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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221 - チャプター 1230

1444 チャプター

제1221화

소예지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울린 휴대폰 진동에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바로 화면을 확인했고 그 순간 긴장으로 굳어 있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고이한에게서 온 사진이었다.사진 속 젤리는 온몸이 흙과 먼지로 엉망이 된 채 고이한 품에 안겨 있었다. 젖은 눈에는 아직 겁먹은 기색이 남아 있었고 작은 머리는 고이한의 복부 쪽에 바짝 기대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제야 겨우 안심한 얼굴이었다.소예지는 한동안 화면을 내려다봤다.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고이한은 원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사람이었다. 소예지가 예전에 몰래 젤리를 데려왔을 때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집 안에서 동물을 키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소예지는 알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사진 속 그는 비싼 수트 위에 흙이며 개털이 잔뜩 묻어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젤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소예지는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짧게 답장을 보냈다.[고마워. 고생했어.]그리고 다시 이호연과 함께 마중 나온 차량 쪽으로 걸어갔다.한편 고이한은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잠시 바라봤다.짧은 문장이었지만 어딘가 칭찬받은 기분이 들었다.고이한은 고개를 내려 품 안에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는 젤리를 바라봤다.이 정도 고생쯤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동물병원에 도착하자 젤리는 의사 가운만 봐도 겁을 먹었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결국 고이한이 직접 안은 채 계속 곁에 있어 줘야 겨우 목욕부터 상처 소독, 붕대 처치와 예방접종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병원 직원들은 거의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반려견 하나 때문에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곁을 지키며 다정하게 달래주는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위기만 봐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는데 그런 남자가 수백만 원짜리 맞춤 수트에 털과 진흙이 묻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특히 젤리가 겁먹을 때마다 낮고 부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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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2화

소예지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아주 잠깐 멈춰 섰다.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저 여자아이 얼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딱 한 번 본 적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던 얼굴이었다.송세아, 지난번 병원에서 마주쳤던 여자 파일럿이었다.그때의 송세아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바르게 펴진 어깨와 자신감 있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차가운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다.소예지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그때 통화를 마친 주경호가 다시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소예지 시선이 머무는 방향을 따라가더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제오래된 친구 손녀예요.”주경호의 목소리에는 짙은 안타까움이 어려 있었다.“원래 앞날이 정말 창창한 아이였어요. 어린 나이에 파일럿까지 됐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었어요.”소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혹시 비행 사고였어요?”주경호의 시선이 다시 송세아에게 향했다.“네.”짧은 대답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사고 이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어요.”그 말에 소예지 숨이 답답하게 막혔다.그녀는 다시 휠체어 쪽을 바라봤다.송세아는 간호사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단단하고 곧은 기운이 느껴졌다.운명 앞에 무너져버린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주경호는 그런 소예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소 박사님 연구가 성공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그의 눈빛에는 분명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뇌-컴퓨터 프로젝트가 완성 단계까지 가게 되면... 저 아이 다리도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생겨요.”소예지의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울렸다.그녀는 말없이 송세아를 바라봤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주 조용히 다짐했다.자신의 연구가 정말 누군가에게 다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가겠다고.그 정도 가치라면 밤을 새우고 삶을 갈아 넣는 일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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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3화

소예지는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소파에 앉아 있는 고이한을 바라봤다.“이제 가서 쉬어.”고이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젤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젤리 데려가도 될까?”소예지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고하슬이 먼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아빠, 젤리 잘 돌봐줘야 돼요!”그 말에 고이한 입가에 아주 옅은 웃음이 스쳤다.“응.”낮게 대답한 그는 자연스럽게 젤리를 한번 바라봤고 젤리 역시 분위기를 눈치챈 듯 절뚝거리면서도 곧장 그의 뒤를 따라 현관 쪽으로 향했다.소예지는 그런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하슬을 씻기고 재운 뒤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오늘 세미나에서 받아온 자료들을 정리해야 했다.하지만 화면을 바라보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자꾸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정원에서 마주했던 송세아의 얼굴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조용히 바라보던 그 눈빛이 이상할 만큼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아마 누구보다 다시 자유롭게 날고 싶어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소예지의 마음 한쪽이 묘하게 무거워졌다.다시 조종간을 잡고 예전처럼 하늘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그 생각이 들자 소예지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어깨 위에 얹힌 책임감이 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다음 날 아침.고이한은 평소처럼 고하슬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줬고 소예지도 조금 뒤 집을 나서 실험실로 향했다.봄도 어느새 끝자락에 가까워진 시기였다. 소예지는 얇은 셔츠 위에 가볍게 재킷만 걸친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실험실 주차장에 도착한 뒤에도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경호차 한 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차 안에 있던 경호원이 급히 내려와 고개를 숙였다.“소 박사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혹시 임현욱 씨 소식 들으신 거 있으세요? 지금 어디 있는지라도... 알고 계신가 해서요.”말끝에는 아주 희미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어차피 이 사람들은 임현욱 쪽에서 붙여준 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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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4화

