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고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소예지만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은 흐뭇함이 아니라 안쓰러움이었다.소예지의 너그러움 뒤에는 그녀가 혼자 삭여온 억울함과 서러움이 쌓여 있다는 것을 고이한은 알고 있었다. 옆에 있던 윤하준도 끼어들지 않았다. 하종호와 소예지가 묵은 감정을 풀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줬다.하종호가 오늘 온 것은 소예지에게 제대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오는 길에 긴장했던 마음은 소예지의 너그러운 용서에 비로소 가라앉았다.“그럼 나 먼저 가볼게. 결혼식 전에 처리할 게 좀 있어서.”하종호가 자리를 뜨려 했다.“가봐. 결혼식 준비나 잘해. 그날 나랑 이한이 일찍 갈게.”윤하준이 말했다.하종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그때 고하슬과 이안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소예지가 딸에게 말했다.“하슬아, 이제 늦었으니까 집에 가서 씻어야지.”고하슬이 아쉬운 듯했지만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신이 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엄마, 이안이가 이제 우리 같이 어린이집 다닐 수 있대요!”“그래, 그럼 또 같이 다닐 친구가 생겼네.”소예지는 이안 쪽으로도 시선을 돌렸다.“이안이, 또 컸네!”윤하준이 이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예지 이모랑 이한 아저씨, 하슬아 잘 가!”고이한이 온화하게 웃었다.“잘 가.”동시에 윤하준과 눈이 마주쳤다. 두 남자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윤하준은 이안의 손을 잡고 자신의 동으로 걸어갔고 반대편에서는 고이한과 소예지가 고하슬과 나란히 다른 동을 향해 걸어갔다.몇 걸음 가다가 이안이 작은 장난감을 떨어뜨렸다. 뒤를 돌아 줍자 윤하준도 함께 돌아섰다. 무심코 고개를 들던 그 순간,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고하슬이 소예지와 고이한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깡충깡충 뛰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한 풍경이었고 마치 한때의 세 식구가 함께 있는 듯했다.윤하준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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