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한은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소예지는 눈을 감았다. 얼굴에서는 핏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와 머릿속을 어지럽게 뒤흔들었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침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냈다.“D국의 실험실, 대체 누구를 위해 세운 거야? 당신 어머니의 병 때문이야, 아니면... 우리 아버님 연구 때문이야?”고이한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언젠가 그녀가 이 질문을 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했다.고이한은 천천히 몸을 낮춰 앉았다. 어느새 소예지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소예지는 의자에 앉은 채 고이한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서 숨김없는 진실을 듣고 싶었다.고이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처음에는 그저 실험실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 그런데 하필 그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였고 아버님께 그 이야기를 꺼낸 지 사흘 만에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어.”고이한이 혼수상태에 빠진 뒤 벌어진 일들은 소예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버님이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날, 소예지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믿기 힘든 사실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그녀는 휴학을 결정하고 병원으로 향해 고이한의 곁을 지켰다.처음에는 반대했던 아버지도 나중에는 어째서인지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이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소예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당시 아버지는 이미 고이한이 가진 재력과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그가 실험실을 세우려 한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아버지 역시 고이한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랐던 것이다.고이한은 결국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 소예지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고이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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