“고 회장님, 너무 그렇게 딱 잘라 말씀하지는 마십시오. 살다 보면 이 바닥에서 서로 도움 주고받을 일도 생기는 법인데 여자 하나 때문에 관계까지 틀어지는 건 서로 득보다 실이 크지 않겠습니까.”방기성은 여전히 웃음기를 잃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압박과 자존심이 함께 섞여 있었다.하지만 고이한 반응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다른 용건 없으시다면 곧 회의가 있어서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고이한은 미련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짧은 통화음이 끊기자 그는 그대로 휴대폰을 내린 채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한편 별장 안.방기성은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손안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원래부터 저 젊은 놈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쉽게 높은 자리에 올라선 탓인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 위에 군림하려 드는 모습이 거슬렸는데 이렇게까지 대놓고 무시당한 건 또 처음이었다.속에서 분기가 치밀어 올랐다.바로 그때였다.부드러운 팔 하나가 자연스럽게 그의 목을 감아왔다.“자기야, 너무 화내지 마요.”심유빈이 달래듯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당신이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만으로도 전 충분해요.”방기성은 나이가 들어도 결국 수십 년 동안 상업계 바닥을 버텨온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남에게 눌리는 걸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그런데 고이한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선을 긋고 나오자 오히려 오기가 더 끓어올랐다.그는 심유빈 허리를 끌어안은 채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눈빛 안에는 이미 상대 도발을 받아들이겠다는 계산이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걱정하지 마.”방기성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고이한 그놈은 아직 젊은 혈기밖에 없는 애송이야. 조금 힘 있다고 세상 전부 자기 발밑에 있는 줄 아는 거지. 하지만 A시에서 내가 마음먹고 못 해낸 일은 없어.”심유빈은 조용히 그를 올려다봤다.방기성 눈 깊숙한 곳에는 이미 자존심이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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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5화

그 와중에도 심유빈의 시선을 붙잡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성양 그룹이 파산 청산 절차를 밟은 뒤 해외 사업 실적과 일부 의료 기술 특허를 높게 평가받아 신생 의료 기술 회사에 인수됐다는 기사였다.결국 성양 그룹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그 순간 심유빈은 안영수에게는 이제 다시 일어설 기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제때 방기성이라는 든든한 나무에 올라탄 자신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제는 기댈 곳도 있었고 예전처럼 불안에 떨며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생겼으니까.심유빈은 천천히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봤다. 최근 방기성이 직접 선물해 준 것이었다.물론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정말 필요한 건 결국 안정된 삶과 부족함 없는 환경 아니겠는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심유빈은 스스로를 애써 설득했다.그리고 최근 심유빈을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고이한과의 관계가 어떻든 계약은 계약이었다. 계약서 안에는 매년 지급되는 증여 조항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고 실제로 고이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그의 비서실을 통해 선물이 도착했고 법적 효력을 가진 의무인 만큼 고이한은 그런 부분에서만큼은 지나치게 철저한 사람이었다.‘올해는 뭘 받게 될까.’심유빈은 턱을 괴고 천천히 생각했다.‘다이아몬드를 새로 맞출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보석 세트를 고를까.’그 시각 실험실 구내식당에서는 소예지가 식판을 들고 강준석이 있는 자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점심을 함께 먹기로 한 상태였다.그런데 문득 시야 끝으로 익숙한 두 사람 그림자가 들어왔다.고이한과 김경환이었다.둘 역시 식판을 든 채 이쪽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소예지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하필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하지만 소예지는 금세 시선을 거둔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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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6화

