“고 대표님을 좀 설득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고신 그룹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그 말에 소예지 눈빛이 아주 미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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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7화

“이번 실버 벨리 회의는 뇌-컴퓨터 프로젝트 후속 자금이랑 국제 협력에 전부 연결돼 있습니다. 고 대표님이 빠지시면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건 물론이고 이사회에서 의사결정 능력 자체를 문제 삼을 수도 있습니다.”김경환은 결국 더 돌리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고 대표님을 설득해서 꼭 참석하시게 해주셨으면 합니다.”소예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제가 얘기해 볼게요.”그 말에 김경환 얼굴 위로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다.“감사합니다.”김경환이 병실을 나가자마자 소예지는 망설이지 않고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은 길지 않았다.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 가는 중이야. 하슬이가 전화했어?”“아니.”소예지는 짧게 대답한 뒤 천천히 숨을 골랐다.그리고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때문에 실버 벨리 회의 취소하지 마.”전화기 너머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낮게 숨 내쉬는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왔다.“김경환이 시켰어?”“아니, 나 때문에 그러는거면...”“소예지.”그녀 말을 끊고 불러오는 남자 목소리에는 묵직한 자책이 배어 있었다.“3년 전에 당신 전화 못 받아서 하슬이 수술 혼자 감당하게 만들었어. 이번까지 또 그렇게 할 수는 없어.”소예지는 휴대폰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줬다.병실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이 희미하게 흔들렸다.“그럴 필요 없어. 일하러 가. 하슬이는 내가 볼게.”전화기 너머에서 낮고 짧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내가 한번 결정한...”“고이한.”소예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고이한의 말을 끊었다.“나도 당신 회사 주주 중 한 명이야. 그 자격으로 말하는 거야. 회사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실버 벨리 포기해서 뇌-컴퓨터 프로젝트 후속 자금 흔들리면 이사회 앞에서 내가 약속한 3년 계획도 전부 웃음거리 되는 거고.”이번에는 전화기 너머 침묵이 조금 길었다.고이한은 아마 소예지가 감정이 아니라 철저한 사업 논리로 자신을 밀어붙이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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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8화

소예지는 눈앞에 놓인 식판을 바라보다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아직 식사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음식이 먼저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간호사는 자연스럽게 침대 테이블을 펼친 뒤 따뜻한 닭고기 죽 한 그릇과 입맛 돋우는 반찬 몇 가지 병원 영양식까지 하나씩 정갈하게 내려놓았다.소예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이건...”간호사가 웃으며 설명했다.“병원 식사는 김 비서가 따로 주문해 두셨고요. 죽은 외부에서 배달 온 거예요. 같이 가져다드렸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 시선이 포장 상자 위에 멈췄다. 익숙한 상호명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자주 시켜 먹던 바로 그 죽집이었다.간호사가 나가고 병실 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소예지는 한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익숙한 냄새가 천천히 공기 안에 퍼졌고 결국 조용히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맛은 기억 속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건 음식이 아니라 자신이었다.소예지는 말없이 숟가락을 내려놓은 뒤 휴대폰을 들어 임현욱과 마지막으로 나눈 메시지 창을 열었다. 무심코 날짜를 세어보니 서로 연락이 끊긴 지도 어느새 서른여덟 날이나 지나 있었다.그때 봉합한 상처 부위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천천히 가라앉는 통증을 참고 창밖 밤하늘을 바라보자 어느새 계절은 여름 문턱까지 와 있었다.‘임현욱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무사할까.’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 메시지 입력창을 열었다. 안부를 묻는 짧은 문장을 적었다가 다시 지우고 또 몇 글자를 입력했다가 끝내 전송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지금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임무 중일 수도 있었고 목숨을 건 작전 한가운데 있을 수도 있었다. 전장에서는 아주 사소한 변수 하나가 사람 목숨을 갈랐다.결국 소예지는 길게 숨을 내쉰 뒤 입력했던 문장을 전부 삭제했다.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고하슬과 짧게 통화를 했다. 출장 중이라고 둘러대자 고하슬은 별 의심 없이 믿어버렸고 젤리가 오늘 밥을 잘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신나게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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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9화

김경환은 조용히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그때 이서연이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휴대폰을 병실에 두고 나온 걸 알아채고는 소예지를 향해 말했다.“잠깐만. 휴대폰 놓고 왔어.”소예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경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심유빈 씨, 무슨 일이세요?”소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고 대표님은 지금 해외 출장 중이십니다. 일정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잠시 뒤 다시 이어진 목소리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죄송합니다. 현재는 저도 고 대표님과 바로 연락이 닿는 상황이 아니라서요.”그러다 김경환 목소리에 짧은 놀람이 섞였다.“선물 리스트요? 어떤 선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복도 공기 사이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심유빈이 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통화를 이어가는 김경환 얼굴에는 점점 인내심이 닳아가는 기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죄송합니다만 그 부분은 제가 고 대표님 대신 결정해 드릴 수 없습니다. 대표님 귀국 후에 다시 연락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리고 몇 초 뒤, 결국 참다못한 듯 한층 낮아진 목소리가 이어졌다.“말씀은 이해합니다만 고 대표님의 사적인 일에 제가 나설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저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김경환은 먼저 통화를 정리한 뒤 휴대폰을 내렸다.몸을 돌리다가 바로 옆에 서 있는 소예지를 발견하고 잠깐 멈칫했다.“방금 심유빈 씨가 고 대표님 찾으셨는데요. 계약 조항에 따라 선물 목록 보내신 거예요.”소예지는 고이한과 심유빈 사이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그녀를 보자 김경환이 괜히 급해진 얼굴로 덧붙였다.“소 박사님, 사실 그동안 고 대표님이 심유빈 씨께 드린 선물들도 전부 계약 조항에 따른 거였습니다. 매번 제가 대신 처리해 드렸고요...”“김 비서님.”소예지가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설명 안 하셔도 돼요. 저희 이미 이혼했잖아요. 그 사람 사적인 일은 이제 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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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0화

심유빈은 입술을 천천히 깨물었다.‘고이한이 해외에 나갔다고.’‘대체 무슨 일로?’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그때 밖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심유빈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끄고 김경환과 나눈 대화창까지 삭제해 버렸다. 방기성이 자신이 아직도 고이한 측에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됐다.잠시 뒤 와인빛이 감도는 드레스를 입은 심유빈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허리선을 따라 부드럽게 떨어지는 실루엣과 드러난 어깨선이 충분히 시선을 끌 만했지만 막 현관으로 들어온 방기성은 그녀를 보는 둥 마는 둥 굳은 얼굴로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그 모습에 심유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자기야, 무슨 일 있어요?”심유빈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묻자 방기성은 소파에 몸을 털썩 던지듯 앉더니 손에 쥔 쿠션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고이한 그 자식이 이번에도 실버 벨리 초청받았대.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걸 챙겨오겠어.”심유빈의 심장이 순간 쿵 내려앉았다.실버 벨리 회의는 3년에 한 번 열리는 자리였다. 전 세계 최상위권 자본과 기술 그리고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모임이었다. 3년 전에도 고이한이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다시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고이한의 사업은 대체 어디까지 뻗어가고 있는 걸까.“자기야, 너무 화내지 마요...”심유빈이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지만 방기성은 냉소적으로 웃어버렸다.“화를 안 낼 수가 있어? 그 어린놈한테 실버 벨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잖아.”그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열등감과 자존심 상한 분노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자신은 평생 발버둥 쳐도 바깥 언저리만 맴돌 뿐인데 고이한은 벌써 저 중심부까지 올라가 있었다.심유빈은 눈을 내리깔았다. 속에서는 질투와 억울함이 끓어오르고 있었다.소예지만 아니었더라면, 그 여자가 고씨 가문을 살릴 약을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유일한 공급자이자 절대 놓칠 수 없는 존재로 고이한 곁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예순 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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