그날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이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번 소예지에게 강준석과의 거리감을 지켜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연구 이야기며 사소한 일들을 두고 두 사람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하게 내려앉았다.특히 그해 크리스마스는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겉으로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지나갔지만 이상하게 하루 종일 가슴안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혀 있는 기분이었다.고이한은 천천히 생각에서 빠져나왔다.이미 지나간 일이었다.지금은 소예지와 이혼한 사이였고 그녀와 강준석 사이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오래된 친구에 가깝다는 사실쯤은 충분히 알았다.그런데도 묘하게 남아 있는 거슬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맞은편에 앉은 김경환 역시 그 분위기를 눈치채고 있었다. 고이한은 식판을 앞에 두고도 거의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구내식당에서 평범한 연구원들 사이에 섞여 식사를 하는 모습 자체가 어딘가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처럼 느껴졌다.한편 멀지 않은 구석 자리에서는 안채린이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오늘은 안채린이 다시 출근한 첫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소예지와 강준석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는데 거기에 고이한까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옆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문득 자신을 바라보던 고이한 눈빛과 소예지를 바라보는 지금의 눈빛이 겹쳐졌다.그 차이가 너무 선명해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안채린은 이를 세게 악물었다.지금 자신의 처지는 말 그대로 바닥이었다. 성양 그룹은 완전히 무너졌고 믿고 있던 배경도 사라졌다. 경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조차 불안했다.반면 소예지는 정반대였다.연구는 점점 더 인정받고 있었고 이혼한 전남편은 눈에 띌 정도로 소예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각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까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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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7화

강준석은 조용히 고개만 한번 끄덕였을 뿐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그는 오래전부터 소예지가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의 욕망과 재능을 억누른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물론 좋은 아내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마음 역시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 삶은 그녀를 전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소예지는 원래 자기 분야 안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그리고 아마 고이한 역시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있을 터였다.하지만 너무 늦었다.지금의 소예지는 이미 자신의 길 위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소예지를 증명하는 건 화려한 재벌가와의 결혼도, 고이한이라는 이름도 아니었다.오직 그녀 자신의 실력과 존재감뿐이었다.한편 뒤쪽에 서 있던 김경환은 말없이 고이한 눈치를 살폈다.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고이한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보기 드물 정도로 무겁고 가라앉아 있었다.잠시 후 고이한이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뒤 낮게 입을 열었다.“가죠.”곧바로 그룹 본사로 이동해 회의를 들어가야 했다.차에 오른 뒤에도 차 안 분위기는 한동안 조용했다.잠시 망설이던 김경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번 실버 벨리 초청 건은 참석하실 생각이십니까?”실버 벨리.세계 최정상급 금융계와 기술 업계 거물들이 극비리에 모이는 자리였다. 행사 자체가 철저하게 비공개로 운영됐고 참석자들 역시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규정은 행사 기간 내내 모든 개인 통신 기기의 사용이 금지된다는 점이었고 그 말은 곧 참가자들이 사흘 동안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지내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김경환은 지난번 고이한이 실버 벨리에 참석했을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 3일 동안 고이한 그룹은 전례 없을 정도로 거센 위기를 맞았었다.국제 자본 세력이 뒤에서 움직이는 경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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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8화

소예지가 거실로 나오자 양희순이 따뜻한 인삼차 한 컵을 조심스럽게 들고 다가왔다.“사모님, 몸 좀 보하시라고 끓였어요.”소예지는 태블릿에서 시선을 들어 양희순을 바라봤다.“감사해요.”양희순은 여전히 젤리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잠깐의 실수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애를 태웠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쉽게 가시지 않는 눈치였다.소예지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그저 소파에 앉아 인삼차를 천천히 떠먹으며 태블릿 속 데이터 분석 자료를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시간이 어느새 8시 반을 넘겼을 즈음이었다.서재 문이 열리더니 고이한이 고하슬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물을 마시러 나온 모양이었다.고하슬은 소예지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곧장 달려왔다.“엄마 왔어요!”신난 목소리였다.“나 아빠랑 영어 자기소개 연습했어요.”소예지는 웃으며 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응, 엄마 들었어. 우리 하슬이 진짜 많이 늘었네.”칭찬을 듣자 고하슬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그 모습을 보던 고이한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예지 얼굴에 머물렀다.소예지는 잠시 그의 눈을 마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고마워.”그 말을 들은 고이한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간도 살짝 좁아졌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 안 해도 돼.”낮고 담담한 목소리였다.하지만 소예지는 생각이 달랐다.지금의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삶에서 독립된 존재였다. 예전처럼 당연하게 아이를 맡기고 도움을 받는 관계는 아니었다.소예지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내리자 고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다음 주에 외부 회의 일정이 있어. 3일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 기간엔 외부 연락이 완전히 차단돼.”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소예지 반응을 살폈다.“그동안은 수경이 하슬이 데려갈 거야.”소예지는 제비집을 한 숟갈 더 뜨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짧은 대답이었다.하지만 고이한 목울대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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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9화

김경환은 소예지를 보고도 딱히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오는 길에 이미 이문혁에게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오늘 그녀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소 박사님, 오셨네요.”김경환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그 순간 묘비 앞에 쪼그려 앉아 잡초를 정리하던 고이한 손이 멈췄다.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소예지를 바라봤다.흰 국화 꽃다발을 안고 서 있던 소예지도 고이한과 눈이 마주치자 아주 잠깐 놀란 듯 시선을 흔들었지만 이내 다시 평소처럼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다.여기서 그를 마주칠 줄은 몰랐던 것이다.잠시 흐르던 정적 속에서 김경환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대표님은 국내에 계실 때마다 빠짐없이 소 교수님 기일에 오셨어요.”그 말은 생각보다 깊게 소예지 마음을 건드렸다.결혼 초반 몇 년 동안은 두 사람이 함께 이곳에 왔었다.하지만 관계가 틀어진 이후부터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몇 년 동안 아버지 묘 앞은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시들지 않은 꽃다발도 빠짐없이 놓여 있었다.소예지는 당연히 아버지 제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다녀간 줄 알았다.하지만 조용히 치러졌던 장례식과 이후 상황들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꾸준히 찾아올 사람은 사실 많지 않았다.결국 그 모든 건 줄곧 고이한이었던 것이다.그 사실이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는 잠시 시간이 필요했다.한편 고이한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몸을 숙여 묘비 틈 사이에 난 작은 잡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소예지도 천천히 걸어가 자신이 가져온 흰 국화를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이미 놓여 있던 꽃다발 옆이었다.“고마워.”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고이한은 묘비 속 온화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바라본 채 담담하게 말했다.“당연한 거야.”잠시 침묵이 흐른 뒤 고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어젯밤엔 같이 오자고 말하려고 했어.”소예지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고이한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근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그냥 말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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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0화

통화를 마친 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바로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벨모아 호텔의 2대 주주인 그라면 이런 부탁 정도는 어렵지 않게 들어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몇 번 신호음이 울린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소예지는 괜히 말을 돌리지 않았다.“부탁 하나만 할게.”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아주 옅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우리 사이가 이렇게까지 어색해졌어?”장난처럼 들리는 말투였지만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소예지는 그 말을 굳이 받아주지 않았다.“이번에 임 이사도 실버 밸리 들어가는데 전용기에 같이 태워줄 수 있어?”고이한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물론이지.”생각보다 너무 쉽게 돌아온 대답이었다.“고마워.”소예지는 용건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그런데 바로 그때였다.“잠깐.”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소예지는 차 문에 기대선 채 미간을 아주 살짝 좁혔다.잠시 침묵하던 고이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번 실버 밸리 회의는 들어가는 순간부터 외부랑 완전히 차단돼.”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고 느렸다.“휴대폰도 전부 압수당하고 외부 연락 자체가 안 돼. 그러니까 그 3일 동안 무슨 일 생기면 김경환한테 연락해. 회의 끝나는 즉시 바로 나한테 전달될 거야.”단순한 전달 같으면서도 어딘가 설명에 가까운 말이었다.소예지 발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휴대폰을 쥔 손끝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소예지는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았어.”그뿐이었다.따져 묻지도 않았다.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지도 묻지 않았고, 원망 섞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더 멀게 느껴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에서 고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소예지...”하지만 무언가 말을 잇지 못한 채 그대로 멈췄다.소예지는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다른 용건 없으면 끊을게.”정중한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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